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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즉각 승인…북핵 도발 속 첫 대북지원 물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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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요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지원 물꼬가 트였다. 통일부는 22일 북한 주민 500명을 치료할 결핵약 6억7800만원어치의 대북 반출을 승인했다. 이번 결정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대남 위협 속에서 나왔다. 또 정부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꽁꽁 묶여 있었다.

 통일부는 결핵약 지원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대북지원단체인 유진벨재단이 6개월마다 결핵약을 전달해 왔는데, 중단될 경우 내성을 키워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절박한 사정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핵약을 시작으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 승인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지원 결정에는 유진벨재단 스티븐 린튼 이사장의 동생인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 소장은 대통령직인수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7일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금 결핵약이 못 가고 있다’고 말하자 그 자리에서 컨펌해 주셨다”고 말했다. 동석했던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나진·선봉에 의사 가방(왕진용)을 보내려는데 반출 승인이 안 난다’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죠”라고 말했고 김 의원과 인 소장이 “네! 대통령님”이라고 큰소리로 답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린튼 이사장이나 인 소장 형제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 메신저 역할을 할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 지원채널을 통해 박 대통령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제안을 보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1895년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인 선교사 유진벨의 4대손인 린튼 형제는 1995년 유진벨재단을 함께 설립해 북한 결핵 퇴치사업을 벌여 왔다. 인 소장은 “내가 대통령께 어드바이스(조언)는 드릴 수 있지만 특사나 메신저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유엔 안보리 결의와 별개로 신뢰 프로세스 일환으로 대북 인도 지원을 우선 시작할 것”(중앙일보 3월 2일자 1면) 이라고 밝혔던 게 행동에 옮겨진 것이란 얘기다. 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이 올바른 선택으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더욱 유연하게 접근하겠다”며 태도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정부는 몇몇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 지원을 추가 승인한 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쓰일 이유식과 의약품 등을 세계식량계획(WFP) 등을 거쳐 보낸다는 구상이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 관계 상황과 북한 취약계층 영양실태 등을 고려해 지원시기나 방식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식량·비료 지원은 신중한 입장이다. 북한의 태도와 우리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영종·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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