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장기 발전 대신 나눠먹기 급급한 차베스 14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생전에 중남미 좌파국가들의 맹주로 통했다. 석유 수출 세계 5위인 산유국 베네수엘라를 지난 14년간 통치하면서 좌파국가들의 물주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쿠바·볼리비아·니카라과·에콰도르 등 이웃 좌파국가의 상당수는 차베스가 싼값에 제공하는 석유와 거액의 경제원조에 의존해 왔다.

 차베스는 거액의 오일달러를 국내 통치수단으로도 활용했다. 빈곤층에 무상으로 의료·교육·식료품을 제공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서 지지를 얻어냈다. ‘21세기 사회주의’ ‘참여민주주의’ ‘연대경제’ 등 거창한 구호를 외쳤지만 핵심은 거액의 오일달러를 국내외에 나눠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장기적인 국가발전 계획이나 국민 미래 행복에 대한 고민 없는 분배 중심의 정책은 오히려 국민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베네수엘라는 잘 보여줬다. 원유 채굴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산업 발전을 이루지 못해 실업률은 12%대, 오일달러로 인플레율은 20%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4선에 도전했던 차베스는 역대 최저인 5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경제정책 실패에 실망한 국민이 늘면서 정치적으로는 이미 몰락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누가 베네수엘라의 새 대통령이 되든 국가 장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베네수엘라엔 훌륭한 모델이 있다. 이웃 브라질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재임 2003~2010)은 포퓰리즘 정책 대신 산업 진흥과 기업 육성을 통해 국민 일자리를 늘려 빈곤층을 줄이는 중도 좌파 노선을 추구했다. 그 결과 브라질은 중국·러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브릭스로 불리는 신흥경제강국 대열에 합류했다. 베네수엘라도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인프라개발과 산업진흥에 박차를 가했으면 남미 경제강국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87%의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룰라 같은 지도자가 베네수엘라에도 나타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