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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영희 칼럼

전술핵과 독자 핵개발은 환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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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핵폭탄은 작고 가벼워야 단·중·장거리 미사일이나 전폭기에 탑재할 수가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의 중요한 목적은 핵폭탄의 소형화와 경량화였다. 지난해 말 미국 본토에 미치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북한이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세계핵클럽 회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북한 핵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 생활공간을 뒤덮을 기세다. 북한 비핵화의 전망은 가물가물 멀어지고 있다. 사태가 심각하다.

 이런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방도로 전술핵 재배치와 한국의 독자적인 핵개발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두 방안이 뒤엉켜 터져 나온다.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의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다.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론은 미국의 핵우산으로는 안심이 안 되니 우리 스스로 핵무장하자는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개발의 유일한 공통점은 둘 다 실현 가능성 없음이다.

 미국과 소련은 1991년 전술핵 폐기에 합의하고 항공기 탑재 전술핵을 제외한 전술핵을 폐기하기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때 한국의 군산기지에 있던 미군의 전술핵도 떠났다. 지금 미국은 전술핵으로는 유럽의 6개 나토 회원국에 180발, 미국 땅에 300발 정도만 갖고 있다. 전술핵 폐기가 완료되지 않은 것은 미국이 동유럽에 미사일 요격망을 두는데 반발한 러시아가 나머지 전술핵의 폐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전술핵을 조금은 갖고 싶은 숨은 동기는 중국의 핵전력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전술핵의 운명은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합의에 따른 것이어서 한국이 요구한다고 미국이 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세계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으로 노벨평화상을 미리 받았다. 게리 새모어 전 백악관 군축·비확산 담당관은 한국이 한목소리로 요청하면 미국은 전술핵 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일부 한국인들의 헛된 희망을 자극하지만 그건 무책임한 개인 의견이다. 전술핵 배치가 어려운 사정은 한국에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이 땅에 전술핵이 재배치된다면 중도좌파의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미·반핵·반정부 시위를 벌일 것이다. 그러니 어느 지자체가 전술핵 배치를 환영할 것이며 어느 정부가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감당하려고 할 것인가.

 독자적인 핵개발론은 더 위험하다. 핵개발을 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할 명분을 박탈당한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어쩌면 경제제재까지 각오해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더 답답한 족쇄다. 이 조약에 묶여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못한다. 핵전략 전문가 김태우 박사는 재처리와 농축 없는 핵개발을 자궁 없는 여성이 임신하겠다는 것에 비유했다. 일본과 대만의 핵개발을 자극할까 걱정인 미국은 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와 작당해 한국을 압박할 것이다. 이러고도 한·미 동맹이 온전하겠는가. 북핵 대응으로 한·미 동맹을 깬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북한의 핵위협은 현실로 다가오고, 북한에 말발이 서는 중국은 북한을 야단치는 시늉만 하고, 미국은 슬그머니 북한 핵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이란과 시리아나 알카에다 같은 국제테러조직으로 확산되는 것만 차단하는 데로 정책을 선회할 조짐이다. 우리에게 전술핵과 독자 핵개발 아닌 어떤 선택이 남아있는가. 김태우 박사는 미국이 전술핵을 재배치·보유하고 운용은 한국과 공동으로 하는 방안이 좋다고 한다. 나토 회원국에서 시행 중인 핵 공유다. 그러나 이것도 전술핵 배치인 이상 미국의 동의를 기대할 수 없다.

 남은 방도는 억지력의 강화다. 그 으뜸은 전술핵을 탑재한 미국 핵잠수함을 동해에 상시 배치해 북한을 위협·감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지력도 더 촘촘히 점검·강화한다. 북한의 공격징후를 탐지·식별·판단해 공격이 확실하면 즉각 타격을 가하는 킬체인(kill chain)망과 북한 전역에 미치는 신형미사일 개발을 서두른다. 동시에 내년에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핵원료 재처리와 농축을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해 북핵을 방치하면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단단한 자세를 미국과 중국에 과시한다.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은 NPT 위반이 아니다. 새 정부 외교가 이 정도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북한 핵시설을 선제 또는 예방 타격하자는 무모한 주장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명중률 20% 미만인 미국의 미사일방어(MD)로 1000기 이상의 북한 미사일 공세를 막을 수 없다. 예산 킬러인 미국의 MD참가 요청을 사양하고 한국형 미사일방어망(KAMD)으로 주요 군사·산업시설망을 서두르자.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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