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한옥의 세계화’ 지금이 적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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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해외문화홍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 문화예술인의 44%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문화로 고궁 등 전통문화를 택했다고 한다. K팝과 드라마에서 불기 시작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한국의 의식주 일상으로 저변이 확산되고 있다.

 전통문화 콘텐트의 으뜸은 아무래도 고택·고궁·사찰이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고궁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고, 템플스테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우수 관광상품으로 매년 외국인 체험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고택 등 전통한옥체험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전주 한옥마을은 올해 관광객 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한옥·사찰 등 한국의 특색 있는 주거공간을 소개해주는 ‘소셜 숙박’이라는 한류사업도 생겼다.

 한옥은 문화재나 관광의 대상을 넘어 ‘일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옥마을, 한옥카페, 한옥호텔, 한옥컨벤션센터 등은 한옥이 전통주거의 영역을 넘어 생활과 밀접한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한옥이 오늘과 내일의 시대를 함께하는 한국인의 주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옥은 우리의 체형과 생활방식 그리고 철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매우 지혜로운 주거 형태다. 이런 전통 멋과 지혜에 현대적 편리함이 더해지면서 한옥은 더욱 우성 유전자 콘텐트로 진화하고 있다. 문화원형으로서의 가치가 현대적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한류 3.0’ 시대라고들 한다. 한류 1.0 시대가 드라마에서 시작됐다면 2.0 시대는 K팝이 주도했다. 3.0 시대는 대중적인 콘텐트를 넘어 전통문화와 순수예술이 그 주역이 될 것이다.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의식주에 기반해야 한류가 풍부해지고 오래갈 수 있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옥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과 그 위상 변화는 한류의 대표선수로 도약할 수 있는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한옥이 가지고 있는 문화원형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콘텐트로 활용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건축의 유전자를 발굴해 보편적 가치로 확산하려는 노력으로, 한국의 ‘문화게놈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알아야 잘 활용할 수 있다. 문화원형을 데이터베이스화한다면 전통콘텐트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몇 년에 걸쳐 문화원형 개발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30여만 건에 달하는 전통문화 콘텐트를 웹사이트(www.culturecontent.com)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의 전통 문화원형이 창작소재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기반을 마련했다. 이미 영화·만화·게임 등의 소재지와 배경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캐내야 할 문화원형의 양과 질의 깊이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먼 듯하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는 한옥뿐 아니라 재발견되어야 할 문화의 멋과 가치가 많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무궁한 콘텐트들이 ‘오래된 미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는 자칫 체계적인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점차 사라질 위험이 있다. 전통시대의 마지막을 살아온, 그래서 전통문화를 몸에 지니고 있는 분들이 점차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점도 서둘러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새 정부는 시류·유행의 변화에 따른 한류가 아닌, 전통문화 콘텐트가 다양화되어 세계인의 삶에 파고들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장 명 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