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품격 잃지않는 영화 만들려면…

중앙일보

입력

EBS는 매주 일요일 밤 10시(재방송 토요일 낮 12시) 에 '한국영화 걸작선'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옛날 한국영화 가운데 화제작이나 수작들을 골라 방송하는 것. 시청률이 그다지 높진 않지만 고정 팬을 다수 확보한 프로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작품을 중심으로 방영하기때문에 올드 팬들에겐 추억의 향수를, 나이 어린 시청자들에겐 한국영화의 과거모습과 영화사(史) 적 지식을 얻는 기회가 되고 있다.

매번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시간대가 맞아서 시청할 경우 빛바랜 영상이 주는 아련함이랄까 따뜻함 같은 감정에 젖곤 한다. 지난 일요일(16일) 에 방영한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71년) 도 그랬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삼포가는 길''만추' 등 진지한 영화로만 기억되고 있는 이만희 감독 영화세계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예술'을 작정하고 만든 명화는 아니었다.

60년대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산(産) 서부영화, 특히 마카로니 웨스턴풍의 오락물(B급 영화) 이었다.

특히 장동휘.허장강.남궁원.황해 등 당시의 '터프 가이'를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이 컸다. 과거 한국영화들이 으레 그랬듯 더빙 처리된 과장된 대사와 몸짓에 킥킥 웃음도 났지만 30년전의 오락영화를 보는 느낌은 확실히 색달랐다. 오락영화지만 품격 같은 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EBS의 '한국영화 걸작선'이 '우리에게도 이런 훌륭한 영화가 있었다'는 식의 오도된 자만심으로 흐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쇠사슬을 끊어라'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부'1편을 비교해 보아도 그 성취도는 심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가.

오히려 오늘의 한국영화를 반성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요즘 조폭영화나 코미디영화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경박하고 한심하다는 축과, 재미있는 데 뭐 어때라는 축으로 나뉜다. 논쟁의 시비를 떠나 최근 영화들 가운데 30년 뒤에 봐도 품격을 잃지 않을 작품이 얼마나 될 지, 지난 한 해의 한국영화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어떨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