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보다 금리 인하, 증세보다 비과세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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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박근혜 정부 첫 경제팀이 진용을 드러냈다. 현오석(63)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조원동(57) 청와대 경제수석 내정자가 투톱을 이뤄 김중수(66) 한국은행 총재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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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하늘의 때가 땅의 이득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고 했다. ‘천시’를 정치적 여건, ‘지리’를 경제적 환경으로, 인화를 경제팀의 팀워크로 친다면 ‘현-김-조’ 트리오는 좋지 않은 천시와 지리에서 출발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국회 안에 절반에 육박하는 거대 야당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경제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엔저’가 수출전선을 덮치고 있고 1000조원의 가계부채가 내수경기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현-김-조 세 사람 모두 경기고-서울대 학맥으로 엮인 경제학 박사라는 점, 현 후보자와 김 총재가 모두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출신이라는 공통점에 비춰볼 때 정책 조화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화’가 최대 자산인 셈이다.

 새 경제팀의 당면 현안은 경기 부양과 세원 확보로 압축된다. 가계부채나 복지 관련 정책은 이미 공약에 구체화돼 있다. 사실 경기 부양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1년 2분기부터 7분기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곤 유례가 없는 침체다.

현 후보자가 이끈 KDI는 지난해 11월 공개적으로 기준금리 인하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경기 부양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 후보자는 지난달 23일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의 비공개 강연에서 “재정정책은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다 확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 경제팀이 곧바로 경기부양용 추경 편성에 나설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봐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정부가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이 마이너스인 데다 정권 차원에선 공약 이행 재원 131조원 조달이 급선무여서 추경 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당국자는 “추경을 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할 판인데 박 당선인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추경 여부는 1분기 경기 상황과 박 당선인의 경기 진작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경기 부양의 또 다른 카드인 기준금리는 상반기 중 인하될 가능성이 커졌다. 현 후보자는 지난달 강연에서 “최근 물가상승 압력은 크게 완화됐고 대내외 금리차로 자본 유입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통화정책은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도 금리 인하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있다.  

김 총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서로 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에 협의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말해 새 정부의 경기 진작 구상과 보조를 맞출 용의가 있음을 내비쳤다.

 세원 확보는 현오석-조원동 팀의 지상과제다. 불황으로 인해 이미 세금은 충분히 걷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새 경제팀이 당장 증세를 추진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박 당선인부터 증세에 거부감이 있다. 조 내정자 역시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 “실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증세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대신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 축소와 봉급생활자의 소득공제 축소를 제안했다. “소득공제는 기본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많이 갖고 간다. 고소득자의 세율을 높이기보다 소득공제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보다는 대기업에 편중된 각종 공제 혜택을 줄여 평균세율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조 내정자가 1년 반 동안 조세연구원장을 하면서 세무 행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조세연구원 관계자는 “세정 혁신을 통해 세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과거 사례를 조 내정자가 깊게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강도 높은 정책들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집중되는 고액현금거래 정보를 국세청이 세금 탈루 추적에 쓸 수 있도록 공유하게 하는 방안은 한층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조 내정자는 “고소득 전문직의 용역료 지급을 현금으로 하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세연구원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약 17~19%, 사업소득세 탈루 규모는 약 22조~29조원에 달한다.

 사실 세원 확보와 경기 진작은 따로 노는 게 아니다.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가 살아나면 세수도 따라서 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의 관심을 경제성장 쪽으로 돌려놓는 게 새 경제팀이 맨 먼저 해야 할 과제일지 모른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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