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한국의 멋…바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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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온몸을 훅훅 볶는 여름 삼복 더위에 서늘한 9월의 바람을 생각하면 얼마나 시원한가!
여행할 때마다 느끼지만 나는 시골의 초가집을 지날 때 지붕 위에 놓인 「박」을 특히 좋아한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나는 이와 같은 것을 본 일이 없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에서는 박 속에 금과 보석도 있고 뱀과 거미도 나왔다.
불란서 설화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과부가 딸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맏딸은 성질이 고약했으나 막내딸은 아주 착했다. 하루는 막내딸이 물을 길러 우물에 갔다가 한 노파를 만났다. 이 노파는 나이가 많아 힘이 없었으므로 마음 착한 막내딸이 물을 길어주었다. 그런데 그 노파는 선녀였던 것이다. 막내딸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엄마가 늦은 이유를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막내딸이 대답할 때마다 입에서 진주 알이 하나하나 튀어 나왔다. 엄마와 맏딸이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욕심 많은 맏딸은 진주에 탐이 나서 급히 우물로 뛰어가 막내딸이 한 것처럼 물을 긷는 노파를 도와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할 때 그의 입에서는 진주는커녕 뱀과 거미만이 기어 나왔다.
한국에서는 박을 둘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어 사용한다. 이 바가지는 아무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등산할 때 목이 마르면 무엇보다도 바가지로 낙수를 들이켜는 그 맛은 천하일미다.
한국에서는 물건을 너무 비싸게 팔면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주당들의 말에 의하면 밤중에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올 때 아내가 『바가지를 박박 긁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행할 때 이 무서운 바가지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한테는 대단히 친절(?)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물건은 곧 바가지인 것 같다. 그러므로 불란서에 돌아갈 때는 다른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바가지를 기념품으로 꼭 가지고 가고 싶다.

<◇「앙드레·파브르」씨(33)>
▲파리대학교 언어학과 졸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어학과 석사과정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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