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군의 한·일 만화보기] 엽기만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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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요즘은 그 열기가 좀 식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도 인터넷에서 인기 검색어 순위 1,2위를 다투던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의 정의와 달리, 기존의 관습과 상식을 비틀고 파괴하기를 즐기는 신세대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엽기'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런 '엽기 열풍'의 대열엔 『멋지다 마사루』『이나중 탁구부』 『짱구는 못 말려』같은 엽기 만화가 있었습니다.

『파타리로』는 엽기 만화의 '어머니'격인 작품입니다. 마야 미네오가 1978년 잡지 연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72권이라는 경이적인 숫자의 단행본을 내고 있지요. 주인공은 삼등신 몸매에 메기같은 얼굴을 지닌 마리넬라 왕국의 왕 파타리로입니다.

꿋꿋이 자신을 '꽃미남'이라 주장하는 파타리로. 작가는 이 추물을 통해 『유리가면』 『베르사이유의 장미』『바람과 나무의 시』등 70년대 일본을 풍미했던 순정만화의 전형을 분해하고 풍자합니다. 미모의 주인공.복잡한 가정 환경.동성애 등 순정만화의 코드는 엽기적인 패러디를 거치면서 진지함을 잃고 단지 폭소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일본처럼 순정만화 독자층이 두터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이러한 '파괴'는 충격적이면서도 재미납니다.

한편 96년부터 4년간 『소년 챔프』에 연재된 전상영의 『미스터 부』는 만화.영화.광고 등 대중문화 전반을 뒤집어 엎습니다.

주인공 미스터 부는 그가 사는 마을 고담면의 영웅입니다. 고담면의 악당들이 그를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사실 부는 영웅은 커녕 밥만 배불리 먹여준다면 무슨 짓이든 태연히 저지를 수 있는 성질 고약한 백수에 불과합니다.

그에겐 선도 악도 밥 다음입니다.'배트맨'이나 '로보캅'같은 영화 속 영웅들도,'드래곤볼''신세기 에반게리온''세일러문'같은 히트한 만화의 주인공들도 모두 부와 한편이 되면 영락없이 밥에 목숨 거는 날건달의 처지로 전락합니다. 한 마디로 '엽기'이지요.

눈여겨볼 것은 작가가 패러디 속에 담고 싶어한 메시지입니다.

"학교는 왜 가나?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부의 '어울리지 않는' 절규는 신세대들이 엽기를 통해 찔러보고자 했던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도 접속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박성식 만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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