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흔드는 '깊은 울림'

중앙일보

입력

"예전의 영화(榮華) 보다 현재의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팬과 내가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대형여가수 임희숙(51) 씨가 가수 생활 35년을 맞아 기념 음반을 내놨다. 재즈 전문 레이블 '레브'설립 기념 앨범으로 나온 이 앨범에는 재즈풍으로 편곡한 그녀의 대표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진정 난 몰랐네''잊혀진 여인'등 가요 세 곡과 그녀가 즐겨 부르는 재즈 명곡 일곱 곡이 들어있다.임씨의 팬들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앨범이 될 듯 하고 재즈 매니어들 역시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너를 보내는 들판에 슬픈 낮달이 떠있고…'로 시작하는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나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로 시작하는 '진정 난 몰랐네'를 한번도 불러보지 않은 이에게, 당신은 한국 가요의 참맛을 모르는 사람이며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생의 시고 쓴 맛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임씨는 이런 명곡으로 기억되는 가요 가수이자 몇 안되는 한국 재즈 여성 보컬로 일생을 살아왔다.

"재즈는 협연이에요. 재즈에 반주라는 건 없습니다.뭔가 잘해보려고 조화를 벗어나 한박자만 길게 끌어도 박수를 안치는 게 진짜 재즈 매니어들이죠. 그런 조화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며,순수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할 때도 힘들 때도 노래를 해왔습니다."

그녀가 음악 인생을 시작한 것은 서울 덕성여고 1학년 때인 1966년. 열여섯살때였다. 작곡가 손목인씨를 찾아가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고, 그로부터 재즈를 배웠다. 곧 노래 솜씨가 소문나면서 워커힐 호텔 무대에 섰다.

"대중적으로 히트한 첫곡 '진정 난 몰랐네'는 70년에 발표했어요. 하지만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7년 뒤부터죠.무슨 특별한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날부터 인기곡이 되더군요."

그녀가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 재기한 노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역시 마찬가지였다. 84년에 발표했지만 8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녀가 '내 하나의…'를 부르게 된 과정을 듣고 있으면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얼굴도 모르던 여덟살 아래의 작곡가 백창우씨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노래를 주고 싶다면서 만나지도 않는 거에요.결국 녹음할 때도 얼굴을 못봤고 2년 후에 그 사람 결혼할 때 처음 얼굴을 봤지요. 그냥 내 소리가 좋아서 그에 맞는 노래를 주고 싶었다나요."

'개같은 날의 오후' 등의 영화,'블루 사이공''겨울 나그네' 같은 뮤지컬에 출연한 그녀는 무엇보다 서울 대학로의 재즈 클럽 천년동안도 등 팬들과 직접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공연에 힘써왔다.

"제 목소리로 계속 공연을 안하면 그게 가수냐"고 묻는 임씨는 "주말이 아니라 월요일에 공연장을 찾는 이들이 가장 귀한 관객"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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