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현황과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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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특감결과 상당부분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었던 공적자금의 투입 규모가 10월말 현재 15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발행한 공적자금백서를 보면 지난 97년 11월부터 시작된 기업.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우리나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 거액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졌는지 개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공적자금을 '회수'를 전제로 한 순환성 자금이라기보다는 시스템붕괴직전이었던 위기상황의 한국경제를 구하기 위한 국민경제적 '비용'으로 해석한다면 공적자금에 대한 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점을 감안해도 투입이 거의 끝난 현 시점에서는 내년부터 돌아올 거액의 상환부담과 회수가능성 여부가 더 부각되고 있다.

◆ 공적자금 어디에 얼마나 들어갔나
정부는 처음 조성한 공적자금으로는 당초 계획했던 구조조정이 원만히 진행되기 어렵게 되자 지난해 말 50조원을 추가로 조성했다.

지난 6월까지 사용된 공적자금내역을 담아 9월 발간된 공적자금백서에 따르면 공적자금중 채권발행으로 조달된 86조7천억원은 예금보험기금의 금융기관출자에 35조5천억원을 사용한 것을 비롯, 예금대지급(15조3천억원), 계약이전 등에 따른 출연금(11조2천억원), 자산매입(4조2천억원),부실채권 매입(20조5천억원)에 사용됐다.

그외에 주식 및 부실채권매각, 파산배당 등을 통해 회수한 자금 27조8천억원, 그리고 IBRD와 ADB차관, 국유재산 등을 활용해 지원한 공공자금 23조원도 금융기관출자와 예금대지급 등에 사용돼 당시까지 137조5천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후 서울보증보험 및 대한생명 등에 대한 추가지원으로 이후 4개월간 다시 13조원 가량이 사용돼 지난 10월말 현재 총투입규모는 150조6천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투입된 150조6천억원중 37조7천억원만을 회수, 투입된 자금의 4분의 1가량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 공적자금 상환부담 얼마나 되나
투입이 거의 끝난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사용내역보다는 향후 해결대책이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채권발행으로 조달한 86조7천억원은 해당기관부채지만 엄연히 '정부보증채'로 상환이 어려울 경우 정부재정이 고스란히 떠안아야하는 '우발채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 채권의 만기를 살펴보면 내년중 5조6천억원을 시작으로 2003년 21조9천억원, 2004년 17조7천억원, 2005년 17조9천억원, 2006년 16조6천억원이 도래한다.

또한 채권만기뿐 아니라 양 공사가 채권이자지급 등의 비용마련을 위해 정부재정에서 빌린 37조원 역시 내년 4조원을 시작으로 2003년∼2006년사이 매년 5조6천억∼6조5천억씩 갚아야 한다.

금융구조조정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원리금상환걱정부터 해야하게 된 이유는 채권시장의 후진성으로 인해 정부보증채임에도 만기 5년 이상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적자금관리위는 이같은 상환스케줄을 그대로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최근 10년 만기국채가 등장한 것을 배경으로 이미 내년 만기도래 공작자금원금중 4조5천억원에 대해서는 최장 20년까지 차환발행해 일단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

박승(朴昇)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차환발행을 결정하며 "금융구조조정의 긍정적 효과는 현재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세대간 부담을 나눠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앞으로도 상환부담이 과중할 경우 장기채로 차환발행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 공적자금회수 가능한가
투입된 공적자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 지는 최대의 논란거리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내외의 일치된 시각은 공적자금을 절반이상 회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그간 투입된 자금의 회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왔다. 우선 공적자금투입 금융기관의 지분 또는 보유채권을 매각하거나 파산할 경우 파산배당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투입자금의 25%가량을 회수했다.

이와 함께 예보는 부실금융기관의 대주주, 경영진, 보증인을 상대로 재산추적에 나서 지난 10월말까지 모두 3천263명에게 9천15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1조63억원의 재산을 가압류했다.

정부는 현재도 부실금융기관 매각, 오페라본드발행, 상장 등으로 자금회수를 시도하고 있지만 막대한 보유주식물량 등을 감안하면 국내외 증시에서 이를 매각해 투입 공적자금을 회수한다는 것은 상당기간 난망한 것이 사실이다.

예보의 부실금융기관 관련자 재산회수 역시 경영책임에 대한 '징벌'적 성격일뿐 투입규모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1차 공적자금을 투입해놓고 다시 감자를 실시한 경우나 파산금융기관 예금대지급의 경우는 원천적으로 '회수불능'이라고 볼 수 있다.

진념(陳稔)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최근 예보채와 공적자금문제에 대해 "예보채중 손실확정분에 대해서는 국채로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며 "공적자금에 대해서는 금융시스템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비용'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공적자금 성과와 개선책 공적자금은 수십년간 쌓인 금융기관의 부실을 털어내 외환위기를 맞아 뇌사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98년 1차 공적자금 64조원의 투입으로, 올해까지 금융위기에 따라 900조원 가까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이 295조5천억원에 그친 것으로 추정했다.

공적자금의 지원과 함께 구조조정의 진전으로 외채에 대한 이자부담 경감효과는 지난 3년간 약 7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금융연구원은 계산했다.

공적자금은 국민의 예금을 보호하고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을 정리해 금융시장을 정상화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파산 금융기관의 예금자 110만명이 공적자금으로 예금을 지급받았다. 예금 대지급은 회생가능한 금융기관의 연쇄 도산을 방지하는 효과도 냈다.

금융기관은 공적자금의 수혈로 99년말 88조에 이르던 부실채권 규모(고정이하여신)가 작년말 64조6천억원으로 줄었다. 은행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97년말 7.04%에서 99년말 10.83%, 작년말 10.53%로 높아졌다.

이처럼 금융시장의 기능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가 높아지고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가능해졌다.

97년말 투자부적격(B+)으로 추락했던 국가신용도(S&P 신용평가 기준)는 99년말 투자적격(BBB+)으로 회복됐고 98년 -6.7%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99년 10.9%, 지난해 8.8%를 달성했다.

공적자금은 조성 목적대로 금융시장의 정상화에는 기여했지만 사용 과정에서 `공짜돈'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킨 만큼 철저한 자금집행과 관리.감독 등 개선이 필요하다.

이에따라 여야는 뒤늦었지만 작년 12월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는 이 법에 따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한편 매년 공적자금 관리백서도 발간하기로 했다.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적자금은 금융기관의 청산가치보다 회생가치가 클 경우에만 지원한다는 최소 비용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공적자금 지원 금융기관의 조속한 경영 정상화를 추진, 공적자금의 회수율을 높이는 것도 과제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가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 기업, 대주주.경영진 등에 대하 민.형사상 책임추궁을 벌이고 있지만 공적자금 지원규모에 비하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다. 예보의 부실기업 조사도 최근에 고합 1개만 끝낼 정도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또 향후 금융기관의 부실에 즉각 대응해 공적자금 지원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예금보험공사에 영업정지 명령권을 주는 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공적자금 관련 기관의 기능 개편도 검토해볼만 과제다.(서울=연합뉴스) 김문성.김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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