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과외시켜 취업률 높인 군산대 철학과 교수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군산대 철학과 임규정 교수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임 교수 비롯한 철학과 교수들은 전공 강의가 모두 끝난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영어·한문 등 과외 수업을 진행한다. 작년 이 학과에선 졸업생 14명 중 11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14일 전북 군산시 군산대학교 인문관 2층 한 강의실. “팝 명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왜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로 이름을 붙였을까요. trouble의 어원은 고요한 물을 막대로 휘저어 출렁거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water는 물뿐 아니라 바다라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파도가 출렁거리는 바다, 즉 험한 세상이라고 표현한 거지요. 한자로 풀이하면 고해(苦海)가 됩니다.”

 이 대학 철학과의 임규정(서양현대철학) 교수가 팝송을 가지고 영어 단어·문법, 동서양 문화의 차이 등을 풀어 나갔다. 학생들은 흥미진진하게 눈을 반짝거리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의를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 영어 수업은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월요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한다.

 군산대 교수들이 대학 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제자들을 위해 방과 후 시간에 과외를 해주고, 주말을 반납한 채 함께 워크숍도 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수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학생 성적·취업은 나 몰라라 해왔다. 이 때문에 ‘철밥통’이라 손가락질받기도 했다.

 군산대 철학과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과외 수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취업률·재학률 등을 기준으로 한 학과 평가에서 2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연구실에만 매달려 있으면 언제 철학과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교수들의 변신을 촉진했다. 임규정 교수는 “학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전공 자체가 퇴출될지 모르는 상황을 방관만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사회적 생존 능력을 키워줘야 교수·학과도 산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영어·한자·교양 등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박학래(조선유학) 교수는 매주 수요일 오전 8~10시에 한자 수업을 한다. 복수 전공 학생들을 위해 물리학과 교수를 초빙, 물리·수학 과외도 해준다.

 교수들은 주말이면 학생들과 함께 ‘야외수업’을 떠났다. 1박2일 일정으로 세미나·워크숍을 하고 각종 학술대회, 인문학 포럼, 의정아카데미 등 행사를 찾아다닌다.

 이 같은 노력은 열매를 맺고 있다. 지방대, 철학과라는 이중고 속에 취업률이 80%대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14명의 졸업생 중 11명이 출판사·중소기업·학원·KTX 등에 직장을 잡았다. 8월에 결과가 나오는 올해 취업률도 비슷한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의 일류대학들도 철학과의 취업률은 50%를 밑돈다.

 더 큰 변화는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입학 무렵 토익 점수가 200~300점이던 학생들이 3~4학년 무렵엔 600점대로 올라선다. 840점까지 받은 학생도 있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토론대회도 열었다. 학생 도영재(23)씨는 “교수님들과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형·아버지처럼 좋은 인생의 멘토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채정룡 총장은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학생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모습이 ‘누가 들어왔는지, 누가 졸업하는지’조차 모르던 교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