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단간방에서 병든 몸 달래 가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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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당정권 때 정계를 주름잡던 노정객 이태용(57)씨. 지금은 빛을 잃고 병고에 시달린 채 산간 벽촌 어느 산골짝 단간방에 누워 재생의 희망도 없이 쓸쓸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3선 의원이라서 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반달(15일)장관(상공장관)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가 중풍으로 반신불수의 몸을 이끌고 부인 원효순(59)씨와 함께 이곳 충북 단양군 매포면 어의곡리 뒷산 기슭에 자리잡은 비룡사 옆 초라한 초가 단간 집을 빌어 이사온 지는 4년 전인 62년12월12일의 일.
제2공화국 시절, 구민주 당 정책위원장으로 있었던 이씨는 5·16혁명과 더불어 정정법(개정법)에 묶여 활동의 자유를 잃었고 서울 숭인동 56의 25에 있는 그의 집에서 두문불출, 1년 남짓 칩거한 끝에 뜻하지 않은 중풍에 걸려 불구의 몸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씨에게는 화려했던 지난날의 행적과는 동떨어지게 모아놓은 재산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약 값도 없어 허덕이었고 은행에 저당됐던 그의 집마저 경매 처분되어 갈 곳 조차 없이 돼버려 슬하 1남 2녀의 자녀는 둘째아들 해원(38·성대교수)씨에게 맡기고 남몰래 이곳을 찾은 것이다.
경성제대를 나와 27세의 약관으로 양구군수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고 54년의 총선거(3대 국회)에서 충북 제천에서 출마,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투신했고 10여년 동안 경계의 중진으로 활약한 후 상공장관까지 지낸 이씨가 오늘날 파산, 약 한첩 쓸 수 없는 몸이 된 것은 너무나 양심적이었고 청렴결백했던 그의 생활태도 때문이었다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말했다.
민주당집권 때 정권을 둘러싸고 신·구파 싸움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는 수습을 위해 취임 15일밖에 안된 상공장관 자리를 아무런 미련 없이 서슴지 않고 남에게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앉았다는 것은 너무나 알려진 사실이다.【제천=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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