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통합과 창의로 아시아 시대를 주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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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3년의 새해가 밝았다. 매년 밝아오는 새해 아침이지만 오늘 계사년(癸巳年) 아침에 맞는 붉은 태양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하느냐, 아니면 변방의 이류국가로 주저앉느냐를 가르는 첫 관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올해 건국 65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를 토대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국가라는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이 나라가 이념과 세대, 지역과 계층으로 갈려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동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는 점점 더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는 우리나라가 처한 엄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올해부터 새로운 각오로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가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온 미국·유럽 위주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은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은 당분간 세계의 중심무대로 복귀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이제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곳은 아시아뿐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아시아에선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이 강건하게 버티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신흥국들이 성장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위대한 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시대의 본격적인 대두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의 위세에 눌리거나 후발개도국들에 치일 위험이 큰 반면, 잘 활용하면 대내적인 갈등을 해소하면서 안정적인 번영을 뒷받침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시아 시대의 도래라는 기회를 잡아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 것인지, 아니면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쳐 주저앉고 말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을 맞았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 아시아 시대라는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선 정치적·사회적인 대통합을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 국민이 반으로 갈려 사사건건 대립한다면 기회는 대한민국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주변의 아시아 각국이 아무리 융성해도 우리가 내부분열을 추스르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통합의 첫걸음은 인사의 탕평(蕩平)이다. 지연과 학연으로 맺어진 저급한 패거리 인사를 탈피하지 못하면 분열의 골은 깊어지고, 대립의 각은 날카로워진다. 인위적인 자리 배분을 통해서라도 누적된 인사의 악습을 깨트려야 한다.

통합을 위한 또 하나의 길은 공감과 소통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 반대편에 선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자면 가진 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 재산을 가진 사람, 명예를 가진 사람부터 솔선해서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마음이 국익을 향해 한 방향으로 모일 때 비로소 재도약의 기회가 열린다.

 아시아 시대라는 기회는 거저 오지 않는다. 그 기회를 살릴 능력이 있어야 꽃을 피운다. 기회를 살리는 능력은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온다. 아시아를 그저 싸구려 제품의 수출시장으로만 보는 구태의연한 사고로는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선도할 수 없다. 또 영세한 국내시장만 바라보는 천수답식 관행으로는 저성장의 질곡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 중산층을 겨냥해 아시아 전역을 우리의 내수시장으로 삼겠다는 창의적 발상과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아시아인들을 열광케 한 한류와 K팝,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은 그 가능성이 무한함을 보여준다. 그러자면 청년들이 수출주도 대기업과 내수중심 영세자영업이라는 고착된 고용구조에서 벗어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창업에 나서도록 하는 새로운 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새로운 일자리가 있고 미래의 성장동력이 있다.

 그러자면 우선 국내의 각종 규제를 과감히 푸는 한편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체결하고, 한국을 아시아인들이 몰려드는 매력적인 허브로 만들어 청년 창업의 마당을 획기적으로 넓혀야 한다.

 아시아 시대라고 하지만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 환경은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국제정치 환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시아 시대의 꿈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미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파워 하우스(power house)’로 떠오른 한·중·일 3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곧 2기(期) 행정부를 출범시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 새 진용을 갖추게 된 한·중·일의 리더십이 어떤 구상과 의도를 갖고 상호작용 하느냐에 따라 아시아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영토와 과거사 문제에 매몰돼 3국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버려둔다면 이는 굴러온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우발적 사고는 언제든지 무력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금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군비 강화에 나섬으로써 동아시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손잡고 역내(域內) 대(對)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이에 반발한 중국이 핵과 미사일을 갖춘 북한의 도발을 방치하는 사태는 우리로선 최악의 외교·안보 상황이 될 것이다. 누구도 주권은 포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상유지’를 토대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서 영토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중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상황을 피하려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발전시키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남북관계 개선도 필요하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과 제재를 가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어둬야 한다.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는 한 대화와 교류는 없다는 식의 경직된 자세는 우리 자신의 입지를 좁히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남북 간의 신뢰는 말만으로 구축될 수 없다. 접촉이 필요하고 행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성큼 다가온 아시아 시대를 도약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뢰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