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경기부양 이대로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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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지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나설 때, 우선 정부 돈이 안드는 금리인하부터 해보고 그것으로 안되면 정부가 직접 돈을 써서라도 경기를 부추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미국의 테러사태로 세계적 불황이 확산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 세계적 불황 확산에 비상

그래서 5조5백억원의 1차 추경예산이 집행도 되기 전에 2조원의 추경을 짜겠다는 데에도 반대하기 힘들다.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지만 추경의 규모와 용처에 대해 이견이 있을 뿐 추경 조성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아니 그토록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던 언론들도 대부분 "경기부양 하겠다는 말대로 시급히 실천하기 바란다"는 식이다. 세계적 불황 확산 소식에 화들짝 놀란 여론도 경기부양을 꾀하는 정부 품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형국이다.

보통 민간이 위기설을 들고 나오면 정부가 "근거 없는 설로 불안감 조성하지 말라" "지금은 위기가 아니다. 안심하라"는 게 이제까지의 관행이었다.

외환위기 때처럼 그 해석이 틀렸음이 곧 들통나는 경우조차 그래 왔다. 위기의 분위기가 실제 위기를 불러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테러사태에 의한 세계적 불황 확산을 더 널리 알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경제수석이 지금의 불황에 정부의 잘못도 크다고 의외로 '진솔하게 인정'한 것도 경제위기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고육책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야 과감한 경기부양이 바른 정책이라는 주장이 먹혀 들어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냉소적 시각마저 있다. 지금의 위기적 불황 속에서 고맙게 생각돼야 할 과감한 경기부양책이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걱정 때문이다.

우선, 지금 식으로 나가면 자칫 일본꼴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재정적자를 동반한 구조개혁 지연 때문이다. 일본은 1980년대 말 거품이 꺼지면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에 대해 구조개혁을 할 것이라고 말만 무성했다.

실제 구조개혁에는 소극적이었다. 대신 경기를 부양한다며, 금리를 영(零)% 수준으로 낮추고 아홉 차례에 걸쳐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부실을 놓아둔 채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돈만 쏟아 부었다.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다. 10년 넘게 경기가 바닥을 맴돌고 있고,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늘고 말았다. 이제는 구조개혁에 절실하게 필요한 공적자금마저 마련치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정부가 경기부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에 경제체질을 바꾸자며 경제부실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과도한 정부규제를 풀자던 지난 수년의 구조개혁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근본적 치유책은 외면한 채 경기부양에 급급한 모습이 '잊고 싶은 지난 10년'의 일본을 너무나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경기부양책이 결과적으로 더 '큰 정부'를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도 심각하다. 정부가 민간경제를 활성화하는 것보다는 정부의 힘을 키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적자재정을 꾸려서라도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고 하더니, (민간기업에 도움이 되는)법인세 인하 등 감세를 통해 경기부양을 하자는 데는 재정적자가 심해진다며 소극적이다.

*** 민간 경제 활성화가 우선

일각에는 이를 놓고 민간과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민간은 민간에 돈을 돌려주고(감세) 기업활동을 자유롭게 해 주면(규제완화) 저절로 경기가 되살아 난다는 주장이지만, 정부는 정부가 원하는 시기(예컨대 대선이 있는 내년초께)에 원하는 만큼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칼자루는 정부 손에 있다. 상황은 지금 민간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정수 <논설위원 겸 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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