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들 "가자, 연구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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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를 선호하던 첨단기술 분야의 석.박사급 고급 인력들이 정부출연 연구소로 몰려들고 있다.

경기침체로 기업체들이 신규 인력 채용을 크게 줄인 데다 기존 인력의 구조조정까지 적지 않게 이뤄지면서 안정된 직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때문이다.

대전 대덕밸리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올해 정기 공채 접수 결과 60명 모집에 전자.정보통신 분야 석.박사 7백2명(석사 6백22명, 박사 80명)이 응시, 11.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16일 밝혔다.

응시자 중에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포항공대.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ICU) 등 국내 4개 대학 출신과 해외 학위 소지자가 전체의 16.7%(1백17명)나 포함됐다.

ETRI가 지난 2년 동안 재직 연구원들의 벤처행과 고급인력들의 연구소 취업 기피로 인력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현상이다.

오명미 인사관리팀장은 "기업들의 잦은 구조조정으로 고급인력들의 고용도 불안정해지면서 연구소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대덕단지 내 다른 연구소들도 마찬가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지난달 말 실시한 박사급 이상 연구원 공채에는 18명 모집에 75명이 몰려 4.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에 신입 연구원을 뽑은 한국원자력연구소도 30명 모집에 2백55명이 지원해 8.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또 KAIST의 경우 75년 이후 지난해까지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취업 1순위는 기업체였지만 올해는 정부출연연구소에 추월 당했다. 올해 박사 학위를 받은 2백56명 중 44.9%(1백15명)가 연구소에 취업했고, 기업으로 간 사람들은 42.6%(1백9명)였다.

이들 연구소 취업관계자들은 "최근 벤처기업으로 갔던 고급인력 중 스톡옵션을 포기하면서까지 연구소로 돌아오고 싶다는 문의를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취업 전문기관인 리크루트의 이정주 사장은 "벤처 붐이 식으면서 인력시장이 비전이나 미래의 불확실한 보상에서 안정성 위주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고급인력이 연구소 등에 몰리는 현상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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