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부땐 안 판다더니 … 미국 변심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국이 전략무기인 고고도(高高度) 무인정찰기(HUAV) ‘글로벌호크’를 한국에 판매하기 위한 공식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한국에 4대의 글로벌호크를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판매하겠다는 의향을 의회에 통보한 표면적 이유는 한·미 정치·군사동맹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뜻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군 관계자는 “미국이 생산하는 전략무기의 해외 판매는 적국에 기술이 넘어갈 것을 우려해 의회 차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이전에는 미 국방부 차원에서 우리 군에 대한 판매에 난색을 보였지만 이번에 의향서를 전달한 것은 한국에 판매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우리 정부가 글로벌호크 구입을 추진한 지 8년 만에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될 전망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글로벌호크를 사들이려 했으나 미국이 난색을 표해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미국이 태도를 바꾼 건 자국의 악화된 경제 상황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명분은 2015년 말 한국으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이뤄지게 되는 만큼 대북 억지력을 높이겠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자국 군수업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란 얘기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은 “2008년 이후 미국의 경기 악화로 국방예산이 줄어들었다”며 “판로가 막막해진 미국의 군수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동맹국에 (전략무기를) 판매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호크 해외 판매를 막아오던 미국은 현재 일본과도 판매를 전제로 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이 재정위기로 구매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 내 수요까지 막히자 미 군수업체들은 아시아를 마지막 남은 시장으로 여기고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첨단무기 수출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우리 정부와 접촉했을 때보다 가격을 높게 부르고 있는 것도 미국 내 판로가 막힌 글로벌호크를 한국에 고가로 팔아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부르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2009년 제안했던 4대 1세트의 가격(4억5000만 달러, 4800억원)을 기준으로 예산을 정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은 의회에 세 배 가까이 높은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측이 구매수락서(LOA)에 제시한 금액이 우리가 평가한 예산의 20%가 넘을 경우 사업타당성 검토부터 다시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 판매용 비행체 개조비와 성능 개량비 등이 늘고 개발비도 신설해 가격이 상승했다”는 논리를 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도입을 추진하는 모델은 미국이 현재 일본과 협상을 진행 중인 모델보다 구형이다. 조만간 LOA가 도착해 본격 협상에 돌입하면 가격문제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군 차원에서 글로벌호크 도입을 결정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6월이다. 당시 합동참모회의는 한반도 주변의 감시 기반 확보와 북한 후방 지역까지 감시 정찰을 하기 위해선 고고도 무인정찰기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자주외교를 강조하며 대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치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2004년 도입 계획을 확정하고 판매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2005년 6월 열린 한·미안보협력위원회(SCC)에서 거부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호크는 해외 판매용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당시 냉랭했던 한·미 관계가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미 관계와 달리 남북 간엔 화해협력 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미국이 자국의 첨단 기술이 북한이나 중국에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평가다.

 국방부는 2006년 6월부터 2008년 1월까지 국방대학교와 한국산업개발연구원에 대안 마련을 의뢰했다. 그럼에도 글로벌호크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자 미국 측도 “구매를 하겠느냐”고 타진해 왔고, 우리 측은 구매 의사를 다시 전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협상에 속도가 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실무 차원의 협의가 진행됐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당선 직후 가격 협상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

[관계기사]

▶ 미국, 글로벌호크 아·태 국가 최초 한국에 판다
▶ 평양의 김정은 30㎝ 움직임까지 정밀감시 가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