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같은 말 두 번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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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영종
정치부문 차장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인공위성 발사가 될 겁니다.” 김정일은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귀에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이 자리한 대형 스타디움에서는 10만 명이 동원된 집단공연이 한창이었다. 귀빈석 맞은편 스탠드에는 수만 명의 평양 학생이 화염을 뿜으며 솟아오르는 장거리 미사일을 정교한 카드섹션으로 펼쳐보였다. 미국이 보상을 해주면 미사일 개발을 자제하겠다는 김정일의 메시지가 담긴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2000년 10월 23일 밤 대동강변 능라도 5·1 경기장 광경이다.

 평양에 성조기가 걸릴 것이란 기대가 나올 만큼 당시 분위기는 좋았다.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특사인 조명록은 같은 달 10일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이틀 뒤 북·미 공동성명은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란 북한의 약속을 담았다. 답방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미사일 문제를 얘기하는 김 위원장은 매우 똑똑해 보였다”며 북한의 미사일 모라토리엄(발사 유예)에 흡족해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그제 오전 9시49분. 평안북도 해안 동창리 발사장에서는 북한이 ‘은하 3호’로 이름 붙인 로켓이 발사됐다. 북한은 ‘백점 만점’이라며 성적표를 자랑했다. 우주 분야 국제심판 격인 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도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로켓 사거리가 1만㎞에서 1만5000㎞에 이를 것이란 잠정 분석이다. 4전5기 끝에 미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공인받은 셈이다.

 다음 수순으로는 핵실험이 꼽힌다. 1993년 봄 북핵 위기가 터지자 미국은 대북 협상을 서둘렀다. 이듬해 10월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에서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 2기를 지어주기로 했다. 핵 프로그램 동결에 대한 보상이다. 하지만 북한은 단계마다 ‘행동과 보상’을 맞바꾸자고 버텼고, 미국은 채찍과 당근을 오갔다. 결국 경수로는 70%의 공정에서 파국을 맞았다. 2006년 10월 북한은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워싱턴의 대북 협상가들은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렇지만 핵과 미사일 카드를 절묘하게 조합한 평양의 상술에 번번이 넘어갔다. 다른 말이거나 당나귀인 줄 알았는데 결국 같은 말이었던 셈이다. 1980년대 들어 김일성이 “위성을 쏠 때가 됐다”고 한 뒤 3대로 세습되며 축적된 집요한 사업 노하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같은 기간 미국은 도널드 레이건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5명(모두 연임)의 대통령이 바뀌며 오락가락했다.

 미국은 실패를 거듭한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깔본 듯하다. 적대국이나 테러 집단에 북한 대량살상무기(WMD)가 유출되는 걸 막는 데만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번 성공으로 북핵과 미사일은 태평양을 단숨에 뛰어 건넜다. 이제 북한이 ‘워싱턴 불바다’ 운운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날 밤이 마지막이라던 매스게임 속의 ‘위성’은 미국의 수도를 넘보는 괴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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