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중앙일보

입력

‘버자이너 모놀로그’ 무대에서 두 번째 게스트 역의 낸시랭이 연기하고 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우리 말로 ‘여성 생식기의 독백’이다. 여성 생식기라고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여성의 주요 부위를 표현하는 단어는 많다. 대부분 국어사전에도 등재됐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입 밖으로 드러내 또박또박 발음하길 꺼린다. 입에 담기 껄끄러워서,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어서. 이유는 가지가지다. 혹자는 ‘욕’의 일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세태는 그 이름을 자꾸 감추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그 이름 당당히 불러 여성의 권리 신장에 꽃 피우자는 이야기가 바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주제다.

 이지나 감독은 이 연극을 12년 째 이끌고 있다. 초연 당시 이 연극은 파격이었다.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다수의 관객이 불쾌감을 표했다. 하지만 2001년만 해도 극에 자주 등장하는 특정 단어는 한글 표준어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려면 ‘19금’ 인증을 받아야 한다. 사전을 뒤져보니 음부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이 감독은 이 점을 개탄했다. 눈과 코와 귀와 다를 바 없는 신체 부위가 점점 금기시 되고 심지어는 비속어로까지 돼 버린 현실 말이다.

 ‘단지 그 단어를 말하지 않는 게 뭐 그리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인정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밖에 내서 말할 때 우리는 더욱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13명의 여성은 독백한다. 절반은 자신 몸을 잘 관찰하고 사랑할 줄 아는 여성이다. 물론 이들은 행복한 삶을 산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자신 몸의 변화를 잘 몰라 당황하거나 남성·사회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들이다. 연기를 하는 배우도 울고 지켜보는 관객도 눈물을 훔친다. 즉, 여성스스로가 자신의 몸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죄의식을 갖고 있으면, 세상이 여성을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평생 거둘 수 없다는 내용으로 확대된다. 생식기에 ‘이름 불러주기’는 극히 작은 행동이지만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데는 큰 도약인 셈이다.

주제를 확대해가며 열두해 째 공연 이어

 열두해 째 이어지는 작품이다. 오래된 공연이라 고루하다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이에 작품은 변화를 꾀했다. 지난해까지의 공연이 여성의 성기에 대한 내용에 국한돼 있었다면, 이번 공연은 여성의 삶으로까지 주제를 확대했다. 에피소드의 50%를 바꿨다. 새롭게 추가된 에피소드는 다문화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행, 아동학대, 성형, 다이어트까지 여성 전반에 걸친 이야기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단식 캠프에 들어간 에피소드는 여성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 채 날씬한 몸만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농촌에 시집 온 베트남 신부에 대한 폭력에서는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미국 『코스모폴리탄』 초대 편집장인 헬렌 걸리 브라운 에피소드에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농도가 깊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공연은 3자 회담 형식을 취한다. 한 명의 사회자와 두 명의 게스트가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형식이다. 매번 각기 다른 색깔의 출연진이 나와 실제 경험이 녹아있는 진솔한 토크쇼를 선보인다. 사회자 역에는 임성민, 김세아, 이지나, 장유정이 출연하고 첫 번째 게스트 역은 황정민, 방진의가 맡는다. 낸시랭은 두 번째 게스트 역이다. 이 밖에도 뮤지컬 배우 이경미, 최혁주, 김호영과 국악인 이자람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2013년 1월 6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한다. 여성 관객이 압도적인 공연이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여성 관객 대부분은 자신의 남편, 남자친구, 남동생 등에게 이 연극을 권할 것이다. 티켓 가격은 전석 4만5000원. 인터파크, 티켓링크에서 예매 가능하다. 만 13세 이상부터 관람할 수 있다.

<글=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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