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과 벚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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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세기「유럽」의 극장계 에는「로마인」이라고 불리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들은「로마」에서 온 연극「팬」이 아니라 흥행사 측이 매수하여 투입해 놓은 가짜관객들이었던 것이다.
이 「로마」인들은 미리 지시 받은 장면에 따라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른다. 그러면 아무리 엉터리 연극이라 해도 굉장한 인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순진한 관객들은 덩달아 흥분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로마인」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네로」황제가 바로 그런 수법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네로」는 늘 엉터리없는 시를 읊고 다녔다. 불쌍한 「로마인」들은 그럴 때마다 슬프지도 않은 눈물을 흘려야했고, 아름답지도 않은 일에 탄성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네로」는 자기 시를 예찬하는데 있어 특수 훈련을 받은 감상객들을 거느리고 다니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선 「로마인」을 속칭 「사꾸라」라고 한다. 그리고 극장이 아니라, 정계주변에서만 피어난다는데 또한 특색이 있다. 그 수법도 한층 복잡해서 박수나 치고 눈물이나 흘려주는 그런 소박한 연출효과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제법 서슬 푸른 야당구실을 하는 체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은근히 여당의 정치극을 감싸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을 보거던 우선 도둑놈으로 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지만 이제는『사람을 보거던 우선 「사꾸라」로 보아야』할 지경이다.
10월이 되면 민중당의원들이 원내로 복귀하리라 한다. 「의원직 사퇴는 잘못된 지도노선」이며, 「국민을 오도한데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야 철이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10월에 피는「사꾸라」인지, 기묘한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야당의원들은 절 한번 꾸벅하고 국회로 들어가려 하지만 학생들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고역을 치르고 학원으로 돌아갔는가?
낙엽의 계절에 정부에서는 벚꽃이 피어 화제라는데, 이젠 그런 소식쯤에 놀랄 사람은 없다. 전천후 인간「사꾸라」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사시사철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로마인」이란 극장용어가 혹시 「유럽」에서도「한국인」이란 말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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