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읽기] 중국 전랑외교의 배경

    [중국읽기] 중국 전랑외교의 배경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세계 곳곳에서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가 목격된다. 중국 외교관들의 거친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전랑 외교의 형성 배경은 무엇일까.   1840년 아편전쟁은 터졌고, 중화제국은 서방 함포에 깨졌다. 심지어 일본에도 패했다. 지식인들은 반성했다. “우리도 봉건의 틀을 벗고 ‘덕선생(德先生, democracy)’ ‘새선생(賽先生, science)’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에서도 이성과 과학,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계몽주의가 싹트는 듯했다.   ‘전랑외교’라는 용어의 출처가 된 중국 영화 ‘전랑’ 포스터. 오래가지 못했다. 계몽 흐름은 “서구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은 치욕을 갚아야 한다”는 정치 운동에 쉽게 매몰됐다. 중국의 유명 철학자 리쩌호우(李澤厚)는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구망(救亡) 인식이 계몽 사조를 압도한 것”이라고 당시 지식계 흐름을 해석한다.   쑨원(孫文)·장제스(蔣介石)·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 그들의 정치 철학은 달랐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 ‘구망’이었다. 쑨원의 삼민주의, 마오의 마르크스주의, 덩샤오핑의 시장경제 등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마오의 서재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아닌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이 꽂혀 있었던 이유다. 1989년 덩샤오핑이 천안문 학생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한 것 역시 구망이 계몽을 압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구망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정치 언어로 표출된다. ‘이제 그 시기가 도래했다. 중화의 영광을 회복하자!’ 시 주석이 내건 중국몽은 결국 ‘민족 부흥의 꿈’이었다. 아편전쟁 때 서구 함포에 당한 수모를 갚아줄 시기가 됐다는 선언이다. 그간 이룬 경제 성과가 힘이다.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이 그들 내부에 잠재해 있던 구망 인식을 흔들어 깨웠다.   ‘부흥의 열망’은 중국을 관통한다. 시 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에는 고대 실크로드를 되살려 한(漢)·당(唐)시기의 강성함을 회복하겠다는 열망이 담겼다. 학생들은 애국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고, 시장에서는 애국 소비가 대세다. 사회 곳곳에 민족주의, 애국주의가 팽배하다. 그 열망이 외교 일선으로 확장돼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전랑 외교다.   중국 외교관들 역시 지난 150여년 지식계에 면면히 이어온 구망 인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부흥의 열망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거칠게 반응한다. 그러기에 전랑 외교는 계몽을 압도한 구망의 변주곡처럼 들린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19 00:42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먹물(墨汁)요리 역사 … 낙제하면 먹물이 한 사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먹물(墨汁)요리 역사 … 낙제하면 먹물이 한 사발

    먹물 만두. 사진 소후 먹물 두부(墨汁豆腐), 먹물 해물국수(墨汁海鮮麵), 먹물 만두(墨汁餃子)에 먹물 밥(墨汁飯) 먹물 갈비구이(墨汁燒排骨) 등등.     눈길 끄는 중국 음식들인데 자칫 종이로 소를 만들어 빚었다는 만두나 석회 달걀처럼 먹물을 섞은 불량식품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에 좋다며 유행처럼 퍼지는 블랙푸드다.     새까만 색이 마치 묵즙(墨汁)이라는 이름처럼 먹물을 풀어 놓은 것 같지만, 실제 그럴 리는 없고 천연 색소인 오징어 먹물을 활용해 요리한 음식들이다.     고문헌을 비롯해 이런 저런 기록을 찾아봐도 중국 음식 중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오징어 먹물 요리가 있었다는 흔적은 없으니 최근에 생긴 음식들이 분명하다. 실제로 먹물 요리, 묵즙 음식은 이탈리아 요리 등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중국식 퓨전 음식이다.     이탈리아의 오징어 먹물 요리는 우리한테 이미 익숙한 부분이 있다.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를 비롯해 먹물 리조또에, 먹물 피자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통해 한국에 선보였다. 그 때문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징어 먹물 요리를 이탈리아 고유의 전통 음식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도 않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지중해 연안 지방에서는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스페인에도 오징어 먹물로 조리한 볶음밥, 빠에야가 있고 크로아티아에도 오징어 먹물 음식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조리해 놓은 음식 색깔이 시커멓기에 얼핏 먹지 못할 음식처럼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오징어 먹물이 소화도 잘 되고 심혈관 질환 예방과 면역력을 높이는데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한때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오징어 먹물 빵에, 짜장면, 오징어 먹물 떡볶이까지 널리 퍼진 적이 있다. 중국의 먹물 두부와 오징어 먹물에 재서 굽는 먹물 갈비 등도 유행 트렌드를 탄 것 같은데 어쨌든 아시아에서는 오징어 먹물 요리가 경제발전 순서에 따라 퍼져나가는 것 같아 흥미롭다.   오징어 먹물 요리는 서양에서 비롯됐고 역사적으로 뿌리도 깊다. 고대에는 의약품으로 주로 사용했는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의사 셀수수가 남긴 의학서 『메디치나』에도 보인다. 식욕을 돋우는데 좋고 변비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이때도 오징어 먹물 요리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음식이 본격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긴 세월이 흐른 후인 르네상스 이후다. 아랍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베니스의 상인과 귀족들이 미각의 극치를 맛보기 위해 발달시켰다고 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검은 색을 강조하면서 미각적으로는 부드러운 바다의 향기를 요리에 담아내는 재료로 오징어 먹물을 소스로 발전시킨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한다.   그러면 동양, 특히 중국에서는 오징어 먹물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일단은 먹물 대신 썼다. 오적묵(烏賊默)의 서약이라는 말이 있다. 오징어 먹물로 서명한 약속인데 일종의 사기 계약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에는 또렷하게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먹물이 마르며 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계약한 적 없다고 우길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성질을 이용해 암호로 사용했다. 다시 물에 적시면 글씨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약으로도 활용했다. 당나라 의학서 『본초습유』에 오징어 먹물은 피가 뭉쳐 가슴이 아플 때 효과가 있다고 나온다. 심혈관 질환에 좋다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식용으로는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한테는 오징어 먹물이 아닌 진짜 먹물을 먹였다. 6세기 후반 남북조 시대의 북제(北齊) 때 있었던 일이다. 중국에서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 시작됐지만 북제에서도 인재 선발고사가 있었다. 지방 호족과 귀족 세력의 추천을 받아 황제 면전에서 직접 시험을 본 후 그 중에서 똑똑한 인재를 뽑아 관리로 선발했다.     하지만 권력자 집안의 농간으로 실력은커녕 엉터리 자제를 추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시험 중에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시험 후 문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답안지를 제출한 자는 작성자를 추적해 먹물을 한 되씩 먹였다.   이어 수나라에서도 시험성적이 정말 형편없거나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될 경우에도 먹물 한 되를 마시게 했다고 『수서(隋書)』 「예의지」에 나온다. 나중에는 이런 황당한 규정이 사라졌지만 비아냥거릴 때 쓰는 “먹물 꽤나 마신 것 같다”는 말도 저절로 생긴 것 아니라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먹물 한 되를 먹일 만큼 왜 그토록 모질었을까 싶지만 나름 배경이 있다. 과거제도는 인재 선발이 기본 목적이지만 지방 영주와 귀족 세력을 견제해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을 실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렇기에 엉터리 같은 호족의 자제에게 먹물을 먹여 벌했던 것이다. 오징어 먹물이 됐건 진짜 먹물이 됐건 먹물 식용(?)의 용도가 흥미롭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6.16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반도체 산업과 우리의 대응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반도체 산업과 우리의 대응

    사진 셔터스톡 반도체 산업은 ‘미래산업의 쌀’이라 불리며 인공지능, 5G, 로봇산업, 자율주행차, 양자컴퓨팅, 핀테크 산업 등 첨단산업의 주도권 확보 핵심 기반이다. 현대의 전쟁은 전자전(戰) 성격이 강한 만큼 반도체 산업은 ‘국가안보 자산’이다. 우리는 반도체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우리의 경제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반도체 산업의 전통적 분업체계는 무너지고, 자국 우선주의로 공급망 재편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전략적 선택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2015년 3월 발표한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 계획에 따르면, 반도체 국산화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국력을 집중했으나, 핵심부품과 기술 분야에서 2021년 기준 자급률은 16.7% 수준에 불과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강한 일본, 제조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은, 미국 중심의 가치를 공유하는 ‘칩4 동맹(Chip Alliance)’으로 전열 정비가 끝났다.   미국은 반도체 EUV 노광 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ASML사(社)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중국에는 장비를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여,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있다. 반도체의 핵심기술은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불문하고 핵심기술은 10㎚ 이하의 초미세 패터닝(Patterning) 분야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인 대만의 TSMC 및 한국 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가 오히려 벌어지는 상황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미국이나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물론 관련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 악화는 정해진 수순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 일본, 중국,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과 투자 그리고 시장 쟁탈전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은 반도체 기술과 소재·부품·장비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직접적인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한, 중국은 우리에게 견제와 비(非)협조로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 명백해 보인다. 중국이 최근 우리에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뾰쪽한 보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 추격을 위해, 우리의 핵심기술을 빼가거나, 핵심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로 유혹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  미국의 내재화 전략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반도체 산업의 내재화를 통해, 안보 역량을 강화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시설 국내 이전(Reshoring) 전략’은, 우리는 물론 대만 그리고 일본에 위협적이다. 미국 중심의 가치동맹을 내세우고, 안보에 대한 지원과 압박을 내세우기 때문에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의 고민은 지난 30년간 키워온 반도체라는 핵심 산업을 미국에 뺏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는 안보적으로 한미동맹으로 맺어져 있어, 우리의 선택 여지는 넓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미국이 내걸고 있는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감세나 보조금에는 독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날카로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본의 반도체 몰락을 가져온 1986년 ‘미·일반도체 협정’이 실행된 과정을 자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세계 1위를 달리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견제와 전략에 말려 괴멸당하고 소재·장비·부품을 공급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우리가 따라가다가는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은 당시 국방의 미국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일본 관료나 기업인들의 미래를 보는 시야가 짧았던 점도, 일본이 반도체산업을 잃어버린 한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우리의 대응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의 최대 시장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이 생산기지를 일부 미국으로 옮길 경우, 정치 안보적으로는 안정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상당 부분 잃을 가능성이 있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원가 상승은 피할 수 없어,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중 양국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우리의 원칙을 알리고, 주도적으로 사전 협상을 통해 그들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에 대한 종합적이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4월 공표된, 국가전략 기술에 대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과 초격차 유지를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대단히 시의적절 한 대책으로 보인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원(KIST) 원장의 ‘반도체는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로,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기업에 더 많은 특혜를 주고, 기초과학과 반도체 관련 학과를 대폭 증원하여 인력을 배양하는 등, 대규모 부흥정책을 펼쳐야 우리의 산업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반도체 관련기관이나 기업 등 주최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통합 등,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서 대응해야 한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2023.06.15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와 미‧중 담론 경쟁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와 미‧중 담론 경쟁

    중국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초강대국에 어울리는 거대 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2023년 3월 15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공산당과 세계정당 고위급 대화 연설에서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 GCI)를 주창한다.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의 요점은 각 문명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모델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다양성 존중과 문명 간 공존을 바탕으로 국제적 인적교류와 협력의 강화를 촉구한다. 이제 중국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초강대국에 어울리는 거대 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  중국 글로벌 담론의 진화     강대국은 세 가지 통제 형태를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특정 규정을 강요하는 강압적 능력에 의존하거나, 대외원조와 같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합의를 유도하거나, 가치 내지는 정통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가치나 정통성은 지배적 국가의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가지고 지휘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권위에서 나오며, 중국이 진정한 G2로 인정받으려면 강제력, 혜택의 제공 능력과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 나름의 가치나 정통성을 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의 글로벌 담론은 2021년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GDI), 2022년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 그리고 올해 제시된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로 진화해 왔다. 76차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는 국제사회가 빈곤감소, 식량안보, 방역과 백신, 발전자금 모금, 기후변화와 녹색발전, 산업화, 디지털 경제, 상호연계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길 호소한다. 중국은 이미 관련 고위급 대담회의를 주재하고 민간의 빈곤 완화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참여국과 국제기구는 100여 개로 늘었고 유엔 플랫폼에 설립된 GDI의 친구 그룹 회원은 60여 개에 달한다.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는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 존중, 주권 평등과 내정 불간섭을 국제관계의 근본으로 냉전적 사고와 일방주의, 패권주의를 배격함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는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안보 관련 합의를 강화하고 전 세계가 참여해 식량,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방역, 우주 안보, 테러 등의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관계를 중재하고 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젤린스키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천명한 사건 등이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의 원칙에 입각한 중국 외교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는 발전에서 안보, 문명으로 중국의 글로벌 담론이 지속해서 확대되고 거창해지는 진화 방향을 보여준다. 시 주석의 연설은 “꽃 한 송이가 홀로 핀다면 봄이 아니다. 백 가지 꽃이 함께 피어야 봄이 정원에 가득하다(一花獨放不是春 百花齊放春滿園)”며 세계 문명의 다양성 존중을 설파한다.   하지만 문명의 공존이라는 거대 담론의 골자는 서구의 개입에서 자유로운 국가 주권의 존중이다. 즉, 서구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수호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서구의 보편 가치 즉 인권은 개인에 초점을 둔 것으로, 국가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실패한 국가, 불량 국가 개념은 물론이고 군중에 발포하는 이란이나 미얀마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제재도 여기에서 가능한 것이다.   중국이 이런 보편 가치보다 주권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쉽다. 즉, 대내적으로는 자기 체제를 옹호하고 대외적으로는 서구의 간섭, 개입을 불편하게 여기는 권위주의 국가에 어필하는 것이 주권을 우선하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식 성장모델의 우월성, 경제적 성과 및 기술 권위주의의 효율성이 인권에 우선하는 중국식 정통성 또는 일종의 보편 가치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진정한 대외정책 철학은 무엇일까?    ━  액면 가치와 실제 의도의 괴리     중국의 대외정책은 지금까지 소개된 거대 담론과는 별개로, 여러 경로를 통해 실제 의도를 드러내 왔다. 2013년 6월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언급한 ‘신형대국관계’는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과 신흥 패권 국가인 중국이 상대방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강대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추구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미‧중 간 협상을 통하여 기존 국제질서를 변경하고 점증하는 중국의 위상에 어울리는 몫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가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국력에 걸맞게 중국의 소위 전통적인 세력권을 강대국 간 이해관계 조정을 통하여 인정받아야 함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현실주의적이고 시니컬한, 가치나 이상을 배격하고 힘의 균형만을 철저히 반영한 거래적(transactional) 국제질서는 이미 중국 대중들에게도 체화된 듯하다. 푸틴의 침략 전쟁에 대하여 찬성이 압도적인 중국의 여론이 그 증거이다.   결국, 글로벌 문명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액면가치는 중국몽이라는,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실제 의도와 모순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자국민도 통제하는 강대국이 과연 약소국을 진정으로 존중해 줄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서구식 인권보다 우선하는 중국식 성장모델과 대외원조가 적지 않은 개도국에 어필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니엘 매팅니(Daniel Mattingly) 등의 실증연구에 따르면(2023. 1) 중국 미디어가 선전하는, 서구보다 우월한 중국 모델 담론의 설득력이 개도국에서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서구중심의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는 위기에 봉착한 것일까?    ━  규칙기반 국제질서와 우리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가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직전에 발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서방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의도하는 국제질서,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접근방식이 보편화되는 것이 세계에 바람직할까? 국가 주권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가 부정된다면 글로벌 질서는 철저히 강대국 간 이해관계에 따르는 균형에 다름이 아닌 것이 되고 특정 국가가 인권을 탄압하더라도 타국이 간섭할 여지는 없게 된다.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근간은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철학을 근저에 깔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한다면 국제무대에서 국가의 비도덕적 행위가 정당화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예를 들면 전쟁 범죄도 전쟁 당사국의 안보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2차대전 이후 규칙기반 질서가 거둔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의 도전과 트럼프식 포퓰리즘은 규칙기반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지난 5월의 G7 히로시마 지도자 코뮤니케는 규칙기반 질서를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를 새삼 표명하였다. 반면에, 중국이 그저 ‘주권의 보호’에만 호소할 경우 글로벌 공공재의 제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한령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무역 규범이라는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중국의 접근방식은 지극히 선택적, 정치적이며 일대일로나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같은 대외협력 전략도 개도국들이 중국의 담론에 대한 진정한 신뢰보다는 현실적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서구도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항행의 자유, 인권, 자유무역 체제와 같은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해온 규칙기반 질서는 우리가 이만큼 발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공공재는 무임승차 문제 때문에 부족하게 공급되게 마련이고 약소국들은 공공재를 창출할 동기와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G7에의 참여가 거론되는 수준까지 발전한 우리는 글로벌 공공재의 단순 수혜자에서 벗어나 적극적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말한다. “국익은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를 포함할 수 있으며 국민들이 그런 가치들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중요시할수록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권력의 미래, 2021) 즉,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가치에의 투자는 무형의 국익이 될 수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융성하는 세계야말로 우리가 융성하고 안보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2023.06.13 06:00

  • [중국읽기] 탈(脫)중국과 ‘알타시아(Altasia)’

    [중국읽기] 탈(脫)중국과 ‘알타시아(Altasia)’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탈(脫)중국’은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의 임금 급등, 미·중 패권 경쟁 등을 피해 중국에서 공장을 빼낼 궁리를 하고 있다. 대중 수출이 12개월째 줄면서 국내에서도 ‘중국 의존도를 낮출 기회’라는 말이 나온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세계 공장’ 중국은 소재 및 부품 조달, 물류, 시장 접근성 등 여러 분야에서 최적의 제조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약 100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 등 고급 인재도 풍부하다. 어디서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베트남, 인도 등이 ‘포스트 차이나’ 시대 중국을 대체할 제조 단지로 부각되고 있다.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 [사진 삼성전자] 그래서 나온 게 ‘알타시아(Altasia)’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만든 용어다. 대체라는 뜻의 ‘Alternative’에 아시아의 ‘asia’를 합쳐 만들었다. ‘중국을 대체할 아시아의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특정 한 나라가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합쳐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술력은 일본·한국·대만 등이 뛰어나다. 싱가포르는 물류 서비스가 강하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자원이 풍부하다. 베트남·태국·인도 등은 투자 정책의 틀이 잡혀간다. 필리핀·방글라데시·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14개 ‘알타시아’의 전체 노동인구는 14억 명으로 중국의 9억5000만 명을 추월한다. 대미 수출 총액도 중국보다 많다. 중국을 대체할만한 충분한 제조 여건을 갖췄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대만 폭스콘은 아이폰(애플) 생산 거점을 인도로 다각화하고, 인텔은 베트남 호찌민시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삼성도 핸드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변화가 ‘알타시아’로의 제조업 이동을 재촉하고 있다.   기회다. 우리는 14개 ‘알타시아’ 중에서도 반도체·자동차·조선·화학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고루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베트남으로 가려는 공장이 있다면, 한국으로 와야 할 기업도 분명 있는 법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이 경기도 화성에 ‘화성 캠퍼스’를 조성하는 건 이를 보여준다. 산업 포트폴리오와 기술 경쟁력의 이점을 살리면 우리도 첨단 제조 분야 ‘포스트 차이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규제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은 과연 그 기회를 잡아챌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알타시아’의 부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12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돼지족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돼지족발

    사진 셔터스톡 6월이면 중국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숨도 못 쉴 만큼 긴장한다. 7, 8일 이틀간 가오카오(高考)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입 수능 비슷한 시험이다.   중국 입시도 한국, 일본 못지않게 치열하다. 그런 만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음식 하나에도 합격의 소망을 담는다. 우리의 합격 엿, 일본의 찹쌀떡(大福餠)처럼 중국은 장원병(壯元餠)을 먹는다.   특정 음식에 합격의 소망을 담는 것은 한·중·일 공통의 민속이다.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동양만의 전통인데 언제부터, 왜 이런 풍속이 생겼을까, 그리고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엉뚱하지만 사람들이 처음 합격의 꿈을 담아 먹었던 음식은 돼지 족발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7세기 당나라 때 과거시험 보는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먹었다는데 이를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으로 본다.   합격 엿이나 찹쌀떡은 끈적끈적 접착력이 좋아 시험에 잘 붙게 해준다는 속설이라도 있지만 돼지 족발은 뜬금없이 왜 먹었을까 싶지만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의 장원급제가 결정되면 비단에 붉은 먹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 제목을 적어 수도인 장안, 지금의 서안에 있는 대안탑(大雁塔)에 내걸었다. 붉은 먹물로 썼기에 이 방을 주제(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주티(zhuti)다. 그런데 중국 말로는 돼지 족발(猪蹄)도 발음이 같다. 그래서 돼지 족발 주티를 먹으며 자신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이 적힌 주티가 대안탑에 붙기를 소망했다. 돼지 족발이 합격기원 음식이 된 유래라고 한다.   유래야 그렇다고 해도 왜 하찮은 돼지 족발에까지 염원을 담았을 정도로 간절하게 장원급제에 매달렸는지, 왜 하필 당나라 때 이런 풍속이 생겼는지 궁금해지는데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제도는 수나라에서 도입해 당나라 때 정착됐는데 겉으로 내건 명분은 초야에 묻힌 인재의 발굴과 발탁이지만 정치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황제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지방 호족세력을 약화해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중앙의 권력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무리 세력이 큰 호족 집안의 자제라도 원칙적으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출세가 힘들었으니 자연히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당나라 때 과거제도는 평민에게도 시험 볼 자격이 주어졌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본인이 똑똑해 장원급제하면 고위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헌 기록에 남아 있는 역사상 최초의 장원급제 주인공이 된 손복가(孫伏伽)가 그런 경우였다. 당나라 건국 4년째 되는 해인 서기 622년에 시행된 진사과 과거에서 일등을 한 손복가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는지 수나라에서는 지방 관청의 말단 관리로 관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나라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이후 당 태종 이세민의 관심을 받으며 출세의 길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산시 성 책임자인 자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모습을 직접 본 돈 없고 빽 없는 당나라 선비들,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과거시험 전후에는 돼지 족발이라도 먹으며 대안탑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주티(朱題)가 내걸리기를 빌었다. 합격기원 음식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됐다.     1400년의 길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바뀌었어도 자식이 용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꿈(望子成龍)은 남아 합격기원 음식은 현대 중국에서도 여전히 그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요즘 대입 가오카오에서 주로 무엇을 먹으며 합격을 소원할까?   여전히 돼지 족발을 먹는 곳도 있고 광둥과 광시 지역에서는 합격기원 쌀국수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장원병이다.   그중에서도 흔한 것은 중추절에 먹는 월병 같은 것인데 여느 월병과 다른 것은 가운데에 장원(壯元)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옛날 장원급제를 하듯 높은 점수를 받아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일 것이다.   장원쭝(壯元粽)이라는 이름으로 갈댓잎 등에 찰밥을 싼 쭝즈(粽子)도 불티나게 팔린다. 쭝즈가 합격기원 음식이 된 데도 유래가 있으니 쭝즈는 원래 단오절에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 충신이며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을 기리며 먹는 음식이었다.   중국은 삼국지의 관우가 재물신이 되는 것처럼 역사 속 유명 인물을 신으로 받드는 풍습이 있는데 굴원 또한 신처럼 받든다. 그리고 중국의 가오카오는 많은 경우 단오절과 날짜가 겹치기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것인지 굴원에게 아들딸 대학입시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쭝즈, 장원쭝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명중이라는 단어처럼 활을 쏴 과녁을 통과하거나 시험에 합격했다고 할 때 한자로 가운데 중(中) 자를 쓴다. 중국어 발음은 쭝으로 찹쌀밥 쭝 발음이 같다. 이런 이유로 쭝즈가 합격기원 음식, 장원쭝이 됐다고 한다. 어쨌거나 쭝즈나 돼지 족발이나 그 속에 담긴 소망이 간절하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09 06:01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은?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은?

    농담이 있다.   중국에서 절대로 성공 못 할 직업은?   심리치료사.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스스로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셔터스톡 2005년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에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라는 문항에 대해 한국인의 30.2%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스웨덴(68.0%)과 같은 선진국들은 고사하고 중국(52.3%)이나 베트남(52.1%)보다도 낮은 수치다 필자가 (출처는 잊었지만) 자주 인용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소개하면, 듣는 이들이 깜짝 놀란다. 그리고 서로 신뢰를 못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겠지만, ‘의심이 많다는 중국인들’보다도 낮다는 수치는 뒤통수를 때린다.   그런데 필자는 이 통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른 각도로 점검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늘 듣던 말이 있다. 바로 “중국인은 의심이 많다”다. 그런데 통계로는 우리가 그들보다도 사람들에 대해 의심이 많다고 하니 정말 뜻밖이다.     심지어 얼마 전 지인이 방송에서 들었다면서 “(코로나 시국을 겪고 나서도) 중국 최고 지도자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지도가 거의 90%에 육박한다…. 이게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조사한 통계다. 의외지만, 안 믿을 수가 없다고 진행자마저 부연 설명하더라….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방송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말해줬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는데 설문에 응한 중국인들이 어떤 이들인지,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중국 사람들의 설문지를 대하는 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명백한 통계 숫자라 해도, 문화라는 필터로 걸러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 저자인 헥터 맥도널드는 한 마디 더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숫자들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숫자를 고문하라, 원하는 내용은 뭐든 불 것이다. (미국의 평론가 그레그 이스터부룩) 통계 조작이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오판을 불렀다는 사후 평가가 나왔다…. 예하 부대에서 성과를 부풀려 보고했고, 미국은 이것을 토대로 북베트남이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은 후에 ‘통계가 망친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집) (미국 중심의) 심리학과 관련해 ‘weird’란 용어가 있다. 원래 의미는 ‘이상한’, ‘기괴한’이다. 그런데 다른 의미도 있다. White(백인의), Educated(교육받은), Industrialized(산업화한, 혹은 선진화된), Rich(부유한) Democratic(민주주의의)의 약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심리학 서적을 통해 알고 있는 우리의 심리현상은, 사실 우리의 심리를 표현하고 설명해주는 게 아니다. 바로 이 다섯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이들의 심리학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첫 번째 단계에서 탈락이다. 태생적으로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핫도그(hot dog)는 도그(dog)가 아니다!     오해가 안 생기는 질문, 즉 문화를 고려한 질문을 해야 한다.     통계는 일반적으로는 믿을 만하지만, 그것을 어떤 이들이 고의로 악용할 수 있다. 혹은 통계 자체의 불완전으로 인해 잘못된 결론으로 유도할 수 있겠다. ‘중국인들의 사람에 대한 신뢰에 관한’ 위의 사례에서도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다. 경험적으로도 믿기 어려운 통계 사실에 대해 그 가능성을 소개해 본다.     첫 번째는, 인터뷰에 응한 중국인들이 거짓말을 한 거다. 남을 신뢰한다는 말을 해야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설문인데도?”라고 반문하고 싶겠지만, 중국인은 그렇게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데도?”. 중국인들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두 번째는, 우리가 상정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중국인의 그것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상정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은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과 ‘알고 지내는 (혈연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의 두 부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하나로 선택하고 답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설문의 응답자들이 만약 ‘대부분의 사람’을 ‘(혈연을 제외한)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상정했다면 위와 같은 (중국인들의 높은 상호 신뢰) 결과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신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인들이 ‘전혀 모르던 사람’을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답했다면, 첫 번째 가능성이다. 솔직하지 않게 답한 것이다.)   만약 위의 통계에 근거해 “중국인이 우리보다 높은 상호 신뢰를 보인다”라는 결론을 주장하려면,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 더 구체적인 서술을 해야 했다.    ━  문자(文字)적으로는 같아도, 뜻은 다를 수 있다.   문화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스턴트맨 등을 속어로 ‘hot dog’라고 부른다고 한다. 약간 과장해보면, “hot dog를 좋아하냐?”라는 간단한 설문지의 답변은 엉뚱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맛있는 핫도그를 떠올리고 대답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능력자들을 연상하고 답변할 것이다.   중국인들은 ‘아는 이(우리)’와 ‘모르는 이(타자)’에 대한 구별이 엄격해서, 절대로 모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높은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길에서 노약자가 넘어져도, 누구 하나 도움을 주지 않아서…”라는 식의 뉴스는, 중국에서는 뉴스가 안 될 정도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가 난 이를 못 본 체하는 그런 심리도 있지만, 주로는 믿지 못해서이다.     이런 신문들은 종종 있었다. 구해주고 났더니, 그 노인네가 “당신이 나를 넘어뜨렸다”라며 피해액을 요구해서 낭패를 당했다는 식의 기사다. 그래서 중국 친구들이 해 준 말이 있다. “운전 중에 사고 난 차량을 보면 어떻게 할 거니?”. 차를 멈추고 도와줘야지 했더니,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서 “일단, 차를 현장에서 더 멀리 운전하고 나서, 거기서 경찰에 신고해라!”였다.     부모는 자식을 숨겨주고 자식은 부모를 숨겨준다. 올바름은 바로 여기에 있다(父为子隐 子为父隐 直在其中矣). 부자 간(확대하면, 가까운 이)에게는 더 많은 신뢰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올바름이다.   〈논어 · 자로〉 편에, 섭공(葉公)이 자기네 마을에 올바른 이가 있는데,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증언했다고 하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우리 마을의 올바름은 바로 부자간에는 설령 잘못했다 하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덮어주는 것이 지고(至高)의 도리다”라며 가르쳤다.     법은 인정을 도외시하지 않는다(法不外人情). 법외에 인정도 고려해야 한다. 위 논어의 말씀에 대해, 문자 그대로는 공감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유검무죄(有檢無罪) 무검유죄(無檢有罪)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법치에도 (법 자체에? 또는 집행에?) 문제가 있기는 있는 거다. 어차피 완전한 공평이 불가능하다면, 공평하게 ‘인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신뢰’의 정의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냐’에 따라 보내는 ‘신뢰’의 차이가 크다. 한편, 같은 문장에 대해서도 맥락을 중시하는 문화(고 맥락 문화)와 맥락 없이 말 그대로 이해해도 되는 문화(저 맥락 문화) 간의 이해는 다르다. 사장이 “편하게 생각하고, 애로 사항을 말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우리 사회라면, 우리도 고 맥락 문화다.     고 맥락과 저 맥락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설문지의 질문이 “문자적으로 같으므로, 내용도 같다”라는 명제는 틀리다. 후쿠야마는 “미국과 일본 같은 사회는 고(高)신뢰 사회”라고 하면서, 중국은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저(低) 신뢰사회”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대해 중국인들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계약서를 쓴다는데, 그게 맞냐?”며 반문한다. 서구는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게 (상대적으로) 비슷한 정도의 신뢰를 보낸다. 중국은 모르는 이에게는 철저한 의심을, 아는 이에게는 상당한 신뢰를 보낸다.    ■ 사례: 어느 한국 기업의 인성 검사 결과. “이게 뭐지요? 죄다 탈락이에요!” 「 저 맥락의 질문지로는, 고 맥락 문화의 중국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설문지를 만들 때, “중국식으로 고려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어찌 보면 성의 없는 대답이다. 고려는 했겠지만, 그 정도가 중요하다. 정말 정말! 신중하게 단어 하나라도 고민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면, 세밀하게 연구해서 질문지를 만들어야 한다. 설문지를 통해 답을 얻는 것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제는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모 대기업에서 인력을 채용했다. 채용 관련한 다른 시험을 모두 통과한 이들은 약 20명 정도였다. 들리는 소문으로, 여느 때보다도 지원자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검사는 인성검사뿐이었다. “우리 회사의 인성검사는 한국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며, 그것을 실행하면서 현지화의 성공 사례처럼 자랑했다. 한국인 간부들은 본인의 입사 경험상, 인성검사는 아주 이상한 성격 결함이 없으면 통과될 거라고 여겼다. 신입직원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흔히 인성검사의 팁은 “뭐든 일관되게 솔직하게 답하라”라고 한다. 비슷한 질문을 중복으로 질문하면서, 응시자의 진솔성을 파악하는 게 인성검사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일관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크게 벗어나서 탈락하는 이들은, 최소한 경험적으로는 들은 사례가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좋은 인재를 자기 부서로 데려오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단 한 명만 빼고 나머지 모든 지원자를 두고, 여러 부서가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인사팀에서도 각 관계사의 요구를 조율하느라, 벌써 바쁘다. 그런데, 최종 입사 발표자 결과가 나오자 인사팀을 포함해서 모두 경악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그 한 명만 빼고 ‘전군복멸(全军覆灭, 전군이 사망하다)’, 모조리 탈락했다. 인성검사 결과, 구제 불능의 불합격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당시의 인성검사는 지나치게 비정상만 아니라면 탈락시키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매우 정상적이고 우수해 보이는 모든 지원자가 모조리 탈락했다. 선을 넘은 비정상 내지는 인성이 심각하게 부적격하다는 평가를 받았겠다. 유일하게 통과한 합격자는 부서 배치 후에 “자기주장이 강해서,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공주병에 걸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관이 뚜렷했다.  」  원래 것을 건들지도 않다(原封不动)고 한 번역은, 오역(誤譯)되기도 한다.   통계이든 면담이든, 그 결과를 가지고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질문지에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야 한다. 서양인들은 설문지를 메꿀 때 매우 진지하다. 중국인들이 설문지를 답할 때는 일반적으로 상황에 따라 대답한다. …… 사람을 뽑을 때, 만약 설문지의 형식을 사용한다면 인재를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해(利害)에 따라 답하기 때문이다. (〈领导统御智慧〉杨智雄 외) 홍콩에 있는 미국 기업의 사례다. 면접에서 자신의 문화혁명 시기의 가족사를 소개한 학생이 채용되었다. 이후로 수많은 중국인 응시생들도 면접장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남의 이야기로 면접에 응했다는 사실에, 미국인 면접관들은 당황했다. 반면, 중국인 면접자들은, 자신들의 천편일률적인 대답이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서구식의 문답을 그대로 번역해서 가져오면, 중국인들은 헷갈리기 쉽다. 간단한 질문임에도, 무엇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후 맥락을 이해해야 대화가 가능한) 고 맥락 문화의 질문과 대답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저 맥락 문화의 사람들이 이해 못 하듯이, 반대의 경우도 똑같다. 한국의 인성검사의 질문을 대하는 중국 직원들은, 질문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고민한 듯하다. 좋은 인성의 소유자로 보이기를 바란 듯하다. 저 맥락의 기준으로 볼 때는, 지나쳐도 한 참 넘어섰다. 결국 합격의 최저선도 넘지 못하는 점수를 얻었다. 모조리 탈락했다.    ━  곡조는 달라도 완성도는 똑같다(异曲同工).   어려운 작업이지만, ‘필요하니까’해야 한다.     설문(혹은 심지어 면접)을 통해 무엇인가 특히 (정량적인 것이 아닌) 정성(定性)적인 것을 알아내려고 한다면, 내용은 물론이고, 낱말 하나에도 고민을 해야 한다.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生搬硬套), 단순히 번역만 해서 사용하며, ‘현지화 실천’이라고 여긴다면 정말 어이없다. 사실 이는 우리들의 중국 실력 문제뿐 아니라, 성의가 없는 거다. 직역은 성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문화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직역은 오해만을 일으킨다. 틀린 정보를 ‘옳은 것, 숫자가 입증하는 확실한 것’으로 믿게 끔도 한다. 세밀한 고민을 통한 번역(때로는 의역)이 필요할 것이다.    ━  옥도 다듬지 않으면 물건이 못 된다(玉不琢 不成器).   정보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그렇게 쌓인 지식이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러려면, 정보를 구하는 방법 역시 공부를 해야 한다.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게 중요하다. 실패해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더라도) 겪은 것은 성실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수많은 “내가 이런 일 있었거든!” 이 얘깃거리로만 소비되는 것이 안타깝다. 술자리에서의 영웅담 수준을 넘어야, 비로소 정보가 된다. 수교한 지 30년이다. 누적된 정보도 적지 않고, 경험도 많다. 그것을 꿰어내야 보석 같은 지식이 되고, 중국 실력이 된다. 개인과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이 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08 06:00

  •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중 관계는 과연 데탕트로 가는가?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중 관계는 과연 데탕트로 가는가?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2023.5.21/뉴스1 미·중 관계는 과연 데탕트로 가는가? 우선 최근 재개된 미·중 고위급 접촉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미·중 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는 관측이 대거 제기되고 있다. 미·중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한국도 늦기 전에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인들은 역사상 강대국 간의 세력 다툼에서 피해를 본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러한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도 미·중 관계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이라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미·중 관계가 ‘곧 해빙이 시작될 것’(thaw very shortly)이라 했다(2023.5.21).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만큼 그 발언에는 권위가 담겨 있다. 중국 측도 이 중요한 소식에 대해 응답했다. 그러나 중국의 응답은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G7 정상회의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공급망에서 중국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결정에 ‘G7은 중국 관련 의제를 고의로 조작하고(執意操弄) 중국을 먹칠하고 공격했으며, 중국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했다’(2023.5.20)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G7 모임을 ‘반중국 워크숍’(anti-China workshop)이라고 했다(2023.5.22).   도대체 미·중 사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 보도하는 그런 식의 극적인 데탕트는 아닌 것 같다.    ━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큰 틀에서 본다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고,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몽’의지에 변화를 보이지 않은 상태다. 즉 미·중 사이에는 근본적인 경쟁 구조와 국가 전략이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트럼프 시기보다 더 정교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처벌적인 단어가 주는 중국과의 단절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자기방어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언어적으로 순화를 꾀했다.     원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사용한 ‘디리스킹’이라는 단어를 이번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사이에 중국 견제를 둘러싼 의견 충돌을 해결했다. 유럽은 자국의 사활을 위해서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조정하면서까지도 ‘탈중국화’와 ‘전략적 공급망’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유럽의 언어를 수용하였고, 유럽은 안보 영역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공급망 구축에 동의함으로써 양측은 중국에 대항하는 ‘원팀’을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중 갈등을 불안하게 주시해왔던 ‘글로벌 사우스’(이전에는 ‘제3세계’로 불리었음)에게 주는 신호도 된다. 예를 들어, 이번 G7 정상회의에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코모로, 쿡 제도 등 8개국의 정상도 초청되었다. 특히 G20의 현 의장국과 차기 의장국인 인도와 브라질의 참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G7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흥 경제권 중 두 곳이자 미·중 진영에 속하지 않고 관망세를 취하는 세계 100개국 이상의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주자다. 이로써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시도에 대한 잠재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신흥 중견국 국가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결국 이번 G7 회의는 언어적 순화를 통해 대중국 견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외교적 성공작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 외교부가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사도 ‘디리스킹’용어는 ‘낡은 술을 새 병에 담은 것’(新瓶装舊酒)뿐이며 언어적 포장이라 깎아내렸다(2023.5.25). 그러면서 표현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脱钩)이고, 오히려 디리스킹이 ‘기만적인’(具欺骗性) 표현이라고 혹평했다.      ━  미·중 관계, 수사적 레토릭이 아닌 행동을 봐야   이런 맥락에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미·중 고위급 소통 재개는 지난해 바이든-시진핑 회담에서 합의했지만, 올해 초 ‘풍선 사건’으로 좌초된 소위 ‘가드레일’ 회복 노력의 하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것은 향후 양국 관계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 핫라인 재개통, 그리고 미·중 장관급 회동을 거쳐 올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는 것으로 가시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양국 관계의 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미·중 갈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미국의 중국 부상 억제의 본질적 전략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꾸준히 자국의 첨단 산업 경쟁력을 향상하고, 중국과의 디커플링에서 올 수 있는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동맹 결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큰 틀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동맹이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이와 대척점에서 북·중·러 관계도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미·중 갈등이 주축이 된 근본적인 신냉전적 구조의 구축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전히 중국을 ‘주요 도전’(pacing challenge)으로 인식하고, 중국을 국제 질서에 대한 가장 심각한 ‘장기적 도전’(long-term challenge)으로 정의하며, 반중국 전선에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을 참여시켜 연합전선을 펼치는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라는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패러다임은 꾸준히 일관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결국 미·중 관계는 수사적인 레토릭이나 갈등 관리 회동을 보는 것보다는 행동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디리스킹’은 미·중 해빙 신호라기보다는 미국이 동맹을 견인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다. 바이든의 정교한 중국 때리기 전략은 안 바뀌었다.     한국은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미·중 관계를 평가할 때에는 단기적인 변화보다는 장기적인 전략과 동향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계속해서 전이해가는 국제 상황과 미·중 양국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며, 주도면밀한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2023.06.06 06:00

  • [중국읽기] “대중 교역, 이제 남은 건 반도체뿐?”

    [중국읽기] “대중 교역, 이제 남은 건 반도체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무역수지가 15개월 내리 적자다. 중국 요인이 크다. 우리 수출의 약 30%를 소화하던 대중 수출이 지난 12개월 연속 쪼그라들었다. 여기저기서 중국발 경보가 울린다.   돌이켜보면, 달콤했다. 지난 30여 년 중국 성장은 우리 경제에 축복이었다. ‘중간재(부품, 반제품) 교역’ 덕택이다.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 공장은 그걸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었다. 완제품은 ‘Made in China’ 마크가 찍혀 싼 값에 미국으로 팔려 나갔다. 한국도, 중국도, 미국도 윈윈이다.   반도체는 대중 무역흑자를 이끌어온 핵심 중간재 품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공장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대중 중간재 교역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렸다. 첫째 GVC(글로벌 밸류 체인)다. 1980년대 말 소련의 붕괴로 세계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리즘(세계화)이 확산됐다. 기업은 최적의 환경을 찾아 생산-유통 네트워크를 깔았고, 촘촘한 GVC가 구축된다. 중국은 그 흐름에 동참했고,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다. ‘세계 공장’ 중국의 탄생이다. 한국은 그 공장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둘째 기술 우위다. 중간재는 완제품보다 기술 수준이 높다. 중국은 이웃에서 고기술 부품을 가져올 수 있었으니 역시 행운이었다. 한국 기업은 중국에서 번 돈을 다시 기술에 투자했고, 산업은 고도화됐다.   그러나 달콤했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두 전제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무역 전쟁으로 GVC는 왜곡되거나 와해하는 중이다. 중국은 모든 생산 과정을 국내에서 완결하는 ‘홍색 공급망’ 구축에 열심이다. 한국 중간재가 파고들 틈은 점점 좁아진다.   기술 우위도 흔들린다. 현대자동차 베이징 공장은 한때 전체 부품의 약 80%를 한국에서 가져갔다. 이젠 모든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한다. 거꾸로 우리가 중국 부품을 수입해야 할 판이다. 업계에서는 “이제 반도체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타개책 역시 GVC와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GVC 확보에 경제외교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경제 없는 안보가 어찌 가능하겠는가. 안으로는 우리 중간재 기술이 다시 중국에 먹힐 수 있도록 기술·산업 정책을 짜야 한다. 중국의 공세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반도체 철옹성’을 몇 개 더 쌓아야 한다.   다음 달이라도 무역 적자는 흑자로 반전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중간재 교역’의 메커니즘 변화는 우리에게 10년, 20년을 내다본 근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05 00:36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탕수육, 아편전쟁 굴욕의 요리?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탕수육, 아편전쟁 굴욕의 요리?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탕수육,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진 셔터스톡 탕수육은 여러 나라에 퍼진 중국 음식이다. 국경을 초월해 그만큼 다양한 입맛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부먹이냐 찍먹이냐 논쟁을 벌일 만큼 인기이고 일본도 중국음식점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다만 탕수육 대신 새콤 돼지(酢豚)라는 뜻의 스부타(すぶた)라고 부른다. 미국인한테도 익숙하다. 탕수육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달콤새콤 돼지고기(Sweet and Sour Pork)라고 하는데 레스토랑은 물론 중국식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은 탕수육과 비슷한 꿔바로우도 유행하고 있으니 인기에 힘입어 탕수육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듯싶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탕수육,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탕수육은 흔히 아편전쟁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청나라가 영국에 패배한 후 홍콩과 광저우 등지에 진출한 영국인 입맛에 맞도록 개발, 내지 변형된 요리라는 것이다.   같은 탕수육이지만 기존 탕수육과는 살짝 다른 파인애플 탕수육도 유래설이 따로 있다.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 영국 상류층 인사를 위해 탕수육에 파인애플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혹은 중국이 열강에 시달릴 때 상하이의 영국, 프랑스 조계지에서 서양인 구미에 맞도록 파인애플을 넣었다고도 있다. 뜬금없이 왜 파인애플이었을까 싶지만 19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파인애플은 일반인은 먹을 엄두도 못 내던 최고급 과일이었다.   꿔바로우 유래설도 닮은 꼴이다. 꿔바로우는 솥(鍋)에서 폭파(爆) 시키듯 튀겨낸 고기(肉)라는 뜻이다. 여기에 탕추(糖醋)소스를 부어 먹으니 본질적으로 탕수육과 다를 바 없다.   원래 흑룡강성 요리라고 하는데 20세기 초, 만주군벌 장학량의 요리사가 개발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요지는 하얼빈 일대의 러시아 외교관 내지 러시아 기술자 입맛에 맞춰 만든 요리라는 것이다.   꿔바로우 이름도 원래는 폭(爆)자를 썼지만 러시아인이 제대로 발음 못해 감쌀 포(包)로 바뀌었다는데 중국어로는 두 글자 모두 바오(bao)로 발음이 같다.    탕수육 내지 파인애플 탕수육, 꿔바로우 유래설의 특징은 모두 침탈을 목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서양인에 맞춰 만들어진 요리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중국 입장에서는 굴욕적이다. 왜 이런 유래설이 퍼졌을까?   다양한 추측이 있으니 일단 우리가 아는 탕수육은 오리지날 중국 요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콩이 됐건 또 다른 나라가 됐건 원래 중국 음식을 변형한 외국식 중국요리일 수 있다. 예컨대 짜장면, 짬뽕 비슷하다. 중국을 조롱하는 듯한 유래설도 이런 과정에서 생겼을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파인애플 탕수육은 도쿄의 남국주가(南國酒家)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미군 고객에 맞춰 만든 음식인데 패전 후 상처난 일본의 자존심에 중국에 대한 조롱이 교묘하게 덧씌워졌다는 것이다. 파인애플 탕수육은 도쿄의 남국주가(南國酒家)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진 남국주가 공식홈페이지   그러고 보면 실제 중국에서 탕수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단 탕수육, 중국어로 탕추러우(糖醋肉)라는 이름의 요리가 드물다. 게다가 우리가 익숙한 돼지고기에 튀김 옷을 입혀 튀긴 그런 탕수육은 먹기 쉽지 않다. 아마 이런 튀김법은 포르투갈에 뿌리를 둔 유럽, 혹은 일본식 튀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영국이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홍콩, 마카오의 요리법일 수도 있다.   그러면 설마 중국에는 혹시 탕수육이 없다는 소리이냐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탕추요리가 널려 있다. 대표적으로 탕추리지(糖醋里脊)가 있다. 리지는 등심이라는 뜻이다. 탕추파이구(糖醋排骨)도 있다. 돼지갈비에 달콤새콤한 탕추소스를 부은 요리다. 특정 돼지고기 부위로 조리한 탕추 요리가 너무 많아 두리뭉실한 의미의 탕수육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생선요리도 많다. 탕추리위(糖醋鯉魚)는 잉어, 탕추귀위(糖醋鳜魚)는 쏘가리, 탕추황위(糖醋黃魚)는 조기에 탕추 소스를 뿌린 탕추생선 요리들이다.   돼지고기건 생선이건 이들 탕추 요리 역시 튀김 옷을 두껍게 입히지 않고 녹말을 살짝 뿌리거나 아니면 녹말 없이 튀기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면 설탕과 식초로 만든 탕추 소스로 조리한 음식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 이후 생겨났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고 요리법이 처음 문헌에 보이는 것은 원나라 때 문헌 『거가필용』이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나라 의학서인 『비급천금요방』에도 한입 가득 탕추 소스를 머금었다는 내용이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당나라 때 제당기술이 발달했으니 설탕을 활용하는 탕추소스 역시 이 무렵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설탕은 값비싼 감미료였으니 탕추 요리 역시 상류층의 고급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청말의 서태후가 탕추요리를 그렇게 좋아해 의화단의 난으로 8국 연합군에 쫓겨 피난갔을 때 그 난리통에도 탕추생선(糖醋熘魚)을 맛보고는 만족해 요리사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세계로 퍼질 만큼 맛있기 때문일까, 탕수육의 역사도 영광과 굴욕으로 얼룩진 중국사만큼 파란만장했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02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의 이차전지 산업과 우리의 대응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의 이차전지 산업과 우리의 대응

    중국은 오래전부터 이차전지의 핵심 광물은 물론 중요한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에 대한 기술을 내재화하고 원가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망을 장악해 오고 있다. 출처 셔터스톡 미국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제정한 데 이어 지난달 4월 17일엔 재무부가 IRA에 의해 7500달러의 세금 감면 대상이 되는 전기차 목록을 발표했다. IRA 법안의 주요 목표는 중국산 이차전지 산업의 발전을 막고 이를 ‘미국화하기 위한 것(made in America)'이다.   중국산 자동차 배터리를 차단하기 위해 배터리 부품의 50%를 북미(미국-캐나다)에서 생산하거나 조립해야 차량당 3750달러(약 494만 원)의 세금 감면을 받고, 나머지 3750달러는 배터리의 주요 금속 광물 중 40% 가 미국 또는 미국 FTA 파트너 국가에서 생산되어야 혜택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중국산 핵심 광물이나 소재 및 부품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인 폭스바겐, BMW, 닛산, 현대, 볼보 차 등은 감면 대상 목록에서 제외했다. 미국 자동차 브랜드 테슬라와 GM이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되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이차전지의 핵심 광물은 물론 중요한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에 대한 기술을 내재화하고 원가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망을 장악해 오고 있다.   중국은 내수시장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세계 이차전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전기차 생산과 판매는 세계 1위로 부상해 있다. 중국의 강점은 정부의 대규모 투자와 보조금의 지급으로 원가경쟁력을 갖춘 데다가 내수시장의 규모가 크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  중국의 전략     중국기업은 오래전부터 니켈,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아프리카와 남미 등 해외광산 투자로 원료 광물을 확보한 뒤 제련과 처리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이차전지 원료의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을 키워왔다.   중국은 아세안 지역과 EU 지역에 대한 현지 직접투자(FDI)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서방의 견제를 회피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이 지역을 기반으로 이차전지와 전기차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차세대 삼원계(NCM) 배터리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선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주도의 이차전지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독자 표준을 정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친환경 에너지 관련 ESS용 이차전지의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중국 위주의 공급망 구축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데 이 또한 위협적이다. 게다가 폐배터리 재활용 생태계 구축에 있어선 독보적이다.   중국기업은 오래전부터 니켈,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전략산업으로 인식해왔다. 사진 셔터스톡  ━  한국의 도전과 대응     이차전지 배터리는 반도체 등과 함께 정보산업(IT)의 3대 핵심부품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 분야다. 우리는 30년 만에 이차전지 기술 강국으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20년간 반도체에 이어 이차전지는 우리 산업의 꽃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 이차전지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의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주요한 원료인 리튬과 니켈, 구리 등 핵심 광물은 상당 부분 중국 현지 공장이나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정책변동이나 시장가격 변동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핵심 광물의 공급이 끊어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대비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우리는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넓히고, 미국이나 유럽 및 일본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이차전지 글로벌시장 점유율 목표를 20%까지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민관이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중국기업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 변칙적인 방법으로 해외투자가 이루어지는 경우, 우리 기업에는 상당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현재 고급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와 관련해 한국산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또 어떻게 되었던 미국이 IRA 법으로 중국의 약진을 막아주는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한 기회로 작용한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하면서 고급 전기차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 이차전지 산업 강소기업 클러스터 구축, 차세대 전지 개발, 핵심 인재의 양성과 교육은 기본이다. 우리가 주축이 돼 미국, EU, ASEAN과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에 있어 정교한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동맹 전략이 절실하다.   신(新)냉전 체제에서는 국가의 전략이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와 같이 원료 광물 확보에 직접 개입하는 강력한 계획경제 체제와 경쟁하려면, 우리 정부도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해외자원개발 기금운용이나 자원개발 연계 정부개발원조(ODA) 등 법과 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도체와 이차전지, 배터리 산업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글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차이나랩

    2023.05.31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중 국경 개방이 신냉전 첫걸음 될까 두렵다”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중 국경 개방이 신냉전 첫걸음 될까 두렵다”

    중국 단둥에서 촬영된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중국-북한 우정의 다리 근처. 북한 신의주의 한 공장이 보인다. 셔터스톡 “하루빨리 고향(북한)에 돌아가고 싶습네다.”   중국 단둥에 외화벌이하러 나온 북한 노동자를 만난 중국 교포가 전한 말이다. 현재 단둥에 나온 북한 노동자들은 보통 3년 이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북‧중 국경이 곧 개방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들떠 있다고 한다.   북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3년 가까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교포는 “어떤 북한 노동자는 임신 7개월 된 아내를 북한에 두고 왔는데 아들이 벌써 3살이 됐다. 전화로 태어난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중 국경개방 소식은 지난해 말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소문에 그쳤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일 코로나 종식 선언을 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이번만은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중국 교포는 “북한 노동자들이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고 귀국을 준비하면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비단 단둥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베이징에 유학하러 나온 북한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3년 전 베이징에 있는 대학에 단기 유학(1년 정도)을 왔다가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이들은 현재 주중 북한 대사관 안에 있는 호텔에서 숙식하고 있다. 이 호텔은 2018년 베이징에 출장 나오는 북한 인사들을 위해 지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 대학원생들을 위한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 다행히도 3년 가까이 베이징으로 출장 나온 북한 사람도 없었다.   중국 교포는 “젊은 학생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단기 코스를 마치고 귀국하지 못하고 3년 가까이 호텔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주중 북한대사관도 이들을 돌보느라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학생들이나 대사관 직원들이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북‧중 관계에서 3년 가까이 국경이 폐쇄된 경우는 1960년 후반 문화대혁명 때도 있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한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북‧중 관계는 거의 ‘원수’에 가까웠다. 문화대혁명의 주역인 홍위병은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로 공격했다. 이에 북한은 “수정주의 문제는 오직 미제의 월남(베트남) 전략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기준인데 무슨 소리냐”며 맞섰다. 또한 북한은 “중국이 오히려 편협한 교조주의적 행태를 보인다”고 공격했다.   이렇게 양측이 싸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 실각 이후 새로 등장한 브레즈네프 정권에 대해 북‧중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북한은 브레즈네프의 정책을 흐루쇼프의 정책과는 구별해 보고 있었고, 중국은 ‘흐루쇼프 없는 흐루쇼프주의’로 간주했다.   이에 따라 북‧소 관계는 스탈린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최상의 단계로 격상했다. 그 사례로 1966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일성-브레즈네프 정상회담을 들 수 있다.. 북‧소 정상회담에서 극동지역에 북한 벌목 노동자를 2만여 명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관계를 지켜본 홍위병이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로 몰아간 것이다. 당시 수정주의는 ‘적’과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북‧중은 서로 현지 대사를 소환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했다.   특히 옌볜자치주 주장이었던 주덕해는 홍위병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주장에서 쫓겨나 말년을 비참하게 보냈다. 홍위병은 그가 북‧중 국경 획정 과정(1958~1964)에서 백두산 천지 면적을 북한에 4.5% 더 떼어주는 (북한 면적이 54.5%) 등 북한에 유리하도록 했다고 몰아세웠다. 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덕해가 마오쩌둥을 비하하고 김일성을 떠받들었다 등의 허위 사실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불편한 관계를 푼 건 해결사 저우언라이였다. 그는 1967년 10월 아프리카 모리타니 공화국의 다다흐 대통령이 베이징을 거쳐 방북하는 기회를 이용했다. 저우언라이는 다다흐 대통령에게 김일성에 대한 화해의 ‘선물’로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북한 거주 화교들의 반북적 행동에 유감을 표한다. 둘째,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의 활동에 약간의 편향성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셋째, 북한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지지한다. 당시 북한에는 1만여 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1966년 평양에 있는 중국인 중학교 학생들이 홍위병을 자칭하며 마오쩌둥 사상을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학교 관리자의 사무실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이에 학교를 폐교 조치하고 화교들에게 중국 국적을 버리고 북한인으로 살거나 아니면 북한을 떠나라고 했다. 대부분 화교는 북한을 떠났고 일부는 북한에 정착했다. 그 이후 북‧중 관계가 회복되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오는 화교가 생겼다. 현재 2000여 명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고 북한 화교를 대표하는 조직은 ‘조선화교연합회’다. 최근 평양에 부임한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는 이들을 만나 애환을 들었다.   김일성은 홍위병의 비난을 참을 수 없었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더 악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다다흐 대통령에게 저우언라이에 보낼 4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것은 ①북한의 대중국 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②마오쩌둥‧저우언라이 동지와 깊은 우의를 나눈 바 있으며, 공동 투쟁 속에서 쌓아온 이 우의를 매우 귀중히 여긴다 ③쌍방 간에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존재하나 이는 엄중한 것이 아니며,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④만약 북한이 침략을 당하면, 중국이 과거 여러 차례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을 도우리라는 것을 믿는다 등이다.   1967년에 주고받은 김일성-저우언라이 구두 메시지는 2년 뒤 1969년 10월에 가서야 효력이 발휘했다. 최용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중하면서 북‧중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닫혔던 북‧중 국경이 열리는데 모두 3년 가까이 걸렸다. 1960년대는 정치적 이유였고 2020년대는 방역적 이유였다. 1960년대는 해결사는 저우언라이였고, 2020년대는 세계보건기구였다.   북한은 올해 9월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북‧중 밀월 시대가 재개될 조짐이다. 게다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오매불망 바라던 차항출해(借港出海, 타국의 항구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를 하게 돼 날개를 달게 된다. 여기에 북한마저 합류하면 북‧중‧러가 극동 지역에서 뭉치는 셈이다.   한‧미‧일 vs 북‧중‧러. 북‧중 국경개방이 아이러니하게 신냉전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칼럼  

    2023.05.30 06:00

  • [중국읽기] G7 성명에 중국이 웃는 이유

    [중국읽기] G7 성명에 중국이 웃는 이유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겉과 속은 다르다. 얼마 전 끝난 G7 정상회의 이야기다. 겉으론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을 20여 차례나 언급하며 때린 모양새인데 속으론 모두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홍콩 언론은 중국이 성명에 대해 겉으론 “난폭한 내정간섭”이라며 격분한 모습을 취했지만, 속으론 G7의 실제 행태가 너무 웃겨 입을 다물 수 없는 지경이라고 전하고 있다.   중국은 왜 웃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가 낮아졌다. 용어에서 드러난다. 탈(脫)중국을 뜻하는 ‘디커플링(관계 단절)’이란 말이 ‘디리스킹(위험 억제)’이란 표현으로 변했다. 디리스킹은 중국과 분리할 건 분리하고 협력할 건 협력한다는 뜻이다. 지난 3월 말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베이징에서 만난 미슈스 틴 러시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AFP=연합뉴스] 그는 “중국과 디커플링 하는 게 가능하지도 유럽의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며 디리스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독일과 프랑스가 가세했고,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디리스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웃는 두 번째 이유는 성명에서 G7이 중국과의 ‘구체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수립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중 관계가 곧 해빙될 것”이라 말했다. 중국도 지난주 5개월 가까이 공석이던 주미 대사로 셰펑(謝鋒·59)을 보내 화답했다. 미국통 셰펑은 말이 험한 전랑(戰狼) 외교관이 아니어서 관계 개선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호주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다. 마치 시진핑을 만나기 위해 G7 회의가 폐막하길 기다린 듯한 느낌이다. 중국 고립을 꾀하던 미국의 전략은 왜 먹히지 않나.   지난 22일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한 라디오 TV 프로그램에서 밝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마디가 시사점을 준다. 노 전 대통령은 “지도자와 보통사람의 차이가 뭔가. 생각은 다 비슷하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기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은 세계에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역설하면서 정작 테슬라나 애플 등 자국 기업의 중국 사업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자기 이익은 챙기면서 남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나. 미국 스스로 리더의 자격을 내려놓으니 말이 통할 리 없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중국 일을 챙길 때다. 축구선수 손준호의 중국 억류나 네이버의 중국 차단 등이 예삿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5.29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금가루 뿌린 볶음밥, ‘양저우 차오판(揚州炒飯)’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금가루 뿌린 볶음밥, ‘양저우 차오판(揚州炒飯)’

    사진 셔터스톡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보편적으로 손쉽게, 또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으로 무엇이 있을까?   그런 음식은 여럿이 있겠지만 우선은 계란 볶음밥을 빼놓을 수 없겠다. 웬만한 나라에 있는 대부분 중국 음식점 메뉴에는 계란 볶음밥이 공통으로 올라있기 때문이다. 계란 볶음밥이 왜 그렇게 널리 퍼졌을까?   이유는 가장 평범한 중국 음식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매우 특별한 요리였기 때문인 것 같다. 얼핏 별것 없어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계란 볶음밥 만큼 대단한 음식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단 별명에서 빛났던 과거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옛날에는 계란 볶음밥을 쇄금반이라고 불렀다. 부술 쇄(碎), 금 금(金), 밥 반(飯)을 썼으니 말하자면 금가루 뿌린 밥이다. 기름에 코팅된 밥알에 계란노른자가 덧입혀져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마치 황금으로 지은 밥 같다고 해서 생긴 별칭이다.   한갓 계란 볶음밥을 놓고 이런 어마어마한 찬사를 한 사람은 7세기 초의 수나라 황제, 양광이라고 한다. 진시황에 이어 두 번째로 중원을 통일했고, 강북과 강남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했지만 고구려를 침략했다 멸망한 인물이다. 엄청난 권력에 걸맞게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던 것으로 유명한 수양제인데 왜 겨우 계란 볶음밥 하나 놓고 금가루 뿌린 밥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일까?   서기 604년 권좌에 오른 수양제가 계란 볶음밥을 처음 맛본 것은 대운하를 완성한 후 수도인 장안, 지금의 산시 성 서안을 떠나 장쑤 성 일대로 순시여행을 떠났을 때다. 수양제가 강소성 양주(揚州)에 들렀을 때 수행했던 재상, 월국공 양소가 평소 자신이 즐겨 먹던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바쳤고 이를 먹어 본 수양제가 금을 부숴 밥을 지은 것 같다며 쇄금반이라고 요란을 떨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푸젠 볶음밥(福建炒飯), 새우 볶음밥 등등 여러 종류와 형태의 볶음밥이 있다. 이런 다양한 볶음밥의 바탕이 되는 것이 계란 볶음밥이고 또 그 원조이자 대표로 꼽는 것이 양주 볶음밥, 중국어로 양저우 차오판(揚州炒飯)인데 그 유래가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팩트 체크를 해 보면 수양제의 계란 볶음밥 이야기는 사풍이 썼다는 요리서 『식경(食經』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사풍은 수양제의 요리책임자였다고 하는데 식경이라는 문헌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그 일부 내용만 다른 문헌을 통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수양제와 계란 볶음밥, 쇄금반 스토리는 식경에 실려 있었다는 음식을 토대로 여러 스토리가 덧붙여져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여기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계란 볶음밥을 놓고 금가루 뿌린 밥 같다며 극찬한 것이 별다른 의미 없이 속된 말로 과장하기 좋아하는 말 습관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노랗게 빛나 볶음밥이 단지 맛있게 보여서 비유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런 별칭에서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도 찾을 수 있다.   일단 수양제가 계란 볶음밥을 먹었다는 시기는 7세기 초로 이때는 중국에서 아직 쌀이 널리 퍼지지 못했을 때다. 수나라 수도 대흥, 지금의 장안이나 동도로 불렸던 낙양은 당시 밀 농사 지역이었다. 물론 밀도 귀했지만 벼농사는 아직 강남 지역인 양자강(長江) 이남에서 강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을 때다.   그렇기에 수양제나 월국공 같은 최고 권력자, 최상위 부유층도 쌀밥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대였고 하물며 밥을 볶는 기름과 계란 또한 귀했으니 평민의 눈에 계란 볶음밥은 금가루로 지은 밥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 계란 볶음밥이 문헌에서 확인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수양제보다 약 50년 앞선 6세기 중반에 발행된 『제민요술』로 이 책은 지금의 산둥 성인 북위(北魏)의 고양태수 가사협이 지은 농업서이자 요리책이다. 계란 볶음밥이 6세기 중반 7세기 초에 쌀의 고장 강남에서 밀과 잡곡의 고장 강북으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계란 볶음밥을 먹었다는 인물이 하필 수양제인 것 역시 강북과 강남을 잇는 대운하를 처음 개통한 인물이었기에 이 시기에 쌀과 같은 곡물의 이동과 벼농사의 확대가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현대 중국에서 양주는 우리의 전주비빔밥처럼 볶음밥의 대표 지역이며 유래지로 꼽는데 그 이유 또한 쇄금반 스토리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양주는 흔히 양자강으로 알려진 장강의 지류인 실제의 양자강이 흐르는 곳으로 수당시대 대운하를 통한 교통의 요지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런 만큼 맛있고 귀했던 계란 볶음밥도 이곳을 통해 퍼졌을 것이다.   한편 계란 볶음밥이 중국 밖 세상으로 퍼진 데는 청나라 때, 양주 태수를 지낸 이병수(伊秉綏)라는 사람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임기 후 고향인 푸젠성과 광둥 성에 양주 볶음밥을 전했고 이곳 출신 화교들이 해외로 퍼지면서 세계 각지 중국 음식점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됐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양주는 계란 볶음밥과 관련이 깊은데 무심코 먹는 볶음밥 하나에서 다양한 중국을 엿볼 수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5.26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의 위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의 위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사진 셔터스톡   ■ 위기공관(危機公關, public relations in crisis) 「 위기엔 ‘위험(危)’ 외에 만회할 ‘기회(機)’가 공존한다. 」  중국말로 公館(공관)은 공공관계, 즉 PR을 말한다. ‘위기 공관’은 위기가 가져올 손해와 위협을 피해가거나 경감시키는 활동이다. 이미 발생한 위기를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중요하다. 위기는 늘 있다. 이미 발생한 위기의 위험성은 위기공관 능력에 달려 있다. 잘못된 대응은 불에 기름을 붓는(火上澆油)격이다.  ━  휘주연(徽州宴), 나무로 이미 배를 만들었다. 만회가 안 된다(木已成舟).   위기공관은 중국회사에게도 어렵다. 잘못하면, 다음이 없다.   ‘휘주연’은 ‘휘주지방 음식점’이다. 안후이성 방부(蚌埠)라는 도시에서 결혼식 등의 큰 행사를 할 때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이 음식점 주인의 부인이 목줄 없이 개를 산책시키다가 주민과 다툼이 생겼다. 견주가 사과했다면 그냥 끝날 수도 있는 작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견주는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쳤다. “내가 휘주연을 몇 개나 갖고 있다”, “몇천만 위안(수십억원)을 물어줄 수도 있다. 내 개보다도 값나가는 건 없다”, 심지어 경찰이 왔는데도, “감히 내 개를 건드려? 감히 내 개를?” 하며 광분했다. 사람이 지나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人狂必有禍). SNS에서 사진과 동영상이 퍼진다. 휘주연은 황급히 공식 발표를 한다. 사과를 표하면서 “그런 행위는 회사와는 무관한 개인 행위다…. 우리는 대주주가 누구누구 두 명이다. (그녀는 주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불에 기름을 부었다. 회사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 회사 측의 발뺌은 PR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노련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일반 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네티즌들은 “그럼 그 대주주 두 명 중, 누구의 부인이냐?”며 진정성 없는 사과에 더욱 분노했다. 시민들은 휘주연 식사 예약을 취소했고, 재료 공급상은 거래를 끊었다. 사건 전까지만 해도, 예약을 잡기가 어려웠던 휘주연은 이제 손님도 오지 않고, 음식 재료마저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방부 시의 택시기사는 “요즘 모르는 이들이 우리 시에 와서 휘주연으로 가자고 한다”고 전했다. 시민은 물론이고, 전국의 네티즌들이 식사가 아닌 구경을 하러 오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 버렸다. 결국 방부 시에 있는 휘주연은 문을 닫았다.   심지어 ‘탕창(躺槍, 누워 있다가 총에 맞다. 의문의 1패를 당하다)’의 경우도 있다   위기 공관에서의 실패는 엉뚱한 곳에까지 피해를 준다. 방부로부터 차로 약 480㎞ 거리인 항저우(杭州)에 동명의 ‘휘주연’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하루 매출이 우리 돈으로 약 600만원 하던 곳인데,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10만원도 안 된다고 한다. 방부의 휘주연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항저우 휘주연의 사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있다가 총에 맞았다. 의문의 1패를 당했다.  ━  물이 불어나는데 배는 낮아진다(水漲船‘低’)?   원래는 물이 불으면 배가 올라간다(水漲船‘高’)다. 비튼 말이다.   “시장은 커지는데, 오히려 매출은 뚝 떨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 중국에 질렸다… P사 점유율 0% 초유의 적자 사태 발생(22.12.22)”. 우리나라 모 경제지의 기사 제목이다. 기사 본문에는 “중국이 P사를 홀대, 이 정도일 줄은…. 한때 20%에 달했던 P사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0%대로 추락했다”라는 내용도 있다.   핸드폰 사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중국 정부는 특혜에 가까운 지지를 해줬다.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 P그룹에서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갑자기 홀대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흔히들 중국 제품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애플은 여전히 잘 나간다. 제품력을 키웠어야 한다. 중국인들의 자국 제품에 대한 애국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애플은 중국회사가 아니다.   필자는 한동안 선전의 중국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매너 좋은 중국 직원이 있었는데, 둘이서 양고기를 자주 먹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며 친해지자 대화의 화젯거리가 많아졌다. “P사에 계셨지요? 저도 예전에 P사 폰만 썼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안 씁니다. 미안합니다.” 한다. 그게 왜 미안하냐고 대답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을 벌써 여러 명한테 들었다는 게 떠올랐다.  ━  중국 남자는 절대 무릎을 꿇지 않는다(男兒膝下有黃金).    “우리를 무시하고, 차별 대우했다!”    예전에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지난 일은 정말 죄송했다”며 큰절을 올렸다가 낭패한 일이 있었다. 절을 받는 국장이 웃으며 “아니 이렇게까지 할 것은 아니고…”하며 더 화기애애한 장면이 연출될 거라고 여겼는데, 협상은 그걸로 끝나버렸다. 국장이 화를 내며 나가버린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그때 중국인에게는 무릎을 꿇는 게 금기(禁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 절하고 땅에 절하고 부모에게만 절한다(跪天跪地跪父母). 여간해서는 절대 큰절을 안 한다. 큰절을 받은 국장은 한국인 임원이 그에게 절을 하자, “내가 도대체 너한테 얼마나 심하게 대했다고 이러느냐! 주위에서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발끈한 것이다. 중국인이 평소에 절을 할 리도 없지만, 절을 받는 것조차도 이렇게 민감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선전의 중국인 동료가 언급한 ‘그 사건’은 다음과 같다. 2016년, 미국에서 P사 핸드폰 폭발 사고가 났다. 미국시장에서는 빠른 사과와 리콜을 진행했다. 한편, P사의 최대시장인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판매되는 배터리는 다른 회사의 제품이라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배터리 제조사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또 다르다. 자기네 제품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P사에서 일하다가 계열사인 배터리 회사로 옮겨온 사장이 “(P사의 핸드폰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의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잘못했다”라고 자진해서 시인했다는 것이다.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미국 폭발 사건 이후, P사의 중국법인은 대리상들과의 만찬에서 (그래도 회사를 믿고) 많은 주문을 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했다. 그런데, 그 방법에서 사고가 났다. 마침 저녁 늦게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중국인 친구들로부터 사진과 함께 전화가 왔다. “네가 다녔던 회사 사진이다. 어쩌냐?”. 사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큰 식당(또는 호텔 연회장)에서 여러 사람이 연단에 올라와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 직원들도 있었다. 어떤 이가 두 명을 손으로 눌러서 무릎을 꿇게 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화를 몰라서 그런 거다. 다 알 수는 없지 않나? 우리나라는 고마움에 대한 최고의 예의 표현이 큰절이다. 오해 마라….”라며 설명을 했다. 하지만, 필자한테까지 이렇게 빠른 시간에 알려졌다면, 이미 사고는 생긴 거다. 위기공관을 정말로 잘했어야 했다.  ━  웅덩이를 피하다가 우물에 빠지다(避坑落井).   위기공관에 실패하니 더 큰 위험이 와 버렸다.   P사는 바로 발표를 했다. 관습을 잘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라며 정중한 사과를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다음 문장이 사고를 제대로 증폭시켰다. “원래 한국 직원들만 절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보고 감동을 한 중국 직원들이 함께한 거다”라는 식으로 변명했다고 한다. 중국 친구들이 또 난리가 나서 전화를 해댄다. “머리는 없어도 되지만 무릎은 절대 굽히지 않는다(腦袋可以不要 膝蓋不能彎)는 말도 모르느냐! 정말 반성은 안 하고 변명만 한다. 중국사람이 감동하여서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회사는 중국 직원들의 개인 행위로 간주하게끔 하려 했으나 먹혀들지 안았다. 되레 위기를 증폭시켰다. 이때가 수많은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이 떠나는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2021년 4월에 또 핸드폰 사고가 났다. “폭발사고 아니었으면, (P사를) 거의 잊을 뻔했다”는 비아냥이 SNS에 올라왔다. 중국 매체는 “P사는… 전 세계 시장점유율 23.1%를 기록하며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위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속 하락, 1%대에 그쳤다”라며, “물은 불어나는데, (그러면 자연히 배도 뜨기 마련인데) 오히려 배가 가라앉았다”라고 비꼬았다.  ━  강 건너 불 보듯 하다(隔岸觀火).   미국에서 사고 났을 때, 중국법인은 안일하게 아무런 고민을 안 했다?   2016년 배터리 폭발사고가 났을 때, P사는 리콜대상 국가에서 중국을 제외했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차별 오해가 번졌다. 이번 폭발사고로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낸 중국 언론은 “당시 P사의 사과와 설명이 불충분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내 매체의 보도다.   배터리는 매우 민감한 제품이다. 사고라는 게 항상 뜻하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A는 “미국에서 사고가 났을 때, P사는 (최고의 수익을 내는 시장인) 중국을 고려한 발언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듣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예상되는 상황은 간단하다. 딱 두 가지 경우의 수다. 중국에서도 터지냐 안 터지냐이다. 터진다면, 어차피 미국과 동일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 차별 대우하면 중국 소비자들은 분명히 불매운동까지도 벌인다. 그리고 오래간다! 만약 안 터진다면, 돈 안 들이고 립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존중받았다고 여길 것이다.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국에서는 못 할 수가 있다. 중국 본사가 나서서 출장을 가서라도 본사를 설득해서 발표하게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아무리 말해 줘도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야!”라며 A는 말을 맺었다.  ━  속으로는 분명히 알아도 겉으론 말하지 않는다(心照不宣).   P사의 중국인들도 ‘큰절에 대한 금기’를 몰랐을까? 당연히 안다. 그런데, 왜?   사고 이후, 두 번의 위기 대응 실패를 한다. 첫 번째는, 큰절한 것이다. 중국사람들이 금기로 여기는 큰절을 할 때, 당시의 중국 직원들은 왜 말리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전에 연출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두 번째는, 진정성 있는 반성이 없는 P사의 언론발표다. P사의 발표문은 한국 사람이 작성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 직원이 번역해서 보도했을 텐데, 누가 봐도 설상가상(雪上加霜)인데 왜 말리지 않았을까? P사에 해코지하기로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한 건가?   중국인들은 늘 머리 내민 새가 총 맞는다(槍打出頭鳥)고 말한다. ‘잘 안 나서’는 것이다. 속으로는 분명히 알아도 겉으론 말하지 않는다(心照不宣). 바른말을 하면 열사가 된다(明言則爲烈士). 말은 훌륭했지만, 말한 당사자는 죽는 것이다.   참사가 거듭 증폭된 배경은, 우선은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큰절이라는 금기는 물론, ‘체면 문화’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큰절하자는 제안(또는 행동)을 한 한국인의 체면을 고려해서 말을 안 했을 것이다. “개인들이 알아서 한 것이다”라는 식의 발표문을 써준 본사(혹은 중국법인)의 한국인 상사의 체면을 고려해서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중국 문화 속에서는 자연스럽다. 당연히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사고에 대해, 잘못을 한국인에게만 돌리려는 억지가 절대 아니다. 무릎에 관련된 금기는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과 사과문 발표 전에, 아마도 중국인 직원은 ‘분명한 말’이 아닌, ‘간접적으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관련된 한국인들의 중국 실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국 문화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참사다.  ━  불공평한 처사에 대해 분노를 느끼다(憤懣不平).   사고는 ‘과거’지만, 기억은 아직도 ‘현재’다.   현장에 있는 중국인 대리상들이 찍었고 또 바로 SNS에 바로 올렸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라도 ‘큰절을 하는 그 순간, 대형 사고가 났다’는 걸 바로 안다.   위기공관을 제대로 해내려면, 우리가 중국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다 알 수는 없다. 단, 중국사람들이 알고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했다. 중국에서 0%대로 추락한 이유가 중국 경쟁사의 약진과 더불어 (외국제품을 배척하는) 중국인들의 애국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모르고 있었던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과 비교되는) 차별과 (큰절에 대해서 잘못을 시인은 안 하고 중국인들의 개인적 행위로 몰아갔던) 변명으로 이어진, ‘위기공관’의 실패다.   (얼마 전 상하이 자동차 전시회에서는 BMW가 곤혹을 치렀다. 지면상 이유로 생략한다.)  ━  북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矇在鼓裏).   만약, 회사 내에서 한국 사람들만 모르고 있다면?   회의를 통해서, 중국 직원들의 솔직한 의사를 듣기 어렵다. 만약 누군가 강하게 주장하며 상대방 중국인과 다툼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당사자들끼리 (거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상충하였을 경우가 많다.   한국인끼리만 어울려서는 절대로 조직 내의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없다. 한두 명의 중국 직원과만 대화해도 안 된다. 최대한 많은 중국 직원들과 많이 소통해야 한다. 독대(獨對)가 제일 좋다. 차 안이든, 우연히 복도에서 만났든, 최선의 방법은 독대다. (차선으로 통역을 쓰든, 중국어 공부를 더 하자). 의견 청취하겠다고 부서별로 번갈아 가며 단체로 식사하는 건, 그야말로 ‘보여주기’다.   P사는 아마도 ‘무릎을 꿇게’한 사건과 연이은 ‘잘못된 해명’이 그렇게 심각할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 돋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한국 본사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2023.05.25 06:00

  •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중국 대체할 아시아 14개국 ‘알타시아’(Altasia)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중국 대체할 아시아 14개국 ‘알타시아’(Altasia)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을 탈출하라! 여럿 글로벌 기업에 떨어진 특명이다. 소니도 나가고, 삼성도 지속해서 사업을 줄여가고, 애플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거의 전쟁 수준이다. 세계 주요 기업들은 지금 'GVC(Global Value Chain)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기존 공급망은 단절되거나, 아니면 왜곡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더 꼬이고 있다. 전쟁에서 낙오되면 시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기업들로선 생사를 건 싸움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중국만 한 곳이 어디 또 있는가?   「 'Altasia'(알타시아). 」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용어다. 대체라는 뜻의 'Alt'에 아시아의 'asia'를 합쳐 만들었다. '중국을 대체할 만한 아시아의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알타시아'는 탈(脫)중국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우리는 어찌 대응해야 할지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논리를 추적해보자.  ━  탈(脫) 중국 흐름   중국은 세계 공장이다. 전 세계 수출의 약 15%를 차지한다. 전자 제품(부품 포함)의 경우 세계 수출(약 3조3000억 달러)의 약 3분의 1이 중국에서 나온다. 세계 PC의 90%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티셔츠에서 에어컨,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무엇을 만들기에도 최적화된 곳이다.   이런 제조업 단지를 버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도 나가려 한다. 미·중 무역 전쟁도 있지만, 가장 급한 건 사실 인건비다.   중국 인건비가 싸다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평균 노동자 임금은 2배 올랐다. 시간당 8.27달러로 태국이나 인도, 베트남 등에 비해 2~3배 비싸다. 노동의존도가 높은 제품일수록 견딜 수 없는 구조다. 사진 더이코노미스트 소니는 카메라 생산공장을 중국에서 태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삼성의 중국 고용인력은 피크였던 2013년보다 3분2 이상 줄었다. 미국의 델컴퓨터는 2024년까지 중국에서 만들어진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탈중국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다.     중국은 그동안 제조업 기술을 차분하게 쌓아왔다. 완제품뿐만 아니라 부품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노트북PC의 경우 중국 내에서 모든 부품을 구할 수 있다. 게다가 인프라도 잘 깔려있다. 이젠 노동력 품질도 높다. 한 해 1000만 명 정도의 대졸 취업 예비생이 쏟아진다.   이런 조건을 제공할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알타시아(Altasia)'다.  ━  14개의 아시아 국가들   특정 한 나라가 '세계공장'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주변의 아시아 다른 나라를 모두 합쳐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술력이라면 일본, 한국, 대만 등이 있다. 물류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는 싱가포르, 일본, 한국도 유리하다. 인도, 태국, 미얀마 등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면 해결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에 포진하고 있는 이들 14개 나라를 묶어 '알타시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래 그래픽은 이들 14개 나라와 중국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 더이코노미스트 제조 총량으로도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이들 14개 국가의 대 미국 수출액(2021.10~2022.9)은 6340억 달러로 중국의 6140억 달러를 능가하고 있다. 알타시아의 전체 노동인구는 14억 명으로 9억5000만 명인 중국을 추월한다. 대학(전문 기술 대학 포함)이상의 고급 노동자 숫자도 알타시아가 더 많다.   스펙트럼이 넓다. 임금 수준만 봐도 시간당 0.6달러만 줘도 되는 나가 있는가 하면 32달러를 줘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그만큼 기술 수준도 다양하다. 일본, 한국, 대만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방글라데시, 라오스, 미얀마 등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경제 체제를 갖는 나라도 있다.   이는 곧 선택지가 넓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알타시아 국가의 다양한 수준은 여러 단계의 제조업을 다 만족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  한국의 위치는 어디?   용어가 생소할 뿐 '알타시아 트렌드'는 이미 깊숙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동남아시장에 진출해 사업 여건을 다져왔다. 한국 역시 신남방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일본을 따르고 있다. 삼성이 베트남에서 스마트폰을 만들고, 현대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건설하는 건 이를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알타시아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만 회사들이 움직인다. 폭스콘, 페가트론, 위스트론 등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은 거점을 인도로 다각화하고 있다.     퀄컴은 베트남에서의 반도체 생산량(매출 기준)을 지난 3년 동안 3배 이상 늘렸다. 인텔은 호치민시에 33억 달러 신규 투자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산업은 세계 칩 수출의 약 10%를 담당할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반도체가 먼저 가니 애플도 뒤따른다. 아이폰의 인도공장 생산 대수는 지금의 5% 수준에서 2025년 25% 정도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부품 조달이라는 차원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했어도 핵심 부품은 중국에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동남아 알타시아 국가들은 인프라가 엉망이다.   그렇다고 GVC의 변화를 무시한 채 중국을 고집할 수 없다. 임금 비중이 높은 회사는 동남아 저개발 국가로 공장을 옮겨야 할 처지고, 첨단기술 회사는 미국의 제재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중국에서 나온 기업들은 기술 수준별로 가장 적합한 나라를 찾아 새 둥지를 튼다. 누군가는 그들을 받아줘야 한다. 알타시아는 그 대안이다.   14개 국가들 역시 '내가 중국의 대안'이라며 나서고 있다. 각국이 갖고 있는 특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며 투자 유치에 나선다. GVC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싸움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서 이탈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14개 대안 중 하나다. 베트남으로 갈 공장이 있다면, 한국으로 올 기업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알타시아 중에서도 반도체, 자동차, 조선, 화학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그에 걸맞은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다. 중국으로 가는 서방 기업, 서방으로 가려는 중국 기업들의 가교 구실도 기대할 수 있다. GVC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과연 그 흐름을 준비하고 있는가… 알타시아 흐름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도전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5.24 06:00

  • [중국읽기] 21세기 아편전쟁과 펜타닐

    [중국읽기] 21세기 아편전쟁과 펜타닐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미 역사상 유일의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생전 중국에 관심이 많았으며 외조부 워런 델라노 주니어가 중국에서 사업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무슨 사업을 했나. 미 델라웨어대 역사학과 교수 왕위안충(王院崇)에 따르면 외할아버지가 종사한 사업은 아편 장사였다. 18세기 말 영국 동인도 회사가 대중 무역적자를 만회하려 아편 판매를 시작했는데 외조부를 포함한 미국 상인들도 기꺼이 동참했다.   불법으로 돈을 버는 데 국가와 민족의 구분은 없었다. 중국 광저우에 나온 미 회사 대부분이 아편 무역에 종사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미국 내 자선사업과 교육·교통·의료에 투자해 미국을 강국으로 일궈냈다. 반면 중국은 은화 유출과 무역 적자, 사회 빈곤, 국민 피폐로 이어지며 몰락했다. “손안의 담뱃대가 천조의 꿈을 날려버렸다(手中煙槍一杆 天朝夢歸何處)”는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가.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좀비 마약’ 펜타닐 물질이 중국에서 들어온다고 주장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달 초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물질이 든 중국 화물이 우리 항구에 도착했다”며 “중국에서 멕시코로 펜타닐이 들어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 해결을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정중한 서한을 보낼 예정”이라고도 했다.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 중독성을 지닌 펜타닐의 주요 공급처가 멕시코가 아닌 중국이라는 뉘앙스가 읽힌다.   펜타닐은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치명적인 마약이다. 2021년의 경우 10만7375명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졌는데 이 가운데 67%가 펜타닐 관련이었다. 미 성인 18~49세 사망 원인 1위로 교통사고와 총기사고 사망자를 더한 것보다 많다. ‘차이나 화이트(China White)’ ‘중국 소녀(China Girl)’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중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직접 밀수되거나 또는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중은 2018년부터 중국의 펜타닐 원료 생산자 단속에 나섰으나 무역 갈등이 악화하며 현재 협력은 흐지부지 상태다. 미국 일각에선 “중국이 고의로 펜타닐을 미국에 유통하고 있는 게 아니냐” “아편전쟁의 한풀이를 미국에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펜타닐 오남용이 문제이지 왜 중국 탓을 하느냐”고 반발한다. 21세기 아편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마약은 인류의 공적이다. 미·중 갈등 해소는 펜타닐 협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5.22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언제 사탕 줄 거야? 중국 결혼식과 기쁨의 사탕(喜糖)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언제 사탕 줄 거야? 중국 결혼식과 기쁨의 사탕(喜糖)

    신랑 신부가 결혼식에서 친구에게 시탕(喜糖: 중국에서 결혼식 때 나누어주는 사탕)을 선물하고 있다. 신화망 🍬“사탕 언제 줄 거야?”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혹시 중국에서 이런 말 듣더라도 뜬금없이 웬 사탕 타령이냐며 의아해 할 필요 없다.   진짜 사탕 먹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묻는 대신 국수 언제 먹여줄 거냐고 물었던 것과 비슷하다.   결혼을 사탕 먹는 것에 비유해 묻는 이유는 중국의 결혼 풍속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신부가 사탕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하객들 사이를 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때 나누어주는 사탕을 한자로 기쁠 희(喜), 사탕 당(糖)자를 써서 희당(喜糖), 중국어로는 시탕이라고 한다.  ━  중국의 신랑신부는 하객들에게 왜 하필 사탕을 주며 인사를 하는 것일까?   결혼을 축하하러 온 친척과 친지들에게, 부조를 전한 손님들에게 답례하는 풍속은 세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복떡’이라는 의미로 떡으로 인사를 했고 일본 역시 다이후쿠모치(大福餠)라고 부르는 찹쌀떡(もち)이나 카스텔라 등을 선물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양은 콘페티(Confetti)라고 하는 아몬드 캔디로 하객들에게 답례를 했다. 중국의 희당(喜糖) 풍속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제부터 이런 풍속이 생겼으며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결혼식 때 사탕으로 인사하는 풍속이 보편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러니까 대략 1949년을 전후로 일반화됐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집권 이후 대다수 과거의 전통은 낡은 관습이라며 단절을 시도했다. 심지어 전통적인 결혼잔치 풍속까지도 손댔다. 그 결과 성대한 결혼잔치 대신 공산당에 혼인을 서약하고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 만두와 사탕 등을 먹으며 결혼 잔치 대신 다과회를 갖는 것으로 대신했다. 얼핏 간소하고 단순화된 결혼 다과회가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공산당의 강요를 떠나 이런 풍경이 널리 퍼진 것은 1940~50년대 열악했던 대륙의 경제 상황도 작용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에 사탕은 뜬금없는 데다 낯선 신풍속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사탕이냐 아니냐의 형태만 다를 뿐 희당을 선물하는 풍속은 사실 중국에서 뿌리 깊은 전통이었다.   다만 지금의 희당처럼 아이들 군것질 같은 사탕이 아니라 과일 등을 꿀이나 설탕 원당에 절인 당과(糖果)를 하객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풍속이었다.   결혼뿐만 아니라 신년 하례나 경사로운 날, 당과로 답례 인사하는 것을 ‘밀전’이라고 했는데 꿀 밀(蜜)에 보낼 전, 잔치 열 전(餞)자를 쓴다. 달콤한 것으로 보답한다는 의미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멀게는 당송 시대, 짧게는 명나라 때 널리 퍼진 것으로 보고 있으니 그 역사가 만만치 않게 길다. 다만 옛날 밀전은 아무리 결혼잔치라고 해도 웬만큼 여유가 있는 계층이 아니면 장만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산당 집권 이후 사탕으로 대체되면서 중국 전역으로, 모든 계층으로 퍼진 것이 지금의 사탕 나누기, 희당 풍속이라고 한다.   어쨌든 사탕이 됐건 꿀에 잰 과일이 됐건 왜 달콤한 당과류로 결혼 인사를 했을까 싶은데 이유는 얼핏 단순해 보이면서도 민속적으로는 연원이 깊다.   표면적으로 결혼이라는 인생 최고의 달콤한 날의 기쁨을 하객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동시에 신혼부부가 달달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며 친척과 하객들에게 다짐하는 뜻이라고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 혼례에서는 보통 네 종류의 사탕, 4색희당(四色喜糖)을 준비했는데 투명한 얼음사탕인 방당(氷糖), 흰색의 동과 열매로 만든 동과당(冬瓜糖), 황금빛 금귤로 만든 귤당(橘糖), 용안 열매로 만든 용안당(龍眼糖)이다. 여기에는 일 년 사계절 내내 달콤하게 지내며 흰색 사탕처럼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스위트하게 백년해로하라는 기원, 황금처럼 부자가 되어 달달한 인생을 살라는 축복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사탕을 기쁨의 상징으로 삼았던 역사도 뿌리가 깊으니 그 문화적 배경을 사탕의 원형인 엿에서 찾는다. 엿은 한자로 이(飴)라고 쓴다. 이 글자를 풀어보면 먹을 식(食)변에 별 태(台)자로 이뤄져 있는데 이 글자에는 기쁘다는 뜻도 있다. 태(台)자는 또 세모처럼 생긴 사(厶)자 아래에 입 구(口)로 구성돼 있다. 태라는 글자는 입(口)을 방실거리며(厶) 기뻐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엿 이(飴) 역시 먹으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기쁜 음식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글자라고 한다. 옛날의 엿은 곡식을 달이고 달여서 그 에센스만 모은 소중한 식품이었으니 이런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 결혼식의 희당 또한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로 달콤하게 살겠다는 다짐과 축복의 뜻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결혼식에 웬 사탕일까 싶어 의아했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알고 보니 그 의미가 의외로 깊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5.19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틱톡은 금지될 것인가?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틱톡은 금지될 것인가?

    틱톡은 중국산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를 장악한 사실상 최초의 성공 사례다. 사진 셔터스톡 현재 미‧중 관계를 둘러싼 논란에서 틱톡만큼 뜨거운 감자도 찾기 어렵다. 미국에서만 무려 1억 5000만 이용자,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틱톡은 중국산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를 장악한 사실상 최초의 성공 사례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는 틱톡은 많은 국가에서 뉴스를 접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디지털 소셜 플랫폼의 미디어 역할 증대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글로벌 미디어로서의 플랫폼이 정보공간의 장악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이나 기술패권 경쟁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 프랑스, 스페인, 헝가리, 포르투갈, 스웨덴, 독일 이용자의 20% 이상이 틱톡을 뉴스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상이한 체제와 가치를 가진 진영 간에 정보공간의 장악을 둘러싼 경쟁이 점차 심화하는 추세 속에서, 틱톡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는 물론이고 영국, 캐나다, 유럽 의회의 공공 기관 디바이스에서 틱톡 사용이 금지되고 있지만 일반 이용자에 대한 틱톡의 영향력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  틱톡의 은밀한 검열과 큐레이션(curation)   틱톡을 둘러싼 논란은 이용자 데이터에 대한 중국 당국의 접근 가능성을 중심으로 촉발되었지만, 최근에는 미디어의 주요 창구로서의 틱톡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 즉, 선전(propaganda)과 허위정보(misinformation) 도구로서의 위험성이 논란의 중심으로 부각 중이다.   정보 흐름의 허브가 되는 자는 권력의 행사가 용이하다. 미디어 창구로서의 틱톡이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다면, 즉 중국이 글로벌 메시지를 통제할 수단을 보유하면 중국에 유리한 편향성도 형성될 수 있다.   틱톡이 특정 콘텐츠를 드러나게 금지하지는 않는다. 틱톡의 검열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영국 가디언스지(紙)의 폭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2019. 9. 25). 이에 따르면, 틱톡의 콘텐츠 관리자(moderator)는 천안문 사태, 티베트 독립 관련 영상을 검열하며, 각국의 정책이나 사회규범, 정치 시스템 등에 관한 비판 콘텐츠 금지 지침에 따라야 한다. 주된 방법은 직접적인 금지가 아니라 그림자 검열이다.     즉, 이용자가 바람직하지 않은 콘텐츠를 올려도 타인에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특정 정치 지도자들과 태그 된 콘텐츠가 은밀한 검열의 대상이다. 금지 지도자 리스트에는 북한의 역대 지도자들, 트럼프, 오바마, 아베, 모디, 박정희 전대통령(!)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호주 전략문제 연구서의 보고서에 따르면(2020. 9) 미국에서 인종갈등으로 경찰을 비판하는 해시태그, 러시아. 아랍 지역에서 LGBTQ+ 관련 해시태그 등이 그림자 검열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특히 신장지역에 관련된 콘텐츠 통제는 더욱 교묘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부의 중국 신장 정책 비판 콘텐츠는 허용하지만 다른 주요 소셜미디어에 비해 극히 미미하며, 대규모의 블로거와 미디어 리포터를 동원한 긍정적 콘텐츠 제공을 더하여 신장 관련 정보 흐름의 큐레이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은밀한 검열과 선전 못지않게, 이용자의 데이터 보안도 무시될 수 없는 이슈이다. 2022년 12월 저널리스트들의 틱톡 데이터를 중국과 미국의 틱톡 내부자들이 접근한 사실을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가 인정한 것이 데이터 이슈에 대하여 알려진 가장 최근의 사례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통제가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졌는가가 아니라 언제든지 정보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중국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틱톡은 이용자가 팔로우하지 않은 콘텐츠도 자연스럽게 소비하게 해주는 알고리즘 추천 기능의 역할이 크다.   중국 당국이 바이트댄스 등 주요 플랫폼 기업들의 알고리즘을 확보해 콘텐츠의 선별적 노출 및 차단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상기하자. 정보와 콘텐츠의 흐름을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관리하는지는 알고리즘 디자인 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좌우된다. 지난해에는 300명 이상의 바이트댄스, 틱톡 직원이 신화사와 같은 중국 관영 미디어에서 일했거나 현재도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브스지(紙)가 폭로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미국에서 틱톡의 부정적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오라클과 같은 미국 기업이 미국 이용자 데이터를 미국에 두고 직접 관리하는 방안, 틱톡의 미국 사업 분리‧매각 방안, 그리고 전면 금지 방안 등 세 가지가 거론된다.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는 틱톡 소유권은 유지하되 데이터는 오라클의 관리하에 미국에 둔다는 해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중국이 여전히 알고리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방안이 선택지가 될 것이지만 최종 선택은 정치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될 공산이 크다. 즉 미‧중 관계, 틱톡 이용자(특히 젊은 세대)의 반발 여부와 언론 자유 침해 논란, 강력한 경쟁자의 퇴출을 내심 반기는 미국 소셜 네트워크 기업들의 로비 등 다양한 요인이 미국에서 틱톡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이 가운데, 틱톡의 미국 사업 분리‧매각 방안은 오히려 중국 정부의 방침으로 인해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수단을 통제함으로써 메시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중국 공산당에 대단히 중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콘텐츠 추천 기술은 결국 중국 정부의 수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어 틱톡의 매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틱톡 금지 방안도 정치적 실행이 쉽지 않다. 젊은 유권자들은 틱톡의 금지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가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법률을 의회가 만들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그래서 틱톡에 대한 규제는 일종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게임과도 같다. 하지만 미‧중 양국에 모두 거북한 어정쩡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진실의 순간’이 올 수 있으며, 그 순간은 미‧중 관계가 한 계단 더 대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  정보공간을 둘러싼 전쟁   틱톡에 대한 강경한 조치의 현실화는 앞으로 정보공간을 둘러싼 경쟁과 대립이 한 차원 높은 차원에서 전개될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정보공간을 둘러싼 경쟁이란 여론 공세와 이념, 담론 침투, 분열 야기 등으로 구성되며 중국의 미디어 영향력이 증대하면 정보, 담론의 우위를 통한 막대한 레버리지 행사가 가능해진다.     정보전쟁의 심화는 반도체, 전기차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분리가 이제 데이터의 분리, 서비스의 분리, 정보 흐름의 분리로 확대되는 세계를 시사한다. 이처럼 인터넷이 분리되는 스플린터넷(splinternet)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비판, 가치관과 체제의 분리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상적인 글로벌 인터넷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은 인터넷 도입 초기부터 만리방화벽으로 대표되는, 외부와의 선택적 분리 정책을 추진해왔다. 인도는 인터넷 셧다운의 대표 주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인터넷은 서구와 사실상 단절되었다.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서비스는 러시아 토종 서비스로 대체되었고 러시아 정부의 손길이 미치면서 텔레그램에서 반체제 성향 이용자의 탈출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틱톡의 미국 퇴출이 현실화된다면 스플린터넷의 본격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스플린터넷은 소셜미디어 간의 분리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메타버스의 시대에는 게임도 소셜 미디어의 성격을 띨 것이기에, 아직 서비스 분리의 무풍지대라 할 수 있는 게임 분야도 이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다. 정보공간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될수록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서비스도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선전과 허위정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틱톡 이용이 다른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장기적으로도 스플린터넷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나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도 데이터‧서비스의 분리, 인터넷의 분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할 시점인 것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05.18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중의 공동개발은 왜 번번이 실패했나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중의 공동개발은 왜 번번이 실패했나

    비단섬.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장진호 전투를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별한 내용은 없이 역사적 사실을 언급했을 뿐인데 말이다. 윤 대통령은 “미 해병대 1사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인해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은 지난달 30일 오후 CCTV 군사 채널의 편성표에 ‘압록강을 건너다(跨过鴨緑江)’라는 제목의 기존 40부작 드라마 가운데 1, 2부를 긴급 편성했다. 재방송이다. 원래 ‘위대한 전환’의 1, 2부가 편성돼 있었는데 갑자기 바꾼 것이다.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는 2020년 12월부터 방영했고 여러 차례 재방송했다. 중국이 이같이 서두를 일이 아닌데 조급함마저 느껴진다.   압록강은 북‧중간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압록강은 오리 압(鴨)에 푸를 록(綠)자로 푸른 강물에 오리가 노닐고 있다는 뜻이다. 6.25 전쟁 때 중국인민해방군이 건너온 곳이며 북‧중 간에 국제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또한 중국이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는 중조우의수유관(30.3㎞)도 이곳을 지나간다.   압록강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섬인 위화도가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떠오르는 곳이다. 그 외에도 황금평, 비단섬(신도군) 등이 있다.   북‧중은 이 섬들을 공동으로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를 들 수 있다. 북한의 조선합영투자위원회와 중국의 상무부가 2010년 12월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의 공동개발과 공동관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착공식을 개최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공동개발 총계획 요강의 8대 원칙이다. ①총체적인 계획 ②단계별 실시 ③정부 인도 ④공동개발 ⑤기업 위주 ⑥시장 운영 ⑦우세의 상호보충 ⑧호혜 공영 등이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반영한 것이다. 8대 원칙 가운데 특히 북한이 기업 위주와 시장 운영을 수용한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는 나선경제무역지대와 마찬가지로 장성택이 2013년 숙청되면서 중단됐다.   하지만 비단섬(신도군)은 다르다. 한국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비단섬이란 이름은 김일성이 지어주었다. 개간사업으로 조성한 땅에 갈대밭을 만들어 화학섬유 원료기지로 만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비단섬에서 신의주까지는 22.5㎞ 떨어져 있으며, 중국 단둥시와는 0.5~3㎞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김정은은 2018년 6월 말 비단섬을 찾아 “수령님(김일성)의 원대한 구상과 숭고한 뜻에 따라 조국의 지도 위에 새로 생겨나고 발전해 온 고장인 신도군을 전국의 본보기 단위로 더 잘 꾸려라”라고 지시했다.   비단섬은 한때 경제특구로 추진된 적이 있었다. 북한이 1997년 4월 재미사업가에게 비단섬 개발을 위탁했다. 비단섬을 홍콩처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때마침 홍콩이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을 앞두고 있었다. 우선 면세 쇼핑센터 등 관광과 무역을 시작하려고 했다. 북한은 비단섬을 개방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비단섬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었다. 비단섬과 인접한 중국 단둥시에 의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홍콩‧대만‧일본 등을 설득해 그들의 자본금을 유치하려고 했다. 즉 중국 단둥시는 중국 사업가를, 재미사업가는 외국 사업가를 맡았다. 단둥시는 비단섬 개발이 잘 되면 가장 많은 수혜를 입기 때문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비단섬 개발은 성공하지 못했다. 외국 사업가의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다. 투자 유치에 실패한 원인은 이렇다. 첫째, 비단섬에 군사시설이 있어서 북한의 군부에서 소극적이었다. 비단섬에는 조선인민군 1524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개성공단처럼 군부대의 이전이 없으면 한계가 보였다.     북한 담당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 북한 군부를 설득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도 2018년 6월 비단섬을 방문했을 때 “인민군대의 강력한 건설역량을 동원해 인민병원과 학교를 훌륭히 건설하라”고 말했다. 이는 조선인민군의 역할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둘째, 한국 등 외국 사업가에게 투자의 매력이 적었다. 중국 단둥시가 인접한 것이 외국 사업가들에게 오히려 불편했다. 중국의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유층이 비단섬에 몰리는 것을 중국 정부가 곱게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업인에게는 지리적으로 멀었다. 개성 정도면 투자할 수 있지만, 비단섬까지 가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쨌든 북한이 1997년에 압록강 입구의 비단섬에서 개방정책을 시행해 경제특구를 건립하고자 했던 계획은 무산됐다.     북‧중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비단섬 경제특구(1997년)→신의주특별행정구(2002년)→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2011년) 등 지속해서 경제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번번이 실패했다. 비단섬은 외국 기업가의 유치 실패, 신의주특별행정구는 양빈 행정장관의 체포,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는 장성택의 처형 등으로 중단됐다.   김정은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정부와 공동개발하는 방식에 미련을 버린 것 같다. 북한이 주체로서 외자와 국내 자금의 투자를 통해 이 섬들을 개발하는 방식을 선택한 듯하다. 한데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로 외자 유치가 어려워 국내 자원만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개발 속도는 더뎌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단섬-신의주특별행정구-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의 실패는 기회라고 접근하려던 모험투자가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됐다. 움츠러들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한때는 꿈을 꾸었던 곳이었는데.     한반도에 다시 신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북‧중 관계는 모든 면에서 밀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제 협력을 통한 남‧북‧중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듯싶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중 갈등마저 깊어져 ‘압록강을 건너다’라는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다. 갈등의 파도가 몰려오는 데 어떤 대비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2023.05.16 06:00

  • [중국읽기] 시진핑 편지에 담긴 중국의 고민

    [중국읽기] 시진핑 편지에 담긴 중국의 고민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은 가을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 여름에 졸업하는 대학생들은 이미 취업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한데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 또한 대졸자들에게 문혁 당시 유행한 산으로 올라가고 시골로 내려가는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권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언론은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편지 한 통을 공개했다. 중국농업대학에 다니는 학생 대표가 먼저 편지를 보내고 이에 시진핑이 답장을 하는 형식이다.   시진핑은 편지에서 “여러분이 논밭과 농가에 깊게 들어가 일을 하면서 민생을 이해하고 학문을 연마한다니 내 마음이 매우 기쁘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여러분이 편지에서 말하길 중국의 향토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무엇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이고 어떻게 군중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또 청년은 모름지기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옳다. 신시대 중국 청년은 마땅히 이런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적었다.   중국엔 올여름 역대 최다인 1158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지며 취업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중국 CCTV 캡처] 그러자 일각에선 1968년 시작돼 10년간 1700만 지식청년을 농촌으로 보낸 상산하향 운동의 버전 2.0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 마오쩌둥은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내려가 빈농에게 배우라”고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문혁의 광풍으로 경제가 망가져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게 된 데 있었다. 지난해에도 1076만 명의 대학 졸업생을 제때 취직시킬 수 없게 되자 역시 상산하향 운동 바람이 불었다.   중국 교육부가 대졸자의 농촌 취업을 권장하는 통지문을 발표하고 중국 언론은 낙후한 서쪽 농촌으로 가자는 ‘고 웨스트(Go West)’ 프로그램을 조명하기도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번 여름엔 지난해보다도 82만 명이 많은 1158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진다. 그러나 지난 3월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19.6%에 이르는 등 일거리 찾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후유증도 있지만, 중국의 사업 환경이 나빠진 게 가장 큰 이유다.   중국엔 최근 외국기업을 타깃으로 한 스파이 색출 광풍이 불고 있다. 국가안보를 앞세워 외국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간첩혐의 조사를 벌이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외자기업이 중국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 결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 불안의 뇌관이 되고 있다.   시진핑이 중국의 5·4 청년절 즈음해 대학생의 안부를 묻는 형식으로 보낸 편지 한 통에 중국의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5.15 00:48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돼지를 돼지라 부르지 못하고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돼지를 돼지라 부르지 못하고

    사진 셔터스톡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한지 17년째 되던 해인 1384년 6월의 어느 날, 황제가 된 태조 주원장의 아침 밥상에 뜻밖의 음식이 차려졌다.   이날 수랏상의 요리는 모두 12가지로 양고기 볶음, 부추 거위 볶음, 돼지고기 채소 볶음(猪肉炒黃菜), 돼지 족발 찜(蒸猪蹄肚), 생선 지짐, 고기 화덕구이, 국수, 닭고기 탕, 콩국, 차 그리고 이름만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요리(素熇揷淸汁) 등이다.   황제 밥상을 비롯해 궁중에서 먹는 음식을 관리하는 관청인 광록시에서 남긴 『남경광록시지(南京光祿寺志)』에 나오는 기록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아침부터 고기 요리를 잔뜩 차려졌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요리도 없다. 그런데 왜 황제 식탁에 뜻밖의 음식이 올랐다는 것인가 싶지만 이유는 돼지고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야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 치운다고 할 정도로 원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고, 명 황제 주원장 역시 중국인이니 아침 밥상에 돼지고기 볶음과 돼지 족발찜이 올라온 게 이상할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기록상 황제의 식탁에 돼지고기 요리가 오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설마 이전까지는 황제가 돼지고기를 과연 먹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최초라고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명 이전의 원나라 때까지 돼지고기는 주로 농민이 먹는 고기, 평민의 음식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관리를 비롯한 지배계층에서는 별로 환영 받지 못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민족별 음식문화도 배경으로 꼽는다.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 때까지 중국은 주로 북방 유목민족이 지배했다. 북방 민족은 대부분 양고기를 선호했고 돼지고기는 혐오했으니 상류층의 식탁도 북방 음식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수당 시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5호16국 시대나 북방 거란의 요(遼), 여진의 금(金)과 달리 한족 중심의 나라였다고 하지만 수양제의 어머니 독고황후나 당 태종의 모친 태목황후는 모두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를 창업한 문제나 당을 건국한 고조 모두 선비족 밑에서 장군을 지냈던 인물들이다. 게다가 수당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유목 지역인 서역의 문화가 유행할 때였다. 북방민족에 쫓겨 남으로 밀려 난 송나라 역시 음식문화에서만큼은 북방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상류층은 양고기나 오리고기, 닭고기 중심이었고 돼지고기는 한족 피지배계층과 농민, 서민의 몫이었다. 출처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송나라 소동파가 지었다고 알려진 돼지고기 예찬시 『저육송(猪肉頌)』에서 "황주의 맛 좋은 돼지고기/값이 진흙만큼 싸다네/부자는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줄 모른다네"라고 읊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런 돼지고기가 명나라가 시작되면서 황제의 밥상에 올랐으니 의외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면 주원장은 왜 귀한 요리 다 제쳐두고 아침부터 돼지고기로 식사를 했을까?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주원장의 출신 성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 설이 있지만 주원장은 안휘성 출신이고 소작농의 아들이며 거지를 거쳐 홍건적으로 활동하다 황제가 됐다.     어려서부터 상류층 음식이 아닌 하층민의 음식, 돼지고기에 익숙했기에 황제가 된 후에도 돼지고기를 찾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태조 주원장에 이어 3대 황제 영락제도 돼지고기를 좋아했다. 이렇듯 황제가 좋아하니 돼지고기 위상이 예전과는 완전 달라졌다. 게다가 명나라에서는 돼지를 함부로 돼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황제와 같은 이름은 쓸 수도 부를 수도 없는 피휘제도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자로 돼지 돈(豚)자를 주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돼지 저(猪)자를 더 많이 쓴다. 그런데 이 글자의 중국어 발음은 주(zhu)로 명나라 황제의 성인 주(朱)와 발음이 같다.   그러니 조선시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명나라에서는 돼지를 돼지(猪)라 부르지 못했고 대신 시(豕) 나 체(彘)처럼 다른 한자 이름으로 불러야 했다.   돼지가 졸지에 귀하신 몸이 됐는데 1519년인 명 무종(武宗)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무종 황제 주후조가 지금의 강소성 의진(儀眞)이라는 곳을 시찰하다 돼지 잡는 소리를 듣고 일반 백성은 돼지를 키우지도 잡아 먹지도 말라는 명령을 내려졌다.     황제의 성과 돼지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무종이 돼지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침 춘절을 앞두고 있었기에 제사도 돼지 대신 양고기로 지내라고 하면서 소동이 일어났다. 백성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자 대신들이 상소를 올려 돼지 도축금지령은 결국 폐지됐다. 『명 무종실록(明武宗實錄)』에 나오는 기록이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돼지의 위상이 높아졌고 명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가난한 고기라는 천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인지 명나라 후반의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천하가 모두 돼지를 기른다고 적혀있다. 간단하게 알아 본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5.12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상장 등록제로 거대 기업 유인하는 중국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상장 등록제로 거대 기업 유인하는 중국

    지난 4월 10일,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장옌그룹. 사진 신화통신 중국 정부가 그동안 엄격하게 통제해 오던 ‘기업공개(IPO)’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시작했다. 지난 4월 10일 상하이 및 선전 증권거래소에 장옌그룹(江鹽集團), 하이썬제약(海森藥業), 산시에너지(陕西能源) 등 10개 기업이 등록제로 상장되었다.   중국에서 새로 시행되는 ‘주식발행등록제(股票發行登錄制)’란 상장 희망 기업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서류상 적격 판정만 받으면, 등록 절차에 따라 곧바로 상장할 수 있는 제도다.   종전 중국의 증시 상장은 엄격한 통제와 심사로 대기 기업의 숫자가 많아 심사 기간만 2~3년 걸리고, 3년간 영업이익 실적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번 조치로 서류 심사 기간을 3개월 이내로 단축하고, 영업이익 실적도 1년으로 낮추었다. 주가 변동 폭도 첫 거래일로부터 5일간은 무제한으로 풀었다.   중국의 상장 등록제는 승인제와 비교하면 심사 주체와 심사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기업의 상장융자가 더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증시 상장의 문턱을 크게 낮춘 ‘등록제’ 시행은 미∙중 경제전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과학기술 기업들의 상장 문턱을 낮추어,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결하게 함으로써,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나 홍콩에서 상장을 추진하던 거대 정보통신 기업들을 대륙 상장으로 선회하게 하는 유인책으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증권감독위원회(中國證券監督委員會)의 이후이만(易會滿) 주석은 “상장 등록제 개혁이 가져올 변화는 정보공개를 핵심으로 한 전방위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서비스 기능이 대폭 향상되어, 시장 구조와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와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사기 상장, 재무 조작 및 기타 법률 및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천화핑(陳華平) 선전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상장업무의 등록제가 수행됨에 따라 선전 메인보드는 대형 블루칩의 특성을 더욱 부각해, 사업모델 성숙, 안정적인 경영실적, 비교적 큰 규모, 우량업종 대표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제조업이 스마트 팩토리, 디지털 경제, 녹색 저탄소 등 과학기술 부문의 자립 자강을 외치는 가운데 과학기술 기업을 위주로 하는 상장등록제는 신흥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는 인플레와 저성장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대중국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포지티브 방식의 기업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연구·개발 및 신사업 투자 등에 힘쓰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 세제 지원,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울리는 법 제도의 제정과 정비가 시급하다.   한국은 최고 60%(OECD 38개국 평균 14.5%)에 달하는 상속세율 때문에, 기업가치를 낮게 유지해야만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창업자들은 기업을 자녀에게 상속하려면 회사를 팔아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기업의 실적과 무관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1400만 개미투자자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가 돌아간다.   중국은 통제경제 속에서도 기업활동에 대한 다양한 지원정책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나, 우리는 법과 제도에서 개혁적인 조치가 보이지 않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여전하다. 중국기업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같은 공산 사회주의 국가도 자본시장을 부양하고, 과학기술 기업의 자본 조달을 돕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우리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자본시장은 국가권력의 통제가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정부의 정책이 산업을 흥하게 하거나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나 정부의 관료들은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의 증권시장 자본시장을 개혁하지 않고는 선진국 금융시장으로 평가받기 힘들다.     우리 자본시장에는 IPO 제도의 개선은 물론 불공정과 불투명성과 함께 증권거래세, 투자자 보호, 공매도,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대주주와 기관우대 정책, 내부자 거래, 증권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 개혁이 필요한 분야가 산적해 있으나, 유관기관은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할 의지도 없고, 언론은 보도조차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더차이나칼럼

    2023.05.11 06:00

  • "미·중 디커플링은 재앙" 美장관 옐런이 中에 추파 던진 이유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미·중 디커플링은 재앙" 美장관 옐런이 中에 추파 던진 이유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차이나랩 한우덕 선임기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4월 20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했다. 미·중 관계에 대한 주목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간단히 보면 이렇다.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생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고, 찾을 수 있다.   최근 미·중 갈등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톤이다. 옐런은 "미국은 결코 무역보복을 통해 중국의 성장을 억제할 생각이 없다"며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국 장관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옐런은 왜 중국에 '추파'를 던지는 걸까?  지난달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필자제공  ━  중국의 '국채 덤핑(dumping)'?    국채다. 지금 중국의 미국 국채(US Treasury bonds) 보유량은 뚜렷하게 감소 중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보유액은 8488억 달러. 13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최고치였던 2013년 1월의 1조 3167억 달러 대비 35.6%가 줄었다. 지난해에만 1700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세계 제1위 미국 채권 보유국 자리는 일본에 내준지 오래다.    당연히 미국 정부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보유 국채를 지속해서 내다 판다면,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수익률)는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채 덤핑으로 미국 금융시장을 교란하려 한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돈다.   중국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우선 경제적 이유를 꼽는다. 돈은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미국 국채(10년물) 수익률은 2021년 말 1.5%에서 2022년 말 4%에 육박했다. 그만큼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갖고 있으면 손해다. '중국은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외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둘째는 정치적 이유다.   중국이 미 국채를 본격적으로 줄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무역 전쟁을 시작한 때와 겹친다. 중국이 미 국채를 무기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중국의 보유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에서 퇴출하면서 중국에서는 '달러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움직임과 맞물려 미 국채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쉽지 않은 디커플링   중국은 과연 미 국채를 무기화할 수 있을 것인가?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우선 중국이 미 국채를 보유하게 된 과정을 보자.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가입이 계기였다. 중국은 WTO 가입과 함께 '세계 공장'으로 떠올랐고, 수출이 급증하면서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다. 수출로 들어온 달러는 어쨌든 위안화로 바뀌어야 한다. 당연히 위안화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위안화 환율 하락). 이는 수출에 부담이다. 중앙은행(중국인민은행)이 위안화를 풀어 달러를 사들인 이유다.   중국인민은행에 쌓인 달러를 받아줄 만한 안전한 투자처는 미국 채권뿐이었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 국채를 샀고, 미국은 중국에서 빌려온 달러로 다시 중국 제품을 샀다. 중국은 수출로 경제를 일으켜 좋았고, 미국인들은 인플레 걱정 없이 소비를 즐길 수 있었다. 옐런 재무장관이 말한 미·중 커플링의 실체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대거 내다 판다면? 그건 공멸이다. 국채 덤핑은 가격 폭락을 야기하고, 수익률(금리)은 폭등시킨다. 미국 금리가 높으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이 오고, 글로벌 자금은 다시 미국으로 몰리는 성향을 보인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이 벌이고 있는 금리 인상 '댄스'에 세계 경제가 신음하는 이유다. 중국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고, 수출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달러를 찍어 중국 매도 분량을 사들이면 그만이다. 중국은 갖고 있던 자산만 잃게 된다.   보유 국채를 서서히 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미국 압박의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 국채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지금도 중국이 푼 국채를 일본이나 유럽이 거둬가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을 흔들어보겠다는 중국의 의도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 감소가 다소 과장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보유 축소는 약 1738억 달러. 평가 손실이 포함된 액수다. 이를 제외하면 중국이 실제 내다 판 액수는 대략 595억 달러에 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로이터 보도, 2023. 2. 23). 팔았다기보다는 만기 채권을 재연장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해석이다.    ━  '신냉전,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는 채무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지금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정부 디폴트 공방 역시 부채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국채 매각은 미국 정부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재무장관 옐런으로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국가들은 보유를 다시 늘리고 있는데 중국은 여전히 줄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와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연구기관인 이스트-웨스트센터의 데리 로이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부채 한도 증액 실패는 중국의 미 국채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국으로서는 보유물량 축소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3월 3일 보도).   미국은 안정적인 정부 채무 관리를 위해 차이나머니를 국채에 잡아둬야 한다.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에 손짓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중국도 미국 국채를 마냥 던질 수는 없다. 중국의 현재 외환보유액은 약 3조1800억 달러. 이 중 60%가 달러 표시 자산이다. 높다고는 할 수 없다. 달러 표시 자산을 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채 매각 대금이 미국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다른 형태의 채권 509억 달러를 사들였다. 국책 주택담보 금융인 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프레디 맥)는 그중 하나다. 중국이 국채를 처분한 것이 아니라 달러 자산을 보다 수익성이 높은 상품으로 재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중국으로서도 옐런 장관과 만나 상의해야 할 게 많아 보인다. 옐런의 중국 방문이 멀지 않았다.   옐런은 존스 홉킨스 대학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패권 경쟁 속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신냉전의 속성이 그렇다. 먹고 사는 문제를 두고 어느 한 진영에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5.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