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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중의 공동개발은 왜 번번이 실패했나

중앙일보

입력

비단섬.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비단섬.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장진호 전투를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별한 내용은 없이 역사적 사실을 언급했을 뿐인데 말이다. 윤 대통령은 “미 해병대 1사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인해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은 지난달 30일 오후 CCTV 군사 채널의 편성표에 ‘압록강을 건너다(跨过鴨緑江)’라는 제목의 기존 40부작 드라마 가운데 1, 2부를 긴급 편성했다. 재방송이다. 원래 ‘위대한 전환’의 1, 2부가 편성돼 있었는데 갑자기 바꾼 것이다.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는 2020년 12월부터 방영했고 여러 차례 재방송했다. 중국이 이같이 서두를 일이 아닌데 조급함마저 느껴진다.

압록강은 북‧중간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압록강은 오리 압(鴨)에 푸를 록(綠)자로 푸른 강물에 오리가 노닐고 있다는 뜻이다. 6.25 전쟁 때 중국인민해방군이 건너온 곳이며 북‧중 간에 국제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또한 중국이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는 중조우의수유관(30.3㎞)도 이곳을 지나간다.

압록강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섬인 위화도가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떠오르는 곳이다. 그 외에도 황금평, 비단섬(신도군) 등이 있다.

북‧중은 이 섬들을 공동으로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를 들 수 있다. 북한의 조선합영투자위원회와 중국의 상무부가 2010년 12월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의 공동개발과 공동관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착공식을 개최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공동개발 총계획 요강의 8대 원칙이다. ①총체적인 계획 ②단계별 실시 ③정부 인도 ④공동개발 ⑤기업 위주 ⑥시장 운영 ⑦우세의 상호보충 ⑧호혜 공영 등이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반영한 것이다. 8대 원칙 가운데 특히 북한이 기업 위주와 시장 운영을 수용한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는 나선경제무역지대와 마찬가지로 장성택이 2013년 숙청되면서 중단됐다.

하지만 비단섬(신도군)은 다르다. 한국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비단섬이란 이름은 김일성이 지어주었다. 개간사업으로 조성한 땅에 갈대밭을 만들어 화학섬유 원료기지로 만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비단섬에서 신의주까지는 22.5㎞ 떨어져 있으며, 중국 단둥시와는 0.5~3㎞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김정은은 2018년 6월 말 비단섬을 찾아 “수령님(김일성)의 원대한 구상과 숭고한 뜻에 따라 조국의 지도 위에 새로 생겨나고 발전해 온 고장인 신도군을 전국의 본보기 단위로 더 잘 꾸려라”라고 지시했다.

비단섬은 한때 경제특구로 추진된 적이 있었다. 북한이 1997년 4월 재미사업가에게 비단섬 개발을 위탁했다. 비단섬을 홍콩처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때마침 홍콩이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을 앞두고 있었다. 우선 면세 쇼핑센터 등 관광과 무역을 시작하려고 했다. 북한은 비단섬을 개방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비단섬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었다. 비단섬과 인접한 중국 단둥시에 의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홍콩‧대만‧일본 등을 설득해 그들의 자본금을 유치하려고 했다. 즉 중국 단둥시는 중국 사업가를, 재미사업가는 외국 사업가를 맡았다. 단둥시는 비단섬 개발이 잘 되면 가장 많은 수혜를 입기 때문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비단섬 개발은 성공하지 못했다. 외국 사업가의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다. 투자 유치에 실패한 원인은 이렇다. 첫째, 비단섬에 군사시설이 있어서 북한의 군부에서 소극적이었다. 비단섬에는 조선인민군 1524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개성공단처럼 군부대의 이전이 없으면 한계가 보였다.

북한 담당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 북한 군부를 설득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도 2018년 6월 비단섬을 방문했을 때 “인민군대의 강력한 건설역량을 동원해 인민병원과 학교를 훌륭히 건설하라”고 말했다. 이는 조선인민군의 역할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둘째, 한국 등 외국 사업가에게 투자의 매력이 적었다. 중국 단둥시가 인접한 것이 외국 사업가들에게 오히려 불편했다. 중국의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유층이 비단섬에 몰리는 것을 중국 정부가 곱게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업인에게는 지리적으로 멀었다. 개성 정도면 투자할 수 있지만, 비단섬까지 가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쨌든 북한이 1997년에 압록강 입구의 비단섬에서 개방정책을 시행해 경제특구를 건립하고자 했던 계획은 무산됐다.

북‧중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비단섬 경제특구(1997년)→신의주특별행정구(2002년)→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2011년) 등 지속해서 경제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번번이 실패했다. 비단섬은 외국 기업가의 유치 실패, 신의주특별행정구는 양빈 행정장관의 체포,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는 장성택의 처형 등으로 중단됐다.

김정은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정부와 공동개발하는 방식에 미련을 버린 것 같다. 북한이 주체로서 외자와 국내 자금의 투자를 통해 이 섬들을 개발하는 방식을 선택한 듯하다. 한데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로 외자 유치가 어려워 국내 자원만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개발 속도는 더뎌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단섬-신의주특별행정구-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의 실패는 기회라고 접근하려던 모험투자가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됐다. 움츠러들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한때는 꿈을 꾸었던 곳이었는데.

한반도에 다시 신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북‧중 관계는 모든 면에서 밀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제 협력을 통한 남‧북‧중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듯싶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중 갈등마저 깊어져 ‘압록강을 건너다’라는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다. 갈등의 파도가 몰려오는 데 어떤 대비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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