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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반도체 산업과 우리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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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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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은 ‘미래산업의 쌀’이라 불리며 인공지능, 5G, 로봇산업, 자율주행차, 양자컴퓨팅, 핀테크 산업 등 첨단산업의 주도권 확보 핵심 기반이다. 현대의 전쟁은 전자전(戰) 성격이 강한 만큼 반도체 산업은 ‘국가안보 자산’이다. 우리는 반도체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우리의 경제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반도체 산업의 전통적 분업체계는 무너지고, 자국 우선주의로 공급망 재편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전략적 선택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2015년 3월 발표한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 계획에 따르면, 반도체 국산화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국력을 집중했으나, 핵심부품과 기술 분야에서 2021년 기준 자급률은 16.7% 수준에 불과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강한 일본, 제조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은, 미국 중심의 가치를 공유하는 ‘칩4 동맹(Chip Alliance)’으로 전열 정비가 끝났다.

미국은 반도체 EUV 노광 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ASML사(社)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중국에는 장비를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여,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있다. 반도체의 핵심기술은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불문하고 핵심기술은 10㎚ 이하의 초미세 패터닝(Patterning) 분야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인 대만의 TSMC 및 한국 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가 오히려 벌어지는 상황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미국이나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물론 관련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 악화는 정해진 수순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 일본, 중국,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과 투자 그리고 시장 쟁탈전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은 반도체 기술과 소재·부품·장비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직접적인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한, 중국은 우리에게 견제와 비(非)협조로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 명백해 보인다. 중국이 최근 우리에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뾰쪽한 보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 추격을 위해, 우리의 핵심기술을 빼가거나, 핵심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로 유혹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미국의 내재화 전략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반도체 산업의 내재화를 통해, 안보 역량을 강화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시설 국내 이전(Reshoring) 전략’은, 우리는 물론 대만 그리고 일본에 위협적이다. 미국 중심의 가치동맹을 내세우고, 안보에 대한 지원과 압박을 내세우기 때문에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의 고민은 지난 30년간 키워온 반도체라는 핵심 산업을 미국에 뺏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는 안보적으로 한미동맹으로 맺어져 있어, 우리의 선택 여지는 넓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미국이 내걸고 있는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감세나 보조금에는 독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날카로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본의 반도체 몰락을 가져온 1986년 ‘미·일반도체 협정’이 실행된 과정을 자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세계 1위를 달리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견제와 전략에 말려 괴멸당하고 소재·장비·부품을 공급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우리가 따라가다가는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은 당시 국방의 미국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일본 관료나 기업인들의 미래를 보는 시야가 짧았던 점도, 일본이 반도체산업을 잃어버린 한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의 대응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의 최대 시장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이 생산기지를 일부 미국으로 옮길 경우, 정치 안보적으로는 안정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상당 부분 잃을 가능성이 있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원가 상승은 피할 수 없어,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중 양국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우리의 원칙을 알리고, 주도적으로 사전 협상을 통해 그들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에 대한 종합적이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4월 공표된, 국가전략 기술에 대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과 초격차 유지를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대단히 시의적절 한 대책으로 보인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원(KIST) 원장의 ‘반도체는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로,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기업에 더 많은 특혜를 주고, 기초과학과 반도체 관련 학과를 대폭 증원하여 인력을 배양하는 등, 대규모 부흥정책을 펼쳐야 우리의 산업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반도체 관련기관이나 기업 등 주최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통합 등,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서 대응해야 한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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