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읽기] “시장 아닌 기업을 사라!”

    [중국읽기] “시장 아닌 기업을 사라!”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CATL. 이젠 익숙해진 중국 회사 이름이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 업체다. 이 회사가 설립된 건 2011년이다. 2013년 2%에 불과했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5년 후인 2018년 20%, 다시 5년이 지난 지금은 36%를 넘어섰다. LG엔솔, SK온, 삼성SDI 등을 위에서 누르고 있다.   CATL의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 전자·화학 부품 회사 TDK다. CATL 설립자 쩡위췬(曾毓群)은 TDK의 홍콩 자회사 직원이었다. 공학도 출신인 그는 기술 흐름에 민감했다. 입사 10년이 지난 1999년, 핸드폰 시장에 주목한 그는 동료 둘과 함께 배터리 회사를 창업한다. 그때 만든 회사가 ATL(Amperex Technology Limited)이었다.   CATL 설립자이자 CEO인 쩡위췬(왼쪽)은 상하이교통대학 출신 공학도로 중국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사진 신화사] TDK가 자사 출신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ATL을 인수한 것은 2005년이다. 1억 달러에 지분 100%를 사들여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TDK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ATL은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쩡위췬은 배터리 시장의 무게중심이 핸드폰에서 전기자동차로 이동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 흐름을 타고 2011년 다시 만든 회사가 바로 CATL이다. TDK는 이때에도 쩡위췬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CATL의 지분 15%를 투자한 것. 회사 이름도 기존 ATL 앞에 ‘동시대’라는 뜻을 가진 ‘Contemporary’의 ‘C’를 붙여 지었다.   회사 투자설명서에는 두 회사 관계가 끝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업계는 배터리 업체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금지한 중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숨겨 놨을 뿐, TDK 지분은 여전히 CATL에 살아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TDK는 지금도 CATL로부터 기술 로열티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공동으로 배터리 합작사를 세우기도 했다.   윈윈이다. CATL은 TDK의 원천 기술을 이용하고, TDK는 CATL을 통해 중국 시장을 공략한다. 중·일 지정학 리스크도 피할 수 있다. TDK가 ATL·CATL이라는 ‘달리는 호랑이’의 등을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다. ‘작은 장사꾼이 시장을 사려 애쓸 때 큰 비즈니스맨은 기업을 산다’라는 비즈니스 격언을 실현하고 있다.   많은 우리 기업이 오늘도 중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기술로 대륙 시장을 잡겠다는 각오다. ‘시장을 사기보다는 기업을 사라!’ TDK 사례는 중국 비즈니스의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7.17 00:36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뱀튀김?… 중국인은 왜 뱀고기에 거부감이 적을까?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뱀튀김?… 중국인은 왜 뱀고기에 거부감이 적을까?

    중국인들은 뱀을 통해 조상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뱀을 양생의 보양식으로 여긴다. 셔터스톡 중국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도 많지만 동시에 친숙해지기 쉽지 않은 요리 또한 적지 않다. 물론 어느 나라나 이질적인 음식은 있기 마련이지만, 중국은 지역 간 음식문화 차이가 크기 때문인지 선뜻 젓가락 대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업무상 식사에서는 그러기도 쉽지 않다. 자칫 분위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일단 이질적인 요리, 낯선 음식문화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전 강소성의 한 도시에서 현지 공무원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고기튀김이 있어 맛있게 먹었다. 닭고기 비슷했지만 맛은 달랐다. 살짝 쫄깃하고 탄력 있는 식감이 독특했다. 어떤 고기냐고 물었더니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뱀튀김(椒鹽蛇段)이라고 했다. 뱀 고기는 처음이었기에 놀라 젓가락을 놓았다.   반면 같은 식탁에 앉았던 젊은 여성 공무원은 달랐다. 뼈까지 발라가며 맛있게 먹었다. 어쩜 뱀고기를 그렇게 맛나게 먹는지, 징그럽지 않냐고 물었는데 까칠한 대답이 돌아왔다. 뱀고기가 어디가 어때서, 몸에도 물론이고 피부미용에 얼마나 좋은데 왜 편견을 갖냐는 말과 함께 보신탕 문화가 있는 나라 사람한테 들을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 공기가 싸늘해질 뻔했다.   상당수 중국인은 뱀 식용에 특별한 거부감이 적은 것 같다. 징그럽고 무섭다며 꺼리지는 않는다. 심지어 가을바람이 불면 뱀이 살찐다(秋風起 三蛇肥)는 속담까지 있다. 뱀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니라 통통하니 살이 올라 맛있겠다며 군침을 삼키는 중국인이다. 그러니 삼사(三蛇), 즉 살모사를 비롯해 세 가지 독사로 끓인 뱀탕, 삼사갱(三蛇羹)을 광동 일대에서는 명품요리, 정력에도 좋고 중풍도 막아준다는 최고 보양식으로 꼽는다.   중국 농민들도 논에서 물뱀을 보면 그냥 놓아보내는 법이 없다고 한다. 끝까지 쫓아가서 기어코 잡아 요리한다. 뱀 단백질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니 예전 배고픈 시절의 농민들이 이런 먹거리를 놓칠 리가 없다.   이렇게 뱀고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니 광동이나 홍콩 등의 중국 남부는 물론 북경에서도 음식점 진열장에 또아리 틀고 앉은 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우리가 수족관에서 활어 고르듯 중국인은 입맛을 다시며 요리해 먹을 뱀을 선택한다.   중국은 왜 다른 문화권과 달리 뱀 식용에 대한 거부감이 적을까? 일단 단순히 식용을 넘어 요리로 발전시킨 역사부터가 뿌리 깊다. 다만 처음부터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진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 때인 기원전 2세기, 회남왕 유안이 쓴 백과사전적 문헌인 『회남자』에 "월인(越人)은 뱀을 구하면 이를 최고의 요리로 여긴다"고 했는데 반면 "중원에서는 바로 버릴 뿐 요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월인은 남방 민족을 말한다.   12세기 송나라 문헌 『평주가담』에는 광남(廣南)에서는 뱀을 먹는데 시장에서 뱀탕을 판다고 했으니 음식으로 만들어 팔았을 만큼 요리로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 때 『영남잡기』에서도 영남(嶺南) 사람들은 뱀 먹기를 즐긴다고 했는데 여기서 영남은 지금의 광동, 광서, 호남성 일대다.   앞서 언급한 몇몇 문헌에 비춰 보면 옛날 뱀 요리는 주로 화남과 화동의 남방에서 즐겨 먹었을 뿐 중원인 화북 지역에서는 썩 환영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근현대에 들어 교통이 발달하면서 북방으로까지 퍼졌는데 원래부터 뱀을 즐겨 먹었다는 남방은 물론이고 화북 지역에서는 왜 뱀 식용 문화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흥미로운 문화인류학적 해석도 있다. 중국에는 원형적으로 뱀 친화적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남방의 뱀 토템 문화가 그것인데 지금의 복건성과 그 지역 부족을 일컫는 한자인 오랑캐 민(閩)과 광동 광서를 포함한 남방 지역을 나타내는 오랑캐 만(蠻)자를 그 증거로 내세운다.   민(閩)은 문(門)안에 뱀을 의미하는 벌레 충(虫)이 자리잡고 있으니 집안에 뱀이 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만(蠻) 또한 충(虫) 위에 실 사(絲)가 있고 그 사이에 말씀 언(言)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사’는 실이 아니라 뱀을 나타낸다. 그러니 똬리 튼 뱀 둘이 말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나타난 글자다.   두 한자 모두 뱀을 조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형상화한 글자이니 이들이 뱀을 싫어할 리가 없고 오히려 조상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기에 뱀을 양생의 보양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기록상 뱀 식용 문화가 없었던 화북지역에서 뱀요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한다.   중국인이 조상으로 여기는 신농씨, 복희씨, 여와씨의 삼황 중에서 복희와 여와는 사신인수(蛇身人首), 즉 머리는 사람이지만 몸은 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인이 어머니 강이라고 말하는 황하를 다스리는 치수의 신, 공공씨 역시 머리는 사람, 몸은 뱀이다. 그러니 뱀 토템까지는 아니어도 뱀을 신성시하고 경외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뱀고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고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혐오 여부를 떠나 중국인이 왜 뱀요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7.14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불평등한 공정(公正)과 평등한 불공정(不公正)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불평등한 공정(公正)과 평등한 불공정(不公正)

    사진 셔터스톡  ━  권력 격차(권력과 나와의 거리감)    ‘권력격차가 큰 중국’과 ‘권력격차가 작은 미국’   저명한 사회학자 호프스테드는 ‘국민성이 우리들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어떤 식으로 일정하게 미치고 있는가’를 밝히는 작업을 했다. 그는 저서 〈Culture’s Consequences (〈경영문화의 국제비교〉)에서 “인류가 생존하는데 있어서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협조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생존 그 자체를 좌우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라며 방대한 연구결과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저서에서 국민문화에는 ‘권력 격차, 불확실성 회피와 수용,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및 남성과 여성 문화’의 4가지 차원(후에 다른 저서에서 ‘유교(儒敎)적 역동성, 즉 장기지향과 단기지향’이라는 5번째 차원을 추가로 소개)이 있다고 했다.     “4가지 차원 가운데 첫째는 권력의 격차이다. 이 차원에 대한 기본적인 쟁점은 인간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다…. 여러 가지 영역에서의 지위의 일관성을 중시하고 있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회도 있다. 조직의 내부에서 권력상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며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말하기를 “확실히 ‘평등은 우정을 낳는다’라는 옛 속담은 진실이며 전적으로 옳고 타당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평등이라는 것이 어떤 평등이냐 하는 점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이 점이 바로 우리들을 혼란하게 만든다”.      ━  불평등한 공정(公正)과 평등한 불공정(不公正)   : ‘불평등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공정을 추구하려는 사회’와   ‘평등을 전제했지만 (운동장이 기울어져서), 결과적으로는 불공정해진 사회’     권력 격차라는 차원은 그 사회가 ‘전면적인’ 평등을 추구하는가 여부에 따라, ‘평등문화’와 ‘불평등문화’로 갈린다. 서구의 기독교 사상은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평등문화’다. 유교적 문화전통이 있는 중국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문화적으로 우월의 차이가 없다. 문화의 차이는 전적으로 가치중립이다. 해석과 그 기준이 다를 뿐이다. 호프스테드는 “각 사회는 각기 독자적인 해결책을 강구해 왔다”고 말한다.      ━  마이클 샌들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우리 사회는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 ‘공정하다’라고 만들어진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   마이클 샌들은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The Tyranny of Merit)〉에서,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사회의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미국의 성인 세 명 중 한 명 꼴인데, 미 의회에서는 하원의원 95%와 상원의원 100%가 대졸자다…. 어느 소득수준이 높은 코네티컷 근교에서는 18%의 학생이 지체장애 진단을 받아 냈다(그리고 그것을 대학입학에 유리하게 사용했다)…. 그것은 미국 전체보다 6배나 높은 수치였다”. 교육을 통한 기회의 평등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있는 자들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좋은 환경과 갖가지 방법으로 교육을 통해 정당(?)하게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운동장은 이미 기울어질 만큼 기울어졌다. “한때 기회의 문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대학 학위는 이제 (적어도 일부에게는) 학력주의자의 특권과 능력주의 오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신분 이동의 사다리는 그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버렸다며 강하게 비난한다. 한편, 우리나라를 콕 찍어서 “비록 여러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부모의 개입이 심해지긴 했으나, 가장 심했던 곳은 불평등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 곳이었다. 가령 미국이나 한국같은 나라였다”라고 말한다.      ━  ‘능력주의’ 사회는 불행하다   (교육 등을 통한 기회의) ‘불공평’이 ‘불공정’을 정당화시킨다.   〈능력주의〉의 저자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로 포장되는 사회를 예견하고 그 불행을 지적했다. 그는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능력주의로 포장하는 불공정한 사회를 풍자하려고 했다. 능력주의가 공정하면, 그 전제 조건으로서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을 통한 불평등은, 기득권 자녀들을 오히려 ‘능력주의’라는 방패와 창으로 보호해 주게 되었다. 한편,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현재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  유가(儒家)는 예와 악(음악)을 중시했다   : 음악은, ‘신분의 차이’를 긍정하게끔 한다     신분의 차이를 인정하는 유가는 예(禮)와 악(樂)을 중시했다. 제사(禮)를 통해서 하늘과 소통하려 했고, 서로 다른 신분계층 간에 질서(禮)를 정해서 사회를 이끌어 가며, 음악을 통해 유지했다. 음악에 있어서 모든 소리가 같은 높낮이의 음이라면, 그것은 음악이 안된다. 여러 다른 높낮이의 소리가 화(和) 즉, 서로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인간 사회 역시 같은 도리라고 파악했다. 신분을 정하고, 그 신분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상호간에 (윗사람의) 책임과 (아랫사람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규범으로 삼았다.     신분이 다르면, 모든 게 달라진다. 차이는 있지만 (중국인들이 혐오하는) 차별은 아니다. 중국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차별대우란, 같은 신분·조건에서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신분이 다르고, 혹은 이런저런 ‘납득할 만한’ 상황에서 다른 처우를 받는 것은 차별대우라기보다는 ‘예외’라고 여기고 용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  ‘특수주의’와 ‘보편주의’(중국과 미국)   ‘差序格局(순서가 있는 틀. ‘우리’와 ‘타자(他者)’와의 구분)’은, 중국 사회관계의 기준틀이다.     보편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보편주의다. 중국 사회학의 원조(元祖)인 페이시아통(费孝通)은 “중국인들은 어떤 일을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 나와 무슨 관계인가를 확인한 후에 그에 맞는 잣대를 댄다”고 했다. 결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특수주의’와 유사하다. 그는 이러한 중국의 전통사상을 ‘差序格局(순서를 정한 틀)’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를 사람들과의 관계에 비유하자면,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멀리 퍼져가며 동시에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흐려진다. 즉 관계(꽌시)란 ‘오직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멀리 확장된다. 나와 멀수록 그 관계는 멀어진다.     중국인의 꽌시(關係)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다. 중심인 나와 가까운 파문은 관계가 친하고, 먼 파문은 관계가 멀다. 파문이 멈추는 지점부터는 ‘나(와 우리)’와 완전히 관계가 없는 ‘타자’가 된다.      ━  관계의 친소원근(親疏遠近)에 따라 달리 대우한다.     중국인은 파문의 끝자락이나 혹은 파문과 아예 관계없어서(즉 친분이 없어서) 받게 되는 피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자신도 ‘그런 관계(꽌시)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운은 돌고 돈다(风水轮流转), 친구가 한 명 더 많으면 방법도 하나 더 많아진다(多一个朋友 多一条路). ‘아는 이끼리의 사회’이다 보니, 비즈니스의 처음과 여러 중요한 순간에 모르는 이가 ‘업무내용만’ 가지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늘 ‘아는 이’를 찾아서 연결한다. 중요한 소통들을 거의 끝까지 ‘아는 이’와 함께 하고, 성과도 함께 나누어 준다.    반면에, 우리나라 기업은 (중간에 사람을 끼지 않고 ‘투명하게’?) 회사(혹은 제품)소개 준비를 중시한다. 설령 인맥을 찾더라도, 그를 처음 소개하는 정도의 역할자로만 여긴다. 그리고 ‘아는 이’를 통해서 일단 연결이 되고 나면, 그 줄을 놓아준 ‘아는 이’를 버린다! 중국인들은 이를 배신이라고 여기며, 심하게 분노한다. 반면 우리는 “우리도 연결할 수는 있는데, 혹시 당신이 그와 잘 알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당신이 안다고 하니 부탁한거다…. 고맙기는 한데, 소개시켜 준 거 이외에 역할이 무엇이 있었다고….”라는 식으로 과소평가하며, 쉽게 ‘소개한 이’를 배제한다.     사례: 중개인은 단순히 소개의 역할이 아니다. 튼튼하고 유일한 교량(橋梁)이다  ━  肥水不流外人田(좋은 물은 모르는 이의 밭으로 흘려주지 않는다. 좋은 것은 우리끼리 나눈다).     모 대기업이 최초로 베이징에 대형 마트를 지으려고 했다. 본래 시정부관계자와 주선해준 이가 있었다. 회사는 승인관련 담당자들을 소개받고 협상을 시작하게 되자, 중간의 주선자를 제쳤다. 이제 당사자와 직접 알게 되었으니 중간인의 역할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예상치 않은 상황이 생겼다. 순조롭던 협상이 느닷없이 삐꺽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심지어 완전히 결렬되었다.     중국측은 (알고 지내는 친구, 즉 ‘아는 이’인) 중간인이 있어서 (특수주의의 잣대를 가지고) 우호적으로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를 한국측이 협상장에서 쫓아내자, 중국측은 한국의 대기업에게 특별히 잘 해 줄 이유가 없어졌다. 좋은 물은 모르는 이의 밭으로 흘려주지 않는 법(肥水不流外人田)이다. 중간인이 배제된 것이 확실해지자, 중국측은 (의리 없는) 한국기업과의 협상을 아예 끝내 버렸다. 해당 기업은 오랜 시간을 눈독을 들인 부지를 포기해야 했다.   우물의 물을 마실 때마다 그 우물을 판 이를 기억하라(饮水思源)는, 최소한 중국에서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도와 달라고 급하게 매달리다가도 일단 일이 해결되고 나면, 일은 여기서 마무리된 걸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다음에 또 볼 생각을 안하는 건지, 어쨌든 제대로 보답을 안하려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정도 경영, 투명 경영’이라는 명분(?)을 들어, 이렇게 보답해야 하는 행위를 부정으로까지 간주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라면 그렇게 해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기업체들이 자주 범하는 큰 착오다. 하나 더, ‘보답’은 꼭 현찰은 아니다! 서로 교환할 수단이 여럿 있다. 일반적으로 재화라면, 금전 외에도 ‘선물, 지위, 감정, 서비스, 정보’ 등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은 꽌시도 교환가능한 재화의 일종이다. (이는 회사가 나서면 더 좋겠지만, 직원 개인이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중국에서 일하는 우리들이 좀 더 부지런해야 했다)     사실 인맥을 찾아 의뢰하고, 또 보상하는 사례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다만 차이는 있다. 어떤 나라는 보통의 국민도 그런 행위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인맥을 찾아 해결한다. 다른 나라는 보통의 국민은 그것을 부정이라고 생각하고 안하지만 – 그리고 남들도 안할거라고 여기지만 – 특정 위치에 있는 이들끼리는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  过河拆桥(다리를 건너고 나서는, 다리를 끊어 버린다)   “도움을 받고 나서는, 이제 모른 체한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공노(共怒)한다   过河拆桥(다리를 건너고 나서는, 끊어 버린다). 중국인들이 가장 혐오한다. 중국인들은 ‘모르는 이’와 ‘아는 이’에 대한 구별이 명확하다고 했다. 누가 부탁을 해오면, 앞에서는 “문제없다!”라고 큰 소리치지만, 내심 고려하는 게 많다. 본인이 직접 처리하는 게 아닌 이상, 자기도 다른 이를 찾아서 부탁해야 한다. (앞에서 큰 소리치는 배경에는 ‘부탁하는 사람의 체면’과 거절할 경우 ‘자신의 체면’을 고려하는 부분도 있다).     부탁은 곧 ‘인정을 빚지는 것’이다. 宁欠金钱债 不欠人情债(돈은 빚지더라도, 인정은 빚지지 않는다). 人情债难还(인정이라는 채무는 제대로 갚기 어렵다). 안될 것 같은 일도, 중국인들이 다른 이에게 부탁해서 해결해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부담없이 가볍게 부탁하고 또 부탁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반면, 우리는 중국인의 부탁을 쉽게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들에 비해 도움에 덜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 경험상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중국인들과도 좋은 친구관계를 맺는 이들이 적지 않고, 성심껏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도 우정을 중시한다.     다만, 여러 한국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큰 조직에서는, 중국인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는 이들이 적다. 그리고 더욱이 업무에 있어서는 ‘매우’ 투명하게만 그리고 냉정하게만 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적절함, 즉 융통성이 아쉽다. 한편 이런 모습은 중국인에게 일종의 우월감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많다).    ━  先做朋友 后做事 (먼저 친구가 되고, 후에 일을 한다)   중국인들은 부탁할 때, “당신이 그쪽 사람을 잘 아니, (그래서 그 사람은 당신의 체면을 고려해서, 혹은 인정상) 도와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부탁하면, “잘 해내야 내가 체면을 잃지 않는다… 의리(혹은 인정)없는 이가 되면 안된다”라며 대부분 열심히 돕는다.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 대한 차이가 분명한 ‘차서격국’의 문화 혹은 ‘특수주의’ 문화에서는, 서로의 친분 관계를 따져 보지 않고 불쑥 들락거리면 당황스럽다. 우리들이 종종 간과하는 점이다. 모든 출발점과 기준점은 ‘나와 친하냐’이다!     농담이 있다. “중국인은 인류를 둘로 나눈다. ‘아는 이(우리)’와 ‘모르는 이(타자)‘이다.   중국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차서격국은 아직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규칙이다.     이 규칙에 있어서, 예외는 ‘예외적으로’ 없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2023.07.13 06:00

  •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중국 위치로 끌어내리려 할 뿐이다” [이종혁의 싱가포르서 보는 중국]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중국 위치로 끌어내리려 할 뿐이다” [이종혁의 싱가포르서 보는 중국]

    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얼마 전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과 그에 따른 미·중 관계의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이 관심을 끈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시진핑의 발언에 다시 한번 놀람을 금치 못했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대체할 생각이 없다.” 이는 한편으로는 솔직함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진핑과 그의 중국이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진핑의 생각으로는 현재 미·중 갈등의 원인이 중국이 미국의 국제 질서에 도전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적인 면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겠지만, 현재 중국이 주변 지역에 가하는 위협을 단순히 미·중 간의 안보 딜레마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며 운이 좋게도 중국 관료들과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은 정치적·민족적·역사적으로 여러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싱가포르를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며, 각종 분야의 고위 관료들과 학자들을 싱가포르로 파견해 국제 사회와 교류하고 있다. 중국 대표단을 호스트 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는 점은 중국은 현재의 국제 상황을 백이면 백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응”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저 스스로 발전하고 있을 뿐인데 이를 두려워하는 미국이 주변국을 종용하여 중국을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 등 주변국들이 미국에 강요당해서 중국에 대항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미국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이 정말로 주변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이웃 국가들이 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겠는가? 정말로 현재 상황에서 중국이 잘못한 점은 없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중국 대표단은 “필리핀이 미국을 불러 자신의 해협에서 군사 활동을 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왜 필리핀이 부른 미국이 남중국해를 침범하고 대만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가? 이것은 확실한 주권 침해이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답변은 언뜻 말이 되는 듯하면서도, 남중국해를 자신의 주권 영토라 가정한 다음 미국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타 동남아 국가들의 의견은 중요치 않다. 확실히 시진핑의 중국에서는 더는 미국의 주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중국이 미국 영공에 스파이 풍선을 보낸 것도 이러한 행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태평양 함대가 중국 주변 해역에서 군사 활동하는 것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라는 취지의 소심한 복수인 것이다.   이러한 미·중 경쟁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동남아 지역일 것이다. 동남아는 중국과 가까우면서도 미국의 동맹국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중국의 무역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다. 따라서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남중국해를 둘러싼 아세안 국가들과의 안보 분쟁은 중국에 딜레마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미국 대표단 대담 자리에도 초청받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미국 대표는 흥미로운 질문을 했다. 그는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을 무서워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했다.    미국이 중국처럼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한다면, 그 범위는 중국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할 것이다. 그런데 왜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보다 중국을 더 두려워하는가? 이에 필자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중국이 원하는 바입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중국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교류하는 방식에서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취한다. 무역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상대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상대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외교에 접근하는 것이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전한 경험이 있는 나라로, 기본적인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을 최선의 선택이자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즉 중국의 이득을 상대국의 이득으로, 중국의 손해를 상대국의 손해로 연결함으로써 외교관계를 경제적으로 종속시켜 가는 식이다.     반면에 미국은 중국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미국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동남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자국의 동기보다는 아세안 국가들이 자신들의 필요로 미국을 소환한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 즉 민주주의, 국제정의, 인권 보호 등은 미국의 현실적인 행위에 많은 제약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미국이 많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는 하지만, 가치를 전파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외교 정책의 기조는 오히려 미국이 가진 힘에 비해 다른 나라를 현실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 부족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세안에서의 미국의 이미지는 트럼프 이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이전에는 “미국이 수호했던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인 침투” 사이에서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다각적인 고려가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두 슈퍼 파워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차원적인 담론이 주가 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힘의 논리가 더욱 중요시 여겨지고 있으며, 이러한 힘과 힘의 충돌 사이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물론 미·중 사이의 선택에 대한 압박은 많은 나라가 겪는 상황이지만, 서구 유럽과 한국, 일본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이미 미국과 정치·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과의 가치 공유를 아직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타협’과 ‘자주성의 확보’라는 두 측면에서, 미국은 그들에게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섣부르게 미국과 중국 중 선택을 강요한다면,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을 중국과 같은 선상에 놓고 고려할 것이다. 특히 이는 바로 중국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중국의 국제 전략은 중국이 미국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 역시 자신에게 미국을 대체할 만한 사상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대신 중국의 목적은 미국을 자신과 동일한 위치로 끌어내리는 데 있다. 미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국가일 뿐이다. 그런데도 꼭 미국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기본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중국과의 경제적인 협력은 필수불가결하지만,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는 아세안 국가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일수록 중국의 현실적인 침투가 더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싱가포르 전 외무장관인 조지 여(George Yeo)가 제시한 것처럼 미국이 아세안 국가들에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중국에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줄 뿐이다. 왜냐하면 이는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이득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이득보다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때를 기다린다면, 아세안 국가들이 자연스레 미국에 더 의존하고 싶어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는 중국의 국제관계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의 지나친 현실주의 접근법은 동맹을 얻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나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무역과 투자를 기반으로 이뤄진 중국과 상대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경제가 순항 중일 때는 많은 국가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중국의 경제가 위태로워질 때는 그를 기반으로 하는 외교 관계도 빠르게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아세안에서의 중국의 투자는 대부분이 중국 국유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경제적인 목표보다 중국의 전략적 가치에 더 나은 노력을 투자한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의 이러한 관계는 필연적으로 중국과 상대국의 상하관계를 강화하며 상대국의 불만을 대화나 타협이 아닌 위협과 복수로 상쇄시키는 것이다. 아세안의 대부분 나라는 중국의 이러한 일방적인 소통을 불편해하며, 이 때문에 아세안에서의 중국의 투자는 대부분 아세안 국가들의 변덕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수십 개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 아무런 문제 없이 완료된 프로젝트는 라오스-중국 철도 건설 계획 하나에 불과하다. 수년 전부터 거창한 목적으로 시작된 쿤밍-싱가포르 횡단 철도는 각국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국의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보여줬던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후퇴는 많은 동남아 지도자들과 엘리트들에게 미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공백을 중국으로 채우려고 했던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이 믿지 못할 파트너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이종혁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 

    2023.07.11 06:00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역사 속 중국의 힐링푸드 전복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역사 속 중국의 힐링푸드 전복찜

    중국인에게 전복은 자양강장식품, 즉 양생의 음식이고 힐링푸드다. 셔터스톡 최고급 중국 요리 중에는 해산물 요리가 많다. 이른바 썬옌빠오츠(蔘燕鮑翅)가 그것인데 썬(蔘)은 해삼이고 옌(燕)은 제비집, 빠오(鮑)는 말린 전복, 츠(翅)는 상어지느러미 요리다. 이중 상어지느러미 샥스핀과 바다제비집 연와탕이 산해진미의 반열에 오른 것은 청나라 이후로 역사가 짧지만 전복은 다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품 요리 명단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심지어 바다의 맛 중에서는 전복이 으뜸(海味之冠)이라는 소리를 들어왔고 명성에 걸맞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에도 북경 고급음식점에서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의 전복 스테이크 한 개 가격이 평범한 근로자 한달 월급의 2배쯤이니 중국 부자들, 전복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복이야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좋아하는 해산물이지만 중국은 특히 유별났던 것 같다. 중국인한테 전복은 자양강장식품, 즉 양생의 음식이고 힐링푸드였는데 역사 문헌 곳곳에서 전복에 품었던 환상을 찾아볼 수 있다.   전복으로 힐링을 했던 첫번째 인물은 1세기 초반,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을 세운 왕망이다. 나라를 건국해 황제를 자칭했지만 주변에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해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조만간 쫓겨날 처지였기에 근심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서』「왕망열전」에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지냈는지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음식은 아예 삼킬 수도 없었다고 나온다. 이때 왕망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전복이었다니 이후 전복은 근심걱정으로 식욕을 잃은 사람조차도 입맛을 돌게 만드는 양생의 보약으로 여기게 됐다.   전복의 가치는 3세기, 삼국시대 조조 관련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조가 죽자 당대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셋째 아들 조식이 아버지를 추모하며 『구제선주표』라는 글을 지었다. 여기서 조식은 조조가 전복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서주 자사로 있을 때 전복 200개를 구해 보내니 조조가 무척 기뻐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조식은 막강한 권력자의 아들이다. 게다가 자신이 다스렸던 서주는 당시 강소성의 중심 도시로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전복 200개를 구해 바친 사실을 부친을 추도하는 글에서까지 호들갑스럽게 언급한 것을 보면 당시 전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귀했음이 분명하다.   삼국시대 이후 약 200년이 흐른 5세기 무렵의 역사책에도 전복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남조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남사(南史)』 「청백리 열전」에 실린 송나라 장군 저언회의 이야기다. 저언회는 관직이 표기장군이면서 황제의 사위였지만 청렴결백해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지인에게서 전복 30개를 선물받았다. 이를 본 부하가 장군의 가난한 살림이 안타까워 한 마디 거들었다. 전복 30개를 팔면 삼만 냥의 거금을 마련할 수 있으니 먹지 말고 팔아서 살림에 보태라고 권했다.   그러자 저언회가 전복을 음식으로 여겨 받았을 뿐이지 팔아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선물로 받지도 않았거니와 비록 가난하더라도 어찌 받은 선물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냐며 한 마디로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는 친지와 부하를 불러 전복 30개 모두를 나누어 먹었다.   전복 수십 개만 있어도 팔자를 고칠 정도였다니까 1세기 왕망이 먹었다는 전복과 3세기 조식이 아버지 조조에게 바친 전복 200개의 가치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조 송나라의 저언회 장군 이후 또 1500년이 흐른 17세기 명나라 무렵이면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으니 전복 구하기가 옛날처럼 어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에도 전복은 여전히 쉽게 먹지 못하는 식재료였다.   지금도 중국 연회 상에는 전복요리가 자주 차려진다. 셔터스톡 『오잡조』라는 명나라 때 문헌에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산해진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실제로 요즘 세상에서 부자들이 주로 먹는 음식은 남방의 굴, 북방의 곰발바닥과 서역의 말 젖, 동방의 전복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전복은 이렇게 옛날부터 부자나 귀인들만 먹을 수 있었던 산해진미였기에 지금도 중국 연회 상에는 전복요리가 자주 차려진다.   중국인들은 특별한 날에 전복을 먹으며 부귀영화 누리기를 소원하는데 전복이 옛날 중국 은화인 원보(元寶)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전복의 중국말 발음인 바오위(鮑魚)가 풍요로워진다는 뜻의 바오위(包餘)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비슷한 발음을 놓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음(諧音)일뿐이고 말장난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 배경에는 2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전복에 대한 환상이 중국인 의식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고금을 통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온 전복이니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을까 싶은데 중국인들은 말린 전복을 그대로 쪄서 먹는 전복 찜, 칭쩡바오위(淸蒸鮑魚)를 으뜸으로 친다. 귀한 음식일수록 본연의 맛을 살려 먹는 것이 최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7.07 06:00

  •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중국은 왜 더 센 반간첩법을 도입하나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중국은 왜 더 센 반간첩법을 도입하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9기 중앙위원회를 대표해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보고하고 있다. 신화통신 7월부터 시행되는 강화된 ‘반간첩법(反间谍法)’에 미국 및 서방 국가들이 꽤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도 관련 웨비나에 참석했는데, 참석자들의 불안감이 상당했다. 국가 안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모호해 중국 당국의 자의적 해석 공간이 크기 때문에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심지어 한 다국적 회사 중역은 “이제 주재원을 중국에 파견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은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중국 정부는 이미 광범위한 간첩 단속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데, 왜 굳이 이런 법을 공식화할 필요성을 느꼈을까? 법 제정 이전에도 중국 정부는 국내외 스파이 혐의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주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중국 관영 광명일보(光明日報)의 둥위위(董鬱玉) 부편집국장이 베이징에서 외국 외교관과 점심을 먹다가 식사 자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New York Times, 2023.4.24). 마찬가지로 아스텔라스(アステラス) 제약의 일본인 임원이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중국에서 구금되어 2014년 이후 이 법에 따라 체포된 16번째 일본인이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중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로 보아 중국은 이미 이 법 없이도 유사한 조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는데, 왜 굳이 이 법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주석은 ‘법에 의한 통치’(依法治國)라는 슬로건을 자신의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 반간첩법 강화는 ‘국가 안보’의 해석을 확대하고 중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모두를 사법 처리의 범주에 포함함으로써 이러한 목적 달성을 촉진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의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 입장에선 국내 권위를 강화하고 해외에 ‘강한 중국’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목적도 있다고 사료된다.   둘째, 이 법은 중앙 정부의 지방 정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법은 지방 정부가 베이징 중앙 정부의 지시를 엄격히 따르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시진핑 주석은 근년 줄곧 데이터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앙 정부의 정책 문건과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지방 공무원들에 대한 감시와 보안을 강화했다. 이 법은 지방 정부 관리들에게 정보 보안 및 대외 유출에 대한 단속 강화가 되며, 궁극적으로는 시 주석에 대해 충성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개정된 반간첩법은 ‘국가 안보와 이익’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광범위한 활동을 제재할 수 있는 더 큰 영향력을 중국 당국에 부여한다. 구체적으로 이 법의 제6조는 공안, 국가보밀국(國家保密局), 군대 등 중국의 국가안보 기관 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조 강화’를 명시하고 있다. 중국의 변호사들에 따르면 이러한 ‘다기관 협력’은 부처 간 정보 교환을 원활히 하고, 단속 권한과 수사 방법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법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측면은 제55조에서 찾을 수 있는 자수와 포상 조항이다. 스파이 활동과 연루된 사람이 자수하고 상당한 공로를 세우면 처벌이 완화되거나 오히려 포상을 받을 수도 있다. 서방의 중국법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수 유도 조항에 관해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개정안이 대간첩 업무에서 국가 보안 기관의 조사 및 처분 권한을 크게 강화했다는 점이다. 이 법은 스파이 활동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개인 소지품, 문서, 컴퓨터 데이터 및 자료를 검색하고 접근하는 것을 포함하여 개인에 대한 조사를 허용한다. 학자들도 중국 입국 시 노트북 컴퓨터 자료를 통째로 검색받을 수 있다. 특파원들의 중국 내 탈북자 취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은 또한 행정 처분을 확대하여 간첩 활동과 관련된 사소한 위반에도 벌금을 부과한다. 또한 견책, 비난, 임시 구금 또는 허가 취소와 같은 처벌을 포함하여 스파이 활동에 연루된 사람들의 법적 책임을 높였다. 이는 경고 수준의 범죄를 명문화하여 억지력을 강화한다.   이 법안이 데이터 보안을 높이는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휘하에서 데이터는 국가 주권의 한 측면으로 간주하여왔다. 매월 네트워크 보안 회의가 개최되며, 빅데이터는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경쟁에서 공급망 모니터링은 매우 중요해졌다. 예를 들어 중국 당국은 미국의 실사 회사인 민츠(Mintz) 그룹의 사무실을 급습하여 특정 중국 공급망 정보를 빼내려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 정부는 공급망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미국과의 경제 및 기술적 경쟁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반간첩법은 정부 공무원뿐만 아니라 모든 중국 시민과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중국 유학생과 중국 거주자들은 중국인 친구나 동료와의 교류에 주저하게 되었다. 외국 유학생의 배경과 신원 조사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이 중국 국유 기업 경쟁사에 대한 정보 수집을 시도할 경우 스파이 혐의로 기소될 위험이 있다. 반간첩법 개정으로 이러한 우려가 더욱 증폭되어 중국 공무원과 국유 기업 직원들은 외국 기업과의 이메일 등 소통에 더 큰 주의를 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대외 개방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지만, 이 법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해외로부터의 위협을 차단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반적으로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중국의 국가 정보 활동은 제도 개혁, 기관 통합, 안보 개념의 확장과 적용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대내외 문제에 통합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법은 중국 경제와 관련된 민감 사항인 청년 실업률, 국유기업 부채 비율 등을 비공개로 처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투명성 증가로 인해 국제 연기금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고, 중국 기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중국 주식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반간첩법은 ‘터프’하고 강한 중국 이미지를 세계에 전달하려는 시도를 반영하지만, 이는 오히려 체제 위협에 대한 불안의 반영일 수도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서방의 중국 사회의 전반적인 ‘안보화(securitization)’ 우려를 고조시킬 수 있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2023.07.06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남북이 만날 항저우 아시안게임 어떻게 이용할 건가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남북이 만날 항저우 아시안게임 어떻게 이용할 건가

    사진 셔터스톡 한‧중 관계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해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더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잘만 구슬리면 한국이 미국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에 올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이런 동상이몽을 꿈꾸다가 30년이 지나면서 비로소 서로 확인하는 것 같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해지면서 한국은 미국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중국은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미국으로 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회담이 결렬되면서 그 우려를 해소됐다. 오히려 북한이 중국에 더 안기는 결과를 낳았다.   북한의 이런 선택은 최근 평양에서 북‧중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데서 알 수 있다.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는 지난 4월 부임한 이후 2개월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제외하고 주요 인사를 거의 만났다. 김덕훈 내각총리‧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김성남 당 국제부장‧최선희 외무상 등이다.     특히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 5월 8일 대동강변에 위치한 고방산 초대소에 왕야쥔 대사를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고방산 초대소는 2018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이 묵을 정도로 외무성이 운영하는 고급 휴양시설이다. 북한이 주북한 중국대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특이한 장면이 하나 있다.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6월 6일 주북한 중국대사관을 찾았다. 박명호 부상은 주중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중국통’이며 지금은 아시아 담당 부상이다. ‘중국통’을 아시아 담당 부상에 임명한 것은 북한이 대중국 외교룰 중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명호 부상과 왕야쥔 대사는 이미 지난 5월 8일 고방산 초대소에서 만났다. 최선희 외무상이 초청한 자리에서다. 그런데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만난 것이다. 박명호 부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3년 6월 2일 후계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대사관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도 아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간 것이란 설명이 조금 석연찮다. 그러면서 박 부상은 “양당‧양국 최고지도자의 숭고한 의지에 따라 북‧중 관계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새롭고 더 큰 발전을 이루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 외에 다른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달 사이에 특별한 내용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난 것은 아무래도 북‧중 밀착을 과시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만큼 북한이 중국에 정성을 들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북‧중 정상회담을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70번째 생일을 맞아 축전을 보냈다. 축전에는 “시진핑 동지의 정력적인 영도로 중국 공산당이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건설 목표가 빛나게 달성됐다”고 극찬했다. 아울러 “중국의 종합적 국력과 국제적 지위는 비상히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축전은 의례적인 내용이 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다만 한가지 눈에 띄는 내용은 ‘중국의 국제적 지위는 비상히 강화됐다’는 대목이다. 시진핑 주석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그는 중국이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국력이 커졌다는 것에 자부심이 크다고 알려졌다.   오는 9월 23일부터 중국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북한 선수들도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 국제 스포츠 대회는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종종 활용되기도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의 활발한 활동을 보면 북‧중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 게다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어 양국은 접촉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3기가 시작된 이후 아직 양국 지도자급의 교류는 없다. 그동안 코로나-19 영향으로 인적 교류는 없었다. 왕야쥔 대사가 처음이다. 북한의 경제 사정을 보면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최근 북한 언론에 드러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을 보면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얼굴이 붓고 다크서클이 있는 것으로 보면 불면증과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은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부진한 경제 실적이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3년 가까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을 요구했다.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겠지만, 자력갱생만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식량‧경공업 분야는 외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북‧중 국경 봉쇄를 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마저 아직 미적거리고 있다. 소문은 6월 중순쯤 3년 가까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중국‧러시아 거주 북한 주민들이 귀국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뜬소문이 돼 버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 국경을 해제하지 못하는 원인을 알 수 없다. 코로나19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해외 북한 노동자들이 귀국하면 외화벌이에 차질이 생겨서인지. 온갖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김정은 위원장을 괴롭힐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고민 일부를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시진핑 국가주석이다. 그래서 북한에 북‧중 정상회담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아쉬움만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는다. 중국의 조건이 다양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럼 한국을 생각해보자. 북한과 접촉할 생각이 있다면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좋은 기회다. 지금부터라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예 그럴 필요가 없다면 그냥 넋 놓고 있으면 된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 문제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2023.07.04 06:00

  • [중국읽기] 피크 차이나? 중국은 아직 안 끝났다

    [중국읽기] 피크 차이나? 중국은 아직 안 끝났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그동안 중국 경제의 ‘폭망’을 점친 전문가는 많았다. ‘중국의 몰락’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 등 외국책이 번역돼 소개되기도 했다. 모두 어긋났다. 중국 경제는 여러 곡절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해 세계 2위 반열에 올랐다.   이번엔 ‘피크 차이나(Peak China)’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월 보도한 후 국내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그러면 그렇지, 중국 시대는 이제 끝났어~’라는 유튜버의 말에 클릭이 쏟아진다. 이번에는 맞을까.   인구감소도 중국의 성장 한계를 예견하는 ‘피크 차이나’ 주장의 한 요인이다. 광둥성 광저우의 거리. 김상선 기자 충분히 납득이 가는 논리다. 투자에 의존한 중국의 국가 주도형 발전은 분명 한계에 직면했다. 급증한 지방 정부 부채, 부동산 과잉 투자, 인터넷 규제 강화, 여기에 인구감소까지 겹쳐 성장 동력은 소실되고 있다. ‘공동부유’라는 정치 논리에 밀려 민간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있다. 20%를 웃도는 청년실업은 그 대표적인 징후로 꼽힌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든다. ‘시진핑(習近平)은 왜 안 하지?’라는 것이다. 예전 경우라면 중국 정부는 경제를 성장세로 되돌리기 위해 다시 돈을 풀고, 부동산 규제를 해제해야 했다. 인터넷 플랫폼 업체에 대한 족쇄도 풀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 한다. 오히려 ‘인위적인 부양은 없다’라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체질 강화를 말한다. 성장이 곧 왜곡을 잉태하는 악순환을 끊어 지속가능한 성장 구조를 짜겠다는 취지다. 그들은 이를 ‘고품질 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부유 논리에서 후퇴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성장의 한계인지, 아니면 고품질 발전을 위한 과정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동안의 ‘왜곡된 성장’ 속에서도 분명 ‘혁신’은 존재했다는 점이다. 2010년 들어 본격화한 인터넷 혁명은 지금 AI(인공지능), 전기 자동차, 신소재 등 차세대 산업으로 확장 중이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했거나, 위협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꿈틀댄다. 신소재, 첨단 장비제조, 신에너지 자동차 등을 ‘8대 전략 신흥 산업’으로 지정하고 국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 과학기술 자원을 총동원하는 ‘신형 거국체제’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도 그 대상 중 하나다.   ‘중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는 단편적 시각으로는 이 같은 움직임을 간파할 수 없다. 그 흐름을 놓치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피크 차이나’ 논리에 매몰되지 말아야 할 이유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7.03 00:33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용고기 먹어 본 적 있나요? 뜨는 보양식 비룡탕(飛龍湯)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용고기 먹어 본 적 있나요? 뜨는 보양식 비룡탕(飛龍湯)

    사진 바이두백과 “용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나요?”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겠고 대답 또한 용의 눈물은 본 적 있어도 용고기 먹어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세상에 용이 어디 있다고 용의 고기를 찾냐고 하겠지만 중국에는 있다. 그것도 요즘 뜨고 있다는 보양식, 이른바 비룡탕(飛龍湯)이다. 이름으로 봐서는 승천하려고 날아오르는 용을 붙잡아 몸보신 하겠다며 탕으로 끓여 낸 요리처럼 보인다.   비룡탕이 북경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 대략 20년쯤 전인 것 같다. 북경 교외에 새롭고 특별한 보양식 전문점이 생겼다기에 찾아갔는데 승용차를 타고 온 손님들로 음식점이 붐볐다. 중국, 그것도 수도인 북경에 아직 자가용이 제대로 보급되기 전이다. 돈 좀 번 사람들이 몸보신 하겠다며 몰려왔을 것이다.   이랬던 비룡탕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중국의 10대 명물 요리로 꼽힌다. 북경 오리구이, 사천 마파두부, 항주 서호초어(西湖 醋魚), 동파육 등과 함께다. 예로 든 다른 요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비룡탕도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사람이 즐겨 찾는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된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용으로 끓였다는 비룡탕, 설마 진짜 용고기로 요리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체 어떤 요리이기에 이름이 그렇게 거창할까 궁금하지만 실은 새고기로 끓인 전골의 일종이다.   개암나무 진(榛)자를 쓰는 진조(榛鳥)라는 새의 고기로 요즘은 우리한테 헤이즐넛으로 더 많이 알려진 개암을 먹고 사는 새라고 한다. 혹은 개암나무 숲에서 살기에 진조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한국에는 없는 조류로 작은 비둘기를 닮았다고도 하고 혹은 큰 참새 같기도 한데 우리말로는 흔히 들꿩이라고 번역한다. 헤이즐넛이 주 먹이이기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이 새를 보양식이라며 좋아한다. 맛은 주관적이어서 함부로 평가할 것이 아니지만 꿩고기, 또는 비둘기고기 비슷한 느낌이다.   진조라는 이 새의 별명이 비룡(飛龍)이다. 때문에 그저 들꿩 전골일 뿐이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비룡탕이 된 것인데 역시 중국식 호들갑이 너무 심하다 싶기도 하지만 사실 진조라는 새, 알고 보면 보통 새가 아니다.   일단 서식지가 특별하다. 흥안령(興安嶺) 원시림에서만 사는 새라고 한다. 흑룡강성 하얼빈 훨씬 북쪽의 산림지대로 몽골, 러시아와 맞닿은 오지 중의 오지다. 게다가 야생 진조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중국의 일급 국가보호동물로 지정돼 있다.   중국 사람들, 비룡탕 먹을 때면 진조가 이토록 엄청난 새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먹던데 사실 음식점 비룡탕의 진조는 인공 부화한 새라고 한다.   어쨌거나 오지인 흥안령 원시림에만 산다는 진조로 끓인 비룡탕이 사전적 의미에서 산해진미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산해진미를 흔히 산과 바다에서 나는 맛있고 특별한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빼먹기 쉬운 중요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쓴 산진해착(山珍海錯)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산해진미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 그래서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진귀한 음식이어야만 한다. 바꿔 말해 맛있고 비싸도 누구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면 산해진미가 될 수 없으니 진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전부터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天上龍肉 地上驢肉)를 최고의 진품 요리로 꼽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용고기는 물론 진조의 고기를 가리킨다.   그런데 아무리 원시림에서 사는 희귀조류라고는 하지만 작은 새인 진조를 보고 왜 거창하게 하늘을 나는 용이라고 불렀을까?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진조는 원래 중국에서 신선들이 모여 산다는 전설의 땅, 곤륜산에 사는 머리 여섯 달린 용이었다.   하늘의 옥황상제 격인 곤륜산의 서왕모를 지키는 호위 무사였지만 어느 날 서왕모가 무슨 식욕이 동했는지 저 용을 잡아먹으면 몸보신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순간 서왕모의 마음을 읽은 용이 두려워 흥안령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곧 뒤쫓아온 추격 군사에 잡혔는데 직전에 머리 하나를 떼어 눈 속에 파묻고는 끌려가 죽었다. 동시에 눈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니 현지인들이 용이 부활한 새라고 해서 비룡이라고 불렀다.   터무니없지만 재미 삼아 소개한 전설인데 실은 흥안령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 오로촌(顎論春)부족이 현지어로 이 새를 부르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 비룡, 중국어로 페이롱이 됐다는 어원설이 있다.   진조는 용이 부활한 새인 데다 희소성 있는 산해진미 식재료였기에 청나라 건륭황제 때부터 황실에 공물로 보냈고 이후 만주족 출신의 황실에서만 먹는 특별 보양식이 됐다고 한다.   이런 입소문에 더해 현대에는 흥안령 원시림에서만 산다는 희귀 조류, 그래서 인공사육이라도 어쨌든 국가 보호 동물로 금단의 고기라는 수식어가 덧씌워지면서 주머니 사정 핀 중국 식도락가의 입맛을 자극했던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30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심각한 위협이 될 중국의 양자 굴기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심각한 위협이 될 중국의 양자 굴기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현재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핵심기술의 원천으로, 그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발견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역학 원리를 증명한 3명의 과학자가 수상했다. 이들은 양자의 얽힌 상태를 사용해 두 개의 입자가 분리돼 있어도 단일 단위처럼 행동하는 ‘양자 얽힘’ (quantum entanglement)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20여 년 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91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가 에너지는 양자 단위라는 양자역학 개념을 발견한 이래, 이것이 바탕이 되어 원자력,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등 현대 정보기술(IT)을 탄생시키며 인간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양자역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양자통신, 양자컴퓨팅, 양자 정밀측정, 양자 계산 등 양자역학을 혁신적으로 응용하는 분야가 속속 등장하면서 제2의 양자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정보화 시대의 원자 폭탄’이라고 불린다. 고전 컴퓨터로는 꿈도 꾸기 어려운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고전 물리학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이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양자역학은 양자 중첩, 양자 얽힘, 양자 복제 불가 등 신비롭고 매혹적인 특성으로 인해 그 기술의 응용범위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다. 반면 전통 물리학의 이론에 익숙한 학자나 기술자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현재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핵심기술의 원천으로, 그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이 전통적으로 양자물리학의 이론과 기술 및 연구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이 정부의 기술 확보 전략과 대규모 투자 덕분에 강력한 경쟁국으로 부상한 상태다.    ━  중국의 양자역학   미·중 패권 전쟁이 격렬해지는 현실에서 기술은 안보와 군사 차원의 전략적 과제로 부상했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되는 가운데 첨단 기술은 미국에 의해 중국으로의 유입이 원천 차단당하고 있다.   양자역학이 미래 모든 기술에 적용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평가받는 가운데 세계 양자 기술의 큰 흐름에서 중국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가?   중국은 패권전쟁의 핵심은 기술임을 인식하고 핵심 기술의 자력갱생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 정부는 양자 과학을 미래 기술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이 분야의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중국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 바탕 위에 실력을 갖춘 해외 전문가들을 다양한 유인책으로 초빙하고 있다.   중국이 중시하고 있는 양자역학 3대 영역은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 정밀 측량 분야다. 오래전부터 양자 기술을 연구해 온 중국은 광양자와 초전도 혁신 기술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양자 우월성’을 달성하여 전 세계 과학 기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1~2위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IBM사는 세계 최대 양자컴퓨팅 프로세서 개발에 성공했고, 일본은 양자 비밀통신 연구에 145억 엔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양자컴퓨팅 시제품 '9장 2호’(九章二號)를 내놓고 중국 고대 유명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조충지(祖沖之) 선생의 이름을 딴 ‘조충지2호’(祖沖之二號)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제품 제작과 실험에 성공했다. 양자컴퓨팅 시제품 '9장 2호’(九章二號). 사진 바이두바이커   중국은 2016년 8월 선현 묵자(墨子)의 이름을 딴 묵자호(墨子號) 양자 위성을 발사하고 세계 최초로 양자 통신망을 구축하는 등 세계 기록을 세우며 양자통신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양자정보의 연구논문 발표량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특히, 양자통신, 양자컴퓨팅, 양자 정밀측정 등 3개 분야의 논문 발표량은 각각 1위, 2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양자역학은 중국과학기술대, 저장대, 칭화대 등 일류대학은 물론, 텐센트, 화웨이, 알리바바 등 대기업에서도 투자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최근 바이두와 베이징 양자 정보 과학 연구소의 주도로 ‘양자 컴퓨팅산업 지식재산권 연맹’(量子計算産業知識産權聯盟)을 공식적으로 설립하여 초전도, 양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양자 애플리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양자 기술을 선도하고 산업표준화를 추진하며, 혁신적인 인재 육성을 촉진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중국의 양자 정밀측정 분야는 응용과 산업화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자 측정의 정확도는 원자량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밀기기 업계에 혁명적인 기술적 진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양자 정밀 측정은 초전도 재료의 표면 및 구조적 특성, 전임상 연구의 극미량 성분 분석, 생명과학의 종양 세포 이미지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의료분야는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분위기로 의료특구에서는, 의사의 책임하에 환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임상실험도 가능하므로, 양자역학은 양자 의료산업에 혁신적인 변화와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양자역학 같은 최신 기술을 의료에 적용하려면 비합리적인 법과 제도적 장벽은 물론 까다로운 의료행정 및 의료인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창의성과 도전 의식이 결여된 이들로 말미암아 중국과의 경쟁에서조차 패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의 치명적 위험이다.    ━  중국 견제    중국의 ‘양자컴퓨터’ 등 관련 산업의 기술적 진전과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일본은 상호 기술의 공유와 공동 연구에 나서고 있고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도 IBM 양자컴퓨터 개발 현장을 방문하여 격려하며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우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 및 기업들이 대비책을 세우고, 양자통신 및 양자 센서 등의 분야에서 상용화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이나, 중국이 국가적인 전략 차원에서의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우리는 중국과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쟁하는 관계로, 미래산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평가받는 양자역학에서 중국에 뒤질 경우, 미래에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양자 굴기’를 우리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차이나랩

    2023.06.29 06:00

  • “미·중 반도체 양분화는 이미 시작됐다” 『반도체 전쟁(CHIP WAR)』 저자 크리스 밀러 인터뷰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중 반도체 양분화는 이미 시작됐다” 『반도체 전쟁(CHIP WAR)』 저자 크리스 밀러 인터뷰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중 갈등이 소위 ‘반도체 전쟁’으로 수렴되기도 하는 이유는 현대 군사력도 결국은 반도체에서 승패가 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현대 군사 전에서 중요시되는 ‘정밀 조준 폭격(precision strike)’에 쓰인다. 특히 AI 반도체는 SF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자율살상 무기(LAWS, 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 생산에도 사용된다. 현대전은 말 그대로 반도체 전쟁인 셈이다.    이러한 반도체의 중요성을 재조명하여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학자가 바로 터프츠대학의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다. 한국에도 번역된『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이기도 한 그를 인터뷰했다.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 사진 필자제공 당신의 책을 요약해 달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물질 문명시대를 논할 때, 반도체를 중심에 놓지 않으면 현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교역, 국제 정치의 힘의 균형,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테크 기업의 괄목상대할 부상, 그리고 챗 GPT 같은 인공지능, 이 모든 것이 결국 반도체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를 누비며 강연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대만 위기와 관련된 TSMC 문제다.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인 반도체 프로세서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둘째는 미·중 간의 경쟁에서 첨단 기술이 차지하는 문제다. 셋째는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과 미국의 파트너인 일본, 한국, 대만, 유럽에 있는 글로벌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반도체 생태계 재편과 관련한 협의 문제다.   강연하면서 듣게 되는 반도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람들은 ‘반도체’라고 하면 핸드폰, 노트북 컴퓨터 또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연상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강대국이 된 국가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군사 분야와 정보 분야에서 반도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는 결국 군사력과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경제 영역이자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미·중 반도체 ‘양분화’ 이미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  미·중 갈등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위상은? 미·중 양국 모두 반도체를 주요 경쟁 영역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미국에 비해 적어도 5년 정도의 격차를 보이며, 이는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 문제와도 연계되어 있다.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 역시 ‘해외 의존’이 아닌 ‘자체 보유’를 목표하고 있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중국의 반도체 부상을 억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조치와, 이에 맞서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가하는 중국 정부의 압력이 결국 반도체 산업을 ‘중국과 나머지 세계’ 두 갈래로 양분화시킬 것이란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세계의 반도체 산업이 미·중 사이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면, 미·중 양쪽 모두가 큰 시장인 반도체 회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지난 5년 동안 반도체 회사들이 정치와 관련된 규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현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회사들도 지정학적 상황이 주는 영향을 고려해 어디에 공장을 세울지 결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전격적인 미·중 ‘데탕트’설도 나오고 있다. 미·중 갈등은 언제 끝나나? 나는 우리가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의 갈등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본다. 혹자는 이러한 갈등이 과장되었고, 대만해협 충돌 같은 갈등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나, 나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위험에 대해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설마’하다가 우크라이나처럼 ‘현실’ 될 수 있어  그렇게 심각한가? 심각하다. 중국의 대만 침공과 관련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양안(兩岸) 위기가 지난 10년간 보지 못한 최고조라는 것이다. 전쟁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국가들도 경제적 영향의 여파를 받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시에 그 충격을 직접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다들 ‘설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마’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알게 됐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된다면, 세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30배 정도가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의 종국은 무엇인가? 무엇이 ‘엔드 게임’인가? 내가 첨단 기술 영역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을지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the most decisive factor)’는 군사력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20년 전만 해도 아태지역에서 누가 군사적 맹주인가는 확실했다. 그 어느 국가도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고, 그 결과는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중국의 전략가들에게 ‘혹시 이 시기가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기에 승산이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 억제에 추가 조치 취할 것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억제하기 위해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갈 것인가? 미국은 더 많은 반도체 장비, 기계, 재료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추가적인 조치를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취할 것이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등에서 여전히 중국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중국을 중심으로 하던 공급망을 아세안 등 타 지역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공급망 재편 과정은 복잡하고, 비용 발생도 있을 것이다. 과정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증거는 미국, 일본, 한국 기업의 투자 결정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이 논의에서 흥미로운 사례는 삼성전자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먼저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 조립 공장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도대체 미국은 한국이 어느 선까지 함께 대중 전선을 펼치기를 기대하는가? 공급망의 경우 미·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 아닌가? 부분적으로 옳다. 전망은 조금 더 복잡하다. 최첨단 기술 제품 또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상당히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의류, 가구, 완구 등과 같이 민감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이러한 양자 간 선택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디커플링이 필요하지 않은 제품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이러한 사항을 분류하고 결정하는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2023.06.27 06:00

  • [중국읽기] 한국 브랜드 실종 사건

    [중국읽기] 한국 브랜드 실종 사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 시장에 한국 브랜드가 없다. 자동차, 핸드폰, TV, 심지어 화장품도 이젠 찾기 힘들다. 거의 실종 수준이다. ‘어쩌다 이리됐지?’ 중견 화장품 회사의 K사장은 사내 중국 팀장을 불러 시장 상황을 묻는다. 팀장의 답은 이랬다.   “중국 젊은 소비자들의 ‘애국 소비’ 성향으로 외국 브랜드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마땅한 타개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맞는 얘기인가? 핑계는 아닌가?   글로벌 브랜드 나이키가 중국에서 애국 소비의 늪에 빠졌다. 베이징 중심부에 걸린 나이키 광고판. [사진 셔터스톡] 맞다. 수퍼급 글로벌 브랜드라도 ‘국뽕(애국주의)’의 공격 타깃이 되면 하루아침에 중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 애국 소비는 더 기승을 부린다.   스포츠업계의 최고 브랜드인 나이키도 당하는 판이다. 이 회사는 2021년 초 중국의 위구르족 강제 노동을 이유로 신장(新疆)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타도’ 대상이 됐다. 결국 지난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중국 브랜드 안타(ANTA)에 내줘야 했다.   핑계도 된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은 외국 브랜드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 퀄리티와 가격이 더 중요할 뿐이다”라고 분석한다. 애국 소비보다 중국 기업의 제품 혁신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 유튜버조차 ‘안타의 농구화 품질이 나이키에 못지않다’고 인정한다.   억울하다. 스마트폰 갤럭시는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22%로 1위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대차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내 탓이오!’, 자책만 하라고?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게 국가의 개입이다. 나이키가 그랬다. 이 회사는 사건 후 중국 관영 언론의 불매 운동 논조에 시달렸다.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나이키는 중국에서 한 푼도 벌지 못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갤럭시와 현대차가 사드 사태 와중에 급격히 시장을 잃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젊은이들의 애국 소비에는 이같이 중국 기업의 품질 혁신과 당국의 공공연한 개입이 도사리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 정부가 뭉쳐 거슬리는 외국 브랜드를 몰아내는 꼴이다. 한국 제품 실종 사건의 배경이기도 하다. 화장품 회사 중국 팀장이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중국 제품을 압도할 수 있도록 품질 혁신을 이루고, 안정적인 한-중 관계 관리로 외풍을 막아야 한다. 전자는 기업의 몫이요, 후자는 정부가 할 일이다. 그게 안 된다면 ‘한국 브랜드 실종’은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26 00:46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여름 가정식 으깬 오이무침(拍黃瓜) 속 사랑과 전쟁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여름 가정식 으깬 오이무침(拍黃瓜) 속 사랑과 전쟁

    사진 셔터스톡 날씨가 더워지면 중국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오이로 만든 요리들이다. 간단하기로는 으깬 오이를 마늘 양념 등으로 버무린 오이무침 파이황과(拍黄瓜)와 사천식 오이 마라황과(麻辢黃瓜) 등의 각종 오이무침 냉채(拌黄瓜冷菜)를 비롯해 차갑고 따뜻한 오이 요리가 많다.   중국 여름 음식에는 알게 모르게 오이가 많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음력 7월 7일 칠석이면 중국인들은 춘절과 마찬가지로 만두를 빚어 먹었다. 송나라 문헌 『동경몽화록』이나 청나라 때의 『청가록』 등에 보이니 뿌리가 꽤 깊었던 풍속이다. 지금도 여름에는 오이피망 만두(黄瓜青椒馅包子)를 먹는다.     칠석 만두는 소로 오이(黃瓜), 동과(冬瓜), 우리 여주와 비슷한 고과(苦瓜) 등의 박과 채소를 넣는데 이유가 있다.   한방에서는 오이를 비롯한 박과 채소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열을 내려 더위를 식혀주고 갈증을 풀어준다고 설명한다.     하기야 중국만이 아니다. 오이는 세계 공통의 여름 채소여서 우리나라만 해도 오이냉국에 오이지는 물론 콩국수에 얹는 채친 오이 고명까지 여름 음식에 오이는 빠지지 않는다. 서양에서도 요구르트에 채친 오이를 넣은 차지키는 지중해 여러 나라의 여름철 소스이고 영국도 여름철이면 티타임에 오이 샌드위치를 먹는다.     오이는 이렇게 여름이면 어디서나 즐겨 먹는 채소이지만 그럼에도 중국 오이와 그 역사, 그리고 오이를 대하는 중국인의 의식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먼저 오이라는 중국어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오이는 중국어로 황과(黃瓜)지만 원래 이름은 호과(胡瓜)였다. 턱수염이 텁수룩한 서역 오랑캐를 뜻하는 호(胡)라는 한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호과는 서역에서 전해진 박과 식물이라는 뜻이다. 명나라 문헌 『본초강목』에는 한무제 때 한나라를 겁박하는 흉노를 협공으로 물리치기 위해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장건이 돌아올 때 가져왔기에 호과라 부른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기원전 2세기 무렵 중원에 전해졌다.     오이 이름이 호과에서 황과로 바뀐 것은 500~600년이 지나서다. 당나라 문헌 『본초습유』에 이유가 나오는데 4세기 말, 5호16국 시대의 후조(後趙) 황제 석륵은 흉노의 일족인 갈족 출신이었다.     자신의 뿌리 때문인지 서북방 민족을 얕잡아 부르는 호(胡)자를 싫어해 아예 쓰지를 못하게 했다. 어느날 연회에 오이가 쟁반에 담겨 나왔다. 석륵이 주변 재상에게 이름을 묻자 감히 호과라고 대답할 수 없었던 재상이 "금잔에는 감로주가 가득찼고 옥쟁반에는 황금채소가 놓여 있네(金樽甘露 玉盤黃瓜)"라고 시를 읊어 금기어를 입에 올려야 하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또 다른 기록에는 7세기 초 수양제 때문에 황과가 됐다고 한다. 수양제의 어머니 독고씨는 선비족이다. 그러니 수양제도 혈통의 반은 서북방 민족이다. 하지만 오랑캐 출신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호라는 한자를 못쓰게 했다. 『정관정요』에 관련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로 인해 오이 이름인 호과가 황과로 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도 황당하고 서북방 민족에 지배당했던 한족이 정신승리를 주장하며 꾸며낸 것 같아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짚어볼 부분이 있다. 한나라 이래로 명나라를 제외하면 줄곧 북방 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족이 호(胡)라는 한자로 대표되는 서북방 민족을 얼마나 배척하고 두려워했는지를 석륵과 수양제의 고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만리장성과 함께 오이의 옛 이름 호과가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오이 이름을 왜 하필 누렇다는 황(黃)자를 써서 황과로 바꿨을까? 일단 오이는 초록색이지만 완전히 익으면 늙은 오이 노각이 되어 누런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황과라고 했다는 것인데 또 다른 풀이도 있다.     서북방 민족이 두렵고 싫지만 그곳에서 전해진 오이는 또 달랐다. 옛날 중국에서 오이를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특별했으니 그중 하나가 왕과(王瓜)다. 임금 왕(王)자를 쓰는 만큼 가장 좋다는 뜻이다. 누런 황색에도 으뜸의 의미가 있다. 동서남북 중앙의 우주를 뜻하는 오방을 표현하는 다섯 색깔 중에서 중심인 가운데는 황색이다. 그렇기에 황색을 황제의 색으로 삼았고 황과 또한 박과 작물 중 으뜸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오이 예찬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오이가 꽤 귀했던 모양이다. 송나라 시인 육유는 시장에 드물게 보이는 오이, 쟁반에서 광채가 난다고 노래했을 정도인데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나 로마, 고려에도 오이 찬양 스토리가 빠지지 않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제철이 지난 후에도 오이를 얻기 위한 노력이 각별했다. 오이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실재배를 시도했는데 명나라 때 『학포잡소(學圃雜蔬)』에는 2월중 온실(火室)에서 온탕수로 오이를 키워 궁중에 공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런 오이였기에 얼마나 비쌌는지 손가락 굵기 만한 것이 쌀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중국의 여름 가정식(家常菜)인 으깬 오이 무침 파이황과, 여름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보내려는 지혜와 함께 서역에서 전해진 귀한 채소 오이에 품었던 의식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6.23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집 까마귀도 예뻐 보인다(愛屋及烏)   “내 것만이 무조건 좋다(맞다)”는 이성적이지 않다. 그리고 위험하다.   미국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종종 올라오는 기사가 있다. 바로 미국인들이 한인 상점이나 한국인을 상대로 약탈하고 폭력을 가한다는 내용이다. 그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 없는 한국인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미국에서 폭력이라는 야만적인 행위로 희생을 당했다. 만약 비슷한 일이 중국에서 벌어졌다면, 우리나라의 댓글은 어땠을까?   미국에는 말 못하고, 중국을 상대로는 늘 강경하다면 균형감이 부족하다. 강한 자는 두려워하고 약한 자는 업신여긴다(怕硬欺軟)는 건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처세다. 의로운 일에 나서고(見義勇爲) 정의를 실현하는(伸張正義) 훌륭한 모습은 못 보여주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한결같이’ 다른 평가와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리고 그런 ‘파잉치롼(怕硬欺軟)’이 현실적으로 현명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면 곤란하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비겁하기까지 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도, 밖에서 보면 어두운 면이 있을 수 있다.   무조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무모할 수 있다. 무조건 중국을 이해하자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늘 염려되는 것이 있다. 지금은 좋다고 하며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투자가 열풍인데, 그 나라 문화를 잘 모르면서 (과거 중국 열풍처럼) 또다시 열심을 보인다. 무모해 보인다면 기우일까?    인도의 소위 ‘국뽕’은 중국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한다. 베트남 역시 투자지로 좋은 선택이지만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치고 베트남전 전사자 묘역 방문해 참배객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미국은 (베트남 및 주변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베트남 참전을 감행했다. 전 세계가 반대했다. 베트남 전쟁에 한국은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유럽의 젊은이들과 지성들이 68혁명을 외칠 때, 전 세계가 자유와 인권을 외칠 그때, 우리나라는 32만명이나 되는 정규군을 베트남에 파병했다고 한다. 한국군의 용맹은,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 자랑스러웠지만, 당시 베트남 국민의 희생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우리 국군의 희생을 깎아내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분들의 헌신은 고귀할 뿐 아니라, 절대로 정치적이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정의롭고 자랑스러운 면만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어느 나라나 양면이 있다. 공정은 당연히 미덕이다. 다른 나라 · 민족을 대하는 태도 · 공정에 대해서, 우리는 스스로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이(異)문화간의 교류에 있어서 특히 해외투자에 있어서 우리 기업들이 ‘문화 이해’라는 준비 없이 무작정 진출하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라면, 파괴력이 그만큼 더 커진다. ‘Culture Shock(문화충격)’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상대자들은 항상) 무슨 말이라도 떠든다. (링에 올라) 나한테 얻어맞기 전까지는…” 복서 타이슨의 말이라고 한다. 해외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들은 “우리도 최대한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예상 못 한 방향에서 그리고 큰 타격이 들어올 때도, 이 말이 유효할까 정말 걱정된다.    ━  들리되 안 듣고 보이되 안 본다(聞耳不聽 視而不見)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아픈 구석이 있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는 화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중국인들은 우리와 비교하면 언로(言路)가 제한적이다. 중국의 공산당원은 지난 4월 현재 약 9600만 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기능도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해외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은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우리나라와 서구의 국민은 토론의 주제에 있어서 매우 자유롭기만 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라는 명저(名著)의 일부를 소개한다.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토론이 있었다. 서독 학생들은 주로 동독인들의 낮은 정치의식을 비판했다. “동독의 독재 정권 아래서 왜 그렇게 굴종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서독 학생의 질타에 동독 학생이 맞받았다. “우리가 독재 정권에 맞서지 못한 건 사실이다. 당신들은 총리를 비판하고,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조롱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사장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정권은 비판하지 못했지만, 사장은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다”. 사진 셔터스톡 ‘아픈 손가락’은 체제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는 매우 까다롭다.   우리나라에 관한 내용도 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사장은 비판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박근혜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가면이 ‘(대한항공) 조양호 시위’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은 내놓고 비판할 수 있어도, 사장은 그럴 수 없다. 광장의 거시권력보다 일상의 미시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중국에서 노사 문제 혹은 사회적 강자에 대한 불만이 집단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 (그리고 부패한 관리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하듯) 바로 공권력이 투입되어 사회적 강자를 보호하기 위해 진압하는 일은 많지 않다.   얼마 전, 중국에서 최고 권력자의 발언을 패러디한 코미디언이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5월 17일 자). 이런 기사를 접하면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뭐 그렇게까지?”라며 의아해하고, 씁쓸해하고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그런데도 중국인은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상하다고 느끼듯 그들도 심각하게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시각에서는’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중국뽕’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특성을 약간은 알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시각을 불쾌해하고, 우려하실 수도 있지만, 문화라는 요소를 생각하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일 수 있습니다. 편향된 시각이 아님을 이렇게라도 말씀드립니다)    ━  문화라는 거울에 비추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와 회사 사장에 대해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중국인들이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문화권에 있는 이들의 생각은 같지 않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 대놓고 비판한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 말 못하는 동독인들과 중국인들을 비난하고 비하한다. 그런데 그들이 때로 거리낌 없이 비난하는 고용주에 대해서는 우리는 좀 다르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만, 월급을 책임지는 회사 사장은 비난하지 못한다. 상사를 술안주로 삼기도 하지만, 감히 사장이나 오너는 대놓고 욕하지 못한다. 설령 한다고 해도, 내가 그들을 욕하는 것을 그들이 절대로 모를 것이라는 가정이 그 전제다.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믿기에 한다. (그게 아니라면, 회사를 떠날 결심을 한 후라야 그렇게 할 것이다) 가면집회에 대한 보도를 보고, 참여한 분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그분들 역시 ‘고려’하는 게 있었다. 밥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는 대놓고 비판할 수 없었다. 집마다 읽기 어려운 책이 있고,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있다(家家有本難唸的經 家家有本難唱的曲). 모두에게 공통적이지 않은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있는 것이다.    ━  관우(關羽)는 술주정뱅이요, 재물을 밝히는 호색한이다?   완전한 ‘객관’은 없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장헌수이(張恨水)라는 천재적인 소설가가 있었다. 생전(1895~1967)에 부패한 정치 사회에 대해 질타했다. 품격 있는 풍자를 통해 신랄한 비판을 한다. 그의 소설『여든한 가지 꿈(八十一夢)』은 유머에 웃고, 내용에 분노케 한다. 인명 지명 등에서조차 아주 디테일하게 비틀어 버린다. 짓궂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정직함이, 정결함이 있다.   난화이진(南懷瑾)은 중국의 유가, 도가, 불교 등 모든 철학사상을 관통한 저명한 국학대사(國學大師)이며, 베이징대학 광화학원 설립의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는 장헌수이의 타협하지 않는 사회참여 의식과 품격 있는 유머를 종종 언급하며 높이 추켜세웠다고 한다. 장헌수이의 글 중에서, 관우와 장개석을 빗대어 얘기하는 내용을 예로 든다: (참고로, 관우는 중국 민간에서 존중받는 영웅이자 신으로까지 추앙받는다. 당연히 세속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인물로 이해한다. 장개석은 당시에 최고 권력자임에도,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관우와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 장개석과 관우에 대한 장헌수이의 인물평 「 하늘의 수문장(守門將)은 이렇게 판단했다.   관우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회의에 참석하러 갔는데, 4대 천왕이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주(酒) · 색(女色) · 재(財) · 기(氣. 성질)의 네 가지를 어긴 이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출입을 금하라”는 옥황상제의 명령 때문이라고 한다. 규정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관우는 억울했다. 내가 왜?   4대 천왕이 일일이 설명한다. “당신의 얼굴이 붉은 것을 보니, 술 때문이다.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五關突破. 중국에서는 ‘五關斬六將’ 즉, ‘다섯 개 관문에서 여섯 명의 장수를 베다’라고 한다) 할 때, 유비의 두 형수와 함께했는데,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바로 색이다. 조조 진영에 있을 때, 그가 많은 재물을 보내준 걸 안다. 재물이다. 성질에 대해 말하자면, 전쟁터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서는, 본인이 죽은 후에는 분을 못 이긴 영혼이 세상을 떠돌며 “내 머리를 돌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말도 안 되는 규정의 해석과 집행에 열이 올랐는데, 멀리서 장개석(蔣介石)이 오는 게 보였다. 4대 천왕은 장개석에게 경례하며 극진히 모셨다. 관우가 분이 나 묻는다. “주(酒)·색(女色)·재(財)·기(氣. 성질)는 안된다며, 장개석은 왜?”   4대 천왕이 (우리는 원칙을 준수한다며) 또 설명한다.   장개석은 술과 담배를 (자기가 갖지 않고) 전국에 팔도록 했다. 바로 술을 좋아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색으로 말하면, 본부인하고 이혼했다…. 재물에 대해서는, 화폐를 발행하여 사람들에게 (사용하도록) 나누어 줬다. 재물을 탐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기(성질)는 이게 정말 대단한데, 중국 강산을 거의 다 빼앗기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   ━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반면(反面)교사 삼으면 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왜 하필 3명일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3이란 숫자는 ‘나’와 나보다 ‘잘난 이’와 나보다 ‘못한 이’를 대표한다. 한 편 어느 사람에게도, 나와 비슷한 점도 있고 나보다 나은 점도 있겠고 못 한 점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부분적으로는 내가 보고 배울 점은 늘 있다. 좋은 점은 본받고, 나쁜 점은 경계하면 된다. 내가 하기에 달려 있다.   이미 종영된〈걷잡을 수 없는 폭풍(狂飆)〉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최근에 보기 시작했다. 중국인 지인이 꼭 보고, 소감을 얘기해 달라고 한다. 권력자의 부패와 선한 시민이 악당이 되는 과정이 줄거리라고 한다. 초반의 몇 편을 봤는데 놀랄 만큼 현실적인 묘사가 많았다.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지?”라며 놀랐다. 주위 중국인들과 이 드라마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들이 다른 것도 있다면서 이것저것 추천해준다. ‘인민의 이름으로(人民的名義)’ ‘어두운 동굴(黑洞)’ ‘큰 강은 동으로 흐른다(大江東去)’ ‘절대권력(絕對權力)’ ‘용띠 해의 사건(龍年檔案)’ 등 유명한 것만도 10여편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대표적인 영화인 ‘황당한 사건(荒唐事件)’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여러분들도 보고 나면,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검열을 통과했단 말이야?”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보인다(距離產生美)   아는 게 많으니, 단점도 더 잘 보인다.   어쨌든 ‘더 많이 안다는 것’은 경쟁력이다. 중국과도 그렇다!   우리는 중국과 정치 경제, 안보, 군사, 외교 등 수없이 얽혀 있다. 중국인들은 일의대수(一衣帶水, 둘의 사이에는 한 줄기 띠 같은 냇물이 있을 뿐이다. 매우 가깝다)라고 한다. 필자는 기업에서 근무할 때, 장사하고, 투자하고, 정부 및 기업의 최고위층들과 협상을 해왔다. 진저리나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야말로 거물(巨物)을 넘어서는 거인(巨人)들과도 교류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인품이 나쁜 이들이라고 해서 비즈니스에 늘 해롭지는 않았다. 훌륭하다고 해서,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품이 좋은 분들은, 회사와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잘 대해 줬다. 비교우위가 없었다는 면에서는, 우리 회사에 경쟁력을 보태 주지 않았다.   상대가 어떻든,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좋다는 관점에서만 보고, 무조건 신뢰를 보내도 안 된다. 늘 검증하고 매 상황에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싫다는 시각으로 비난과 무조건적인 부정도 곤란하다. 이웃이 싫으면 이사하면 그만이지만, 그럴 수 없다. 공자는 “삼십이립(三十而立, 서른 살이 되어 스스로 선다)”이라고 했다. 지식이나 판단에 있어서,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이 생긴다는 의미이겠다. 중국과의 수교가 30살이 넘었다. 좀 더 균형 있는 관점을 가지고, 뒤돌아보고, 우리가 잘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겠다. 양국 간의 교류에 있어서, 더 이상의 오해를 줄이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좋은 이웃이 되면 좋겠다.   모든 교류에 있어서 ‘무조건 신뢰’ 또는 ‘무조건 불신’의 양극단은 안된다. 지나친 확신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늘 ‘의심’과 ‘신뢰’를 두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들어봤다고 내가 겪어봤다고, 그래서 “내가 다 안다”는 착각은 안 된다. 의심해야 한다. 한편, 중국인들과 많이 어울려본 한국인들이라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중국사람들은 정말로 사귀고 나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의리가 있지요!”. 믿을 만한 친구에게는 반드시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의심나면 같이 하지 말고 같이 하려면 의심하지 마라(用人毋疑 疑人毋用)’. 중국이라면, 신중한 ‘검증’은 필수다. 드러난 통계와 (우리의) 상식에 비춘 검증이 아닌, 친구를 통한 ‘중국식 검증’은 오히려 매우 유효하다. 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검증’은, 중국인들과의 교류에 있어서 균형 있는 객관성을 담보해줄 것이다.   속담 하나 소개한다. “강물의 깊이를 잴 때는 두 발을 함께 담그지 마라”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22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 셔터스톡 처음에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언제 그랬냐 식으로 가까워졌다. 두 사람의 악연은 2013년 2월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하면서 시작했다. 그때는 시진핑이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되고 2013년 3월 국가주석 취임을 앞두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 기간이었다. 혈기 왕성했던 김정은은 시진핑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시진핑은 역대 국가주석으로 취임하면 관례로 서울보다 먼저 방문했던 평양을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2014년 7월 서울을 먼저 찾았다. 정작 평양은 2019년 6월에 방문했다. 김정은이 2018년 3월부터 4차례 중국을 방문한 이후 비로소 시진핑은 평양을 방문했다.   시진핑과 김정은이 가까워진 것은 2018년 3월이다. 3개월 뒤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서다. 중국으로선 북·미 정상회담이 국익 차원에서 민감한 문제였다. 따라서 시진핑은 내키지 않았지만,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2019년 2월 결국 결렬됐고 그 이후 김정은은 한동안 ‘햄릿’이 됐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이 폐쇄됐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북한은 어쩔 수 없이 중국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은 지난 4월 12일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서 ‘전략적 의사소통’과 ‘전략적 인도’를 강조했다. 시진핑은 “지금 국제 및 지역 정세는 심각하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며 “나는 김정은 총비서 동지와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중‧조 관계의 발전 방향을 공동으로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친서는 김정은이 시진핑의 국가주석의 3연임을 축하하는 친서를 제일 먼저 보낸 것에 대한 시진핑의 답변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서로 쳐다보지 않던 북‧중 관계가 지금은 따뜻한 온기가 돌고 있다. 국제정치는 이런 것이다. 생물처럼 언제든지 변한다. 지금의 북‧중 관계도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시진핑과 김정은의 나이 차이는 31살이다. 시진핑은 70세, 김정은은 39세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보면 비슷한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덩샤오핑과 김정일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8살이다. 김정일이 1980년 후계자로 공식 발표된 뒤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은 1983년 6월 2일이다. 당시 덩샤오핑은 79세, 김정일은 41세였다.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이때 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일 김정일의 첫 방중 40주년을 맞아 ‘조·중 친선의 역사와 전통은 대를 이어 빛날 것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 내용은 “김정일 동지의 역사적인 첫 중국 방문은 피로써 맺어진 조·중 친선의 전통을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키는데 획기적인 이정표가 됐다”고 밝혔다. 김정일은 1983년 6월 2일부터 12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북한은 왜 북‧중 친선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을 소환했을까? 북‧중 친선은 김정일보다 김일성이 더 가까웠는데.   북한이 김정일을 소환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지금 필요한 조·중 친선의 대를 잇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북한은 김정일의 첫 방중을 “피로써 맺어지고 역사의 준엄한 사례를 이겨낸 조·중 친선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계속 빛내어 나가는 이정표로 됐다”고 평가했다. ‘이정표’를 강조하는 것은 지난 6월 2일 자 노동신문과 똑같다.   김일성이 북‧중 친선을 만들었다면, 김정일은 북‧중 친선의 유대를 더욱 발전시키고 대를 이어 빛나게 꽃 피웠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첫 방중을 마치고 귀국하기 하루 전날 열린 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중 친선은 그 어떤 비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 백두산의 소나무와 그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백두산의 천지처럼 불굴의 기상과 깊은 원천을 가진 영구불멸의 친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했던 김정일은 당시 북한의 공식적인 평가와 달리 덩샤오핑을 비난했다. 개혁‧개방에 몰두하던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을 ‘수정주의자’로 지목했다. 중국이 추진하는 4개 현대화 정책을 ‘수정주의 노선’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사회주의권에서 중국을 수정주의로 지목했던 나라는 소련뿐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수정주의’란 말은 적대적인 의미가 강했다. 그런데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로부터 이런 모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덩샤오핑은 크게 분노했다. 김정일의 등장이 중국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경계했다.   중국 지도부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김정일의 성격을 걱정했다. 중국이 아무리 설득해도 그에게서 진정한 이해와 협력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 판단하고 김일성을 설득하기로 했다. 덩샤오핑은 김정일이 귀국한 지 3개월이 지난 1983년 9월 중국 다롄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중국과 북한 지도자들은 은밀히 상의할 일을 있을 때는 다롄을 자주 찾았다.   덩샤오핑은 김일성에게 중국의 우려를 전달했고 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였다. 김일성이 덩샤오핑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세우는 데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설득하면서 “아비인 나는 네가 잘될 수 있도록 어떤 수치도 참고 견디는데 너는 그것도 모르느냐”며 야단을 쳤다. 김정일은 내키지 않았지만, 김일성의 충고를 받아들여 중국에 ‘사과’를 표시했다. 하지만 마음속은 달랐고 김정일의 ‘반중국 생각’은 그 이후에도 지속했다.   그런 김정일도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집중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1983년 이후 사망(2011년 12월)할 때까지 모두 9차례 방중했지만, 그 가운데 4차례는 2010년 이후다. 2010년 이후 방중할 때 김정일이 김정은을 데리고 갔다는 얘기는 많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김일성처럼 자식을 생각한 김정일이 김정은을 데리고 갔을 가능성은 크다.   지금 북‧중 관계는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가까워졌다. 한·미 동맹이 강화되면서 비례적으로 그렇게 됐다. 지난 4월 평양에 부임한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광폭 행보’라고 할 정도로 몇 달 사이에 김정은을 제외한 북한의 주요 인사들을 거의 만났다.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김덕훈 내각 총리‧김성남 당국제부장‧최선희 외무상‧윤정호 대외경제상‧승정규 문화상 등과 인사를 나눴다.   이 가운데 김덕훈‧최용해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권력 서열 2위‧4위에 해당한다. 리용남 주중 북한대사가 왕이 국무위원을 만났다는 얘기는 있어도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났다는 얘기는 없다. 그만큼 북한이 중국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 한국은 미국, 북한은 중국과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반도의 운명이다. 이런 지정학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한‧중 관계 개선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일장춘몽이었나 싶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가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시간만이 증명할 것이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질 무렵 비로소 그 날개를 편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칼럼

    2023.06.20 06:00

  • [중국읽기] 중국 전랑외교의 배경

    [중국읽기] 중국 전랑외교의 배경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세계 곳곳에서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가 목격된다. 중국 외교관들의 거친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전랑 외교의 형성 배경은 무엇일까.   1840년 아편전쟁은 터졌고, 중화제국은 서방 함포에 깨졌다. 심지어 일본에도 패했다. 지식인들은 반성했다. “우리도 봉건의 틀을 벗고 ‘덕선생(德先生, democracy)’ ‘새선생(賽先生, science)’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에서도 이성과 과학,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계몽주의가 싹트는 듯했다.   ‘전랑외교’라는 용어의 출처가 된 중국 영화 ‘전랑’ 포스터. 오래가지 못했다. 계몽 흐름은 “서구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은 치욕을 갚아야 한다”는 정치 운동에 쉽게 매몰됐다. 중국의 유명 철학자 리쩌호우(李澤厚)는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구망(救亡) 인식이 계몽 사조를 압도한 것”이라고 당시 지식계 흐름을 해석한다.   쑨원(孫文)·장제스(蔣介石)·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 그들의 정치 철학은 달랐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 ‘구망’이었다. 쑨원의 삼민주의, 마오의 마르크스주의, 덩샤오핑의 시장경제 등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마오의 서재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아닌 중국 역사서 『자치통감』이 꽂혀 있었던 이유다. 1989년 덩샤오핑이 천안문 학생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한 것 역시 구망이 계몽을 압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들어 구망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정치 언어로 표출된다. ‘이제 그 시기가 도래했다. 중화의 영광을 회복하자!’ 시 주석이 내건 중국몽은 결국 ‘민족 부흥의 꿈’이었다. 아편전쟁 때 서구 함포에 당한 수모를 갚아줄 시기가 됐다는 선언이다. 그간 이룬 경제 성과가 힘이다.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이 그들 내부에 잠재해 있던 구망 인식을 흔들어 깨웠다.   ‘부흥의 열망’은 중국을 관통한다. 시 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에는 고대 실크로드를 되살려 한(漢)·당(唐)시기의 강성함을 회복하겠다는 열망이 담겼다. 학생들은 애국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고, 시장에서는 애국 소비가 대세다. 사회 곳곳에 민족주의, 애국주의가 팽배하다. 그 열망이 외교 일선으로 확장돼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전랑 외교다.   중국 외교관들 역시 지난 150여년 지식계에 면면히 이어온 구망 인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부흥의 열망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거칠게 반응한다. 그러기에 전랑 외교는 계몽을 압도한 구망의 변주곡처럼 들린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19 00:42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먹물(墨汁)요리 역사 … 낙제하면 먹물이 한 사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먹물(墨汁)요리 역사 … 낙제하면 먹물이 한 사발

    먹물 만두. 사진 소후 먹물 두부(墨汁豆腐), 먹물 해물국수(墨汁海鮮麵), 먹물 만두(墨汁餃子)에 먹물 밥(墨汁飯) 먹물 갈비구이(墨汁燒排骨) 등등.     눈길 끄는 중국 음식들인데 자칫 종이로 소를 만들어 빚었다는 만두나 석회 달걀처럼 먹물을 섞은 불량식품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에 좋다며 유행처럼 퍼지는 블랙푸드다.     새까만 색이 마치 묵즙(墨汁)이라는 이름처럼 먹물을 풀어 놓은 것 같지만, 실제 그럴 리는 없고 천연 색소인 오징어 먹물을 활용해 요리한 음식들이다.     고문헌을 비롯해 이런 저런 기록을 찾아봐도 중국 음식 중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오징어 먹물 요리가 있었다는 흔적은 없으니 최근에 생긴 음식들이 분명하다. 실제로 먹물 요리, 묵즙 음식은 이탈리아 요리 등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중국식 퓨전 음식이다.     이탈리아의 오징어 먹물 요리는 우리한테 이미 익숙한 부분이 있다.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를 비롯해 먹물 리조또에, 먹물 피자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통해 한국에 선보였다. 그 때문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징어 먹물 요리를 이탈리아 고유의 전통 음식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도 않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지중해 연안 지방에서는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스페인에도 오징어 먹물로 조리한 볶음밥, 빠에야가 있고 크로아티아에도 오징어 먹물 음식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조리해 놓은 음식 색깔이 시커멓기에 얼핏 먹지 못할 음식처럼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오징어 먹물이 소화도 잘 되고 심혈관 질환 예방과 면역력을 높이는데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한때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오징어 먹물 빵에, 짜장면, 오징어 먹물 떡볶이까지 널리 퍼진 적이 있다. 중국의 먹물 두부와 오징어 먹물에 재서 굽는 먹물 갈비 등도 유행 트렌드를 탄 것 같은데 어쨌든 아시아에서는 오징어 먹물 요리가 경제발전 순서에 따라 퍼져나가는 것 같아 흥미롭다.   오징어 먹물 요리는 서양에서 비롯됐고 역사적으로 뿌리도 깊다. 고대에는 의약품으로 주로 사용했는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의사 셀수수가 남긴 의학서 『메디치나』에도 보인다. 식욕을 돋우는데 좋고 변비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이때도 오징어 먹물 요리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음식이 본격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긴 세월이 흐른 후인 르네상스 이후다. 아랍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베니스의 상인과 귀족들이 미각의 극치를 맛보기 위해 발달시켰다고 한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검은 색을 강조하면서 미각적으로는 부드러운 바다의 향기를 요리에 담아내는 재료로 오징어 먹물을 소스로 발전시킨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한다.   그러면 동양, 특히 중국에서는 오징어 먹물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일단은 먹물 대신 썼다. 오적묵(烏賊默)의 서약이라는 말이 있다. 오징어 먹물로 서명한 약속인데 일종의 사기 계약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에는 또렷하게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먹물이 마르며 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계약한 적 없다고 우길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성질을 이용해 암호로 사용했다. 다시 물에 적시면 글씨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약으로도 활용했다. 당나라 의학서 『본초습유』에 오징어 먹물은 피가 뭉쳐 가슴이 아플 때 효과가 있다고 나온다. 심혈관 질환에 좋다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식용으로는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한테는 오징어 먹물이 아닌 진짜 먹물을 먹였다. 6세기 후반 남북조 시대의 북제(北齊) 때 있었던 일이다. 중국에서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 시작됐지만 북제에서도 인재 선발고사가 있었다. 지방 호족과 귀족 세력의 추천을 받아 황제 면전에서 직접 시험을 본 후 그 중에서 똑똑한 인재를 뽑아 관리로 선발했다.     하지만 권력자 집안의 농간으로 실력은커녕 엉터리 자제를 추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시험 중에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시험 후 문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답안지를 제출한 자는 작성자를 추적해 먹물을 한 되씩 먹였다.   이어 수나라에서도 시험성적이 정말 형편없거나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될 경우에도 먹물 한 되를 마시게 했다고 『수서(隋書)』 「예의지」에 나온다. 나중에는 이런 황당한 규정이 사라졌지만 비아냥거릴 때 쓰는 “먹물 꽤나 마신 것 같다”는 말도 저절로 생긴 것 아니라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먹물 한 되를 먹일 만큼 왜 그토록 모질었을까 싶지만 나름 배경이 있다. 과거제도는 인재 선발이 기본 목적이지만 지방 영주와 귀족 세력을 견제해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을 실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렇기에 엉터리 같은 호족의 자제에게 먹물을 먹여 벌했던 것이다. 오징어 먹물이 됐건 진짜 먹물이 됐건 먹물 식용(?)의 용도가 흥미롭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6.16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반도체 산업과 우리의 대응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반도체 산업과 우리의 대응

    사진 셔터스톡 반도체 산업은 ‘미래산업의 쌀’이라 불리며 인공지능, 5G, 로봇산업, 자율주행차, 양자컴퓨팅, 핀테크 산업 등 첨단산업의 주도권 확보 핵심 기반이다. 현대의 전쟁은 전자전(戰) 성격이 강한 만큼 반도체 산업은 ‘국가안보 자산’이다. 우리는 반도체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우리의 경제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반도체 산업의 전통적 분업체계는 무너지고, 자국 우선주의로 공급망 재편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전략적 선택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 2015년 3월 발표한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 계획에 따르면, 반도체 국산화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국력을 집중했으나, 핵심부품과 기술 분야에서 2021년 기준 자급률은 16.7% 수준에 불과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강한 일본, 제조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은, 미국 중심의 가치를 공유하는 ‘칩4 동맹(Chip Alliance)’으로 전열 정비가 끝났다.   미국은 반도체 EUV 노광 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ASML사(社)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중국에는 장비를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여,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고 있다. 반도체의 핵심기술은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불문하고 핵심기술은 10㎚ 이하의 초미세 패터닝(Patterning) 분야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인 대만의 TSMC 및 한국 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가 오히려 벌어지는 상황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상당 기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미국이나 중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물론 관련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 악화는 정해진 수순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 일본, 중국,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과 투자 그리고 시장 쟁탈전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은 반도체 기술과 소재·부품·장비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직접적인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미국의 전략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한, 중국은 우리에게 견제와 비(非)협조로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 명백해 보인다. 중국이 최근 우리에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뾰쪽한 보복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도체 기술 추격을 위해, 우리의 핵심기술을 빼가거나, 핵심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로 유혹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  미국의 내재화 전략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반도체 산업의 내재화를 통해, 안보 역량을 강화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시설 국내 이전(Reshoring) 전략’은, 우리는 물론 대만 그리고 일본에 위협적이다. 미국 중심의 가치동맹을 내세우고, 안보에 대한 지원과 압박을 내세우기 때문에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의 고민은 지난 30년간 키워온 반도체라는 핵심 산업을 미국에 뺏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는 안보적으로 한미동맹으로 맺어져 있어, 우리의 선택 여지는 넓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미국이 내걸고 있는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감세나 보조금에는 독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날카로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본의 반도체 몰락을 가져온 1986년 ‘미·일반도체 협정’이 실행된 과정을 자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세계 1위를 달리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견제와 전략에 말려 괴멸당하고 소재·장비·부품을 공급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우리가 따라가다가는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은 당시 국방의 미국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일본 관료나 기업인들의 미래를 보는 시야가 짧았던 점도, 일본이 반도체산업을 잃어버린 한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우리의 대응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의 최대 시장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이 생산기지를 일부 미국으로 옮길 경우, 정치 안보적으로는 안정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상당 부분 잃을 가능성이 있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원가 상승은 피할 수 없어,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중 양국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우리의 원칙을 알리고, 주도적으로 사전 협상을 통해 그들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에 대한 종합적이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4월 공표된, 국가전략 기술에 대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과 초격차 유지를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대단히 시의적절 한 대책으로 보인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원(KIST) 원장의 ‘반도체는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로,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기업에 더 많은 특혜를 주고, 기초과학과 반도체 관련 학과를 대폭 증원하여 인력을 배양하는 등, 대규모 부흥정책을 펼쳐야 우리의 산업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반도체 관련기관이나 기업 등 주최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통합 등,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서 대응해야 한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2023.06.15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와 미‧중 담론 경쟁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와 미‧중 담론 경쟁

    중국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초강대국에 어울리는 거대 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2023년 3월 15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공산당과 세계정당 고위급 대화 연설에서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 GCI)를 주창한다.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의 요점은 각 문명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모델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다양성 존중과 문명 간 공존을 바탕으로 국제적 인적교류와 협력의 강화를 촉구한다. 이제 중국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초강대국에 어울리는 거대 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  중국 글로벌 담론의 진화     강대국은 세 가지 통제 형태를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특정 규정을 강요하는 강압적 능력에 의존하거나, 대외원조와 같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합의를 유도하거나, 가치 내지는 정통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가치나 정통성은 지배적 국가의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가지고 지휘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권위에서 나오며, 중국이 진정한 G2로 인정받으려면 강제력, 혜택의 제공 능력과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 나름의 가치나 정통성을 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의 글로벌 담론은 2021년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GDI), 2022년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 그리고 올해 제시된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로 진화해 왔다. 76차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는 국제사회가 빈곤감소, 식량안보, 방역과 백신, 발전자금 모금, 기후변화와 녹색발전, 산업화, 디지털 경제, 상호연계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길 호소한다. 중국은 이미 관련 고위급 대담회의를 주재하고 민간의 빈곤 완화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참여국과 국제기구는 100여 개로 늘었고 유엔 플랫폼에 설립된 GDI의 친구 그룹 회원은 60여 개에 달한다.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는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 존중, 주권 평등과 내정 불간섭을 국제관계의 근본으로 냉전적 사고와 일방주의, 패권주의를 배격함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는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안보 관련 합의를 강화하고 전 세계가 참여해 식량,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방역, 우주 안보, 테러 등의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관계를 중재하고 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젤린스키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천명한 사건 등이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의 원칙에 입각한 중국 외교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는 발전에서 안보, 문명으로 중국의 글로벌 담론이 지속해서 확대되고 거창해지는 진화 방향을 보여준다. 시 주석의 연설은 “꽃 한 송이가 홀로 핀다면 봄이 아니다. 백 가지 꽃이 함께 피어야 봄이 정원에 가득하다(一花獨放不是春 百花齊放春滿園)”며 세계 문명의 다양성 존중을 설파한다.   하지만 문명의 공존이라는 거대 담론의 골자는 서구의 개입에서 자유로운 국가 주권의 존중이다. 즉, 서구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수호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서구의 보편 가치 즉 인권은 개인에 초점을 둔 것으로, 국가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실패한 국가, 불량 국가 개념은 물론이고 군중에 발포하는 이란이나 미얀마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제재도 여기에서 가능한 것이다.   중국이 이런 보편 가치보다 주권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쉽다. 즉, 대내적으로는 자기 체제를 옹호하고 대외적으로는 서구의 간섭, 개입을 불편하게 여기는 권위주의 국가에 어필하는 것이 주권을 우선하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식 성장모델의 우월성, 경제적 성과 및 기술 권위주의의 효율성이 인권에 우선하는 중국식 정통성 또는 일종의 보편 가치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진정한 대외정책 철학은 무엇일까?    ━  액면 가치와 실제 의도의 괴리     중국의 대외정책은 지금까지 소개된 거대 담론과는 별개로, 여러 경로를 통해 실제 의도를 드러내 왔다. 2013년 6월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언급한 ‘신형대국관계’는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과 신흥 패권 국가인 중국이 상대방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강대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추구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미‧중 간 협상을 통하여 기존 국제질서를 변경하고 점증하는 중국의 위상에 어울리는 몫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가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국력에 걸맞게 중국의 소위 전통적인 세력권을 강대국 간 이해관계 조정을 통하여 인정받아야 함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현실주의적이고 시니컬한, 가치나 이상을 배격하고 힘의 균형만을 철저히 반영한 거래적(transactional) 국제질서는 이미 중국 대중들에게도 체화된 듯하다. 푸틴의 침략 전쟁에 대하여 찬성이 압도적인 중국의 여론이 그 증거이다.   결국, 글로벌 문명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액면가치는 중국몽이라는,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실제 의도와 모순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자국민도 통제하는 강대국이 과연 약소국을 진정으로 존중해 줄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서구식 인권보다 우선하는 중국식 성장모델과 대외원조가 적지 않은 개도국에 어필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니엘 매팅니(Daniel Mattingly) 등의 실증연구에 따르면(2023. 1) 중국 미디어가 선전하는, 서구보다 우월한 중국 모델 담론의 설득력이 개도국에서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서구중심의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는 위기에 봉착한 것일까?    ━  규칙기반 국제질서와 우리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가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직전에 발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서방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의도하는 국제질서,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접근방식이 보편화되는 것이 세계에 바람직할까? 국가 주권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가 부정된다면 글로벌 질서는 철저히 강대국 간 이해관계에 따르는 균형에 다름이 아닌 것이 되고 특정 국가가 인권을 탄압하더라도 타국이 간섭할 여지는 없게 된다.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근간은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철학을 근저에 깔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한다면 국제무대에서 국가의 비도덕적 행위가 정당화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예를 들면 전쟁 범죄도 전쟁 당사국의 안보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2차대전 이후 규칙기반 질서가 거둔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의 도전과 트럼프식 포퓰리즘은 규칙기반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지난 5월의 G7 히로시마 지도자 코뮤니케는 규칙기반 질서를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를 새삼 표명하였다. 반면에, 중국이 그저 ‘주권의 보호’에만 호소할 경우 글로벌 공공재의 제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한령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무역 규범이라는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중국의 접근방식은 지극히 선택적, 정치적이며 일대일로나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같은 대외협력 전략도 개도국들이 중국의 담론에 대한 진정한 신뢰보다는 현실적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서구도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항행의 자유, 인권, 자유무역 체제와 같은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해온 규칙기반 질서는 우리가 이만큼 발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공공재는 무임승차 문제 때문에 부족하게 공급되게 마련이고 약소국들은 공공재를 창출할 동기와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G7에의 참여가 거론되는 수준까지 발전한 우리는 글로벌 공공재의 단순 수혜자에서 벗어나 적극적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말한다. “국익은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를 포함할 수 있으며 국민들이 그런 가치들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중요시할수록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권력의 미래, 2021) 즉,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가치에의 투자는 무형의 국익이 될 수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융성하는 세계야말로 우리가 융성하고 안보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2023.06.13 06:00

  • [중국읽기] 탈(脫)중국과 ‘알타시아(Altasia)’

    [중국읽기] 탈(脫)중국과 ‘알타시아(Altasia)’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탈(脫)중국’은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의 임금 급등, 미·중 패권 경쟁 등을 피해 중국에서 공장을 빼낼 궁리를 하고 있다. 대중 수출이 12개월째 줄면서 국내에서도 ‘중국 의존도를 낮출 기회’라는 말이 나온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세계 공장’ 중국은 소재 및 부품 조달, 물류, 시장 접근성 등 여러 분야에서 최적의 제조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약 100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 등 고급 인재도 풍부하다. 어디서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베트남, 인도 등이 ‘포스트 차이나’ 시대 중국을 대체할 제조 단지로 부각되고 있다.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 [사진 삼성전자] 그래서 나온 게 ‘알타시아(Altasia)’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만든 용어다. 대체라는 뜻의 ‘Alternative’에 아시아의 ‘asia’를 합쳐 만들었다. ‘중국을 대체할 아시아의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특정 한 나라가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합쳐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술력은 일본·한국·대만 등이 뛰어나다. 싱가포르는 물류 서비스가 강하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자원이 풍부하다. 베트남·태국·인도 등은 투자 정책의 틀이 잡혀간다. 필리핀·방글라데시·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14개 ‘알타시아’의 전체 노동인구는 14억 명으로 중국의 9억5000만 명을 추월한다. 대미 수출 총액도 중국보다 많다. 중국을 대체할만한 충분한 제조 여건을 갖췄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대만 폭스콘은 아이폰(애플) 생산 거점을 인도로 다각화하고, 인텔은 베트남 호찌민시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삼성도 핸드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변화가 ‘알타시아’로의 제조업 이동을 재촉하고 있다.   기회다. 우리는 14개 ‘알타시아’ 중에서도 반도체·자동차·조선·화학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고루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베트남으로 가려는 공장이 있다면, 한국으로 와야 할 기업도 분명 있는 법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이 경기도 화성에 ‘화성 캠퍼스’를 조성하는 건 이를 보여준다. 산업 포트폴리오와 기술 경쟁력의 이점을 살리면 우리도 첨단 제조 분야 ‘포스트 차이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규제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은 과연 그 기회를 잡아챌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알타시아’의 부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12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돼지족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돼지족발

    사진 셔터스톡 6월이면 중국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숨도 못 쉴 만큼 긴장한다. 7, 8일 이틀간 가오카오(高考)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입 수능 비슷한 시험이다.   중국 입시도 한국, 일본 못지않게 치열하다. 그런 만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음식 하나에도 합격의 소망을 담는다. 우리의 합격 엿, 일본의 찹쌀떡(大福餠)처럼 중국은 장원병(壯元餠)을 먹는다.   특정 음식에 합격의 소망을 담는 것은 한·중·일 공통의 민속이다.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동양만의 전통인데 언제부터, 왜 이런 풍속이 생겼을까, 그리고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엉뚱하지만 사람들이 처음 합격의 꿈을 담아 먹었던 음식은 돼지 족발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7세기 당나라 때 과거시험 보는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먹었다는데 이를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으로 본다.   합격 엿이나 찹쌀떡은 끈적끈적 접착력이 좋아 시험에 잘 붙게 해준다는 속설이라도 있지만 돼지 족발은 뜬금없이 왜 먹었을까 싶지만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의 장원급제가 결정되면 비단에 붉은 먹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 제목을 적어 수도인 장안, 지금의 서안에 있는 대안탑(大雁塔)에 내걸었다. 붉은 먹물로 썼기에 이 방을 주제(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주티(zhuti)다. 그런데 중국 말로는 돼지 족발(猪蹄)도 발음이 같다. 그래서 돼지 족발 주티를 먹으며 자신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이 적힌 주티가 대안탑에 붙기를 소망했다. 돼지 족발이 합격기원 음식이 된 유래라고 한다.   유래야 그렇다고 해도 왜 하찮은 돼지 족발에까지 염원을 담았을 정도로 간절하게 장원급제에 매달렸는지, 왜 하필 당나라 때 이런 풍속이 생겼는지 궁금해지는데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제도는 수나라에서 도입해 당나라 때 정착됐는데 겉으로 내건 명분은 초야에 묻힌 인재의 발굴과 발탁이지만 정치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황제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지방 호족세력을 약화해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중앙의 권력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무리 세력이 큰 호족 집안의 자제라도 원칙적으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출세가 힘들었으니 자연히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당나라 때 과거제도는 평민에게도 시험 볼 자격이 주어졌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본인이 똑똑해 장원급제하면 고위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헌 기록에 남아 있는 역사상 최초의 장원급제 주인공이 된 손복가(孫伏伽)가 그런 경우였다. 당나라 건국 4년째 되는 해인 서기 622년에 시행된 진사과 과거에서 일등을 한 손복가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는지 수나라에서는 지방 관청의 말단 관리로 관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나라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이후 당 태종 이세민의 관심을 받으며 출세의 길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산시 성 책임자인 자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모습을 직접 본 돈 없고 빽 없는 당나라 선비들,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과거시험 전후에는 돼지 족발이라도 먹으며 대안탑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주티(朱題)가 내걸리기를 빌었다. 합격기원 음식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됐다.     1400년의 길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바뀌었어도 자식이 용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꿈(望子成龍)은 남아 합격기원 음식은 현대 중국에서도 여전히 그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요즘 대입 가오카오에서 주로 무엇을 먹으며 합격을 소원할까?   여전히 돼지 족발을 먹는 곳도 있고 광둥과 광시 지역에서는 합격기원 쌀국수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장원병이다.   그중에서도 흔한 것은 중추절에 먹는 월병 같은 것인데 여느 월병과 다른 것은 가운데에 장원(壯元)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옛날 장원급제를 하듯 높은 점수를 받아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일 것이다.   장원쭝(壯元粽)이라는 이름으로 갈댓잎 등에 찰밥을 싼 쭝즈(粽子)도 불티나게 팔린다. 쭝즈가 합격기원 음식이 된 데도 유래가 있으니 쭝즈는 원래 단오절에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 충신이며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을 기리며 먹는 음식이었다.   중국은 삼국지의 관우가 재물신이 되는 것처럼 역사 속 유명 인물을 신으로 받드는 풍습이 있는데 굴원 또한 신처럼 받든다. 그리고 중국의 가오카오는 많은 경우 단오절과 날짜가 겹치기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것인지 굴원에게 아들딸 대학입시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쭝즈, 장원쭝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명중이라는 단어처럼 활을 쏴 과녁을 통과하거나 시험에 합격했다고 할 때 한자로 가운데 중(中) 자를 쓴다. 중국어 발음은 쭝으로 찹쌀밥 쭝 발음이 같다. 이런 이유로 쭝즈가 합격기원 음식, 장원쭝이 됐다고 한다. 어쨌거나 쭝즈나 돼지 족발이나 그 속에 담긴 소망이 간절하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09 06:01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은?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은?

    농담이 있다.   중국에서 절대로 성공 못 할 직업은?   심리치료사.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스스로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셔터스톡 2005년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에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라는 문항에 대해 한국인의 30.2%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스웨덴(68.0%)과 같은 선진국들은 고사하고 중국(52.3%)이나 베트남(52.1%)보다도 낮은 수치다 필자가 (출처는 잊었지만) 자주 인용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소개하면, 듣는 이들이 깜짝 놀란다. 그리고 서로 신뢰를 못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겠지만, ‘의심이 많다는 중국인들’보다도 낮다는 수치는 뒤통수를 때린다.   그런데 필자는 이 통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른 각도로 점검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늘 듣던 말이 있다. 바로 “중국인은 의심이 많다”다. 그런데 통계로는 우리가 그들보다도 사람들에 대해 의심이 많다고 하니 정말 뜻밖이다.     심지어 얼마 전 지인이 방송에서 들었다면서 “(코로나 시국을 겪고 나서도) 중국 최고 지도자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지도가 거의 90%에 육박한다…. 이게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조사한 통계다. 의외지만, 안 믿을 수가 없다고 진행자마저 부연 설명하더라….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방송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말해줬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는데 설문에 응한 중국인들이 어떤 이들인지,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중국 사람들의 설문지를 대하는 태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명백한 통계 숫자라 해도, 문화라는 필터로 걸러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 저자인 헥터 맥도널드는 한 마디 더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숫자들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숫자를 고문하라, 원하는 내용은 뭐든 불 것이다. (미국의 평론가 그레그 이스터부룩) 통계 조작이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오판을 불렀다는 사후 평가가 나왔다…. 예하 부대에서 성과를 부풀려 보고했고, 미국은 이것을 토대로 북베트남이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은 후에 ‘통계가 망친 전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집) (미국 중심의) 심리학과 관련해 ‘weird’란 용어가 있다. 원래 의미는 ‘이상한’, ‘기괴한’이다. 그런데 다른 의미도 있다. White(백인의), Educated(교육받은), Industrialized(산업화한, 혹은 선진화된), Rich(부유한) Democratic(민주주의의)의 약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심리학 서적을 통해 알고 있는 우리의 심리현상은, 사실 우리의 심리를 표현하고 설명해주는 게 아니다. 바로 이 다섯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이들의 심리학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첫 번째 단계에서 탈락이다. 태생적으로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핫도그(hot dog)는 도그(dog)가 아니다!     오해가 안 생기는 질문, 즉 문화를 고려한 질문을 해야 한다.     통계는 일반적으로는 믿을 만하지만, 그것을 어떤 이들이 고의로 악용할 수 있다. 혹은 통계 자체의 불완전으로 인해 잘못된 결론으로 유도할 수 있겠다. ‘중국인들의 사람에 대한 신뢰에 관한’ 위의 사례에서도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다. 경험적으로도 믿기 어려운 통계 사실에 대해 그 가능성을 소개해 본다.     첫 번째는, 인터뷰에 응한 중국인들이 거짓말을 한 거다. 남을 신뢰한다는 말을 해야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설문인데도?”라고 반문하고 싶겠지만, 중국인은 그렇게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데도?”. 중국인들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두 번째는, 우리가 상정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중국인의 그것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상정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은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과 ‘알고 지내는 (혈연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의 두 부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하나로 선택하고 답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설문의 응답자들이 만약 ‘대부분의 사람’을 ‘(혈연을 제외한)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상정했다면 위와 같은 (중국인들의 높은 상호 신뢰) 결과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신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인들이 ‘전혀 모르던 사람’을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답했다면, 첫 번째 가능성이다. 솔직하지 않게 답한 것이다.)   만약 위의 통계에 근거해 “중국인이 우리보다 높은 상호 신뢰를 보인다”라는 결론을 주장하려면, ‘대부분의 사람’에 대해 더 구체적인 서술을 해야 했다.    ━  문자(文字)적으로는 같아도, 뜻은 다를 수 있다.   문화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스턴트맨 등을 속어로 ‘hot dog’라고 부른다고 한다. 약간 과장해보면, “hot dog를 좋아하냐?”라는 간단한 설문지의 답변은 엉뚱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맛있는 핫도그를 떠올리고 대답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능력자들을 연상하고 답변할 것이다.   중국인들은 ‘아는 이(우리)’와 ‘모르는 이(타자)’에 대한 구별이 엄격해서, 절대로 모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높은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길에서 노약자가 넘어져도, 누구 하나 도움을 주지 않아서…”라는 식의 뉴스는, 중국에서는 뉴스가 안 될 정도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가 난 이를 못 본 체하는 그런 심리도 있지만, 주로는 믿지 못해서이다.     이런 신문들은 종종 있었다. 구해주고 났더니, 그 노인네가 “당신이 나를 넘어뜨렸다”라며 피해액을 요구해서 낭패를 당했다는 식의 기사다. 그래서 중국 친구들이 해 준 말이 있다. “운전 중에 사고 난 차량을 보면 어떻게 할 거니?”. 차를 멈추고 도와줘야지 했더니,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면서 “일단, 차를 현장에서 더 멀리 운전하고 나서, 거기서 경찰에 신고해라!”였다.     부모는 자식을 숨겨주고 자식은 부모를 숨겨준다. 올바름은 바로 여기에 있다(父为子隐 子为父隐 直在其中矣). 부자 간(확대하면, 가까운 이)에게는 더 많은 신뢰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올바름이다.   〈논어 · 자로〉 편에, 섭공(葉公)이 자기네 마을에 올바른 이가 있는데,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증언했다고 하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우리 마을의 올바름은 바로 부자간에는 설령 잘못했다 하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덮어주는 것이 지고(至高)의 도리다”라며 가르쳤다.     법은 인정을 도외시하지 않는다(法不外人情). 법외에 인정도 고려해야 한다. 위 논어의 말씀에 대해, 문자 그대로는 공감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유검무죄(有檢無罪) 무검유죄(無檢有罪)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법치에도 (법 자체에? 또는 집행에?) 문제가 있기는 있는 거다. 어차피 완전한 공평이 불가능하다면, 공평하게 ‘인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신뢰’의 정의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냐’에 따라 보내는 ‘신뢰’의 차이가 크다. 한편, 같은 문장에 대해서도 맥락을 중시하는 문화(고 맥락 문화)와 맥락 없이 말 그대로 이해해도 되는 문화(저 맥락 문화) 간의 이해는 다르다. 사장이 “편하게 생각하고, 애로 사항을 말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우리 사회라면, 우리도 고 맥락 문화다.     고 맥락과 저 맥락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설문지의 질문이 “문자적으로 같으므로, 내용도 같다”라는 명제는 틀리다. 후쿠야마는 “미국과 일본 같은 사회는 고(高)신뢰 사회”라고 하면서, 중국은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저(低) 신뢰사회”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대해 중국인들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계약서를 쓴다는데, 그게 맞냐?”며 반문한다. 서구는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게 (상대적으로) 비슷한 정도의 신뢰를 보낸다. 중국은 모르는 이에게는 철저한 의심을, 아는 이에게는 상당한 신뢰를 보낸다.    ■ 사례: 어느 한국 기업의 인성 검사 결과. “이게 뭐지요? 죄다 탈락이에요!” 「 저 맥락의 질문지로는, 고 맥락 문화의 중국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설문지를 만들 때, “중국식으로 고려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어찌 보면 성의 없는 대답이다. 고려는 했겠지만, 그 정도가 중요하다. 정말 정말! 신중하게 단어 하나라도 고민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한다면, 세밀하게 연구해서 질문지를 만들어야 한다. 설문지를 통해 답을 얻는 것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제는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모 대기업에서 인력을 채용했다. 채용 관련한 다른 시험을 모두 통과한 이들은 약 20명 정도였다. 들리는 소문으로, 여느 때보다도 지원자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검사는 인성검사뿐이었다. “우리 회사의 인성검사는 한국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며, 그것을 실행하면서 현지화의 성공 사례처럼 자랑했다. 한국인 간부들은 본인의 입사 경험상, 인성검사는 아주 이상한 성격 결함이 없으면 통과될 거라고 여겼다. 신입직원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흔히 인성검사의 팁은 “뭐든 일관되게 솔직하게 답하라”라고 한다. 비슷한 질문을 중복으로 질문하면서, 응시자의 진솔성을 파악하는 게 인성검사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일관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크게 벗어나서 탈락하는 이들은, 최소한 경험적으로는 들은 사례가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좋은 인재를 자기 부서로 데려오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단 한 명만 빼고 나머지 모든 지원자를 두고, 여러 부서가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인사팀에서도 각 관계사의 요구를 조율하느라, 벌써 바쁘다. 그런데, 최종 입사 발표자 결과가 나오자 인사팀을 포함해서 모두 경악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그 한 명만 빼고 ‘전군복멸(全军覆灭, 전군이 사망하다)’, 모조리 탈락했다. 인성검사 결과, 구제 불능의 불합격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당시의 인성검사는 지나치게 비정상만 아니라면 탈락시키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매우 정상적이고 우수해 보이는 모든 지원자가 모조리 탈락했다. 선을 넘은 비정상 내지는 인성이 심각하게 부적격하다는 평가를 받았겠다. 유일하게 통과한 합격자는 부서 배치 후에 “자기주장이 강해서,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공주병에 걸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관이 뚜렷했다.  」  원래 것을 건들지도 않다(原封不动)고 한 번역은, 오역(誤譯)되기도 한다.   통계이든 면담이든, 그 결과를 가지고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질문지에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야 한다. 서양인들은 설문지를 메꿀 때 매우 진지하다. 중국인들이 설문지를 답할 때는 일반적으로 상황에 따라 대답한다. …… 사람을 뽑을 때, 만약 설문지의 형식을 사용한다면 인재를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해(利害)에 따라 답하기 때문이다. (〈领导统御智慧〉杨智雄 외) 홍콩에 있는 미국 기업의 사례다. 면접에서 자신의 문화혁명 시기의 가족사를 소개한 학생이 채용되었다. 이후로 수많은 중국인 응시생들도 면접장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남의 이야기로 면접에 응했다는 사실에, 미국인 면접관들은 당황했다. 반면, 중국인 면접자들은, 자신들의 천편일률적인 대답이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서구식의 문답을 그대로 번역해서 가져오면, 중국인들은 헷갈리기 쉽다. 간단한 질문임에도, 무엇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후 맥락을 이해해야 대화가 가능한) 고 맥락 문화의 질문과 대답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저 맥락 문화의 사람들이 이해 못 하듯이, 반대의 경우도 똑같다. 한국의 인성검사의 질문을 대하는 중국 직원들은, 질문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고민한 듯하다. 좋은 인성의 소유자로 보이기를 바란 듯하다. 저 맥락의 기준으로 볼 때는, 지나쳐도 한 참 넘어섰다. 결국 합격의 최저선도 넘지 못하는 점수를 얻었다. 모조리 탈락했다.    ━  곡조는 달라도 완성도는 똑같다(异曲同工).   어려운 작업이지만, ‘필요하니까’해야 한다.     설문(혹은 심지어 면접)을 통해 무엇인가 특히 (정량적인 것이 아닌) 정성(定性)적인 것을 알아내려고 한다면, 내용은 물론이고, 낱말 하나에도 고민을 해야 한다.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生搬硬套), 단순히 번역만 해서 사용하며, ‘현지화 실천’이라고 여긴다면 정말 어이없다. 사실 이는 우리들의 중국 실력 문제뿐 아니라, 성의가 없는 거다. 직역은 성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문화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직역은 오해만을 일으킨다. 틀린 정보를 ‘옳은 것, 숫자가 입증하는 확실한 것’으로 믿게 끔도 한다. 세밀한 고민을 통한 번역(때로는 의역)이 필요할 것이다.    ━  옥도 다듬지 않으면 물건이 못 된다(玉不琢 不成器).   정보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그렇게 쌓인 지식이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러려면, 정보를 구하는 방법 역시 공부를 해야 한다.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게 중요하다. 실패해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더라도) 겪은 것은 성실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수많은 “내가 이런 일 있었거든!” 이 얘깃거리로만 소비되는 것이 안타깝다. 술자리에서의 영웅담 수준을 넘어야, 비로소 정보가 된다. 수교한 지 30년이다. 누적된 정보도 적지 않고, 경험도 많다. 그것을 꿰어내야 보석 같은 지식이 되고, 중국 실력이 된다. 개인과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이 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6.08 06:00

  •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중 관계는 과연 데탕트로 가는가?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미·중 관계는 과연 데탕트로 가는가?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2023.5.21/뉴스1 미·중 관계는 과연 데탕트로 가는가? 우선 최근 재개된 미·중 고위급 접촉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미·중 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는 관측이 대거 제기되고 있다. 미·중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한국도 늦기 전에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인들은 역사상 강대국 간의 세력 다툼에서 피해를 본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러한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도 미·중 관계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이라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미·중 관계가 ‘곧 해빙이 시작될 것’(thaw very shortly)이라 했다(2023.5.21).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만큼 그 발언에는 권위가 담겨 있다. 중국 측도 이 중요한 소식에 대해 응답했다. 그러나 중국의 응답은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G7 정상회의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공급망에서 중국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결정에 ‘G7은 중국 관련 의제를 고의로 조작하고(執意操弄) 중국을 먹칠하고 공격했으며, 중국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했다’(2023.5.20)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G7 모임을 ‘반중국 워크숍’(anti-China workshop)이라고 했다(2023.5.22).   도대체 미·중 사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 보도하는 그런 식의 극적인 데탕트는 아닌 것 같다.    ━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큰 틀에서 본다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고,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몽’의지에 변화를 보이지 않은 상태다. 즉 미·중 사이에는 근본적인 경쟁 구조와 국가 전략이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트럼프 시기보다 더 정교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처벌적인 단어가 주는 중국과의 단절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자기방어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언어적으로 순화를 꾀했다.     원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사용한 ‘디리스킹’이라는 단어를 이번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사이에 중국 견제를 둘러싼 의견 충돌을 해결했다. 유럽은 자국의 사활을 위해서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조정하면서까지도 ‘탈중국화’와 ‘전략적 공급망’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유럽의 언어를 수용하였고, 유럽은 안보 영역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공급망 구축에 동의함으로써 양측은 중국에 대항하는 ‘원팀’을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중 갈등을 불안하게 주시해왔던 ‘글로벌 사우스’(이전에는 ‘제3세계’로 불리었음)에게 주는 신호도 된다. 예를 들어, 이번 G7 정상회의에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코모로, 쿡 제도 등 8개국의 정상도 초청되었다. 특히 G20의 현 의장국과 차기 의장국인 인도와 브라질의 참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G7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흥 경제권 중 두 곳이자 미·중 진영에 속하지 않고 관망세를 취하는 세계 100개국 이상의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주자다. 이로써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시도에 대한 잠재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신흥 중견국 국가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결국 이번 G7 회의는 언어적 순화를 통해 대중국 견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외교적 성공작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 외교부가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사도 ‘디리스킹’용어는 ‘낡은 술을 새 병에 담은 것’(新瓶装舊酒)뿐이며 언어적 포장이라 깎아내렸다(2023.5.25). 그러면서 표현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脱钩)이고, 오히려 디리스킹이 ‘기만적인’(具欺骗性) 표현이라고 혹평했다.      ━  미·중 관계, 수사적 레토릭이 아닌 행동을 봐야   이런 맥락에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미·중 고위급 소통 재개는 지난해 바이든-시진핑 회담에서 합의했지만, 올해 초 ‘풍선 사건’으로 좌초된 소위 ‘가드레일’ 회복 노력의 하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것은 향후 양국 관계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 핫라인 재개통, 그리고 미·중 장관급 회동을 거쳐 올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참석하는 것으로 가시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양국 관계의 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미·중 갈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미국의 중국 부상 억제의 본질적 전략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꾸준히 자국의 첨단 산업 경쟁력을 향상하고, 중국과의 디커플링에서 올 수 있는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동맹 결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큰 틀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동맹이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이와 대척점에서 북·중·러 관계도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미·중 갈등이 주축이 된 근본적인 신냉전적 구조의 구축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전히 중국을 ‘주요 도전’(pacing challenge)으로 인식하고, 중국을 국제 질서에 대한 가장 심각한 ‘장기적 도전’(long-term challenge)으로 정의하며, 반중국 전선에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을 참여시켜 연합전선을 펼치는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라는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패러다임은 꾸준히 일관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결국 미·중 관계는 수사적인 레토릭이나 갈등 관리 회동을 보는 것보다는 행동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디리스킹’은 미·중 해빙 신호라기보다는 미국이 동맹을 견인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다. 바이든의 정교한 중국 때리기 전략은 안 바뀌었다.     한국은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미·중 관계를 평가할 때에는 단기적인 변화보다는 장기적인 전략과 동향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계속해서 전이해가는 국제 상황과 미·중 양국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며, 주도면밀한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2023.06.06 06:00

  • [중국읽기] “대중 교역, 이제 남은 건 반도체뿐?”

    [중국읽기] “대중 교역, 이제 남은 건 반도체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무역수지가 15개월 내리 적자다. 중국 요인이 크다. 우리 수출의 약 30%를 소화하던 대중 수출이 지난 12개월 연속 쪼그라들었다. 여기저기서 중국발 경보가 울린다.   돌이켜보면, 달콤했다. 지난 30여 년 중국 성장은 우리 경제에 축복이었다. ‘중간재(부품, 반제품) 교역’ 덕택이다.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 공장은 그걸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었다. 완제품은 ‘Made in China’ 마크가 찍혀 싼 값에 미국으로 팔려 나갔다. 한국도, 중국도, 미국도 윈윈이다.   반도체는 대중 무역흑자를 이끌어온 핵심 중간재 품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공장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대중 중간재 교역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렸다. 첫째 GVC(글로벌 밸류 체인)다. 1980년대 말 소련의 붕괴로 세계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리즘(세계화)이 확산됐다. 기업은 최적의 환경을 찾아 생산-유통 네트워크를 깔았고, 촘촘한 GVC가 구축된다. 중국은 그 흐름에 동참했고,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다. ‘세계 공장’ 중국의 탄생이다. 한국은 그 공장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둘째 기술 우위다. 중간재는 완제품보다 기술 수준이 높다. 중국은 이웃에서 고기술 부품을 가져올 수 있었으니 역시 행운이었다. 한국 기업은 중국에서 번 돈을 다시 기술에 투자했고, 산업은 고도화됐다.   그러나 달콤했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두 전제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무역 전쟁으로 GVC는 왜곡되거나 와해하는 중이다. 중국은 모든 생산 과정을 국내에서 완결하는 ‘홍색 공급망’ 구축에 열심이다. 한국 중간재가 파고들 틈은 점점 좁아진다.   기술 우위도 흔들린다. 현대자동차 베이징 공장은 한때 전체 부품의 약 80%를 한국에서 가져갔다. 이젠 모든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한다. 거꾸로 우리가 중국 부품을 수입해야 할 판이다. 업계에서는 “이제 반도체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온다.   타개책 역시 GVC와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GVC 확보에 경제외교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경제 없는 안보가 어찌 가능하겠는가. 안으로는 우리 중간재 기술이 다시 중국에 먹힐 수 있도록 기술·산업 정책을 짜야 한다. 중국의 공세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반도체 철옹성’을 몇 개 더 쌓아야 한다.   다음 달이라도 무역 적자는 흑자로 반전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중간재 교역’의 메커니즘 변화는 우리에게 10년, 20년을 내다본 근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6.05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