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미식의 극치인가...곤드레만드레 술 취한 새우(醉蝦)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미식의 극치인가...곤드레만드레 술 취한 새우(醉蝦)

    쭈이샤. 사진 셔터스톡 새우가 맛있는 계절이다. 새우를 보다 알차게 먹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흔하게 먹는 소금구이나 새우찜, 새우튀김과 칠리소스 볶음에도 군침이 돌지만 나라 밖의 다양한 새우요리를 참고하면 또 다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한국식인지 일본풍인지는 구분이 분명치 않지만 살아있는 보리 새우회, 오도리(おどり)도 특별하고 스페인풍으로 올리브오일로 마늘과 함께 새우를 요리한 감바스 알 아히요도 색다르게 구미를 자극한다.     뜻밖의 중국식 새우요리도 있다. 살아있는 새우한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든 후 먹는 방법이다. 그래서 요리 이름도 술 취한 새우, 중국말로는 쭈이샤(醉蝦)라고 한다.   새우한테 어떻게 술을 먹일까 싶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술독에 빠트리면 된다. 물론 새우 한 접시 먹자고 술독을 통째로 허비할 수는 없으니 먹을 만큼의 새우를 술이 담긴 냄비 같은 그릇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러면 술 그릇에 빠진 새우가 팔짝팔짝 뛰어오르는데 몇 분이 지나면 만취해 늘어진 것인지 혹은 술로 인해 운명을 달리한 것인지 잠잠해진다. 이때 꺼내어 껍질을 까먹으면 된다.     살짝 다르게 먹을 수도 있다. 조금 큰 새우를 도수 높은 독한 백주가 든 그릇에 넣는다. 그러면 역시 새우가 팔팔 뛰어오르다 잠잠해지는데 이때 술에다 불을 붙인다.   독주인 만큼 실험실에서 알코올에 불을 붙일 때처럼 파란 불꽃이 일다가 사그러드는데 이때쯤이면 새우가 살짝 데쳐지는 듯 익는다. 이렇게 익은 새우를 꺼내어 껍질을 까먹으면 된다.     술 취한 새우, 맛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해 새우를 좋아한다면, 생선회 특히 보리새우 회인 오도리를 즐긴다면 술 취한 새우 쭈이샤 또한 맛있다. 덧붙여 단순한 새우회의 맛을 뛰어넘는 풍미까지 있어 독특하다.   새우한테 먹이는 술은 주로 소흥주(紹興酒)다. 물론 이름만 흉내 낸 값싼 술인지 아니면 진짜 전통 명주인지에 따라 요리 가격도 달라지고 맛도 큰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소흥주는 향기가 강한 술이다. 새우를 독한 백주에 담가 먹는 쭈이샤도 마찬가지다. 술에 불이 붙을 정도이니 알코올 도수가 최소 50도를 넘는다. 그만큼 비싼 술인데다 중국 백주는 대부분 특유의 향미가 있다.     그렇기에 술 취한 새우, 쭈이샤는 신선한 새우 내지는 새우회의 맛에 더해 중국 술 특유의 향기가 스며들어 특이한 맛이 있다.   그런데 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 중에서는 잠수함 빼고는 다 요리할 수 있다는 중국이지만, 홍콩영화 취권(醉拳)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새우한테 거나하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후 먹을 생각을 했을까?   음식은 지리와 환경, 경제와 문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진화하고 발전하지만 일단은 실용적인 이유를 꼽는다.   강소성을 비롯해 양자강 주변의 옛날 중국 강남 지역에는 수산물과 술의 재료인 쌀이 풍부했던 만큼 새우나 게 등의 갑각류를 술에 절여 먹는 음식문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간장 게장처럼 중국에는 술 내지 술지게미에다 게를 담아 숙성시켜 먹는 술 취한 게, 중국어로 쭈이시에(醉蟹)가 있다. 명나라 이후 발달한 강소성의 특산 전통 게장이라고 하는데 강소성 뿐만 아니라 양자강 유역에 널리 퍼진 별미라고 한다.     민물 게인 방게를 잡아 쌀로 빚은 술에 담아 절이는데 이렇게 하면 귀한 소금을 아끼면서 게를 장기 보관할 수 있다. 더해서 게가 비리지 않고 향기로운 데다 게살의 신선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소금과 된장이 상대적으로 넉넉해 간장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간장 게장이 발달한 것과 닮은 꼴이다.   술 취한 게, 쭈이시에와 함께 술 취한 새우, 쭈이샤가 생겨난 것 역시 한국에서 간장 게장과 더불어 간장 새우장이 인기를 얻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등장 시기는 서로 다르다. 술 취한 게가 명나라 때 발달했다고 알려진 반면 술 취한 새우는 청나라 문헌에 집중적으로 보인다. 먼저 18세기 후반으로 청나라 전성기 때인 건륭황제 때 문장가이며 미식가로 이름을 날린 원매가 쓴 요리 관련 문헌 『수원식단(隨園食單)』에 술 취한 새우(醉蝦)라는 이름이 나온다. 강남의 청나라 고위 관리와 부유층에서 즐겨 먹던 요리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새우가 담긴 술 그릇에 불을 붙여 새우의 껍질이 빨갛게 될 때까지 익혀 먹는다고 했으니 요즘의 쭈이샤 요리와 비슷하다.   역시 청나라 때인 19세기 후반에 발행된 『수운각(繡雲閣)』이라는 고전소설에도 어느 부잣집에서 술에 담아 취한 새우를 꺼내어 쪄먹으니 맛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술 취한 새우를 익히지 않고 회로 먹는 방법은 1930년대에 사천성 성도의 한 고급음식점에서 개발해 상해와 홍콩 등지로 퍼졌다고 한다. 중국 부유층이 일제를 피해 성도와 중경 등지로 피난을 했던 시기다.   술에 절이는 새우 보관법이 미식으로 발전했지만 한편으로는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 일본 침략으로 핍박받던 시기를 새우가 대신 술에 취해 세월을 견딘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10.06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미·중 갈등과 대(對)중국 대응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미·중 갈등과 대(對)중국 대응

     ━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8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창 총리를 만나고 있다. 사진 CGTN 미국 지나 러몬드(Gina Raimondo) 상무장관이 지난 8월 말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7년 만의 일이다. 미국의 고위급 정부 인사들이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여 미·중간 대화를 가지지만, 서로의 심적 거리는 상당히 멀어 보인다.   조 바이든 미 정부가 지속해서 중국을 타격하면서도, 미국의 주요 장관들이 중국방문이라는 의외의 행보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미국 재무장관 옐런은 “중국 군사력 강화에 사용될 수 있는 특정한 기술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만 추구할 뿐, 무차별 디리스킹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중국은 ‘디리스킹’은 디커플링(decoupling)의 위장이며 어감을 부드럽게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오래된 술을 새 병에 담는 것(新甁裝舊酒) 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미국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에서 보이듯, 미국에 대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또한 상황에 따라 견제와 통제를 하면서도, 협상을 통한 완화도 추진하는 모순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글로벌 공급망 (Supply Chain Management) 재편과 위험성   미국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공급망 재편을 들고 나왔다.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전략도 동시에 실행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반도체산업과 이차전지 산업에 대해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우방국인 한국·일본·대만에 다양한 우대정책으로 투자유치를 통한, 첨단산업의 미국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추진 중인 내재화 분야의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은 중간재적 성격이 강한 품목들이다. 미래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데,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여 중국에 팔지 못하면, 생산품을 소화할 방법이 많지 않다.   중국은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체적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중국은 최고 기술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력갱생이 가능하다. 중국은 유럽이나 신흥국에 해외직접투자(FDI)로 대(對) 미국 압박을 피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미국과 비슷해지는 지점에 도달하면, 미국의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미래에 미국이 당면할 위기다.    ━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 문제는 없나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동맹과 원천기술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내세우며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를 강제했다. 조 바이든은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에 강한 환영을 표했지만,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는 공정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한다는 것은, 우리 산업의 공동화와 일자리 상실을 의미하고, 우리의 핵심 산업을 미국에 뺏길 위험이 있는 선택이다. 우리가 미국에 기여하는 것만큼, 미국에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    ━  탈(脫)중국 신중해야   지난 8월 개최된 한·미·일 3국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3국 간 안보 공조의 제도화를 선언함으로써, 중국을 국제적인 규범과 질서를 위반하는 국가로 규정했다. 우리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협약으로 높게 평가할 만하다.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경제는 디커플링, 내수 부진, 부동산 그룹의 디폴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아침에 망할 나라는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성장하는 거대 시장을 가진 나라다.   우리 경제가 중국 의존도가 높다고, 의도적으로 탈(脫)중국을 외치며 중국과의 교역을 줄이는 바람에, 경제가 저(低)성장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우리는 실익 없는 반중(反中) 정서의 확산으로, 적어도 성장률 1% 이상은 깎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한·중·일 안보동맹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에 보조를 맞추더라도, 선제적으로 이념을 앞세워 공개적으로 탈중국을 선언하거나, 중국과의 교역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하수의 전략이다. 중국이 미우면 중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진정한 복수다.   급속한 탈 중국화는 한국 경제에 직접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리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한다. 전(前) 정권 같은 대(對)중국 굴욕적인 자세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탈중국 전략은 치명적이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2023.10.05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일대일로(一带一路)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일대일로(一带一路)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사진 셔터스톡 중국이 ‘세기의 프로젝트’로 자랑하는 일대일로가 출범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일대일로는 많은 중국 대중에게 세계에 기여하는 포용적 모델로 인식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는 중국의 글로벌 정치‧경제‧군사 영향력 강화를 위한 트로이의 목마로 간주되기도 한다.   지난 9월 9일, G-20 정상회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 추진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명백히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대항마로 간주되고 있다. 일대일로는 정말로 트로이의 목마일까? 일대일로의 지난 10년간의 공과와 미래는 무엇일까?  ━  일대일로와 개발도상국   일대일로는 철도, 고속도로, 에너지 공급망, 항만과 같은 인프라 건설을 통해 과거의 실크로드처럼 동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것을 넘어서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로 확장되어 왔다. 특히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파키스탄, 서방국가들이 투자를 외면하던 아프리카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은 차관을 유치하면서 일대일로에 참여하였고 그리스, 헝가리와 같은 유럽 국가들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수혜국 명단에 포함된다. 지금까지 중국은 약 150여개 국가의 인프라 사업에 1조달러 이상을 주로 차관의 형태로 제공해 왔다.   투자는 서로 간에 이익을 주고받는 것이다. 투자 여력이 없는 국가가 외국의 자본을 통하여 인프라를 건설하고 자본 공여국도 일정 수준의 이익을 얻는 것은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해당 투자가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 및 군사‧안보 차원의 레버리지로 작용한다면 문제가 된다. 특히 인프라는 국제정치에서 중대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일대일로 수용국이 중국의 기술, 표준, 금융, 숙련 노동력에 의존할수록 자국의 이익을 중국에 종속시키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은 인프라 투자에서 국영 금융기관이나 국영‧민간기업에 주로 의존하지만 정부가 민간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 만약 중국이 글로벌 물류, 무역, 전략 시스템의 심장부가 되면 대외적인 영향력 투사가 용이해짐은 물론이다.   인프라 투자에 수반되는 비물질적인 측면의 권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과 개도국 정부 간의 협력을 통한 인프라 건설이 번영을 가져온다는 담론을 대량 생산하고 개도국 정부에도 간접적으로 정치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건설 권력과 담론 권력을 병행함으로써 중국은 불균형한 구도에서 개도국에 불리한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 구도는 서방이 개도국에 다른 대안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더욱 심화,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원, KIEL 국제경제원 등이 일대일로 참여 26개국 100개 프로젝트를 분석한 보고서(2021. 3)는 중국이 영향력 투사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 번째 특징은 비밀유지(confidentiality) 조항이다. 공여 조건, 심지어 차관의 규모나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과는 투명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두 번째는 집단적인 채무연장(collective rescheduling)의 금지이다. 대부분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채무국이 서방 주도의 파리 클럽과 같은 다자간 채무재조정 협약이나 이에 준하는 다른 채권국과의 협약 조건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포함시키고 있어, 사실상 양자 간의 비밀스러운 협약을 통해서만 채무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   조기 상환이나 프로젝트 취소 권한과 같이 채무국에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중국에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일대일로의 세 번째 특징으로,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은 중국이 정치‧경제‧안보 측면에서 개도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일방적, 강압적인 영향력 행사는 개도국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으며 개도국에 상호공존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중국의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CI)와 같은 담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중국의 딜레마이다.   위기가 닥쳐야 친구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법이다. 일대일로가 최근 당면한 채무과잉(debt overhang) 문제는 중국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문제의 처리 과정에서 타국의 주권이나 정치 체제를 존중해 준다는, 인권에 우선하여 각국의 독자적 주권을 강조하는 국가인 중국의 진면목을 개도국이 제고하게 될 것이다.  ━  일대일로가 직면한 난관   코로나 팬데믹은 개도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 교란도 개도국들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엄밀한 리스크 평가보다는 정치‧외교적 논리에 적지 않게 좌우되어 온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글로벌 경제침체 환경에서 채무 상환 위기에 봉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에디오피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잠비아와 같이 GDP 대비 부채 비중이 과도해 경상수지 위기에 처한 국가들은 모두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대외부채에서 큰 비중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 중국 기업들도 일대일로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어려워지고 중국 수출입은행과 같은 차관 공여 기관들도 채무과잉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紙의 평가에 따르면, 중국의 남아시아 투자액의 약 80%, 동남아 투자액의 50%, 중앙아시아 투자액의 30%가 회수불능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차관의 대부분이 2030년 무렵에 만기가 도래할 것이기에, 이미 내부적 부채 문제가 심각한 중국 경제에 일대일로가 멀지 않은 장래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서방 선진국들은 이미 80년대에 제3세계 외채 문제로 큰 홍역을 치룬 바 있다. 주로 10여 개국 서방 대형은행으로 구성된 채권자들은 부채의 약 1/3을 탕감할 수밖에 없었고 채무국들도 IMF의 구조조정 과정에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10년을 감내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막대한 채무과잉 문제를 거의 홀로 감당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상환유예 및 채무 재조정액은 400억불, 부채탕감액은 약 100억불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대일로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채무국과의 대규모 부채 재조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채를 소유권‧이용권으로 전환하거나 일부를 탕감하는 조치들이 병행하여 이루어질 것인데, 그 수준과 범위는 중국 및 채무국의 경제 상황, 미국‧서구의 인프라 투자 대안의 제시 등에 좌우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대일로가 어려움에 봉착함에 따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  일대일로의 방향 전환과 서구의 대응    과잉채무 문제가 해소되지 않더라도 중국이 일대일로 자체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방의 봉쇄에 맞설 국가 전략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향후 일대일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투자 규모를 줄이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의 관세 및 수출통제는 일부 국가들, 특히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강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제재를 우회하는 경로로 활용되고 중국 기업들의 진출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과 쿤밍 간 고속열차 노선 건설과 같이, 중국의 해외투자 및 인프라 건설은 동남아 전략 지역에 상대적으로 집중될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가 여전히 죽지 않고 변용되면서 글로벌 발전 및 문명 이니셔티브와 함께 중국의 성장 모델 신화에 봉사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유럽 등에 대한 투자는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의 아프리카에의 추가적 차관 공여는 거의 중단된 상태이고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들의 일대일로 이탈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기술 발전의 추세에 부응하여 우주 및 디지털 공간 장악에 보다 치중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대일로의 하위 범주인 우주 정보 회랑(Space Information Corridor)은 내비게이션 및 위치정보, 원격 감지 및 인공위성 서비스를 지상 인프라에 제공하려는 구상으로, 이미 베이더우 시스템을 출범시킨 중국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그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의 또 다른 하위 범주인 디지털 실크로드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공간의 장악은 정보 우위는 물론이고 데이터라는 중요한 경제‧안보적 자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전장(戰場)이 되어가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외 인프라 투자는 전통적인 인프라보다는 상대적으로 해저 케이블, 통신 네트워크, 데이터 센터, 스마트 시티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에 더욱 집중될 것이 예상된다. 투자 우선순위는 전략적 중요성의 변화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의 향후 행보는 서방의 대응에도 좌우될 것이다. G-20에서 제시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은 인도라는 중요한 국가가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G-7을 중심으로 일대일로의 대안으로 제시된 PGII(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 Investment)에서 진일보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회랑 구상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와도 연계될 공산이 크며, 지원 조건이나 투명성의 차원에서도 일대일로와의 차별화를 추구할 것이다. 즉, 개도국 인프라 지원은 단순히 지원 규모의 차원을 넘어, 규범적 측면에서도 서구 중심의 규칙기반 질서(rule-based order)와 중국식 개발모델 간의 경쟁이라는 성격도 가지게 될 전망이다.   글로벌 인프라 건설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세계적 추세에서, 우리도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G7 주도의 PGII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개발협력 기회를 창출할 잠재력이 크다. 우리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협력, 기술동맹에서의 위상 강화라는 열매를 맺기를 기대해 본다.   글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2023.10.03 06:00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월병(月餠)은 왜 달떡일까?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월병(月餠)은 왜 달떡일까?

    월병. 셔터스톡  ━  중추절 월병의 역사와 인문학적 의미     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다. 나라마다 명절은 같아도 명절음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는데 그럼에도 추석 송편을 참고해 중국 중추절과 월병의 역사를 보면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이름이다. 우리는 솔잎으로 쪄서 송편, 한자로는 송병(松餠)인데 중국은 달떡이라는 뜻의 월병(月餠)이다. 추석 떡을 솔떡이라고 한 것도 특이하지만 중국은 중추절 음식을 왜 달떡, 월병이라고 했을까? 보름달을 닮은 것 이상의 함의가 있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다. 그래서 때로 금박 입힌 월병이나, 귀중품을 소로 채운 월병이 뇌물로 오간다. 설날인 춘절 음식인 교자 만두와는 달리 중추절에는 왜 월병을 선물하는 것일까? 월병의 역사와 관련 있다.   전해지기로는 몽골족의 원나라 통치에 저항하는 한족들이 음력 8월 15일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하고 거사날을 적은 종이를 월병에 넣어 돌렸다. 이후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이를 기념해 중추절이면 월병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면서 중추절에 월병을 먹고 선물하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얼핏 들어도 엉터리지만 이 속설에는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원의 지배에 대한 한족의 분노와 함께 월병 및 중추절의 기원과 연결된다.   중추절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추석, 일본의 중추의 보름달(仲秋の名月) 베트남 텐쭝처럼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공통 명절이다.   보통 중국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중추절도 중원에서 생겨나 주변 나라로 퍼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나라마다 기원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명절로서 중국의 중추절은 특히 역사가 짧다.   먼저 중국 중추절은 달 숭배신앙과 추수감사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정착된 것으로 본다. 물론 고대에도 달 숭배 의식은 있었지만 명절로 쇠기 시작한 것은 대략 12세기 북송 때다. 북송의 수도 개봉의 풍속을 적은 『동경몽화록』에 비로소 보인다. 중추절이면 시장에 새로운 곡식과 과일이 나오고 사람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달구경을 한다고 기록했다.   이후에는 중추절 관련 기록이 많지만 그 이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5~7세기 중원의 풍속서인 『형초세시기』나 송나라 초인 10세기 말의 『태평어람』에도 다른 명절은 있지만 중추절은 나오지 않는다. 당나라 때 일본 승려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도 지금의 산동성에서 있었던 음력 8월 15일의 행사를 “다른 나라에는 없고 신라에만 있다”고 했으니 당나라에는 중추절 풍속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만큼 중추절에 월병을 먹은 것도 북송시대 이후일 것이다. 실제로 문헌에서 월병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은 남송 때인 13세기 말이다. 이 무렵 문헌인 『무림구사』에 월병이 보이고 비슷한 시기에 남송의 수도로 지금의 절강성 항주의 풍속을 적은 『몽양록』에도 나온다. 그렇기에 남송 무렵에 월병이라는 음식 이름이 굳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14세기 후반 원말명초에 중추절과 월병이 명절과 명절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고 한다. 월병 관련 속설에 뜬금없이 주원장이 등장한 배경이다.   물론 그렇다고 월병이 송나라 때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 뿌리는 당나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낙중견문』이라는 문헌에 당 희종이 그 해의 과거 급제자인 진사들에게 지금의 월병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압축하면 월병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당나라 때 황실에서 만들었던 고급 떡(빵)으로 궁궐 떡이라는 뜻에서 궁병(宮餠)으로 부르다 12세기 이전 북송 무렵에는 민간에 전해지면서 작은 떡이라는 뜻의 소병(小餠)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한다. 북송 때까지 월병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소병을 먹으며 마치 달을 씹는 것과 같은 맛이라고 노래한데다 북송 때 중추절이 명절로 되면서 떠오른 보름달을 감상하며 먹는 떡, 그리고 둥근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는 뜻에서 달떡, 다시 말해 월병(月餠)이 됐다.   참고로 음력 8월 15일 같은 날에 먹는 우리 송편이 달떡이 아닌 솔떡, 송편인 이유는 추석의 뿌리가 중국 중추절과는 다르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12세기 북송 때 시작된 중국 중추절과 달리 우리 추석은 신라 때 가배를 비롯한 삼국시대 부족의 단합 행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보름달을 감상에 방점을 찍는 중국 중추절 음식과 달리 달떡일 필요도 없고 달을 닮아 둥글 필요도 없다.   한편 중국의 중추절 월병 선물 풍속에도 나름의 배경이 있다. 월병의 기원은 당나라 궁중 식품인 궁병, 내지는 당시 서역에서 전해진 고급 식품으로 본다.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하사품 내지 답례품으로 선물할 가치가 있다. 덧붙여 둥근 모양의 월병은 둥글 단(團) 둥글 원(圓)자를 써서 중국에서 화합과 단합을 뜻하는 단원(團圓)의 상징이다. 설날인 춘절에 가족이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화합을 다지는 단원반(團圓飯)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데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9.29 06:00

  • [중국읽기] ‘월드 클래스’ 과학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나라

    [중국읽기] ‘월드 클래스’ 과학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나라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미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가 발표하는 ‘네이처 인덱스’는 국가별, 연구소(대학)별 연구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세계 정상급 82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분석해 집계한다. 지난해 이변이 일어났다. 중국이 미국을 따돌리고 네이처 인덱스 1위에 올랐던 것. 과학기술 분야 ‘월드 클래스’ 논문을 가장 많이 산출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뜻이다.   생소한 얘기는 아니다. 중국은 2017년 국제 유력 학술지 논문 수에서 미국을 추월했다.(미국 국립과학재단 발표) 질적으로도 손색없다. 중국은 작년 세계 상위 1% 피인용 과학기술 논문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일본과학기술정책연구소) 네이처 집계는 이를 확인했을 뿐이다.   중국 장쑤(江蘇)성 반도체 공장 R&D 센터의 청년 연구원. [신화통신] 결국 돈이다. 중국은 지난해 대략 5260억 달러를 연구 개발(R&D)에 쏟아부었다고 네이처는 분석한다. 미국(6560억 달러)을 따라잡을 기세다. 규모보다 그 쓰임에 더 눈길이 간다. 네이처는 미국 논문의 상당 부분이 ‘뜬구름’ 잡는 데 쏠리고 있지만, 중국 논문은 현실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가 말해준다.   2021년 세계 AI 논문의 40%가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미국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리포트’) 2위 미국은 10%에 그쳤다. 지금 중국 학계의 관심사는 우주개발, 반도체, 양자 컴퓨터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분야 중국 논문이 급증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미·중 갈등은 양국 R&D 경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학 스파이’를 몰아내겠다며 ‘차이나 이니셔티브’ 정책을 추진했다. 이 조치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던 유력 중국인 과학자들이 대거 귀국길에 올랐다. 2021년에만 2621명이 보따리를 쌌다. 중국 논문이 급증한 것은 이들 ‘물 건너온 거북이(海龜)’의 공이 크다. 중국은 창업자금, 주택, 자녀교육 등의 지원 프로그램을 짜 놓고 ‘바다거북이’를 유인한다.   중국은 청년 과학자에 주목한다. 지난달 과학기술 지원의 45% 이상을 청년 연구원(학자)에게 할당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청년 과학기술 인재 배양 및 활용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덕택에 ‘중국 R&D센터’에서는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국가의 핵심 연구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원의 80% 이상이 45세 이하 청년 과학자들이다.(중국 과기부 통계) 이들이 지금 달 탐사를 기획하고, AI를 연구하고,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R&D 예산 축소로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9.25 00:15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닭발인 줄 알았더니 봉황의 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닭발인 줄 알았더니 봉황의 발

    사진 셔터스톡 ‘봉황조’라는 중국 요리가 있다. 현지의 고급 음식점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구해 먹는 그런 음식도 아니다. 시장이나 평범한 음식점에서는 오히려 쉽게 먹을 수 있다.     봉황은 용과 더불어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음식 이름 앞에 이런 대단한 이름이 수식어로 붙었으니 어떤 음식일까 궁금해 주문하면 자칫 당황스러울 수 있다. 봉황조(鳳凰爪)라는 이름 중에서 손톱 조(爪)라는 한자가 익숙하지 않기에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켜놓고 보자고 하면 생길 수 있는 해프닝이다. 접시에 수북이 쌓인 닭발이 나온다. 물론 닭발을 좋아한다면 전혀 문제 될 바가 없다.   한국에서도 닭발을 즐겨 먹지만 대부분 중국인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별식으로도 먹지만 몸에도 좋다는 등 나름대로 의미도 부여하며 즐긴다. 중국인들이 닭발 맛에 푹 빠진 역사는 꽤 깊다. 무려 2500년 전에도 닭발에 심취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주인공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왕이다. 닭발을 너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앉은 자리에서 1000개를 먹어 치웠다고 한다. 닭은 다리가 두 개이니 한 번에 500마리 분량을 꿀꺽 해치운 셈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먹었을까 싶지만, 진시황 때 여불위가 썼다는 『여씨춘추』에 나오는 이야기다.     닭발이 아무리 맛있기로서니 한 번에 1000개를 먹었다면 식탐에 빠져 나라를 말아먹었거나 아니더라도 어딘가 정신줄을 놓은 임금이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제나라 왕이 엄청난 양의 닭발을 먹은 데는 사연이 있다.   지금도 그다지 다를 바는 없지만, 옛 문헌을 보면 중국인들 특별히 닭발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족발이라는 족발은 대부분 각별히 여겼다. 일단 돼지족발도 그중 하나다. 돼지족발을 제물로 삼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소원을 비는 음식으로도 먹었다.   과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당나라에서는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으로 쓰였다. 돼지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를 빌었다.   곰 족발인 곰발바닥 웅장(㷱掌)은 과거 중국에서 최고의 산해진미로 꼽았던 요리다. 상징적 의미이기는 하지만 맹자가 물고기도 좋고 곰발바닥도 좋지만 둘 다 먹을 수 없다면 자신은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맹자』에 나온다. 여기서 물고기는 단순한 삶(生), 웅장은 의(義)를 상징했으니 맹자가 당연히 곰 발바닥을 택했겠지만 바꿔 말하면 당시에는 곰발바닥이 그만큼 가치가 높았던 산해진미였다는 소리다.   지난번의 언급처럼 낙타족발 또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고 두보도 손님에게 낙타족발 곰국을 권한다고 노래했을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도 신강성 등의 중국 서부와 아랍, 중앙아시아에서는 최고의 손님 접대 음식으로 꼽는다니 낙타족발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슴족발(鹿蹄)도 즐겨 먹었다고 하고 청나라 말의 서태후는 오리발(鴨掌)의 맛에 빠졌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고금의 중국인들, 왜 그토록 족발 요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자면 종류만 다를 뿐 족발 사랑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의 공통적 현상이다. 문화권마다 나름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옛날 사람들은 동물의 정기는 모두 발바닥, 즉 족발에 모인다고 생각했다. 네발 달린 동물이나 두 발로 걷는 짐승 모두 육중한 몸무게를 가느다란 다리로 지탱하니 모든 기와 혈이 족발에 집중되고 그렇기에 족발을 먹으면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그 동물의 정기를 통째로 흡수하는 것이니 양생(養生)에 도움이 되고 보신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닭발은 더더욱 보통 음식이 아니다. 가녀린 발목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몸통을 지탱해야 하니 어떤 족발보다도 더 많은 정기가 모여 있을 것 같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왕이 닭발 1000개를 먹었다는 고사도 이와 관련 있다. 막말로 닭발에 환장한 임금이어서가 아니라 맹자의 곰발바닥처럼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제왕은 사실 미식에 빠져 맛있고 진귀한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던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단점은 보완해서 천하의 패권을 장악했던 군주다. 다른 사람의 경륜을 철저하게 흡수해 자신과 나라를 살찌웠다는 것을 에센스의 집결체로 여겼던 닭발에 비유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닭발은 이래저래 평범한 음식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지금도 닭발 요리를 임금을 상징하는 전설의 새인 봉황의 발(鳳凰爪)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고대에는 닭이 특별한 조류였기 때문인데 일각에서는 봉황의 원형을 닭, 그것도 꼬리 긴 닭인 장미계(長尾鷄)에서 찾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옛날 동양에서는 닭발을 한음지척(翰音之跖)이라고 했다. 한음은 『주역』에서 닭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 내는 소리라고 했다. 어딘가 봉황의 날갯짓 같은 상서롭고 신비한 이미지다.     척은 발바닥이라는 뜻이니 한음지척은 곧 닭발이다. 닭발 하나 놓고 주역까지 동원해 가며 어마어마한 작명을 했다. 왠지 닭발 맛까지 심오해지는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9.22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과 서양의 상식은 어떻게 다른가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과 서양의 상식은 어떻게 다른가

    사진 셔터스톡 중국인의 상식! 바로 ‘合情合理合法’(합정·합리·합법, 인정에 맞게, 도리에 맞게, 법에 맞게)다. 우리말로 “상식적으로 합시다”라는 뜻이다. “合情合理合法 하게 합시다”는 중국에서 비즈니스 협상이든 일상생활에서든 자주 듣는다.   중국인도 ‘상식적으로’ 행동한다. 당연히! 그런데 그 ‘상식’이 어딘가 다르다. 서양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렸다’는 단정은 틀렸다.   상식적으로 일을 처리하자는 제안은 당연히 동의가 된다. 그런데 그 상식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순서가 있다. 정(人情, 인정)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이 도리(道理), 맨 마지막이 법(法)이다. 서양은 그 순서가 ‘법, 도리 그리고 인정’일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늦게 들이대는 잣대는 법인 데 비해, 서양에서는 법이 맨 앞이다.  ━  중국의 ‘정(情) 〉 이(理) 〉 법(法)’ 과 서구의 ‘법(法) 〉 이(理) 〉 정(情)’   순서가 거꾸로다. 어떤 일을 판단 혹은 실천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사고 틀을 운용한다. 바로 윤리와 합법이다. 위법은 아닌지, 혹은 적법하다 하더라도 윤리적으로는 맞는지다. 쉽게 말해서 ‘상식적이냐’를 따져 본다. 중국인에게 상식적인 행위란 ‘인정과 도리와 법에 맞아야’ 한다. 세 가지 기준틀 중에서 앞의 인정과 도리는 윤리다. 중국도 우리 및 서구와 다르지 않지만 순서가 다르다. 이 지점에서 갈등의 실마리는 얽히고 갈수록 꼬여만 가는 상황이 생긴다. 서로가 자신의 ‘상식’에 비추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식의 적용은 같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  「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변호사의 사회적 위치가 높지 않았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된다.   변호사는 현대 중국어로는 ‘율사(律師 법률 선생, 법률 전문가)’라고 하지만, 이런 호칭은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訟師(소송을 하는 전문가)라는 정식(?) 명칭도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訟棍(소송을 하는 놈. 몽둥이라는 ‘棍’은 멸칭을 뜻하는 접미사다. 우리말의 ‘양아치, 벼슬아치’등의 ‘치’와 유사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또는 律棍(법률하는 놈)이라는 멸칭으로 불렀다. ‘지식을 이용해서, 강자에게 아부하고 사회적 약자를 핍박하며 사익을 취하는 부류’로 치부되었다.    근대화되며 지식인층에 정통적인 법조인들이 나타났지만, 문화대혁명 등의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 이런 이들이 거의 소멸하였다고 한다. 중국 현대법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추이퉁주(瞿同组)같은 학자들도 조국을 위해 귀국했다가 문혁기간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지금 변호사들의 지위와 사회적 역량은 불과 수십 년 전과 비교한다면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   ━  정리법(情理法)은 영역을 막론하고 작동한다.   쌍방이 서로 맞는다고 주장할 때, 서구(및 우리)는 법에 의뢰하여 가장 공정한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자 이제 큰 틀에서는 합의가 되었으니, 이제 변호사끼리 얘기하게 하자”고 했더니 중국 측에서는 “이게 뭐지? 법대로 하자고?” 하며 불쾌해했다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심지어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마저도 종종 있었다. 비록 과거의 사례지만 아직도 우리와 다르다. 이런 전통적 사유 방식은 일상생활과 비즈니스뿐 아니라 국제적인 교류에서도 중요하게 작동 중이다.   ‘공정을 위해 법에 자문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는 중국인은 “뭐지? 끝까지 가 보자는 거야?” 하며 불쾌해하고 심지어 분노한다. 私了(사료. 개인적으로 해결하다), 즉 당사자끼리 합의 보는 것을 가장 먼저 선택한다. 지금은 법을 자주 찾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중국인들이 아직까지도 가장 선호하는 것은 私了다. 和為貴(화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귀하다)의 관념은 중국인의 전통이며 아직도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물론, 중국인들도 법에 의뢰한다. 하지만, 그것은 맨 나중이며, 동시에 법에 호소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한다. 우리도 우선 합의를 하다가 안 되면 법으로 간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중국인이 ‘법’을 찾을 때의 심정에 있어서 그 거북함과 속도는 우리와 절대로 같지 않다. 법으로 해결하면 후에 여러 가지 후유증이 있다. 불쾌하거나 나쁜 기억은 두고두고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있는 한, ‘報(대갚음 한다)’라는 중국 문화에 의해 뒤끝을 염려해야 한다.    어떤 중국 학자는 중국 문화의 특징은 ‘報’라는 한 글자로 귀결된다고도 한다. 은혜(신세)도 갚고, 나쁜 것도 되돌려준다. 법에 의뢰하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전에 한 번쯤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중국인을 대하는 지혜’다.  ━  “원칙은 있다. 우리의 원칙은 개별 처리의 원칙이다!”   세칙(細則)은 ‘합정 합리 합법’이다.중국철학자(曾仕强)의 말이다. 풀어보면 “원칙을 준수한다. 그리고 그 원칙은 분명하다. ‘사안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개별 적용’을 하는 원칙”이다. 그러다 보면 원칙이 너무 많아진다. 그것도 원칙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은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많이 이상하다. 이런 식의 ‘상대방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원칙’은 ‘원칙이 없다’는 것과 결국은 매우 유사해 보인다.   중국 사회학의 태두인 페이샤오퉁(費孝通)은“중국인들은 나와 무슨 관계인가를 알고, 그에 맞는 판단 기준을 들이댄다(〈鄉土人間(향토인간)〉)”고 일갈했다. 소위‘꽌시’가 가치 기준을 정한다는 말이다. 꽌시는 때때로‘인정(人情)’과 동의어로도 쓰인다. “인정과 꽌시는 나누기 어려울 만큼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두 용어의 의미는 때로는 심지어 서로 호환되기도 한다. ‘我們之間沒有人情(우리 사이에는 인정이 없다)’과 ‘我們之間沒有關係(우리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는 같다(金耀基, 대만대 교수)”   다른 글을 소개한다. “나는 OO인들이 타인에게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나 가족들에게는 해주지 못할 일이 없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아무런 주의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안중에 없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정(情)으로 친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필자가 강연 중에 이를 보여주고, 여기에서 “OO”는 어느 나라일까요?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답을 안 했다. “중국인이라는 게 뻔한데, 왜 묻지?”라는 표정이다. 그런데, 문장 중의 ‘OO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정답은 ‘한국인’이다. 글을 쓴 작자는 모 대기업 한국 본사에서 근무했던 미국인이다(〈푸상무 이야기〉).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인도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 대한 이중잣대가 있다’는 말이다. 소위 ‘인정(꽌시) 주의’ 문화다.  ━  서구 경제학도 ‘합정(合情. 인정에 맞다)’을 중시한다?   케인스는 경제가 합리적, 이성적 판단에서만 돌아가지 않고 비경제적인 본성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레몬 시장 이론’으로 유명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는 (중국어 책 이름은 〈동물정신〉)에서 경제가 운행되는 것과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 동기와 이성적 반응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히려 ‘경제적 동기와 비이성적 반응’, ‘비경제적 동기와 이성적 반응’, ‘비경제적 동기와 비이성적 반응’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제적 동기 + 비이성적 반응/ 경제적 동기 + 이성적 반응 (경제학에서 말하는 판단 영역) 비경제적 동기 + 비이성적 반응/ 비경제적 동기 + 이성적 반응초점을 칼럼의 주제에 맞춰 보면, 중국의 기업이나 중국인을 대할 때 상대방(혹은 시장)이 ‘경제적 동기와 이성적 반응’의 영역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라고만 상정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좀 더 말해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적으로 행동할 것이고, 우리와 중국인의 상식도 인간인 이상 비슷할 것이라는 ‘단정’은 잠시 보류해야 한다. ‘사람은 비이성적이다. 여러 심리 문제가 판단에 영향을 미치므로, 경제학은 반드시 심리학과 결합해야 한다’는 행위경제학의 관점도 있다.상대방의 합리와 이성이 우리와 다를 수도 있고, 또 고려하는 순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소위 글로벌이라는 틀, ‘글로벌 상식(?)’으로만 중국을 재단하려는 했던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겠다. 중국인들은 어떤 사고틀을 갖고 있는지를 좀 더 공부하고, 실제 현장에서 이 지식들을 제대로 활용했어야 했다. “범죄의 유형을 파악하기보다는, 범죄자의 유형을 파악해야 한다”. 오래전의 기억이라 문장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사건 또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를 하려면 그 행위의 ‘형태’보다는 ‘행위의 주체’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중국인의 사유 방식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비단 중국인들과 일상생활에서의 사귐뿐만이 아니라 보다 큰 차원의 협상에서도 중요하다. 협상은 논리가 풀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판단과 실행은 사람이 한다.    중국인의 상식과 그 사유방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문 서적을 통해서 그리고 과거 사례와 경험을 통해서 끈기 있게 공부해야 한다. 숫자와 통계는 물론 중요하지만, 정량(定量)적인 것 외에 맥락에 감추어진 정성(定性)적인 것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고 그런 결과물 역시 중시하고 축적해야 한다. 사실로 드러난 것 외에도, 그 문화 속의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그때 왜 그렇게 생각하고 실행했을까를 정성(定性)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황은 그때마다 다르고 변할 수 있지만, 그래도 ‘덜’ 변하는 것은 그 상황을 만들어내는(혹은 그 상황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중국인의 사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핵심일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 근거 없는 오만일까? 하지만 설사 어렵다 해도 오랜 역사적 교류와 경험으로 인해, 중국인에 대한 ‘공부와 이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식’을 축적하는 노력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게 되면 지금의 사안과 상황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혜’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가위바위보의 고수는 ‘상대방이 무엇을 낼 것’인지를 예측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진정한 고수라면, 내가 무엇을 낼 거라고 ‘상대방이 예측할 것’을 예측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9.21 06:00

  • “중국은 세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중국은 세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중국이 ‘매우 드라마틱한 장기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던 중국의 모습이 아니다.” 이탈리아 외교관 출신 중국 전문가 프란체스코 시시(Francesco Sisci)의 현 중국에 대한 시각이다.   중국 정치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1989년에 베이징의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에 입학한 후, 그는 30여 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보냈다. 그의 깊은 연륜과 경험은 많은 이들이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하였다.   20여 년 전, 필자는 베이징에서 시시를 처음 만났다. 커피를 마시기로 약속했는데, 그의 비서가 “미국 대사와의 면담이 연장되어 조금 늦을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당시 베이징에서 주재하던 서양 외교관들이 중국의 정세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자주 찾는 인사였다.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그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과 변동하는 미·중 관계에 관해 물었다. 이탈리아 외교관 출신 중국 전문가 프란체스코 시시(Francesco Sisci). 사진 필자제공 세계가 중국의 경제 상황을 보며 우려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경제 수치에 주목하는 데, 이것 못지않게 베이징에서 직접 살면서 피부로 느낀 것은 많은 중국인들이 마치 아직도 코로나 19 충격에서 헤어나지 않는 듯한 심리 공황 상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해 불안한 것이다. ‘리오프닝’ 후에 베이징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지만, 내가 알던 생기가 가득 찼던 도시가 아니라 무기력한 침체된 분위기다. 3년간 코로나 봉쇄를 겪은 중국 사회의 내상(內傷)이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제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우선 경제가 정상을 되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기업 활동을 장려하겠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안심하지 않는다. 시진핑 치하 속 ‘반부패 운동’의 일부로 민영 기업들은 탄압을 받았고 근년에 더욱 심했다. 코로나는 끝났지만, 중국 사업가들은 투자하기를 주저한다. 코로나 봉쇄를 겪고 나니 앞으로 또 뭔 일이 생기면 유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까 불안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삶의 불안감이 늘어가니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고 지갑 문을 닫은 채 오히려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더 한다. 코로나가 끝났음에도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이 적극적이지 않다.      ━  중국 시민들 ‘코로나 봉쇄’ 트라우마 아직 극복 못해,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 관건   중국 경제 ‘위기설’이 퍼지면서 해외에서는 시진핑 권력 이상설도 나오고 있다. 시진핑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설 수 있는 반대세력은 부재하다. 하지만 ‘대체 요즘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는 퍼즐은 계속 커지고 있다.     우리가 시진핑을 잘못 판단한 것인가? 시진핑을 잘못 판단하기는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2007년 여름철 중국 최고지도부 베이다이허 비공개회의에서 시진핑은 예상을 깨고 리커창에 앞선 서열 6위로 낙점받으면서 차기 최고지도자를 예약했다. 당시 공산당 원로들은 시진핑이 원로들의 노선을 ‘따르는(obedient)’ 성품을 갖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권력을 쥔 시진핑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시진핑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중국 최고지도자를 뽑는 공산당 원로들도 시진핑을 잘못 봤지 않는가?   시진핑은 누구인가? 1979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 텍사스의 로데오 경기장에 등장한 덩샤오핑(鄧小平)을 기억하는가? 덩샤오핑이 모자를 흔들자 관중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의 카우보이 모자는 정치적 상징이었다, 중국 인민들에게 ‘이제 우리도 미국처럼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 상징을 부정하였다. 그는 ‘우리는 미국보다 더 우월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중국인들에게 자긍심을 고취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시진핑의 가장 큰 잘못은 코로나 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2022년 5월 미국에서 코로나 사망자 수가 백만명을 돌파하자 중국 관방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미·중 백신 경쟁이 시작되었다. 서방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의심하며, 중국의 백신을 선전하려 했다. 이 결과, 중국은 서방 백신을 자국민에게 접종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중국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중국 정부는 경기부양 정책을 망설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가? ‘리오프닝’을 했으니 이제 새롭게 시작을 하는 것이라고 국민들과 사업가들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중국의 주요 문제는 경제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다. 중국은 정치적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을 통해 개인 재산 보호, 기업 활동 보장, 중국 위안화 환율 시장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결국 중국에서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다.      ━  경제 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개혁 필요     사실 중국의 정치 개혁은 오랜 논쟁 대상이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정치개혁을 원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개방하면 중국이 미국보다 체제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결국 미국에 대한 불신이 큰 문제다.   중국이 현재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정치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공산당 권력이 약해질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오래된 딜레마로 다시 환원된다. 다른 이유도 있을까? 공산당의 일부에서는 미국 역시 중요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국 사회의 심한 좌우 진영 분열,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리더십의 약화, 그리고 트럼프의 재당선 가능성을 지적한다. 그들은 어떻게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민주주의 진영을 이끌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은 중국 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강화한다. 사회주의도 문제지만 민주주의도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다음 행보는? 중국인들은 매우 실용적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 대선 직전에 큰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나름대로 경제 회복 노력을 일정하게 계속하면서 사실상 미국 대선의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미국은 내전 상태로 들어가고 미국 동맹 체제는 와해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중국의 상황도 좋지는 않지만, 그들은 미국이 먼저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어려움을 겪길 기다리면서 중국 경제가 먼저 더 큰 문제를 겪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현재의 중국 상황은 매우 어려워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도 되찾아야 한다. 중국 정부는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 선거의 결과만을 기다리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2023.09.19 06:00

  • [중국읽기]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의 결정적 ‘하자’

    [중국읽기]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의 결정적 ‘하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화웨이 5G폰, 드디어 샀어. 그립감 좋고, 대만족~ 근데 하나 문제가 있어. 통화할 때 잡음이 들려. ‘야오야오링씨엔~’이라는 소리가 반복돼….”   화웨이 신제품 ‘메이트 60 프로’의 불량 신고다. 중국 인터넷에는 지금 이 같은 불만이 쏟아진다. “자동차 운전 중 전화를 받았는데 내 폰에서도 ‘야오야오링씨엔’ 잡음이 들려, 불량품인가 봐….” 심지어 X(옛 트위터)에서도 하자 불만이 분출한다.   화웨이폰에서 잡음이 들린다고? 물론 아니다. 언어유희다.   스마트폰 신제품을 설명하는 위청둥 화웨이 소비자 사업군 CEO. [화웨이 영상 캡처] 화웨이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위청둥(余承東)은 소비자 사업군 CEO다. 핸드폰 신제품 발표회 때 꼭 그가 무대에 오른다. ‘화웨이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신제품 설명회에서 위청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바로 ‘야오야오링씨엔(遙遙領先)’이다. ‘화웨이 제품이 경쟁 제품을 멀리 따돌리고 앞서간다’라는 뜻이다.   ‘메이트 60 프로’에서 ‘야오야오링씨엔’이 잡음처럼 들린다는 건 풍자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품질’이라는 위청둥의 표현을 꼬아 만든 중국 특유의 말장난이다. 애국심에 불타는 청년들이 ‘하자 놀이’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제재를 뚫고 이뤄낸 쾌거’를 그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메이트 60 프로’를 얘기할 때 7나노칩에만 관심을 둔다. 중국이 어떻게 미국 제재를 뚫고 기술을 확보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건 중국 자급률이 90%를 넘는다는 점이다. 그러고도 아이폰과 갤럭시를 능가하는 5G 다운로드 속도를 구현하고, 최고 수준의 사진·동영상·3D 인식기술을 갖췄다.(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실제 측정) 핸드폰에 관한 한 중국은 이제 완결된 자국 내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바로 ‘기술 블록(bloc)화’다. 그들만의 표준을 구축하고, 공정 기술을 완성하는 자립 구도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로 자체 개발한 ‘하모니(鴻蒙)’를 쓴다. 일찌감치 구글 안드로이드를 버렸다. ‘하모니’는 핸드폰뿐 아니라 자동차, 공장기계 등과 연계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메이트 60 프로’가 그렇듯 거대 ‘애국 시장’이 이 블록을 받쳐준다.   우리와 직결된 얘기다. 블록은 외부와의 단절과 배제의 다른 표현이다. 블록이 높아질수록 중국 시장은 우리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중간재로 얽힌 중국 기업과의 협력에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잡음 ‘야오야오링씨엔’은 그 흐름을 속삭이듯 말해준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9.18 00:23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사위에게 씨암탉 대신 낙타 족발?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사위에게 씨암탉 대신 낙타 족발?

    사진 바이두 백과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중국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음식이 적지 않다. 그래서 자칫 편견을 갖고 접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큰 결례를 할 수도 있다. 평소라도 실례지만 만약 비즈니스 식사라면 혹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중국에서 서부라고 하는 신장(新疆)웨이우얼 자치구의 성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식탁 한가운데 큰 접시가 놓였는데 접시 한쪽에 크림으로 쌓은 산이 우뚝 솟아 있다. 눈 덮인 설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 크림 재료를 고려호(高麗糊)라고 부른다고 했다. 호(糊)란 곡식으로 쑨 풀, 혹은 되직한 죽이니 고려의 풀죽이라는 의미다. 알고 보니 계란 흰자위를 휘저어 크림처럼 만드는 머랭의 일종인데 왜 머랭에다 엉뚱하게 고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접시 한쪽의 설산을 멀리 머리로 두고 그 아래쪽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야들야들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고기가 가지런히 정리된 채로 담겨 있다. 얼핏 보기에 질 좋은 돼지 족발 내지는 편육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우리 음식과도 비슷해 군침이 돈다. 설산 아래 그리고 고기 옆에는 신선해 보이는 녹색의 채소와 버섯 종류가 소담스럽게 놓여 있다. 고기에 곁들여 먹는 채소다.   식사 장소가 우루무치였던 만큼 마치 중앙아시아 톈산(天山)산맥과 주변의 초원, 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식탁 위 접시에 재현해 놓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선뜻 젓가락을 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치 잘 꾸며놓은 작품을 흐트러트리는 기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처럼 끌리듯이 연신 “맛있다” “하오츠(好吃)”를 외치며 먹었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맛은 돼지 족발 같았지만 장소가 이슬람교 문화의 영향이 남아 있는 우루무치였기에 돼지고기는 아닐 것 같아 주인에게 어떤 고기인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낙타 족발이라는 것이다. 혹시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식탁 위에 놓인 메뉴를 들여다보니 설산타장(雪山駝掌)이라고 적혀 있었다. 눈 덮인 산과 낙타 발이라는 뜻이니 낙타 족발이 분명했다.   순간 움찔했다. 낙타를 소나 돼지와 같은 식용 가능한 가축이고, 고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데다 그것도 살코기가 아닌 족발이라니 과연 먹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한참을 맛있게 먹다가 음식 이름을 듣고 갑자기 젓가락을 놓기도 남사스럽고 또 초청한 주인과 현지 문화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기에 눈 질끈 감고 먹기는 먹었다. 다만 젓가락이 가는 빈도수는 현저하게 줄었고 내내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낙타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꽤 충격이었는데 그 편견이 깨진 것은 한참 후였다. 그 편견은 사실 다른 나라, 다른 음식 문화권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물원을 벗어나면 낙타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낙타가 음식이나 요리 대상이 아니지만 낙타가 교통수단이었고 주요 가축이었던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는 다르다. 대형 가축인 낙타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기, 이를테면 옛날 우리나라의 소고기처럼 어쩌다 먹는 값진 고기로 여겼다.   그중에서도 낙타 족발은 예전 우리 장모님이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 주셨던 것처럼 중동과 중앙아시아 장모님이 사위에게 먹였던 음식이고 귀한 손님에게 대접했던 요리였다.   그렇기에 예전 실크로드에 있던 간쑤(甘肅)성과 위구르 민족의 신장에도 이런 전통이 남아 있어 낙타 족발은 지금도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전통요리로 꼽힌다고 한다. 낙타고기가 아무리 낯설어도 중국 서부와 아랍, 중앙아시아에서 편견을 갖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청나라 때 중국에 병합된 신장에서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중국에서 낙타 족발은 옛날에도 범상치 않은 요리였다. 특히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당나라 시대 문헌에 낙타 족발 요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를테면 당나라 대표 시인 두보는 한 시에서 “손님에게 낙타 족발 곰국(驼蹄羹)을 권한다”면서 “서리맞은 오렌지가 향기로운 귤보다 맛있다”고 읊었다. 당나라에서도 낙타 족발이 손님 접대 요리였고 동시에 당시 남국의 귀한 과일이었던 귤, 오렌지와 함께 식탁에 놓일 만큼 값진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당 현종과 양귀비도 별궁인 화청궁에서 낙타 족발 요리를 먹으며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사실 이들이 먹었다는 낙타 족발은 단순한 족발 찜이나 국이 아니라 전복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과 버섯 등으로 요리한 것이니 충분히 황제의 요리가 될 만했다.   따지고 보면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거나 초원에 기반을 둔 북방민족이 세운 역대 중국 황실 요리에는 낙타 족발 요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예를 들어 원나라 황제의 양생을 위해 쓰인 요리책인 『음선정요』에도 역시 낙타 족발 요리가 실려 있다.   간쑤성과 신장의 명품요리라는 낙타 족발 요리, 설산타장은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과 활발하게 이뤄졌던 교류의 증거이고 흔적이다.   역사와 문화를 알고 보니 낯설고 이질적이었던 낙타 족발 요리가 또 다르게 느껴진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9.15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중국의 핵심 광물 무기화와 디커플링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중국의 핵심 광물 무기화와 디커플링

    중국은 지난 8월 1일부터 반도체,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중요 산업에서 필수적인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이들 광물의 수출은 상무부의 허가가 필요하며, 수출업자들은 해외 구매자에 대한 보고 의무를 진다. 중국 정부는 해당 통제 조치가 중국의 국가 안보에 이익이 될 것임을 언급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대한 맞대응 성격을 가짐을 은연중에 시사하기도 했다. 두 핵심 광물은 중국이 세계 시장의 약 80%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중국도 미국의 봉쇄 정책에 대한 반격 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과시한 셈이다. 중국은 지난 8월 1일부터 반도체,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중요 산업에서 필수적인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수출통제 시행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 8월 18일 한‧미‧일 정상들의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에 공급망 조기 경보시스템 협력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핵심 광물을 둘러싼 공방이 이제 공공연하게 글로벌 경제‧안보협력의 주요 의제가 된 것이다. 공동성명은 ‘잠재적인 국제 공급망 교란에 대한 정책 공조를 제고하며 경제적 강압에 맞서고 이를 극복하는데 더 잘 대비해 나가기 위해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시범사업을 출범하고자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임을 명문화하였다.   이러한 사태 진전은 두 가지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중국의 핵심 광물 무기화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서방 진영이 현실적으로 광물 무기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  중국의 핵심 광물 독과점     세계는 이미 핵심 광물 확보 전쟁에 돌입해 있다. 탄소 중립이나 첨단 미래산업의 성장은 핵심광물 수요를 2050년까지 현재의 약 6배 수준까지 끌어올릴 전망이지만 핵심 광물의 매장 및 생산은 특정 지역, 국가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사례는 글로벌 핵심광물 확보 경쟁의 좋은 예이다. 뉴칼레도니아는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니켈의 세계 4위 생산국이다. 테슬라는 뉴칼레도니아 자치정부와 니켈 공급 장기 계약을 맺고 있다. 중국은 뉴칼레도니아에 눈독을 들이며 분리 독립 그룹을 지원했다. 그러나 3차에 걸친 주민투표 결과,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령으로 남는 것을 택했다. 프랑스령 잔류 결정은 중국이 뉴칼레도니아에 대해 잠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동시에 일론 머스크에게는 큰 안도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중국은 현재 코발트, 흑연, 리튬, 니켈과 같이 방위산업, 정보통신, 배터리, 청정에너지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중국이 특히 핵심 광물의 제련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글로벌 생산에서 중국은 리튬 58%, 니켈 35%, 코발트 65%, 흑연 70%, 희토류 85%라는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채굴, 정제 과정에서 환경 오염 규제로 투자에 주저하는 동안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중국개발은행, 수출입은행을 통한 연 90억 달러 내외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로 전 세계 핵심 광물 개발을 주도해왔다. 핵심 광물이 군사 무기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도 중요한데 갈륨과 게르마늄의 경우 레이저, 레이다, 정찰위성 등에 꼭 필요한 광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핵심 광물 생산에서의 우위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서, 상대방에 대한 지정학적 우위로 연결될 수 있다.   중국이 핵심 광물 생산에서 거둔 성과는 장기간에 걸친 전략 추구의 결과로, 목표를 정하면 모든 조직과 자원을 동원하여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중국의 강점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유일한 권력 실체로서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도 있지만, 중국 공산당은 자국의 영향력 확대나 안보를 위해 사고와 행동이 일관된 조직으로서 대전략을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 중국의 영향력에서 서방 세계가 완전히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핵심 광물 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으며, 따라서 선점자가 유리하다. 결국 중국은 유의미한 레버리지를 보유한 셈이며, 니켈과 팔라듐의 주요 생산국인 러시아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적인 정치안보 컨설팅 기업인 유라시아 그룹의 평가에 따르면, 미국은 2030년까지 핵심광물 자원 무기화에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중국이 핵심광물 분야 지배력 유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호주 등 자원 부국 핵심광물 기업들에 대한 온라인 허위정보 프로파간다 공작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22년 상반기에 ‘드래곤브릿지(DRAGONBRIDGE)’로 알려진 중국의 허위계정 네트워크가 호주의 리나스(Lynas), 캐나다의 아피아(Appia), 미국의 USA 희토류 등 희토류 채굴업체가 과거 환경오염에 관련해 좋지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하고 공장 설립 반대 집회를 촉구한 사태는 핵심 광물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 심화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자원 무기화에 한계가 있음도 분명하다. 중국이 모든 핵심 광물을 장악한 것도 아니며, 장기적으로 자원을 보유한 제3국들이 자기 이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현재의 우위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수출 통제와 같은 자원 무기화, 즉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는 쓰면 쓸수록 상대방에 대한 효과는 반감된다. 무엇보다도, 서방 진영은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며 장기적으로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대체 국가, 지역, 기업을 확보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쌍방은 손해를 보고 대신 제3자, 자원 부국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원 무기화가 중국의 경제, 생산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자원 무기화라는 카드가 주로 상대방에 대한 굴복보다는 상대방의 봉쇄정책이 더 강경해지지 않도록 억제(deter)하는 데 주로 유용할 것임을 시사한다.      ━  불완전한 디커플링   미국의 주도로 우리나라와 일본, EU,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한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Minerals Security Partnership : MSP)’은 자원 무기화에 대응하는 다자간 협력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핵심 광물 독과점 대응에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국가는 호주이다. 호주는 희토류, 리튬, 지르코니움 자원 부국임과 동시에 다양한 광물에 대한 추출, 정제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칠레와 같은 자원 부국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챙기려 할 것이다.     중국의 해외자원 개발도 향후에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의 리튬 국유재산화 법안 공포나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의 리튬 카르텔 형성 움직임 등 남미국가들의 자원 민족주의, 그리고 아프리카 자원 부국들의 정치 불안정이 중국의 해외 투자 리스크를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 진영은 완전한 결별이 서로에게 너무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이기에 적절하게 관계를 관리할 것이다. 즉 첨단산업 및 핵심 광물 분야에서 완전한 디커플링은 환상이며, 양측은 대량보복보다는 장기적으로 관리‧계산된 앙갚음을 주고받으면서(tit-for-tat) 서로 간의 의존도를 낮추는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즉, 양 진영은 상대방의 레버리지 행사를 억제할 수단을 서로가 보유한 상태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지정학적 경쟁의 장기적 페이스에 따라 레버리지 행사의 강도를 조절할 것이다. 세계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디커플링 공급망 환경에서 서방과 중국(및 러시아)이 서로 마지못해 공생하는 질서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 첨단 기술 봉쇄는 비록 일정 수준 억제되더라도 지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로섬 게임의 승패는 궁극적으로는 양 진영의 혁신 능력, 장기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될 것이다.    ━  우리의 장기 전략 : 다자간 협력과 쌍무 협력의 병행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전략은 다자간 협력과 자원 부국들과의 쌍무 협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희토류 등 10대 핵심 광물의 특정국 의존도를 현재의 80% 수준에서 2030년까지 50%대로 완화하고 재자원화도 2% 수준에서 20%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핵심광물 확보 전략’(2023. 2)을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다자간 협력과 특정 자원 부국과의 쌍무 협력이 없이는 이러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가 다자간 협력체인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 가입은 물론이고 호주, 인도네시아, 베트남, 카자흐스탄, EU 등과 개별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특정국과 먼저 대립을 추구할 필요는 없으며 평화적 환경에서의 실익을 추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안보‘의 보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경제적 의존 및 직접적 안보 위협의 덫에 빠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핵심 광물에서 상대방의 레버리지를 약화하는 장기 대응책 추진은 특정 정파적 입장이나 상대방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우리가 어떤 의도, 선의를 가지고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상대방의 의도나 행위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우리의 억제 능력 간의 상대적 힘에 의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09.14 06:3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광둥성의 실버산업 진출 기회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중국 광둥성의 실버산업 진출 기회

    중국은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셔터스톡 최근 중국 광동성 일대 실버산업을 둘러보고 왔다. 중국은 ‘코로나19’의 대유행을 겪으면서 의료시스템의 낙후와 취약성을 노출하고 의료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중국 지도부는 의료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권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의료시스템의 정비와 건강보험제도의 개선 등 전면적인 의료 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업종의 침체와 대형 부동산기업인 비구이위안(碧桂園)의 디폴트 소식에도 불구하고, 소득수준의 향상과 고령화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의료 및 건강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버산업은 연간 25% 이상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빠르게 고령화(Ageing; 高齡化)되고 있는 나라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60세 이상의 인구가 2억 7000만 명에 달하고, 매년 1000만 명씩 증가해 2025년에는 3억 명을 돌파, 2030년대 에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령층 그룹은 거대한 노인 소비시장 형성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어, 역동적인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복지와 의료서비스의 획기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 국내외 투자유치에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기술 및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해, 의료 및 요양 서비스 분야에서도 기술의 도입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원격 진료, IoT를 활용한 건강 관리, 의료 로봇 등이 상용화되고 있어, 실버산업은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매력적인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광둥성(廣東省)   광둥성은 중국 첨단산업의 핵심지역으로 제조업, 정보 기술, 금융, 투자, 무역, 문화, 관광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특히, 선전(Shenzhen)은 중국의 첨단산업과 혁신적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발전되어 있다.   홍콩과 마카오가 포함된 웨강아오 다완취(粤港澳大灣區, 광둥·홍콩·마카오)는 광둥성 남부 9개 주요 도시 일대를, 대규모 글로벌 역동적인 경제권역을 형성하고 있다. 2035년 개발이 완료되면 세계 3대 항만경제권(도쿄 베이, 뉴욕 베이, 샌프란시스코 베이)을 능가하는 글로벌 경제벨트로 태어난다. 이 지역 경제적 위상은 미국, 일본, 독일, 광둥 이렇게 세계 4강의 하나로, 하나의 독립된 국가 수준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에서 기대수명 80세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화동(華東)지역과 광둥(廣東) 지역이다. 광둥성은 중국 남부의 주강삼각주(珠江三角洲) 아열대 기후 지역으로, 인구는 1억 2000만 명이 넘고, GDP도 1조 8000억 달러로 한국을 이미 넘어섰다. 광둥은 해양과 대륙이 연결되는 길목이라, 자연스럽게 개방과 자유가 몸에 배어, 중국경제를 견인하는 국제적인 감각이 발달한 곳이다.    ━  광둥성 실버산업   광둥성의 인구는 1억이 넘고, 동일 경제권 홍콩 인구도 700만 명이 넘지만, 제대로 된 실버타운은 턱없이 모자란다. 고급 실버타운은 접근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고가이며, 일반인이 이용하는 실버타운은 비싸고 공간이 좁을 뿐만 아니라, 의료수준이 낮고, 시설이 열악하며 서비스는 수준 이하가 대부분이다.   홍콩인에게 광둥성은 별다른 제한 없이 버스로도 오갈 수 있는 지역이다. 홍콩에서 차로 2시간 이내의 쾌적한 실버타운이라면, 홍콩 노인에게도 환영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가을부터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 해남도(海南島)로 남하하는, 북방의 노인들도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중국 부동산 경기가 불황기에 접어들어 있는 요즘이, 광둥성 실버타운(養老院) 사업에 뛰어들 기회다. 현지에서 고급 관계망(關係網)을 가진 인사나 기업, 자금조달을 책임지는 홍콩의 금융기관, 한국의 의료기술 및 서비스가 협업하는 사업구조의 합작(資)사업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은 조합이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 업체들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지난 5년간 앞다투어 병원이나 양로원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사전시장조사나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마케팅 경험이 적어, 완성하지 못한 병원이나 양로원 그리고 프로젝트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우리는 현금투자 없이, 뛰어난 의료기술과 관리 경험만으로도 떠오르고 있는 신흥산업에 진출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  왜 중국인가?   중국 노인의 급속한 증가로 재활이나 노인용 의료기기 분야, 노인 건강기능식품, 노인성형과 미용, 건강 회복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활 서비스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침체와 폭락을 하는 요즘이 진출의 적기다.   한국의 병원을 비롯하여 의료 관련 기관은 오랫동안 비영리기관으로 운영되어, 의료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 집단이 의대에 진학하지만,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결여되어 있고, 글로벌마인드(Global Mind)는 매우 부족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술은 돈을 버는 것이 첫째 목적이 아니다. 의료는 인간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하여, 수명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해 인간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 중국에 거대한 실버시장이 열리고, 사업 기회가 생겨나는 것은 좋은 소식이 틀림없다. 중국에 비해 우리는 차별화된 우위를 차지하는 분야가 많아, 중국 실버시장에 진출하기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다. 중국은 넓은 시장을 제공하고 우리는 앞선 의료기술과 서비스를 가져가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 실버산업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이므로, 관련된 정책과 규제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한중간의 문화적 차이가 극복하기 위해, 현지의 시장 동향이나 인구통계 그리고 현지의 파트너십 구축과 정교한 현지화된 마케팅 전략은 필수다.   우리는 반중(反中) 정서로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할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감성적 반중(反中) 정서에 빠져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곤란하다. 중국은 우리의 내수시장이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더차이나칼럼

    2023.09.12 06:00

  • [중국읽기] 두 개의 탄과 하나의 별

    [중국읽기] 두 개의 탄과 하나의 별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양탄일성(兩彈一星). 두 개의 탄(彈)과 하나의 별(星)이라는 뜻이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뜻하는 중국어다. 단어가 만들어진 건 1960년대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은 고립되어 있었다. 미국은 전쟁을 막 끝낸 적(敵)이었고, 소련은 이념분쟁으로 멀어져 있었다. 마오는 미·소 양국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핵무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시작한 게 핵 개발 프로젝트 ‘양탄일성’이었다. 성공했다. 1964년 원자폭탄, 1967년 수소폭탄, 그리고 1970년에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미국과 소련의 눈을 피해 뒷마당에서 이뤄낸 자력갱생의 결과물이다.   화웨이 5G폰 ‘메이트60 프로’에 쓰인 칩 ‘기린 9000’시리즈.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했다. [중앙포토] 또다시 양탄일성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일까. 지금 논란이 되는 ‘화웨이 5G폰 사태’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핵심은 어떻게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뚫고 7나노급 칩을 확보했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눈을 피해 자력으로 말이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은 마오의 국가 비밀주의를 답습한다. 중국은 올 3월 국가 조직을 개편하면서 당 산하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했다. 과학기술에 관한 전략 기획과 정책 수립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행정부에 있던 기존 국가과학기술영도소조는 폐지됐다. 당이 전면에 나서 미국과의 첨단기술 전쟁을 지휘하겠다는 뜻이다.   중앙과학기술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난 7월 10일 회의가 한 번 열렸다는 발표만 있었을 뿐이다. 그 회의조차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누가 참석했는지, 어디서 열렸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지 알 수 없다. 군사 분야 전용 여부도 모른다. 그러니 제재를 가할 수도, 방해할 수도 없다. 멍하니 있다가 뒤통수 맞는 모양새다. 화웨이의 이번 ‘5G폰’ 사태가 바로 그 꼴이다. 중국은 ‘자력갱생의 승리’라고 흥분한다. 미국으로서는 에워싸고, 옥죄고 철통같이 막았는데도 뚫렸으니 난감하다.   시진핑은 과학기술 분야 ‘신형거국체제’를 선언했다. 국가가 나서 자원을 총동원하는 마오식 국가 지원 체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장의 수요’를 고려한다는 것뿐이다(‘신형’이란 말을 붙인 이유다). 핵심 기술로 선정한 AI, 양자컴퓨터, 반도체, 첨단장비 제조, 신소재 등이 모두 신형거국체제의 틀 안에서 개발된다.   그들의 뒷마당에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양탄일성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그 결과물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또 튀어나올지 모른다. 알 수 없으니 더 무섭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9.11 00:28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소롱포, 대나무 찜통 속 천년 비사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소롱포, 대나무 찜통 속 천년 비사

    사진 셔터스톡 만두 속은 고기나 야채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렇기에 육즙이 들어간 소롱포 만두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을 때는 꽤나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낯설기 그지없었던 소롱포, 누가 언제부터 그리고 왜 만두피 속에 육즙을 담아 먹기 시작했을까?   음식이 독특했던 만큼 이름도 여느 만두와는 달랐던, 중국어로 샤오룽바오라고도 불렀던 이 낯선 만두 이름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혹시 이름 속에 육즙 만두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소롱포(小籠包)는 작은 대나무 바구니(小籠)에서 쪄낸 포자(包子)만두라는 뜻이다.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다 싶었지만 실은 그것도 아니다.   내막을 알고 보면 육즙 담긴 만두와 이 만두를 쪄낸 작은 대나무 바구니에는 나름의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소롱포에 담긴 함의가 무엇일까?   고기로 채워진 소 대신에 육즙이 함께 담긴 만두가 얼마나 신기했는지 그 기원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져 있다. 일단 소롱포는 청나라 말기인 1871년 지금은 상해시에 편입된 남상진(南翔鎭)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주인이 육즙이 든 작은 만두를 대나무 바구니에서 쪄내 소롱 대만두(小籠 大饅頭) 혹은 남상 대만두(南翔 大饅頭)라는 이름으로 팔면서 동네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작은 만두에다 대만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손님을 끌려는 상술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남상진의 대나무 찜통 만두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사촌동생이 1900년 상해 시내에 소롱포 분점을 냈고 대박 인기 만두가 됐다.   그런데 상해의 인기 육즙 만두가 어떻게 홍콩과 대만으로 건너가 딤섬 메뉴가 됐으며 덕분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기 중국 만두가 됐을까?   소롱포가 여러 나라로 널리 퍼진 배경 중 하나로는 중국의 공산화를 꼽는다. 상해가 국공내전의 격전지가 되면서 또 중국이 결국 공산화되면서 수많은 요리사들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소롱포 역시 홍콩에 전해져 딤섬 메뉴가 됐다. 하지만 공산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 격변기 속 소롱포의 발달사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중국 음식 사학자들은 소롱포의 뿌리를 멀리 12세기 북송 시대에서 찾는다. 당시의 풍속과 시장 상점 음식 등을 상세하게 묘사한 『동경몽화록』에 따르면 북송의 수도였던 변경(卞京), 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에 소롱포의 뿌리로 추정되는 만두가 보인다.   이 책에 개봉의 옥루(玉樓)라는 주점에서 산동매화포자(山洞梅花包子)를 팔았는데 이 만두가 소롱포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산동(山洞)은 산속 동굴로 육즙이 든 만두 속이 마치 산속 동굴 같고 매화는 접시에 놓인 만두가 매화꽃이 핀 것처럼 퍼져 있어 생긴 이름이다. 포자는 교자가 아닌 포자 만두라는 뜻이다.   옥루는 동경몽화록에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된 72개의 유명 주루(酒樓) 중 하나다. 다시 말해 12세기 개봉에서 유명했던 고급 호텔 내지 음식점 중의 하나였던 것인데 산동매화포자는 이 유명 음식점에서 만들어 팔았던 고급 육즙 만두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부연하자면 북방 민족의 음식이었던 만두가 중원에 전해진 후 다양하게 발달하는 과정에서 12세기 북송 시대에 옥루라는 고급 음식점에서 고급 육즙 만두를 선보였던 것이다.     개봉의 육즙 만두, 산동매화포자가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상해에서 소롱포로 거듭나게 된 일차적 계기는 12세기 초에 있었던 여진족의 침범이다. 정강지변(靖康之變)이라고 하는데 여진의 금나라가 쳐들어오자 송 황제 흠종이 항복한 후 포로로 끌려갔던 사건이다. 이후 송나라는 수도를 임안(臨安), 지금의 절강성 항주로 옮기면서 남송 시대가 시작되는데 천도를 할 때 산동매화포자와 같은 육즙 만두, 즉 관장만두(灌漿饅頭) 만드는 장인을 데리고 가면서 항주를 비롯해 양자강 이남의 강남 일대에서 육즙 만두가 널리 퍼지게 됐다.   그 증거로 13세기 남송의 수도 항주의 풍물과 시장 등을 기록한 『몽양록』에도 주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만두가 보이는데 여기에 육즙 만두인 관장만두도 포함돼 있다.   현재도 중국의 육즙 만두는 상해의 소롱포를 비롯해 강서성과 강소성의 남경, 우시(無錫) 창저우(常州), 절강성 항주의 관탕(灌湯)만두 등이 유명한데 12세기 이후 한족이 북방 민족에 밀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육즙 만두 역시 양자강을 따라 강남 지역으로 퍼지며 발전한 것으로 본다.   한편 관장만두, 관탕만두가 상해에서 소롱포로 변한 것도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육즙 만두는 원래 산동매화포자처럼 고급 주점에서 부유한 상인과 귀족을 상대로 접시에 담아 제공했던 대만두였다. 그러다 19세기 말 남상진의 음식점에서 고급 요리였던 대형 육즙 만두를 작게 줄였고 동시에 즉석 음식으로 작은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쪄서 팔았으니 비로소 서민들도 즐겨 먹을 수 있도록 대중화가 이뤄진 것이다. 소롱포가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변화무쌍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9.08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대기만성(大器晚成)’이란 말은 애초에 없었다?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대기만성(大器晚成)’이란 말은 애초에 없었다?

     ━  ‘대기만성(大器晚成)’ 과 ‘대기면성(大器免成)’     사진 바이두 노자의〈도덕경〉에 ‘대기만성’이란 구절이 있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는 뜻이다. 먼 장래는 고사하고, 바로 내일이 답답한 청춘들에게도 위로가 된다. 중년을 넘어 의지할 이렇다 할 ‘연줄’이 없어도 ‘성실하게 자신의 힘만’으로 버티고 있는 이들을 잡아주는 ‘줄’이다. 그런데 (찬물을 끼얹을 의도는 없지만) 원래 ‘대기만성’이라는 말은 없었던 것 같다.   노자의〈도덕경〉을 읽다 보면,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넘어서 ‘초월’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초월이 아니라, 애당초 ‘우리를 짓누르는 현실’이라는 문턱은 없었다. 그 문턱과 그런 장애물은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니 ‘초월’이 아니라 그냥 원래로 돌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넘어야 할 것, 견뎌내야 할 것’이 애당초 없었는데, 무엇을 얻겠다고 애쓰나? 왜 이렇게까지 바둥거려야 하나?   치열한 일상의 경쟁 속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언뜻 보면 현실적 도움이 안 된다. 읽기 편한 ‘자기계발서’ 한 권이 훨씬 나아 보인다. 그러나 노자는 단 몇 줄만 읽어도, 그 뜻을 기껏해야 어렴풋이 밖에 이해가 안 되어도 ‘뜻밖의 큰’ 위로를 받게 된다. 국가적 재난이 와도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 고개를 드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지금, 노자를 읽으면 그래도 어깨가 펴진다. 나도 모르게 그래도 씨익 미소가 지어진다. 잠깐이나마 머리가 맑아진다.     ‘대기만성’, 지금이 다가 아니다.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더 좋은 앞날이 있다. 희망이다. 감사하다.       1972~4년, 중국 후난성 창사(長沙)에선 기원전 약 200년경의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 발굴이 진행됐다. 이때 비단에 쓰인 노자의〈도덕경〉이 발견됐는데,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왕필(226~249)의 그것보다 대략 400년이나 앞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래된 판본에는 ‘대기만성’이 아닌 ‘대기면성(大器免成)’이라는 구절이 적혀있었다. ‘만성(晚成)’이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라면, ‘면성(免成)’은 ‘(이미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롭게) 이룰 필요가 없다’ 혹은 ‘굳이 만들면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즉, ‘대기면성’의 의미는 ‘진정한 큰 그릇은 원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게 된다.   만성(晚成)이 맞는 걸까? 면성(免成)이 맞는 걸까? 무엇이 진짜 ‘노자의 생각’이냐에 대해선, 우선 더 오래된 진품이 진짜일 확률이 높다. 즉, 원래 노자가 한 말은 ‘대기면성’일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왕필은 원래 도가(道家)와 대척점에 있는 유가(儒家) 배경이다. 유가의 시각으로 도가(道家)를 해석했다는 지적이 있다. 노자로 대표되는 도가는 ‘무위(無爲, 아무것도 안 한다. 인위적인 것이 없다)’를 강조한다. 모든 인위적인 것은 오히려 도(道, 진리)와 멀어진다고 여겼다.     “(사람들이 행위로) 학문을 하는 것은, 매일 보태는 것이다(爲學日益). 도를 행하는 것은, 매일 덜어 내는 것이다(爲道日損)”. 역시 노자(도덕경)의 말씀이다. 여기서 전자는 ‘유위(有爲, 행위)’를 통한 배움을 중시하는 유가를 말한다. 후자와 같이 매일 인위적인 것을 덜어내어 무위(無爲)의 경지로 가야 한다는 태도는 도가다.   ‘도’ 즉 진리에 이르는 길은 ‘보탬’이 아니라 ‘덜어냄’에 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노자는 매일 우리의 모든 인위적인 것을 덜어내야 ‘무위’라는 최고 경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대기만성’은 노자의 중심사상인 ‘무위’ 와도 거리가 한 참 멀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의미적으로도, 노자가 한 말은 ‘대기만성’이 아니라 분명 ‘대기면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조차도, ‘대기면성’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의외로 적다. 일상에는 오직 ‘대기만성’만 있고, 또 이것이 ‘노자’의 말이라고 알고 있다.   틀린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최소한 ‘대기만성’은 노자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현실에는 “노자도 대기만성이라고 했어! 실망 말고 더욱 힘내!”라고 말하는 이는 있어도, “노자는 대기면성이라고 했어. 그냥 초월하셔!”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다.      ━  논리적 ‘설명’보다도 유효한 ‘설득’이 더 중요하다.   ‘실용성’이 ‘정통성’을 이길 수도 있다. 무엇이 사실인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실용성에 방점을 두는 듯하다. 지식은 지식대로 사용하고, 지혜는 지혜대로 활용한다.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어떤 지식은 지혜에 묻힌다. 실용주의다. 그러다 보니 “맞는 것을 맞다”라고 따지는 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 ‘옳다와 틀리다’의 판정보다는 조화를 중시한다. 실용주의적 발상이다. 협상에서 ‘우리의 객관적이고 타당한 조건’이 종종 수용되지 않는 배경이다. ‘설명’은 되지만 ‘설득’이 안되는 이유다.   “중국인들은 ‘심정적으로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이미 오래전에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의 이분법적 함정에서 빠져나와서 ‘맞아.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라는 수준에 왔다. 반드시 ‘원만’ 한 데에 이르러야, 마음이 놓인다(〈中國式管理〉 曾仕強)”   “두 나라 사람을 비교해보면, 한국인은 쓸데없는 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연구할 가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에 애써 매달리며 모든 일을 너무 진지하게 대한다. 사실 이런 성격은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런 사람은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장홍지에)”   정부 행위에도 실용이 앞설 때가 있다. 중국의 20여개 성(省)중에는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이 있다. 두 개 성 모두 정확한 알파벳 표기는 shan xi(산 시)다. 산(山, 산)과 섬(陝, 산)은 음의 높낮이가 달라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이들에게는) 발음으로 쉽게 구분이 되지만, 예상할 수 있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모든 영문 표기(예를 들면, 영문 계약서 외에 공항이나 도로 명 등 포함)로는 똑같다(심지어 이 두 개의 성은 이웃해 있다!).     곤란한 문제를 ‘원칙’을 비껴감으로써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후자의 섬서성에는 ‘a’를 하나 더해서 shaanxi(사안시)로 표기했다. 중국어의 발음과 표기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실용을 따랐다. 성조(음의 높낮이)를 모르는 외국인이 발음해도 대부분의 중국인은 알아듣는다. 자칫 혼란과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는 ‘원칙의 문제점’을 깔끔하게 해결한다. ‘융통’과 ‘실용’을 중시한 결과일 것이다.    ━  ‘이원대립(二元對立, 흑백논리)’ 과 ‘다원병립(多元竝立, 다양성의 공존)’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무협지를 좋아했다. 주인공만큼 사랑받는 조연급들이 있다. 바로 협객(俠客)과 은사(隱士)다. 협객은 통속적으로 말해서 오지랖이다. 의로운 일이라면 세상의 시시콜콜한 시비에도 뛰어든다. 이와 반대로 은사는 세상을 등지고 산다. 뚜렷하게 상반된 인생관을 가졌지만, 모순적 성향의 두 부류 모두 중국인에게는 우상이요 영웅들이다.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모두 의리(또는 우정)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협객은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이들을 시도 때도 없이 사귀지만, 은인은 극히 소수의 친구를 가려 사귄다는 것이다.    ‘이원대립’의 사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원대립에서 양극단은 서로 대척점에 있고 멀어져만 간다. 반면 ‘다원병립’의 구조에서는, 양극단으로 보이는 것들이 결국에는 만난다 (그리고 또 떨어지고, 또 합쳐지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의협심과 독야청청에는 오히려 유사한 점이 있다. 우정을 그 모든 것보다 중시했다는 점이다. 우정을 지극히 소중하게 여겼기에 협객들은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은사들은 가볍게 사람을 사귀려고 하지 않았다 (〈이중텐, 중국인을 말하다〉이중텐)”   중국인은 융통성이 크다. 때로는 흑의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반드시 그 끝이 흑이 되진 않는다. 백도 마찬가지다. 또한 흑백의 경계가 훨씬 모호하다. 선한 행위와 나쁜 행위의 판단을 보류해야 하는 영역이 넓어진다. 중국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다른 기준틀이 필요할 것이다(사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옳다와 그르다’의 판단에 앞서, ‘다를 가능성’이 있다는 포용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바로 흑백의 ‘이원대립’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는 ‘다원병립’의 사고다    ━  강산은 오히려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본성은 안 바뀐다(江山易改 本性難移)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최소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하게 표현하는 소통 방식은 서구식이다. 중국은 늘 드러내지 않고, 간접적으로 비튼다. 문화가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해서 ‘당연히 원래부터 그런 것’ 은 없다. 중국 사람과 소통이 어렵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속이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자연환경과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이 있겠다. 지면 관계상 아주 요약하면, 표의문자인 한자, 서양의 펜과 달리 부드러운 붓, 그리고 종이가 보급되기 전에 사용한 죽편 등이다. 이들은 자세하게 구구절절한 표현을 도구적으로 어렵게 한다.     중국 농업의 특징(계절풍 기후와 노동집약적 농업)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평생을 한 고향에서 보낸다. 이 때문에 ‘조화가 중요하다(和爲貴)’는 당연한 철칙이 되었다. 평생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들끼리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매사를 ‘넘어갈 줄 아는 지혜’가 필수다. 물론, 설화(舌禍, 말을 잘못해서 당하는 화)와 문자옥(文字獄, 글로 인해 당하는 화) 등의 역사적 교훈도 분명 있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면, 중국인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   반대로 분명해 보이는 표현 안에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은, 서구식의 ‘직설적 화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  칼을 매우 여유롭게 쓴다(遊刃有餘)   알고 나면, 칼을 씀이 매우 편하다. 칼날 위에서도 자유롭다! 상대방이 변칙적인 게임을 한다고 해서 ‘그런 상대는 피곤하다’며 시합을 포기할 순 없다.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내가 입맛에 맞는 상대방을 선택할 수 없다. 큰물로 공격해오면 흙으로 막고, 군대가 오면 장수가 막는다(兵來將擋 水來土掩). 누가 오든 뭐가 오든 우리가 그것에 맞게 준비하면 된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한편, 지구에서 역사적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뿐이다. 이들은 중국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 중국을 사랑하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잘하자는 것이다. 정말로 잘 지내도 좋지만, 잘 지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혜롭게 사이 나쁘게’ 지내야 한다. 손절도 때가 있고, 계획이 있어야 한다. 추락하는 증시에서도 손해를 덜 보거나 심지어는 이익을 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아는 현명함(自知之明), ‘너 자신을 알라’는 최고의 경지다. 어렵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내가 몰라도’ 된다. 그렇지만 ‘내가 모른다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리더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 확신에 빠진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2023.09.07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소리 없이 중국에 다가서는 미국과 일본, 한국은?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소리 없이 중국에 다가서는 미국과 일본, 한국은?

    지난해 11월 17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기시다 후미오(왼쪽) 일본 총리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 기간 양자 회담에 앞서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과 일본이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고 있는 일본과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중국이 손을 잡았다. 중국과 일본의 외교부 국장이 지난 7월 22일 도쿄에서 만났다.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아시아국) 사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오염수(일본은 처리수)의 해양 방류 문제 등을 협의했다고 알려졌다. 이들의 만남 이후 조심스럽게 중‧일 정상회담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시기는 9월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11월 14~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다. 중‧일 정상회담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올해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5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평화우호조약 체결에 앞서 일본 다나카 총리, 오히라 외무상, 니카이도 관방장관은 1972년 9월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를 만나 국교 정상화를 체결했다. 하지만 그 이후 양국의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워지면서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았다.   일본은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정권이 붕괴해 국내 정치가 잠깐 불안정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대혼란이 수습되기는 했지만, 4인방의 득세,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의 사망, 4인방의 실각 등 정치적으로 암흑기였다. 중국이 1978년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안정을 되찾고 그해 8월 12일 양국은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바로 1972년 2월 닉슨의 방중이다. 일본에 ‘쇼크’ 그 자체였다. 닉슨 대통령은 1971년 7월 15일 TV 생방송으로 방중 사실을 알렸다. 당시 사토 일본 총리는 닉슨 대통령의 TV 연설이 시작되기 3분 전에 알았다.   후에 총리가 되는 다케시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하던 중 기자단의 질문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라며 얼버무렸다. 자민당의 나카소네 총무회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에 미안해하면서 비밀 유지가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키신저는 나중에 “공식 발표하기 수 시간 전에 사토에게 미리 전달했더라면 예의에도 어긋나지 않고 친근감도 느끼게 했을 것”이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당시 일본의 반응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중국과 한 편이 되어 일본과 전쟁을 치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질서 구축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희망과 반대로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됐다. 미국은 이번에는 일본을 동반자로 선택했다. 미국으로서는 아시아의 동반자로서 일본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닉슨 쇼크’는 미국이 또다시 일본을 배반하고 중국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일본에 심어주었다. 그것은 일본 외교의 트라우마가 돼 버렸다. 그렇다고 미‧일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하지 않았다. 대신에 일본은 ‘독한 마음’을 먹게 됐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더욱 독립적인 외교를 추구하기로. 일본은 얼마나 급했던지 곧바로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체결하고 중국과 화해 노선을 걸었다.   최근 일본은 1972년의 ‘닉슨 쇼크’는 아닐지라도 ‘작은 쇼크’를 경험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의 잇따른 중국 방문이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권력 4위의 국무장관이 방중한 것은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까지 방중했다. 성급한 예측일지 모르지만, 미‧중 화해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일본의 심중은 편치 않다. 미국은 미‧중 화해의 시그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본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닉슨 쇼크’가 떠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외무상 출신인 기시다 총리는 같은 외무상 출신에 총리까지 역임한 오히라 마사요시(1910~1980)를 멘토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 오히라 외무상이 ‘닉슨 쇼크’의 충격을 딛고 중‧일 국교 정상화를 진행했다. 기시다‧오히라는 일본 자민당의 파벌 가운데 하나인 고치가이 출신이다. 오히라와 같은 파벌 출신인 기시다는 ‘닉슨 쇼크’를 트라우마로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별도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려고 한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겸 중의원 의장은 지난 7월 대기업 임원 80여 명을 데리고 중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리창 총리와 왕원타오 상무부장 등을 만났다. 리창 총리가 현직이 아닌 고노 요헤이를 만난 것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중‧일 간에 정치적 갈등은 깊어지더라도 경제 협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다. 고노 요헤이는 고노 다로 디지털담당상(장관)의 아버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들은 장관급 인사가 아닌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만났다. 방문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중국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지난 10일 한국에 중국인 단체관광을 허용했다. 중국이 이번에 발표한 국가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일본‧독일 등 78개국이다. 한미일이 포함되면서 중국의 대외정책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오는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미‧중 정상회담까지 예상된다.   미‧일의 중국 접근이 예사롭지 않다. 북‧중 국경 봉쇄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해제할 전망이다. 동북아시아의 수면 아래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다. 소리 없이 움직이니 외교가 어렵다.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방향을 튼 윤석열 정부가 미‧일의 대중 접근을 예의 주시하며 한국의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기를 바란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칼럼

    2023.09.05 06:00

  • [중국읽기] ‘철없는 아내’의 자랑질

    [중국읽기] ‘철없는 아내’의 자랑질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지난해 7월 일이다. 중국 SNS에 짧은 글이 하나 올랐다. 내용은 이랬다. “우리 남편 올해 29살이야. 그런데 월급 8만2500위안(약 1500만원) 받아. 우리 집 얼마나 부자인지 알겠지?”   자랑질이었다. 그는 소득증명 원본을 찍어 첨부했다.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그 나이에는 월급 5000위안(약 90만원) 받기도 어려운 게 현실인데, 이게 말이 돼? 도대체 어느 회사, 누구야?” 네티즌들은 소득증명서에 있는 회사 직인을 찾았고, 그의 남편이 투자은행(IB)인 CICC(中金公司) 직원이라는 걸 밝혀냈다.   사정 당국의 강력한 반부패 조사, 임금 삭감 등으로 중국 금융 업계가 뒤숭숭하다. [중앙포토] 1995년 설립된 CICC는 ‘중국의 골드만삭스’로 통하는 최고 수준의 IB다. 차이나텔레콤·알리바바 등 굴지의 기업을 중국 국내외 증시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많이 버니 월급도 많다. 지난해 이 회사 직원의 평균 연봉은 약 115만 위안(약 2억원)에 달한다. 남편의 수입은 연봉으로 환산하면 99만 위안으로 회사 평균보다 적었다.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네티즌의 공격에 시장 논리는 금방 허물어졌다. “시진핑(習近平) 정치의 핵심 가치인 공동부유가 왜 금융업계에서는 통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CICC는 남편을 해고해야 했다. 임금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따를 수밖에 없다.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해 말 임금을 20~30% 스스로 깎았다. 그 많던 보너스도 사라지고 있다.   업계는 ‘자랑질’ 사건 이후 사정 당국의 금융 분야 반부패 조사가 부쩍 늘었다고 보지만, 사실은 더 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중국은 지난 3월 국가조직을 개편하면서 당(공산당) 산하에 중앙금융위원회를 신설했다. 행정부(국무원)가 갖고 있던 금융기관(회사) 통합 관리 기능을 당으로 이관했다. 당이 돈 흐름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이다.   당은 근력을 과시한다. 올 상반기에만 고위 금융계 인사 87명이 불려가 부패 관련 조사를 받았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하고 있다. 핵심 중간 관리급 직원들은 베이징으로 가 1주일 동안 ‘사상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생들은 시진핑 사상을 읽고 감상문을 써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걸리면 옷 벗어야 한다.’ 업계는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국가의 힘은 점점 시장을 압도한다. IT 플랫폼·부동산 분야의 민영기업을 넘어 ‘자본주의 첨병’이라는 투자금융 회사도 그 힘에 빨려간다. ‘철없는 아내’의 자랑질은 그 흐름을 재촉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8.28 00:23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흑룡강이 고향이라는 냉면구이, 카오렁멘(烤冷麵)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흑룡강이 고향이라는 냉면구이, 카오렁멘(烤冷麵)

    중국의 길거리 음식. 셔터스톡 카오렁멘은 요즘 중국의 10~20대 젊은층에서 인기가 높다는 거리음식이다. 원래 동북지방, 특히 흑룡강성 음식이지만 지금은 북경을 비롯해 중국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카오렁멘이라는 이 음식, 이름이 낯설기 그지없다. 굽는다는 뜻의 고(烤)와 냉면(冷麵)을 합친 단어를 중국어로 발음한 것이니 우리말로는 구운 냉면, 즉 냉면구이가 된다.   얼핏 들어도 일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음식이다. 냉면구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게다가 찬 국수 냉면을 구우면 따뜻한 국수 온면이나 뜨거운 국수 열면이 되니 어법상으로도 도무지 맞지를 않는다. 그런데 이런 괴상한 이름의 음식,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증을 풀어 가다 보면 심심풀이 호기심 천국의 입문을 넘어 최근의 중국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카오렁멘은 어떤 음식일까?   뜻은 냉면구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아는 냉면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심지어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 맛은커녕 음식 구경도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달궈진 철판 위에 국수를 펼쳐 놓은 후 계란물을 풀어 입힌다. 맛도 맛이지만 계란물이 접착제 역할을 하면서 종이 김처럼 사각형 모양의 국수판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고추장 등을 풀어 만든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소시지를 비롯해 다양한 재료를 얹은 후 둘둘 말아 굽는다. 그리고 난 후 이 김말이 아닌 국수말이를 숭덩숭덩 썰어 접시나 종이컵에 담아 파는 것이 요즘 중국 야시장에서 유행한다는 냉면구이, 카오렁멘이다. 카오렁멘. 더우반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냉면과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이 음식을 강사면(鋼絲麵)이라고 불렀다.   강철로 만든 철판 위에 실처럼 생긴 국수를 볶았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일 것이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이 강사면이 냉면구이, 카오렁멘이 됐는데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처음 재료로 썼던 국수가 일반 국수가 아닌 감자채(土豆絲) 또는 우리 옛날 함흥냉면처럼 감자 전분 국수를 썼거나 내지는 중국내 조선족의 냉면 국수면발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카오렁멘의 어원은 이렇게 오리무중이다. 그런데 냉면구이라는 이름 못지않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 또 있다. 음식 자체의 유래설이다.   일단 카오렁멘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이 음식, 역사가 길지 않다. 대략 30년 전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제대로 진행하라고 다그쳤던 1992년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나왔을 무렵이다. 다시말해 선언적 의미가 아닌 실질적인 개혁개방이 이제 간신히 시작됐을 때다.    이 무렵 흑룡강성 최북의 계서(鷄西)시 소재 한 중학교 교문 앞 분식집에서 팔았던 음식이 발달해서 지금의 카오렁멘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발상지를 흑룡강성으로 본다는 것인데 별로 재미는 없지만 그럼에도 짚어볼 부분은 있다.   우선 카오렁멘의 조리방식은 여러 면에서 일본이나 홍콩, 대만, 동남아 등지의 철판 볶음국수와 많이 닮았다. 국수가 아닌 밀전병을 둘둘 말아서 먹는 북경의 전통 거리음식인 지앤삥(煎餠) 혹은 파 전병인 총삥(蔥餠)과도 비슷하다. 물론 소로 들어가는 재료의 종류나 소스를 발라서 먹는다는 점 등은 차이가 있지만 굳이 30년 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였을 흑룡강성 계서시의 한 중학교 앞 분식집을 발상지로 거론한다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어쨌든 카오렁멘을 포함해 아시아의 상당수 음식이 알고 보면 중국이 원조라는, 속된 말로 국뽕 넘치는 일부의 주장이야 그저 웃어 넘겨버린다고 해도 관련해 또 하나, 특이한 부분이 있다.   요즘 중국에서 새롭게 유행한다는 음식, 그래서 유래설 등의 스토리가 곁들여지는 음식들의 상당수가 흑룡강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먹는 찹쌀 탕수육 종류인 꿔바로우(銙包肉)도 그중 하나다. 19세기 말, 흑룡강성 하얼빈에 진출한 러시아 외교관 내지 철도 기술자를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유래설이 널리 퍼져 있다. 최근 보양식으로 뜨고 있다는 비룡탕(飛龍湯)도 몽골과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인 흥안령(興安嶺) 원시림에 사는 희귀 새를 재료로 끓인 청나라의 보양식이라고 한다.   카오렁멘의 발상지라고 하는 계시도 길림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바로 위쪽이고 러시아와의 국경과도 인접해 있다. 지도상으로는 중국에서 한때 청나라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블라디보스톡과도 멀지 않다.   이렇듯 최근 음식 스토리의 진원지로 흑룡강성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배경이 무엇일까? 물론 흑룡강성이 진짜 발상지여서일 수도 있고 또는 중국의 여러 성시 중에서 흑룡강성이 스토리 발굴의 미개척지로 남아 있어 새롭게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청나라의 옛 땅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해 애써 흑룡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북공정과 김치 원조논쟁, 중국의 팽창주의 행태를 보니 음식 하나를 놓고도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8.25 06:00

  • [중국읽기] 중국 부동산 시장의 ‘탐욕 카르텔’

    [중국읽기] 중국 부동산 시장의 ‘탐욕 카르텔’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건 1978년, 광둥(廣東)성 순더(順德)의 한 시골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다. 이름은 양궈창(楊國强). 그는 건설 현장을 돌며 벽돌을 쌓고, 타일을 붙였다. 농민공 양궈창이 자기 사업을 시작한 건 1992년. 덩샤오핑이 제2의 개혁개방을 선언했던 바로 그해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회사 비구이위안(碧桂園)은 그렇게 탄생했다.   양궈창의 성공은 ‘345모델’로 상징된다. 공사 시작 3개월 만에 분양을 시작하고, 4개월 만에 분양을 끝내고, 그 돈으로 다시 5개월 안에 다른 땅을 잡아 개발에 나서는 방식이다. 최고의 사업 모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부패와 투기의 카르텔 속에서 성장해 왔다. 상하이의 건설 현장. [중앙포토] ‘탐욕의 카르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방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이 토지(사용권)를 팔아야 했다. 부패 관료들은 토지 가격을 깎아주고, 아파트를 챙겼다. 분양이 시작되면 투기꾼은 은행 돈으로 아파트 매집한다. 은행은 집값의 70%, 경우에 따라 90%까지 빌려주기도 한다. 그래도 걱정 없다. 집값은 어차피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시장은 냉각됐다. 2020년 시행된 ‘3개 레드라인(개발사 재무 건전성 지침)’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아파트 불패 신화는 무너졌다. 돈의 흐름이 끊기면서 ‘345모델’은 작동하지 않았고, 거꾸로 회사를 파국으로 내몰았다.   탐욕은 끝없다. 비구이위안 CEO인 양후이옌(楊惠姸, 양궈창의 둘째딸)은 지난 7월 말 계열사인 비구이위안서비스(碧桂園服務)의 보유 주식 20%를 궈창(國强)공익기금회에 기부한다. 시가 64억 위안, 우리 돈 1조원이 넘는 규모다. 궈창공익기금회는 양궈창 일가가 홍콩에서 운영하는 자선기금. 시장에서는 “양가(楊家)가 망해가는 회삿돈을 빼돌려 자금을 세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 없다. “부패와 투기로부터 시장을 구할 테니 소비자들은 힘들어도 참아라”라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공동부유의 기치는 더 높게 나부낀다.   비구이위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2년 전 위기에 빠진 민영기업 헝다를 보자. 버틸 힘을 소진한 헝다는 보유 자산과 개발 프로젝트를 ‘빅 핸드(정부)’에 넘겨야 할 처지다. 국유화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시장이 위기에 처했으니) 국가가 나서고 민간은 물러나야 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국진민퇴(國進民退) 논리로 주요 민영기업을 하나둘 손에 넣고 있다. 비구이위안 사태를 추동하는 또 다른 로직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8.21 00:42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양귀비 피서법(?) 북경의 언 밤(氷栗子) 언 감(凍枾)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양귀비 피서법(?) 북경의 언 밤(氷栗子) 언 감(凍枾)

    사진 셔터스톡 무더운 여름에 먹으면 좋은, 멋들어진 한식 디저트 중 하나가 언 감이다. 아삭아삭 살얼음이 씹혀 시원하고 상쾌한 데다 달달하면서 품격도 높아 격조 있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중국에도 언 과일 샤오츠(小吃)가 있다. 딱히 디저트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식사 마무리를 겸해서 간식으로도 먹기 좋은 얼린 과일이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이 빙리쯔다. 한여름 북경의 일부 백화점과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다.   빙리쯔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에서 후식으로 제공하는 얼린 과일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완전 다르다. 한국 중화반점의 빙리쯔(氷荔枝)는 얼린 여지로, 우리나라에서는 리치라고도 불리는 아열대 과일이다.   반면 중국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 여름 샤오츠로 쌓여있는 빙리쯔(氷栗子)는 삶은 밤을 꽁꽁 얼려 놓은 것이니 냉동 여지와는 발음만 같을 뿐이다. 단단하게 얼린 만큼 삶은 밤 먹듯이 처음부터 깨물어 먹기는 어렵다. 입속에서 살살 굴리며 갉아먹거나 사탕 먹듯이 녹여 먹어야 하는데 이때 서늘한 냉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중국 북방의 뜨거운 기운을 가라앉힐 수 있다.   『개원천보유사』라는 옛 문헌을 보면 당나라 때 양귀비가 여름에 옥을 깎아 만든 물고기를 입에 물고 그 찬 기운으로 땀을 식혔다는 함옥연진(含玉嚥津)의 고사가 실려 있는데 양귀비가 느꼈을 시원함이 빙리쯔 먹을 때와 비슷했을 것 같다.   그런데 중국 수퍼마켓에서 언 밤, 빙리쯔에는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평소 음료수는 물론이고 음식도 찬 것을 싫어해 찬 국수(凉麵)조차도 우리 기준으로는 미지근하고 심지어 맥주와 콜라까지도 차게 마시는 중국 사람들인데 왜 꽁꽁 얼린 밤을 먹을까 싶기 때문이다.   견문이 짧은 탓인지 중국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여름철의 얼린 과일은 빙리쯔가 거의 유일했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였다. 찬 음식을 먹지 않는 지금과 달리 옛날 중국에는 얼린 과일을 먹은 역사도 깊고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언 과일이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언 감(凍枾)과 언 배(凍梨) 언 능금(凍花紅)은 보물과도 같은 언 과일 3종 세트(凍果三寶)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중 언 감의 경우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디저트 등으로 자주 먹으니 중국 풍속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싶다.   우리한테는 지금 언 감이 디저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중국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에 북경에서는 정월에 언 감 30개를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고 한다. 언 감 하나 놓고 웬 양생 타령인가 싶어 뜬금이 없지만 이런 속설이 생긴 데는 여러 배경이 있다.   일단 옛날 북경은 감이 유명했다. 서남쪽의 명승지 십도(十渡) 같은 지역은 감의 특산지다. 감이 맛있고 산출량도 많으니 겨울에 언 감이 많이 생겼다. 그러니 이를 소비하기 위해 생겨난 풍속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옛날 북경 사람들은 『본초강목』까지 인용해 가면서 예찬론을 펼쳤다. 감은 성질이 차기에 열을 내려주고 식욕을 북돋워 주며 폐를 보강해 기침을 멎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겨울이 춥고 건조한 북경에서 매일 언 감 하나씩을 먹으면 겨울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에 언 감을 먹는 지금의 우리와는 정반대인 것 같아 재미있지만 어쨌든 언 감이 단순한 디저트 이상이라니 흥미롭다.   상징적 의미도 있다. 감에는 행운이 따르고 상서로운 길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었으니 옛 동양의 공통된 민속이다.   감은 표면이 매끄럽고 둥글다. 이런 둥글둥글한 모양새가 가족의 화합과 단란함(團圓)을 상징하고 태양처럼 붉은 감색은 활기차고 번창함(紅紅火火)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감의 한자인 시(枾)는 중국어로 일 사(事)와 발음이 같기에 만사여의(事事如意)의 뜻이 있으니 감을 먹으며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기를 빌었다.   우리는 요즘 얼린 홍시를 디저트로 많이 먹지만 옛날에는 빙리(氷梨), 동리(凍梨)라고 부른 언 배가 인기가 높았다. 한·중·일 삼국의 공통된 음식문화로 언 배가 맛도 있지만 먹으면 신선 세계의 과일처럼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보관 잘못했다며 버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장수 운운하며 예찬을 펼친 것을 보면 배가 얼면서 당도가 훨씬 높아지는 데다 무엇보다 신선한 과일이 없었던 겨울이었기에 신선 세계의 과일로 여겨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옛사람들이 이렇게 언 과일에 환상을 품었던 이유는 드물면 귀하다(物稀爲貴)는 경제원칙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비슷했지만 중국의 경우 동북지방은 겨울이 너무나 춥기에 아무리 잘 보관해도 식품이 얼게 마련이다. 신선한 과일은 떨어지고 남은 것은 얼어붙은 과일밖에 없기에 먹었던 것인데 의외로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냉동보관이 미생물의 번식을 막아 영양분이 그대로 보존돼 동북지역의 특산물이 됐다는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8.18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우리나라도 ‘꽌시’ 사회다!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우리나라도 ‘꽌시’ 사회다!

    셔터스톡 우리는 중국과 많이 다른가?   ■ 美美與共 天下大同 「 ‘우리’의 아름다움과 ‘타인’의 아름다움을 함께 하면, 천하는 크게 하나가 된다. -중국 인류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 」  서로 다른 문화를 서로가 공감하면, 세계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을 것이다.   첫 칼럼을 쓰고 나니 어떤 이는 ‘중국인 중에도 좋은 이가 있고 나쁜 이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도 그렇다’는 식의 시시한 얘기 하려면 그만두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왜 시시한 얘기일까? 어느 나라 사람은 모두 맞고 어느 나라 사람은 모두 틀렸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누구는 늘 옳고, 누구는 늘 틀릴 수도 없다.     1992년, 대만과 단교(斷交)하자 대만에 있던 많은 한국인은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대만 사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한국인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일본과의 관계가 나쁠 때,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운동과 일제 차량을 부수는 폭력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의 주범으로 잡혀간 어느 중국인이 형을 마치고 출소했더니 주위에서 위로를 해줬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고생한 것 없다. 감방의 모든 사람이 너무 잘 대해줘서 어리둥절했다”라는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일본을 상대로 분풀이한 것에 대해 감방의 모든 이들이 칭송(?)한 것이다.     ‘최소한 아직은’ 사드 이후 지속되는 이런저런 양국의 갈등 중에도 중국에서 한국인이 구타당했다거나, 우리나라 차량 등 제품이 훼손당했다거나,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중국에 대한 평가를, 필자도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전방위적인 반중 현상은 정도가 지나치다. 특히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은 편향된 정도가 심각하다. 나쁜 중국인(혹은 기업)한테 속은 우리나라 사람(혹은 기업)도 많지만, 나쁜 우리나라 사람한테 속은 중국인도 많다. 균형감 있는 비판은 몰라도, 흥밋거리로 소비하려는 비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당연히 공평하지도 않다.     취향(혹은 성향)은 ‘선택’에는 영향을 주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판단’에 이르면 안 된다. ‘좋아한다’와 ‘싫어한다’는 성향이고 취향일 수 있지만, 이것을 가지고 ‘맞다 또는 틀리다’ 혹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당신 자신의 그 근거에 대한 넉넉한 증거를 추구한다면, 당신의 의심이라는 것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그다지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식과 지혜의 부족으로 인한 편견이자 오만이다(티머시 켈러 목사)”.    ━  학문적 결과물도 때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않다.   심리학의 ‘기본 귀인 오류(基本歸因誤謬)’는 최소한 중국인에게는 없는 오류다.   사회심리학에서 중요한 주장 한 가지는,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평가할 때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의 중요성은 과장하는 한편, ‘상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기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개인의 성향이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일 뿐, 주변 환경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류(즉, 주변 환경도 중요하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 학자들이 지적하는 ‘기본 귀인 오류’는 중국인에게는 아예 성립이 안 되는 듯싶다. 중국인은 ‘개인의 성향보다는 주변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를 소개해본다.  ━  살해 사건에 대한, 미국과 중국 매체의 분석     ■ 사례1: 중국인이 가해자 「 루깡이라는 중국인 미국 유학생의 사례다. “1991년 미국 아이오아 대학 물리학과 박사 과정에 있던 중국인 학생 루깡은 우수 논문 경연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다. 그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그는 교수직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 그해 10월 31일, 그는 학과 건물에 들어가서 자신의 지도교수를 총으로 쏘고 근처에 있던 다른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총을 난사한 후 결국 자살했다…. 동일한 살인 사건에 대해 미국 신문(뉴욕 타임스)은 범인의 인격적인 결함을 부각하는 보도를 했다. 반면에, 중국 신문(월드 저널)은 범인이 처했던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 미국과 중국 매체의 초점은 명백하게 달랐다. 미국 언론은 ‘개인의 인격적 결함’을 부각하려 했다. 중국 언론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하필 범인이 중국인이기 때문에, 두 매체가 각각 의도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한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반된 언론의 태도는 상대 국가에 대한 선입관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는 ‘본래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문화가 달라서 ‘상대 국가에 대한 편견’이 없는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   ■ 사례 2 : 미국인이 가해자  「 두 번째의 사례는 ‘편견’이 아니라 ‘사유 방식의 차이’가 그렇게 판단하도록 했음을 증명해준다. 이번에는 가해자가 미국인이었다.   “미시간주의 오크벨리라는 도시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던 토머스 매킬베인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자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결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해 11월 14일, 그는 자신이 일하던 우체국에 들어가 상사와 동료, 그리고 고객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신문 기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가해자의 내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중국 매체는 매킬베인에게 영향을 주었을 법한 상황적 요인들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   ━  미국인과 중국인의 사고방식, 달라도 아주 다르다.   한편, ‘만약 이러저러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사후 가정적(counterfactual) 질문을 던졌을 때 더욱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루깡이 직장을 잡았더라면’ 혹은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그와 주변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등등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달랐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중국 학생들은 “루깡의 상황이 달랐더라면 살인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에, 미국 학생들은 “살인 사건의 원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 사람의 내부적 특성 때문인 만큼 상황이 달랐어도 동일한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개인주의’의 상대 개념은 ‘집단주의’가 아니라 ‘관계주의’다.   인과적 설명에서 양국의 차이가 극명했다. 개인은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정체성을 가졌다고 전제하는 미국은 ‘개인주의’인 반면, 중국은 소위 ‘관계(꽌시)주의’ 다. 개인은 여러 환경 속에서(또는 관계 속에서) 관계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저명한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량쑤어밍(梁漱溟)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 사회는 ‘개인주의’도 아니고…바로 ‘관계주의’다. 관계주의의 사회 시스템에서 강조하는 중점은 주로 특수한 개체 간의 관계에 있다…. 중점은 어느 한쪽에 두지 않고, 그 관계로부터 오는데, 피차가 서로 교환한다. 그 중점은 사실상 관계에 두고 있다(『중국문화요의(要義)』)”.   한편, 한국인과 미국인의 비교도 있다. “어떤 사람의 성격은 고유한 영역으로 살아가는 동안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미국인들은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반응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였다(『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  “중국은 꽌시 사회다. 그래서 정의롭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기보다 관계를 겪어 내는 여정입니다. 문제는 풀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관계는 견디지 못하면 못 삽니다(『길을 찾는 사람』, 조정민 목사)”.   “심리학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가족확장성과 관계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조직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즉, 집단주의보다는 관계주의다…. 고 최상진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고 관리하는 심리적 도구까지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체면이다’… (『어쩌다 한국인』, 하태균)”.  ━  ‘전면적인 꽌시 사회’ 와 ‘(일부 특권층만 향유하는) 부분적인 꽌시 사회’     중국은 스스로 ‘꽌시 주의’라 정의하고, 모든 이들이 그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중국이 ‘가족을 중심으로 확장되는 꽌시 주의 문화’라고 여기고 있지만, 권위 있는 학자는 ‘우리나라도 그렇다’라고 말한다.     한편, 보통의 한국인은 우리 사회의 꽌시 문화를 부정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꽌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인가 싶다. 일부 사회적 강자와 권력층은 자기들끼리는 꽌시를 거리낌 없이 자주 활용한다. 꽌시가 있는 이들은 법조차 안중에 없는 듯하다. 그들에게 법은 검이요 방패다. 꽌시 없는 보통의 한국인들은 맨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꽌시 있는 이들의 검과 방패는 평범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방패는 법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칼날은 결국 대중을 향한다.    ━  양쪽에서 배척당할 것인가? 아니면 양쪽을 다 아우를 것인가?   우리는 ‘주변인(혹은 경계인. Marginal man)’이다. 주변인 혹은 경계인이란, “두 개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 문화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소속되어 있지 못한 사람(〈두산 백과〉)”이라고 정의한다. 어느 한쪽으로의 뚜렷한 특징이 없을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태생적으로 ‘양쪽을 다 잘 아는’ 부류다.     세계적인 석학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의 글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유교 국가면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은 매우 이질적이고 상충하는 가치가 공존해왔고 앞으로도 공존할 수 있는 특이한 곳이다(『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우리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사유방식을 (서구의 다른 나라에 비해) 잘 알 수 있다. 한편, 근대화 이후 교육 및 정치 사회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서구를 쫓아가고 있다. 서구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크게 보면 두 국가 혹은 진영 사이에서의 ‘주변인’이다. 그런데 현실은, 미국과 중국을 어느 한쪽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듯 보이고,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지도 못한 듯하다.     한쪽의 잣대로 다른 한쪽을 재단하려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양쪽을 다 잘 아는 주변인’의 장점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신발 가게에 가서 ‘신발이 몇 문인가?’만 확인하고 사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직접 신어 보고, 내 발이 편한지를 알고 사야 한다. ‘신발의 단위’보다 내 판단이 내 감각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寧信度 不自信(크기를 재는 도구는 믿을지언정, 내 발은 믿지 않는다). 그러면, 어리석다. ‘주변인의 장점’을 발휘해서 미국은 미국식으로 바라보고, 중국은 중국식으로 바라보자. 누구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양쪽 시력이 똑같이 좋은데, 굳이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2023.08.17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중국의 생성 인공지능 규제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중국의 생성 인공지능 규제

    사진 셔터스톡 중국 국가사이버공간관리국(Cyberspace Administration of China)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교육부, 과학기술부,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국가전파관리국과 함께 올해 8월 15일부터 효력을 발휘하는 ‘생성적 인공지능 서비스 관리를 위한 임시 조치(生成式人工智能服务管理暂行办法)를 발표하였다(2023. 7. 13). 이제 중국은 생성 인공지능 규제를 시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공안부 등 이번 조치안에 참여한 기관들의 면면에서, 중국이 생성 인공지능을 산업적 측면은 물론 안보적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인터넷을 대내외적 프로파간다 활동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생성 인공지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사회주의 핵심 가치의 견지     중국의 생성 인공지능 관련 조치안이 영미권의 규제 논의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대목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의 견지’이다. 총칙 4조 1항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견지하고 국가권력 전복, 사회주의 제도 전복,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선동, 국가 이미지 손상, 국가 통합과 사회 안정 저해, 테러 조장을 유발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즉 생성 인공지능에 대한 임시조치는 중국이 언제나 강조하는 총체적 국가 안보관을 반영한 것으로, 체제 안정과 외부 영향 차단이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 운용의 일차적 고려 요소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선동을 금지함은 사실상 외부 세계 콘텐츠의 흐름을 억제하고 내부적으로도 검열과 통제를 시행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상이한 가치관과 거버넌스는 결국 중국의 인터넷이 외부, 특히 서방과 더욱 단절될 것임을 전망하게 한다. 이러한 전망은 동 조치안의 7조 5항이 생성 인공지능 제공자로 하여금 네트워크 보안법, 데이터 보안법,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법률의 규제 요건을 준수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중국의 데이터 보안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은 안보 개념과 강하게 연계되어 있다. 데이터 보안법은 중국 경내나 해외 데이터 처리를 막론하고 공안기관이 데이터를 수집할 경우 모든 조직과 개인에 협조 의무를 부여한다. 개인정보보호법도 정부가 중국 내외(內外)의 모든 중국인의 개인 정보에 접근‧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즉,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 제공자도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서비스에 제공되는 콘텐츠나 해당 콘텐츠 생성에 관여한 기관, 개인을 언제라도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상이한 생성 인공지능 거버넌스를 채택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생성 인공지능 거버넌스를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한 제약 및 자국에 대한 영향 공작(influence operation)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어, 서방과 중국 인터넷의 분리‧단절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주목할 내용은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별 차별 규제이다. 동 임시조치안의 4조 5항은 ‘서비스 유형의 특성에 따라 생성적 인공지능 서비스의 투명성을 높이고 생성된 콘텐츠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서비스 유형 및 그 특성은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16조에서 관련 국가 당국이 분류 및 감독 지침을 제정하도록 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추후 관련 당국의 지침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는 관련 당국이 누구인가가 중요한데 네트워크 보안이나 교육, 과학, 특히 미디어 및 공안 당국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일부 중요 서비스는 허가를 취득해야 하고(23조),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시정을 거부하거나 상황이 심각한 경우 관련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21조).    ━  인공지능 세계의 분리     한편, 중국의 생성 인공지능 콘텐츠가 중국 당국의 의도를 반영해 외부 세계로 투사될 수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조치안의 제17조는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 제공자가 인터넷 정보 서비스 알고리즘 권장 관리 규정에 따라 알고리즘 제출, 수정, 취소 절차를 수행하도록 규정한다. 즉, 콘텐츠 제공의 핵심 수단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수단의 통제는 서비스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내용 관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생성 인공지능이 중국이 의도하는 선동 내지는 메시지, 담론의 설파에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비스 제공의 대상이 중국인이 아니라면 이번 조치안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중국이 미디어,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영향 공작이 가능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중국의 생성 인공지능 관련 조치안은 안보 측면, 이야기 전쟁의 측면에서 방어와 공격이 모두 가능한 생성 인공지능 거버넌스의 골격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알고리즘 통제는 단순히 데이터를 자국내(內)에 두는 것으로는 안보 측면을 담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서방 세계에서는 인공지능의 위험 수준에 따라 차등적 규제를 추진하는 EU나 자율규제를 선호하는 미국간의 인공지능 관련 정책 조율이 무역기술위원회(TTC)를 통하여 진행 중이다. 민간 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와 혁신 간의 조화가 어떤 모습으로 제도적으로 나타날 것인지가 관심사일 것이지만 사실상 미국과 유럽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시장 규제를 독자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미국과 EU가 모두 인공지능의 규범에서 민주주의 및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 가치로 두면서, 일반 시민의 행위를 평가해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사회신용시스템(social credit system)과 같은 서비스의 제약을 추진할 전망이다. 이는 중국의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한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고, 중국도 서방의 인공지능 서비스가 자국민에게 제공되는 것을 이번 조치안을 통해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의 혁신이 진행되고 콘텐츠 생성이 용이해질 수록 중국과 서방의 인공지능 서비스는 분리되고, 상대방의 정보나 선전활동에 대한 양 진영의 대응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도 이러한 추세에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보나 콘텐츠의 자유로운 생성과 유통은 상대방에 대한 왜곡과 거짓을 이용한 공격의 자유도 부여하기 때문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08.15 06:00

  • [중국읽기] 돌아온 중국 유커 ‘인두세’의 기억

    [중국읽기] 돌아온 중국 유커 ‘인두세’의 기억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당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달 초 A여행사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의 현지 여행사로부터 20명의 단체 여행객을 받았다. 4박 5일 서울~제주 일정이었다. 여행상품 가격은 900위안, 우리 돈 16만2000원이다. 하얼빈~서울 왕복 비행기 푯값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기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두세(人頭稅) 때문이다. 정상대로라면 A여행사는 하얼빈의 중국 여행사로부터 숙박·식사·교통 등의 관광 비용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거꾸로다. A사는 오히려 유커 1명당 300위안(약 5만4000원)을 중국 여행사에 줘야 했다. 돈을 주고 유커를 사 오는 셈이다. 그다음부터는 뻔한 일, 덤핑관광은 그렇게 시작된다.”   유커가 쏟아져 들어오던 2016년 가을 명동. 중국 관광객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중앙포토] 2016년 3월 16일자 본지 기사다. ‘중국 관광객 한 명당 5만원…. 현대판 인두세’라는 제목이 붙었다.   중국이 한국 단체 관광에 ‘금족령’을 내리기 전의 풍경이다. 당시 유커(遊客)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덤핑 관광이 기승을 부렸다. 가이드는 관광객을 새벽부터 쇼핑센터로 내몰았다. 쇼핑하지 않는 관광객의 짐은 내던져지기 일쑤였다.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라는 엉터리 가이드도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업계는 어떻게 하면 어설픈 중국 관광객 주머니를 털까만을 생각했다. 국내 여행사들은 중국 여행사 농간에 놀아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덤핑 판매에 나섰다. 시장을 관리해야 할 공무원들은 보고용 관광객 숫자에만 관심을 뒀다. ‘인두세’가 형성된 배경이다.   중국이 6년여 동안 묶었던 한국행 단체관광을 다시 허용키로 했다. 호텔·면세점·백화점·항공 등 관련 업계는 벌써 다가올 특수에 흥분한다. 그러나 우려가 앞선다. 덤핑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인두세’ 망령은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당국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담 여행사의 허가 주기를 1년으로 단축하고, 덤핑 여행사 상시 퇴출 제도를 시행하려 했다. 가이드 제도도 손볼 요량이었다. 일부 여행사의 불법 환전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드로 유커가 사라지면서 유야무야 됐을 뿐이다.   당시 대책만이라도 살려야 한다. 덤핑 구조는 한국 관광산업도, 이미지도 실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반중(反中) 정서가 높다. 왜곡된 유커 관광은 내국인과의 마찰로 이어져 불필요한 감정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인두세’ 형성 구조를 해체하는 것, 그게 유커 맞이의 시작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8.14 00:3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뚜껑 열린 딤섬 만두, 사오마이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뚜껑 열린 딤섬 만두, 사오마이

    사진 셔터스톡   사오마이는 딤섬의 대표 만두 중 하나다. 맛도 있지만 모양도 예뻐서 많은 사랑을 받는데 그래서 홍콩의 딤섬을 세계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에서도 일반 음식점보다는 딤섬 전문점에서 주로 먹을 수 있기에 흔히 광동요리로 알려져 있다. 여느 중국 음식과는 다르게 만두 속에 새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 북경을 비롯한 화북, 상해, 항주 등지의 화동 음식과는 다른 느낌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중국의 다른 만두와 사오마이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만두 끝이 오무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만두는 소를 싼 만두피의 끝을 봉합하지만 사오마이 만큼은 예외다. 쉽게 말해 만두 뚜껑이 열려 있다는 것인데 덕분에 만두소로 무엇이 들었는지, 새우인지 고기 혹은 야채만두인지, 고기만두라면 돼지고기인지 양고기인지를 먹어보지 않고도 구분할 수 있다. 사오마이라는 만두, 왜 뚜껑이 열렸을까?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만두소의 내용물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만두 빚을 때 미리 구분해 놓으면 되고, 그게 아니어도 만두소가 무엇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특정인에게는 심각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국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다. 그중 이슬람 전통의 회족, 위구르 민족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많은 경우 공산화된 현재 중국에서도 율법에 따라 조리한 할랄음식(淸眞菜)을 고집한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아니어도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유목 전통의 민족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자칫 한족이 주로 먹는 돼지고기 만두를 잘못 먹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뚜껑 열린 만두, 사오마이를 빚게 됐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속설이지만 당연히 근거는 없다. 다만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팩트 체크를 해보면 사오마이가 유행하는 과정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시대상황도 엿볼 수 있다.   먼저 중국에서 사오마이를 먹기 시작한 시기다. 일반적으로는 문헌 기록을 토대로 몽골이 중원을 지배했던 원나라 무렵으로 본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오마이라는 만두 이름이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은 중국이 아닌 우리 문헌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원말명초, 우리의 고려 말에 간행된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朴通事)』의 예문에 처음 나온다.     원나라 수도였던 대도(大都)에서 상인들이 음식을 사먹는 장면으로 여기에 양고기 만두(羊肉餡 饅頭)와 지금의 물만두로 추정되는 수정교자(水精角兒), 채소 사오마이(素酸餡 稍麥) 등등 다양한 만두 가 소개돼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원은 상업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였다. 흔히 몽골족을 초원에서 양과 말이나 키웠던 부족으로 알지만 이들은 농경민인 한족과 달리 교역을 통해 생필품을 구해야 했던 상인들이었다. 그런만큼 원나라는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망을 바탕으로 상업이 번창했는데 그 근거지가 역참이다. 원나라 문헌 『경세대전』의 역참 조항 등을 근거로 당시 중국에는 약 1500개의 역참이 설치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보통 40Km마다 역참이 있다고 나온다. 역참은 군사 교통로이면서 동시에 상인들의 이동 길목이었기에 역참을 중심으로 숙박시설, 그리고 음식점이 발달했고 거대한 상업도시가 형성됐다.     이를 테면 수도인 대도의 상주인구은 약 50만 명이었지만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거주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이 머물고 먹어야 했기에 곳곳에 숙박과 음식점을 겸한 반점(飯店) 술집과 숙박업소인 주루(酒樓), 차와 함께 만두 등 가벼운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찻집(茶館)이 생겨났다.     대도뿐만 아니라 당시 중부와 남부의 대표 도시인 개봉과 항주도 마찬가지여서 대형 주루만 70여곳이고 반점은 부지기수였다니 상업과 요식 숙박업이 얼마나 번창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이런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주로 지배층인 몽골 상인, 중앙아시아와 아랍의 무슬림인 색목인(色目人)이었고 이들은 종교적, 관습적으로 돼지고기 등을 기피하는 사람들이었다. 먹기 전 만두 소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뚜껑 없는 만두 사오마이가 유행했다는 속설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다.     어원을 통해 사오마이의 뿌리를 찾기도 한다. 원나라 때는 사오마이를 한자로 초맥(稍麥), 명청시대 이후는 소매(燒賣)라고 쓴다. 중국어 발음은 모두 사오마이(shaomai)다.     그런데 초맥은 끝 초(稍) 보리 맥(麥)이니 끝 보리(?)라는 뜻이 되고 소매는 태울 소(燒) 팔 매(賣)로 태워서 판다(?)라는 뜻 모를 단어가 된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이름이 됐을까 싶은데 일부에서는 북방 혹은 서역의 외국어를 한자음을 빌어 번역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사오마이는 홍콩, 광동요리가 아닌 원나라 때 음식점을 드나들던 북방 서역의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서역과 연결된 실크로드, 현대에는 영국이 발전시킨 홍콩을 통해 유명해진 뚜껑 열린 만두 사오마이 속에 고금의 동서교역 역사가 들어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8.1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