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과 서양의 상식은 어떻게 다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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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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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상식! 바로 ‘合情合理合法’(합정·합리·합법, 인정에 맞게, 도리에 맞게, 법에 맞게)다. 우리말로 “상식적으로 합시다”라는 뜻이다. “合情合理合法 하게 합시다”는 중국에서 비즈니스 협상이든 일상생활에서든 자주 듣는다.

중국인도 ‘상식적으로’ 행동한다. 당연히! 그런데 그 ‘상식’이 어딘가 다르다. 서양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틀렸다’는 단정은 틀렸다.

상식적으로 일을 처리하자는 제안은 당연히 동의가 된다. 그런데 그 상식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순서가 있다. 정(人情, 인정)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이 도리(道理), 맨 마지막이 법(法)이다. 서양은 그 순서가 ‘법, 도리 그리고 인정’일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늦게 들이대는 잣대는 법인 데 비해, 서양에서는 법이 맨 앞이다.

중국의 ‘정(情) 〉 이(理) 〉 법(法)’ 과 서구의 ‘법(法) 〉 이(理) 〉 정(情)’

순서가 거꾸로다. 어떤 일을 판단 혹은 실천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사고 틀을 운용한다. 바로 윤리와 합법이다. 위법은 아닌지, 혹은 적법하다 하더라도 윤리적으로는 맞는지다. 쉽게 말해서 ‘상식적이냐’를 따져 본다. 중국인에게 상식적인 행위란 ‘인정과 도리와 법에 맞아야’ 한다. 세 가지 기준틀 중에서 앞의 인정과 도리는 윤리다. 중국도 우리 및 서구와 다르지 않지만 순서가 다르다. 이 지점에서 갈등의 실마리는 얽히고 갈수록 꼬여만 가는 상황이 생긴다. 서로가 자신의 ‘상식’에 비추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식의 적용은 같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변호사의 사회적 위치가 높지 않았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된다.

변호사는 현대 중국어로는 ‘율사(律師 법률 선생, 법률 전문가)’라고 하지만, 이런 호칭은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訟師(소송을 하는 전문가)라는 정식(?) 명칭도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訟棍(소송을 하는 놈. 몽둥이라는 ‘棍’은 멸칭을 뜻하는 접미사다. 우리말의 ‘양아치, 벼슬아치’등의 ‘치’와 유사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또는 律棍(법률하는 놈)이라는 멸칭으로 불렀다. ‘지식을 이용해서, 강자에게 아부하고 사회적 약자를 핍박하며 사익을 취하는 부류’로 치부되었다.

근대화되며 지식인층에 정통적인 법조인들이 나타났지만, 문화대혁명 등의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 이런 이들이 거의 소멸하였다고 한다. 중국 현대법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추이퉁주(瞿同组)같은 학자들도 조국을 위해 귀국했다가 문혁기간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지금 변호사들의 지위와 사회적 역량은 불과 수십 년 전과 비교한다면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정리법(情理法)은 영역을 막론하고 작동한다.

쌍방이 서로 맞는다고 주장할 때, 서구(및 우리)는 법에 의뢰하여 가장 공정한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자 이제 큰 틀에서는 합의가 되었으니, 이제 변호사끼리 얘기하게 하자”고 했더니 중국 측에서는 “이게 뭐지? 법대로 하자고?” 하며 불쾌해했다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심지어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마저도 종종 있었다. 비록 과거의 사례지만 아직도 우리와 다르다. 이런 전통적 사유 방식은 일상생활과 비즈니스뿐 아니라 국제적인 교류에서도 중요하게 작동 중이다.

‘공정을 위해 법에 자문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는 중국인은 “뭐지? 끝까지 가 보자는 거야?” 하며 불쾌해하고 심지어 분노한다. 私了(사료. 개인적으로 해결하다), 즉 당사자끼리 합의 보는 것을 가장 먼저 선택한다. 지금은 법을 자주 찾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중국인들이 아직까지도 가장 선호하는 것은 私了다. 和為貴(화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귀하다)의 관념은 중국인의 전통이며 아직도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물론, 중국인들도 법에 의뢰한다. 하지만, 그것은 맨 나중이며, 동시에 법에 호소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한다. 우리도 우선 합의를 하다가 안 되면 법으로 간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중국인이 ‘법’을 찾을 때의 심정에 있어서 그 거북함과 속도는 우리와 절대로 같지 않다. 법으로 해결하면 후에 여러 가지 후유증이 있다. 불쾌하거나 나쁜 기억은 두고두고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있는 한, ‘報(대갚음 한다)’라는 중국 문화에 의해 뒤끝을 염려해야 한다.

어떤 중국 학자는 중국 문화의 특징은 ‘報’라는 한 글자로 귀결된다고도 한다. 은혜(신세)도 갚고, 나쁜 것도 되돌려준다. 법에 의뢰하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전에 한 번쯤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중국인을 대하는 지혜’다.

“원칙은 있다. 우리의 원칙은 개별 처리의 원칙이다!”

세칙(細則)은 ‘합정 합리 합법’이다.중국철학자(曾仕强)의 말이다. 풀어보면 “원칙을 준수한다. 그리고 그 원칙은 분명하다. ‘사안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개별 적용’을 하는 원칙”이다. 그러다 보면 원칙이 너무 많아진다. 그것도 원칙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은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많이 이상하다. 이런 식의 ‘상대방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원칙’은 ‘원칙이 없다’는 것과 결국은 매우 유사해 보인다.

중국 사회학의 태두인 페이샤오퉁(費孝通)은“중국인들은 나와 무슨 관계인가를 알고, 그에 맞는 판단 기준을 들이댄다(〈鄉土人間(향토인간)〉)”고 일갈했다. 소위‘꽌시’가 가치 기준을 정한다는 말이다. 꽌시는 때때로‘인정(人情)’과 동의어로도 쓰인다. “인정과 꽌시는 나누기 어려울 만큼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두 용어의 의미는 때로는 심지어 서로 호환되기도 한다. ‘我們之間沒有人情(우리 사이에는 인정이 없다)’과 ‘我們之間沒有關係(우리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는 같다(金耀基, 대만대 교수)”

다른 글을 소개한다. “나는 OO인들이 타인에게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나 가족들에게는 해주지 못할 일이 없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아무런 주의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안중에 없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정(情)으로 친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필자가 강연 중에 이를 보여주고, 여기에서 “OO”는 어느 나라일까요?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답을 안 했다. “중국인이라는 게 뻔한데, 왜 묻지?”라는 표정이다. 그런데, 문장 중의 ‘OO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정답은 ‘한국인’이다. 글을 쓴 작자는 모 대기업 한국 본사에서 근무했던 미국인이다(〈푸상무 이야기〉).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인도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 대한 이중잣대가 있다’는 말이다. 소위 ‘인정(꽌시) 주의’ 문화다.

서구 경제학도 ‘합정(合情. 인정에 맞다)’을 중시한다?

케인스는 경제가 합리적, 이성적 판단에서만 돌아가지 않고 비경제적인 본성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레몬 시장 이론’으로 유명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는 animal spirit(중국어 책 이름은 〈동물정신〉)에서 경제가 운행되는 것과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 동기와 이성적 반응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히려 ‘경제적 동기와 비이성적 반응’, ‘비경제적 동기와 이성적 반응’, ‘비경제적 동기와 비이성적 반응’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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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 spirit 경제적 동기 + 비이성적 반응/ 경제적 동기 + 이성적 반응
animal spirit(경제학에서 말하는 판단 영역)
animal spirit비경제적 동기 + 비이성적 반응/ 비경제적 동기 + 이성적 반응초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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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 spirit칼럼의 주제에 맞춰 보면, 중국의 기업이나 중국인을 대할 때 상대방(혹은 시장)이 ‘경제적 동기와 이성적 반응’의 영역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라고만 상정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좀 더 말해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적으로 행동할 것이고, 우리와 중국인의 상식도 인간인 이상 비슷할 것이라는 ‘단정’은 잠시 보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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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 spirit‘사람은 비이성적이다. 여러 심리 문제가 판단에 영향을 미치므로, 경제학은 반드시 심리학과 결합해야 한다’는 행위경제학의 관점도 있다.상대방의 합리와 이성이 우리와 다를 수도 있고, 또 고려하는 순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소위 글로벌이라는 틀, ‘글로벌 상식(?)’으로만 중국을 재단하려는 했던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겠다. 중국인들은 어떤 사고틀을 갖고 있는지를 좀 더 공부하고, 실제 현장에서 이 지식들을 제대로 활용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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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 spirit“범죄의 유형을 파악하기보다는, 범죄자의 유형을 파악해야 한다”. 오래전의 기억이라 문장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사건 또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를 하려면 그 행위의 ‘형태’보다는 ‘행위의 주체’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중국인의 사유 방식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비단 중국인들과 일상생활에서의 사귐뿐만이 아니라 보다 큰 차원의 협상에서도 중요하다. 협상은 논리가 풀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판단과 실행은 사람이 한다.

중국인의 상식과 그 사유방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문 서적을 통해서 그리고 과거 사례와 경험을 통해서 끈기 있게 공부해야 한다. 숫자와 통계는 물론 중요하지만, 정량(定量)적인 것 외에 맥락에 감추어진 정성(定性)적인 것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고 그런 결과물 역시 중시하고 축적해야 한다. 사실로 드러난 것 외에도, 그 문화 속의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그때 왜 그렇게 생각하고 실행했을까를 정성(定性)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황은 그때마다 다르고 변할 수 있지만, 그래도 ‘덜’ 변하는 것은 그 상황을 만들어내는(혹은 그 상황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중국인의 사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핵심일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 근거 없는 오만일까? 하지만 설사 어렵다 해도 오랜 역사적 교류와 경험으로 인해, 중국인에 대한 ‘공부와 이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식’을 축적하는 노력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게 되면 지금의 사안과 상황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혜’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가위바위보의 고수는 ‘상대방이 무엇을 낼 것’인지를 예측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진정한 고수라면, 내가 무엇을 낼 거라고 ‘상대방이 예측할 것’을 예측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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