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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미식의 극치인가...곤드레만드레 술 취한 새우(醉蝦)

중앙일보

입력

쭈이샤. 사진 셔터스톡

쭈이샤. 사진 셔터스톡

새우가 맛있는 계절이다. 새우를 보다 알차게 먹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흔하게 먹는 소금구이나 새우찜, 새우튀김과 칠리소스 볶음에도 군침이 돌지만 나라 밖의 다양한 새우요리를 참고하면 또 다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한국식인지 일본풍인지는 구분이 분명치 않지만 살아있는 보리 새우회, 오도리(おどり)도 특별하고 스페인풍으로 올리브오일로 마늘과 함께 새우를 요리한 감바스 알 아히요도 색다르게 구미를 자극한다.

뜻밖의 중국식 새우요리도 있다. 살아있는 새우한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든 후 먹는 방법이다. 그래서 요리 이름도 술 취한 새우, 중국말로는 쭈이샤(醉蝦)라고 한다.

새우한테 어떻게 술을 먹일까 싶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술독에 빠트리면 된다. 물론 새우 한 접시 먹자고 술독을 통째로 허비할 수는 없으니 먹을 만큼의 새우를 술이 담긴 냄비 같은 그릇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러면 술 그릇에 빠진 새우가 팔짝팔짝 뛰어오르는데 몇 분이 지나면 만취해 늘어진 것인지 혹은 술로 인해 운명을 달리한 것인지 잠잠해진다. 이때 꺼내어 껍질을 까먹으면 된다.

살짝 다르게 먹을 수도 있다. 조금 큰 새우를 도수 높은 독한 백주가 든 그릇에 넣는다. 그러면 역시 새우가 팔팔 뛰어오르다 잠잠해지는데 이때 술에다 불을 붙인다.

독주인 만큼 실험실에서 알코올에 불을 붙일 때처럼 파란 불꽃이 일다가 사그러드는데 이때쯤이면 새우가 살짝 데쳐지는 듯 익는다. 이렇게 익은 새우를 꺼내어 껍질을 까먹으면 된다.

술 취한 새우, 맛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해 새우를 좋아한다면, 생선회 특히 보리새우 회인 오도리를 즐긴다면 술 취한 새우 쭈이샤 또한 맛있다. 덧붙여 단순한 새우회의 맛을 뛰어넘는 풍미까지 있어 독특하다.

새우한테 먹이는 술은 주로 소흥주(紹興酒)다. 물론 이름만 흉내 낸 값싼 술인지 아니면 진짜 전통 명주인지에 따라 요리 가격도 달라지고 맛도 큰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소흥주는 향기가 강한 술이다. 새우를 독한 백주에 담가 먹는 쭈이샤도 마찬가지다. 술에 불이 붙을 정도이니 알코올 도수가 최소 50도를 넘는다. 그만큼 비싼 술인데다 중국 백주는 대부분 특유의 향미가 있다.

그렇기에 술 취한 새우, 쭈이샤는 신선한 새우 내지는 새우회의 맛에 더해 중국 술 특유의 향기가 스며들어 특이한 맛이 있다.

그런데 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 중에서는 잠수함 빼고는 다 요리할 수 있다는 중국이지만, 홍콩영화 취권(醉拳)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새우한테 거나하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후 먹을 생각을 했을까?

음식은 지리와 환경, 경제와 문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진화하고 발전하지만 일단은 실용적인 이유를 꼽는다.

강소성을 비롯해 양자강 주변의 옛날 중국 강남 지역에는 수산물과 술의 재료인 쌀이 풍부했던 만큼 새우나 게 등의 갑각류를 술에 절여 먹는 음식문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간장 게장처럼 중국에는 술 내지 술지게미에다 게를 담아 숙성시켜 먹는 술 취한 게, 중국어로 쭈이시에(醉蟹)가 있다. 명나라 이후 발달한 강소성의 특산 전통 게장이라고 하는데 강소성 뿐만 아니라 양자강 유역에 널리 퍼진 별미라고 한다.

민물 게인 방게를 잡아 쌀로 빚은 술에 담아 절이는데 이렇게 하면 귀한 소금을 아끼면서 게를 장기 보관할 수 있다. 더해서 게가 비리지 않고 향기로운 데다 게살의 신선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소금과 된장이 상대적으로 넉넉해 간장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간장 게장이 발달한 것과 닮은 꼴이다.

술 취한 게, 쭈이시에와 함께 술 취한 새우, 쭈이샤가 생겨난 것 역시 한국에서 간장 게장과 더불어 간장 새우장이 인기를 얻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등장 시기는 서로 다르다. 술 취한 게가 명나라 때 발달했다고 알려진 반면 술 취한 새우는 청나라 문헌에 집중적으로 보인다. 먼저 18세기 후반으로 청나라 전성기 때인 건륭황제 때 문장가이며 미식가로 이름을 날린 원매가 쓴 요리 관련 문헌 『수원식단(隨園食單)』에 술 취한 새우(醉蝦)라는 이름이 나온다. 강남의 청나라 고위 관리와 부유층에서 즐겨 먹던 요리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새우가 담긴 술 그릇에 불을 붙여 새우의 껍질이 빨갛게 될 때까지 익혀 먹는다고 했으니 요즘의 쭈이샤 요리와 비슷하다.

역시 청나라 때인 19세기 후반에 발행된 『수운각(繡雲閣)』이라는 고전소설에도 어느 부잣집에서 술에 담아 취한 새우를 꺼내어 쪄먹으니 맛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술 취한 새우를 익히지 않고 회로 먹는 방법은 1930년대에 사천성 성도의 한 고급음식점에서 개발해 상해와 홍콩 등지로 퍼졌다고 한다. 중국 부유층이 일제를 피해 성도와 중경 등지로 피난을 했던 시기다.

술에 절이는 새우 보관법이 미식으로 발전했지만 한편으로는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 일본 침략으로 핍박받던 시기를 새우가 대신 술에 취해 세월을 견딘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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