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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흑룡강이 고향이라는 냉면구이, 카오렁멘(烤冷麵)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길거리 음식. 셔터스톡

중국의 길거리 음식. 셔터스톡

카오렁멘은 요즘 중국의 10~20대 젊은층에서 인기가 높다는 거리음식이다. 원래 동북지방, 특히 흑룡강성 음식이지만 지금은 북경을 비롯해 중국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카오렁멘이라는 이 음식, 이름이 낯설기 그지없다. 굽는다는 뜻의 고(烤)와 냉면(冷麵)을 합친 단어를 중국어로 발음한 것이니 우리말로는 구운 냉면, 즉 냉면구이가 된다.

얼핏 들어도 일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음식이다. 냉면구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게다가 찬 국수 냉면을 구우면 따뜻한 국수 온면이나 뜨거운 국수 열면이 되니 어법상으로도 도무지 맞지를 않는다. 그런데 이런 괴상한 이름의 음식,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증을 풀어 가다 보면 심심풀이 호기심 천국의 입문을 넘어 최근의 중국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카오렁멘은 어떤 음식일까?

뜻은 냉면구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아는 냉면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심지어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 맛은커녕 음식 구경도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달궈진 철판 위에 국수를 펼쳐 놓은 후 계란물을 풀어 입힌다. 맛도 맛이지만 계란물이 접착제 역할을 하면서 종이 김처럼 사각형 모양의 국수판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고추장 등을 풀어 만든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소시지를 비롯해 다양한 재료를 얹은 후 둘둘 말아 굽는다. 그리고 난 후 이 김말이 아닌 국수말이를 숭덩숭덩 썰어 접시나 종이컵에 담아 파는 것이 요즘 중국 야시장에서 유행한다는 냉면구이, 카오렁멘이다.

카오렁멘. 더우반

카오렁멘. 더우반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냉면과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이 음식을 강사면(鋼絲麵)이라고 불렀다.

강철로 만든 철판 위에 실처럼 생긴 국수를 볶았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일 것이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이 강사면이 냉면구이, 카오렁멘이 됐는데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처음 재료로 썼던 국수가 일반 국수가 아닌 감자채(土豆絲) 또는 우리 옛날 함흥냉면처럼 감자 전분 국수를 썼거나 내지는 중국내 조선족의 냉면 국수면발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카오렁멘의 어원은 이렇게 오리무중이다. 그런데 냉면구이라는 이름 못지않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 또 있다. 음식 자체의 유래설이다.

일단 카오렁멘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이 음식, 역사가 길지 않다. 대략 30년 전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제대로 진행하라고 다그쳤던 1992년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나왔을 무렵이다. 다시말해 선언적 의미가 아닌 실질적인 개혁개방이 이제 간신히 시작됐을 때다.

이 무렵 흑룡강성 최북의 계서(鷄西)시 소재 한 중학교 교문 앞 분식집에서 팔았던 음식이 발달해서 지금의 카오렁멘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발상지를 흑룡강성으로 본다는 것인데 별로 재미는 없지만 그럼에도 짚어볼 부분은 있다.

우선 카오렁멘의 조리방식은 여러 면에서 일본이나 홍콩, 대만, 동남아 등지의 철판 볶음국수와 많이 닮았다. 국수가 아닌 밀전병을 둘둘 말아서 먹는 북경의 전통 거리음식인 지앤삥(煎餠) 혹은 파 전병인 총삥(蔥餠)과도 비슷하다. 물론 소로 들어가는 재료의 종류나 소스를 발라서 먹는다는 점 등은 차이가 있지만 굳이 30년 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였을 흑룡강성 계서시의 한 중학교 앞 분식집을 발상지로 거론한다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어쨌든 카오렁멘을 포함해 아시아의 상당수 음식이 알고 보면 중국이 원조라는, 속된 말로 국뽕 넘치는 일부의 주장이야 그저 웃어 넘겨버린다고 해도 관련해 또 하나, 특이한 부분이 있다.

요즘 중국에서 새롭게 유행한다는 음식, 그래서 유래설 등의 스토리가 곁들여지는 음식들의 상당수가 흑룡강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먹는 찹쌀 탕수육 종류인 꿔바로우(銙包肉)도 그중 하나다. 19세기 말, 흑룡강성 하얼빈에 진출한 러시아 외교관 내지 철도 기술자를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유래설이 널리 퍼져 있다. 최근 보양식으로 뜨고 있다는 비룡탕(飛龍湯)도 몽골과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인 흥안령(興安嶺) 원시림에 사는 희귀 새를 재료로 끓인 청나라의 보양식이라고 한다.

카오렁멘의 발상지라고 하는 계시도 길림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바로 위쪽이고 러시아와의 국경과도 인접해 있다. 지도상으로는 중국에서 한때 청나라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블라디보스톡과도 멀지 않다.

이렇듯 최근 음식 스토리의 진원지로 흑룡강성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배경이 무엇일까? 물론 흑룡강성이 진짜 발상지여서일 수도 있고 또는 중국의 여러 성시 중에서 흑룡강성이 스토리 발굴의 미개척지로 남아 있어 새롭게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청나라의 옛 땅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해 애써 흑룡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북공정과 김치 원조논쟁, 중국의 팽창주의 행태를 보니 음식 하나를 놓고도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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