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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뚜껑 열린 딤섬 만두, 사오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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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사오마이는 딤섬의 대표 만두 중 하나다. 맛도 있지만 모양도 예뻐서 많은 사랑을 받는데 그래서 홍콩의 딤섬을 세계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에서도 일반 음식점보다는 딤섬 전문점에서 주로 먹을 수 있기에 흔히 광동요리로 알려져 있다. 여느 중국 음식과는 다르게 만두 속에 새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 북경을 비롯한 화북, 상해, 항주 등지의 화동 음식과는 다른 느낌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중국의 다른 만두와 사오마이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만두 끝이 오무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만두는 소를 싼 만두피의 끝을 봉합하지만 사오마이 만큼은 예외다. 쉽게 말해 만두 뚜껑이 열려 있다는 것인데 덕분에 만두소로 무엇이 들었는지, 새우인지 고기 혹은 야채만두인지, 고기만두라면 돼지고기인지 양고기인지를 먹어보지 않고도 구분할 수 있다. 사오마이라는 만두, 왜 뚜껑이 열렸을까?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만두소의 내용물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만두 빚을 때 미리 구분해 놓으면 되고, 그게 아니어도 만두소가 무엇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특정인에게는 심각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국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다. 그중 이슬람 전통의 회족, 위구르 민족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많은 경우 공산화된 현재 중국에서도 율법에 따라 조리한 할랄음식(淸眞菜)을 고집한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아니어도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유목 전통의 민족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자칫 한족이 주로 먹는 돼지고기 만두를 잘못 먹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뚜껑 열린 만두, 사오마이를 빚게 됐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속설이지만 당연히 근거는 없다. 다만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팩트 체크를 해보면 사오마이가 유행하는 과정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시대상황도 엿볼 수 있다.

먼저 중국에서 사오마이를 먹기 시작한 시기다. 일반적으로는 문헌 기록을 토대로 몽골이 중원을 지배했던 원나라 무렵으로 본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오마이라는 만두 이름이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은 중국이 아닌 우리 문헌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원말명초, 우리의 고려 말에 간행된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朴通事)』의 예문에 처음 나온다.

원나라 수도였던 대도(大都)에서 상인들이 음식을 사먹는 장면으로 여기에 양고기 만두(羊肉餡 饅頭)와 지금의 물만두로 추정되는 수정교자(水精角兒), 채소 사오마이(素酸餡 稍麥) 등등 다양한 만두 가 소개돼 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원은 상업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였다. 흔히 몽골족을 초원에서 양과 말이나 키웠던 부족으로 알지만 이들은 농경민인 한족과 달리 교역을 통해 생필품을 구해야 했던 상인들이었다. 그런만큼 원나라는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망을 바탕으로 상업이 번창했는데 그 근거지가 역참이다. 원나라 문헌 『경세대전』의 역참 조항 등을 근거로 당시 중국에는 약 1500개의 역참이 설치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보통 40Km마다 역참이 있다고 나온다. 역참은 군사 교통로이면서 동시에 상인들의 이동 길목이었기에 역참을 중심으로 숙박시설, 그리고 음식점이 발달했고 거대한 상업도시가 형성됐다.

이를 테면 수도인 대도의 상주인구은 약 50만 명이었지만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거주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이 머물고 먹어야 했기에 곳곳에 숙박과 음식점을 겸한 반점(飯店) 술집과 숙박업소인 주루(酒樓), 차와 함께 만두 등 가벼운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찻집(茶館)이 생겨났다.

대도뿐만 아니라 당시 중부와 남부의 대표 도시인 개봉과 항주도 마찬가지여서 대형 주루만 70여곳이고 반점은 부지기수였다니 상업과 요식 숙박업이 얼마나 번창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이런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주로 지배층인 몽골 상인, 중앙아시아와 아랍의 무슬림인 색목인(色目人)이었고 이들은 종교적, 관습적으로 돼지고기 등을 기피하는 사람들이었다. 먹기 전 만두 소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뚜껑 없는 만두 사오마이가 유행했다는 속설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다.

어원을 통해 사오마이의 뿌리를 찾기도 한다. 원나라 때는 사오마이를 한자로 초맥(稍麥), 명청시대 이후는 소매(燒賣)라고 쓴다. 중국어 발음은 모두 사오마이(shaomai)다.

그런데 초맥은 끝 초(稍) 보리 맥(麥)이니 끝 보리(?)라는 뜻이 되고 소매는 태울 소(燒) 팔 매(賣)로 태워서 판다(?)라는 뜻 모를 단어가 된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이름이 됐을까 싶은데 일부에서는 북방 혹은 서역의 외국어를 한자음을 빌어 번역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사오마이는 홍콩, 광동요리가 아닌 원나라 때 음식점을 드나들던 북방 서역의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서역과 연결된 실크로드, 현대에는 영국이 발전시킨 홍콩을 통해 유명해진 뚜껑 열린 만두 사오마이 속에 고금의 동서교역 역사가 들어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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