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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양귀비 피서법(?) 북경의 언 밤(氷栗子) 언 감(凍枾)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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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에 먹으면 좋은, 멋들어진 한식 디저트 중 하나가 언 감이다. 아삭아삭 살얼음이 씹혀 시원하고 상쾌한 데다 달달하면서 품격도 높아 격조 있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중국에도 언 과일 샤오츠(小吃)가 있다. 딱히 디저트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식사 마무리를 겸해서 간식으로도 먹기 좋은 얼린 과일이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이 빙리쯔다. 한여름 북경의 일부 백화점과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다.

빙리쯔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에서 후식으로 제공하는 얼린 과일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완전 다르다. 한국 중화반점의 빙리쯔(氷荔枝)는 얼린 여지로, 우리나라에서는 리치라고도 불리는 아열대 과일이다.

반면 중국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 여름 샤오츠로 쌓여있는 빙리쯔(氷栗子)는 삶은 밤을 꽁꽁 얼려 놓은 것이니 냉동 여지와는 발음만 같을 뿐이다. 단단하게 얼린 만큼 삶은 밤 먹듯이 처음부터 깨물어 먹기는 어렵다. 입속에서 살살 굴리며 갉아먹거나 사탕 먹듯이 녹여 먹어야 하는데 이때 서늘한 냉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중국 북방의 뜨거운 기운을 가라앉힐 수 있다.

『개원천보유사』라는 옛 문헌을 보면 당나라 때 양귀비가 여름에 옥을 깎아 만든 물고기를 입에 물고 그 찬 기운으로 땀을 식혔다는 함옥연진(含玉嚥津)의 고사가 실려 있는데 양귀비가 느꼈을 시원함이 빙리쯔 먹을 때와 비슷했을 것 같다.

그런데 중국 수퍼마켓에서 언 밤, 빙리쯔에는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평소 음료수는 물론이고 음식도 찬 것을 싫어해 찬 국수(凉麵)조차도 우리 기준으로는 미지근하고 심지어 맥주와 콜라까지도 차게 마시는 중국 사람들인데 왜 꽁꽁 얼린 밤을 먹을까 싶기 때문이다.

견문이 짧은 탓인지 중국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여름철의 얼린 과일은 빙리쯔가 거의 유일했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였다. 찬 음식을 먹지 않는 지금과 달리 옛날 중국에는 얼린 과일을 먹은 역사도 깊고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언 과일이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언 감(凍枾)과 언 배(凍梨) 언 능금(凍花紅)은 보물과도 같은 언 과일 3종 세트(凍果三寶)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중 언 감의 경우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디저트 등으로 자주 먹으니 중국 풍속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싶다.

우리한테는 지금 언 감이 디저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중국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에 북경에서는 정월에 언 감 30개를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고 한다. 언 감 하나 놓고 웬 양생 타령인가 싶어 뜬금이 없지만 이런 속설이 생긴 데는 여러 배경이 있다.

일단 옛날 북경은 감이 유명했다. 서남쪽의 명승지 십도(十渡) 같은 지역은 감의 특산지다. 감이 맛있고 산출량도 많으니 겨울에 언 감이 많이 생겼다. 그러니 이를 소비하기 위해 생겨난 풍속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옛날 북경 사람들은 『본초강목』까지 인용해 가면서 예찬론을 펼쳤다. 감은 성질이 차기에 열을 내려주고 식욕을 북돋워 주며 폐를 보강해 기침을 멎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겨울이 춥고 건조한 북경에서 매일 언 감 하나씩을 먹으면 겨울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에 언 감을 먹는 지금의 우리와는 정반대인 것 같아 재미있지만 어쨌든 언 감이 단순한 디저트 이상이라니 흥미롭다.

상징적 의미도 있다. 감에는 행운이 따르고 상서로운 길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었으니 옛 동양의 공통된 민속이다.

감은 표면이 매끄럽고 둥글다. 이런 둥글둥글한 모양새가 가족의 화합과 단란함(團圓)을 상징하고 태양처럼 붉은 감색은 활기차고 번창함(紅紅火火)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감의 한자인 시(枾)는 중국어로 일 사(事)와 발음이 같기에 만사여의(事事如意)의 뜻이 있으니 감을 먹으며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기를 빌었다.

우리는 요즘 얼린 홍시를 디저트로 많이 먹지만 옛날에는 빙리(氷梨), 동리(凍梨)라고 부른 언 배가 인기가 높았다. 한·중·일 삼국의 공통된 음식문화로 언 배가 맛도 있지만 먹으면 신선 세계의 과일처럼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으면 보관 잘못했다며 버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장수 운운하며 예찬을 펼친 것을 보면 배가 얼면서 당도가 훨씬 높아지는 데다 무엇보다 신선한 과일이 없었던 겨울이었기에 신선 세계의 과일로 여겨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옛사람들이 이렇게 언 과일에 환상을 품었던 이유는 드물면 귀하다(物稀爲貴)는 경제원칙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비슷했지만 중국의 경우 동북지방은 겨울이 너무나 춥기에 아무리 잘 보관해도 식품이 얼게 마련이다. 신선한 과일은 떨어지고 남은 것은 얼어붙은 과일밖에 없기에 먹었던 것인데 의외로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냉동보관이 미생물의 번식을 막아 영양분이 그대로 보존돼 동북지역의 특산물이 됐다는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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