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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사위에게 씨암탉 대신 낙타 족발?

중앙일보

입력

사진 바이두 백과

사진 바이두 백과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중국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음식이 적지 않다. 그래서 자칫 편견을 갖고 접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큰 결례를 할 수도 있다. 평소라도 실례지만 만약 비즈니스 식사라면 혹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중국에서 서부라고 하는 신장(新疆)웨이우얼 자치구의 성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다. 식탁 한가운데 큰 접시가 놓였는데 접시 한쪽에 크림으로 쌓은 산이 우뚝 솟아 있다. 눈 덮인 설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 크림 재료를 고려호(高麗糊)라고 부른다고 했다. 호(糊)란 곡식으로 쑨 풀, 혹은 되직한 죽이니 고려의 풀죽이라는 의미다. 알고 보니 계란 흰자위를 휘저어 크림처럼 만드는 머랭의 일종인데 왜 머랭에다 엉뚱하게 고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접시 한쪽의 설산을 멀리 머리로 두고 그 아래쪽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야들야들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고기가 가지런히 정리된 채로 담겨 있다. 얼핏 보기에 질 좋은 돼지 족발 내지는 편육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우리 음식과도 비슷해 군침이 돈다. 설산 아래 그리고 고기 옆에는 신선해 보이는 녹색의 채소와 버섯 종류가 소담스럽게 놓여 있다. 고기에 곁들여 먹는 채소다.

식사 장소가 우루무치였던 만큼 마치 중앙아시아 톈산(天山)산맥과 주변의 초원, 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식탁 위 접시에 재현해 놓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선뜻 젓가락을 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치 잘 꾸며놓은 작품을 흐트러트리는 기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처럼 끌리듯이 연신 “맛있다” “하오츠(好吃)”를 외치며 먹었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맛은 돼지 족발 같았지만 장소가 이슬람교 문화의 영향이 남아 있는 우루무치였기에 돼지고기는 아닐 것 같아 주인에게 어떤 고기인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낙타 족발이라는 것이다. 혹시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식탁 위에 놓인 메뉴를 들여다보니 설산타장(雪山駝掌)이라고 적혀 있었다. 눈 덮인 산과 낙타 발이라는 뜻이니 낙타 족발이 분명했다.

순간 움찔했다. 낙타를 소나 돼지와 같은 식용 가능한 가축이고, 고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데다 그것도 살코기가 아닌 족발이라니 과연 먹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한참을 맛있게 먹다가 음식 이름을 듣고 갑자기 젓가락을 놓기도 남사스럽고 또 초청한 주인과 현지 문화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기에 눈 질끈 감고 먹기는 먹었다. 다만 젓가락이 가는 빈도수는 현저하게 줄었고 내내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낙타고기를 먹었다는 것이 꽤 충격이었는데 그 편견이 깨진 것은 한참 후였다. 그 편견은 사실 다른 나라, 다른 음식 문화권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물원을 벗어나면 낙타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낙타가 음식이나 요리 대상이 아니지만 낙타가 교통수단이었고 주요 가축이었던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는 다르다. 대형 가축인 낙타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기, 이를테면 옛날 우리나라의 소고기처럼 어쩌다 먹는 값진 고기로 여겼다.

그중에서도 낙타 족발은 예전 우리 장모님이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 주셨던 것처럼 중동과 중앙아시아 장모님이 사위에게 먹였던 음식이고 귀한 손님에게 대접했던 요리였다.

그렇기에 예전 실크로드에 있던 간쑤(甘肅)성과 위구르 민족의 신장에도 이런 전통이 남아 있어 낙타 족발은 지금도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전통요리로 꼽힌다고 한다. 낙타고기가 아무리 낯설어도 중국 서부와 아랍, 중앙아시아에서 편견을 갖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청나라 때 중국에 병합된 신장에서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중국에서 낙타 족발은 옛날에도 범상치 않은 요리였다. 특히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당나라 시대 문헌에 낙타 족발 요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를테면 당나라 대표 시인 두보는 한 시에서 “손님에게 낙타 족발 곰국(驼蹄羹)을 권한다”면서 “서리맞은 오렌지가 향기로운 귤보다 맛있다”고 읊었다. 당나라에서도 낙타 족발이 손님 접대 요리였고 동시에 당시 남국의 귀한 과일이었던 귤, 오렌지와 함께 식탁에 놓일 만큼 값진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당 현종과 양귀비도 별궁인 화청궁에서 낙타 족발 요리를 먹으며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사실 이들이 먹었다는 낙타 족발은 단순한 족발 찜이나 국이 아니라 전복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과 버섯 등으로 요리한 것이니 충분히 황제의 요리가 될 만했다.

따지고 보면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거나 초원에 기반을 둔 북방민족이 세운 역대 중국 황실 요리에는 낙타 족발 요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예를 들어 원나라 황제의 양생을 위해 쓰인 요리책인 『음선정요』에도 역시 낙타 족발 요리가 실려 있다.

간쑤성과 신장의 명품요리라는 낙타 족발 요리, 설산타장은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과 활발하게 이뤄졌던 교류의 증거이고 흔적이다.

역사와 문화를 알고 보니 낯설고 이질적이었던 낙타 족발 요리가 또 다르게 느껴진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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