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월병(月餠)은 왜 달떡일까?

중앙일보

입력

월병. 셔터스톡

월병. 셔터스톡

중추절 월병의 역사와 인문학적 의미

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다. 나라마다 명절은 같아도 명절음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는데 그럼에도 추석 송편을 참고해 중국 중추절과 월병의 역사를 보면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이름이다. 우리는 솔잎으로 쪄서 송편, 한자로는 송병(松餠)인데 중국은 달떡이라는 뜻의 월병(月餠)이다. 추석 떡을 솔떡이라고 한 것도 특이하지만 중국은 중추절 음식을 왜 달떡, 월병이라고 했을까? 보름달을 닮은 것 이상의 함의가 있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다. 그래서 때로 금박 입힌 월병이나, 귀중품을 소로 채운 월병이 뇌물로 오간다. 설날인 춘절 음식인 교자 만두와는 달리 중추절에는 왜 월병을 선물하는 것일까? 월병의 역사와 관련 있다.

전해지기로는 몽골족의 원나라 통치에 저항하는 한족들이 음력 8월 15일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하고 거사날을 적은 종이를 월병에 넣어 돌렸다. 이후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이를 기념해 중추절이면 월병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면서 중추절에 월병을 먹고 선물하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얼핏 들어도 엉터리지만 이 속설에는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원의 지배에 대한 한족의 분노와 함께 월병 및 중추절의 기원과 연결된다.

중추절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추석, 일본의 중추의 보름달(仲秋の名月) 베트남 텐쭝처럼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공통 명절이다.

보통 중국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중추절도 중원에서 생겨나 주변 나라로 퍼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나라마다 기원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명절로서 중국의 중추절은 특히 역사가 짧다.

먼저 중국 중추절은 달 숭배신앙과 추수감사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정착된 것으로 본다. 물론 고대에도 달 숭배 의식은 있었지만 명절로 쇠기 시작한 것은 대략 12세기 북송 때다. 북송의 수도 개봉의 풍속을 적은 『동경몽화록』에 비로소 보인다. 중추절이면 시장에 새로운 곡식과 과일이 나오고 사람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달구경을 한다고 기록했다.

이후에는 중추절 관련 기록이 많지만 그 이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5~7세기 중원의 풍속서인 『형초세시기』나 송나라 초인 10세기 말의 『태평어람』에도 다른 명절은 있지만 중추절은 나오지 않는다. 당나라 때 일본 승려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도 지금의 산동성에서 있었던 음력 8월 15일의 행사를 “다른 나라에는 없고 신라에만 있다”고 했으니 당나라에는 중추절 풍속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만큼 중추절에 월병을 먹은 것도 북송시대 이후일 것이다. 실제로 문헌에서 월병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은 남송 때인 13세기 말이다. 이 무렵 문헌인 『무림구사』에 월병이 보이고 비슷한 시기에 남송의 수도로 지금의 절강성 항주의 풍속을 적은 『몽양록』에도 나온다. 그렇기에 남송 무렵에 월병이라는 음식 이름이 굳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14세기 후반 원말명초에 중추절과 월병이 명절과 명절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고 한다. 월병 관련 속설에 뜬금없이 주원장이 등장한 배경이다.

물론 그렇다고 월병이 송나라 때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 뿌리는 당나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낙중견문』이라는 문헌에 당 희종이 그 해의 과거 급제자인 진사들에게 지금의 월병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압축하면 월병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당나라 때 황실에서 만들었던 고급 떡(빵)으로 궁궐 떡이라는 뜻에서 궁병(宮餠)으로 부르다 12세기 이전 북송 무렵에는 민간에 전해지면서 작은 떡이라는 뜻의 소병(小餠)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한다. 북송 때까지 월병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소병을 먹으며 마치 달을 씹는 것과 같은 맛이라고 노래한데다 북송 때 중추절이 명절로 되면서 떠오른 보름달을 감상하며 먹는 떡, 그리고 둥근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는 뜻에서 달떡, 다시 말해 월병(月餠)이 됐다.

참고로 음력 8월 15일 같은 날에 먹는 우리 송편이 달떡이 아닌 솔떡, 송편인 이유는 추석의 뿌리가 중국 중추절과는 다르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12세기 북송 때 시작된 중국 중추절과 달리 우리 추석은 신라 때 가배를 비롯한 삼국시대 부족의 단합 행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보름달을 감상에 방점을 찍는 중국 중추절 음식과 달리 달떡일 필요도 없고 달을 닮아 둥글 필요도 없다.

한편 중국의 중추절 월병 선물 풍속에도 나름의 배경이 있다. 월병의 기원은 당나라 궁중 식품인 궁병, 내지는 당시 서역에서 전해진 고급 식품으로 본다.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하사품 내지 답례품으로 선물할 가치가 있다. 덧붙여 둥근 모양의 월병은 둥글 단(團) 둥글 원(圓)자를 써서 중국에서 화합과 단합을 뜻하는 단원(團圓)의 상징이다. 설날인 춘절에 가족이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화합을 다지는 단원반(團圓飯)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데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더차이나칼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