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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닭발인 줄 알았더니 봉황의 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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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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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조’라는 중국 요리가 있다. 현지의 고급 음식점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구해 먹는 그런 음식도 아니다. 시장이나 평범한 음식점에서는 오히려 쉽게 먹을 수 있다.

봉황은 용과 더불어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음식 이름 앞에 이런 대단한 이름이 수식어로 붙었으니 어떤 음식일까 궁금해 주문하면 자칫 당황스러울 수 있다. 봉황조(鳳凰爪)라는 이름 중에서 손톱 조(爪)라는 한자가 익숙하지 않기에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켜놓고 보자고 하면 생길 수 있는 해프닝이다. 접시에 수북이 쌓인 닭발이 나온다. 물론 닭발을 좋아한다면 전혀 문제 될 바가 없다.

한국에서도 닭발을 즐겨 먹지만 대부분 중국인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별식으로도 먹지만 몸에도 좋다는 등 나름대로 의미도 부여하며 즐긴다. 중국인들이 닭발 맛에 푹 빠진 역사는 꽤 깊다. 무려 2500년 전에도 닭발에 심취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주인공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왕이다. 닭발을 너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앉은 자리에서 1000개를 먹어 치웠다고 한다. 닭은 다리가 두 개이니 한 번에 500마리 분량을 꿀꺽 해치운 셈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먹었을까 싶지만, 진시황 때 여불위가 썼다는 『여씨춘추』에 나오는 이야기다.

닭발이 아무리 맛있기로서니 한 번에 1000개를 먹었다면 식탐에 빠져 나라를 말아먹었거나 아니더라도 어딘가 정신줄을 놓은 임금이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제나라 왕이 엄청난 양의 닭발을 먹은 데는 사연이 있다.

지금도 그다지 다를 바는 없지만, 옛 문헌을 보면 중국인들 특별히 닭발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족발이라는 족발은 대부분 각별히 여겼다. 일단 돼지족발도 그중 하나다. 돼지족발을 제물로 삼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소원을 비는 음식으로도 먹었다.

과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당나라에서는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으로 쓰였다. 돼지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를 빌었다.

곰 족발인 곰발바닥 웅장(㷱掌)은 과거 중국에서 최고의 산해진미로 꼽았던 요리다. 상징적 의미이기는 하지만 맹자가 물고기도 좋고 곰발바닥도 좋지만 둘 다 먹을 수 없다면 자신은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맹자』에 나온다. 여기서 물고기는 단순한 삶(生), 웅장은 의(義)를 상징했으니 맹자가 당연히 곰 발바닥을 택했겠지만 바꿔 말하면 당시에는 곰발바닥이 그만큼 가치가 높았던 산해진미였다는 소리다.

지난번의 언급처럼 낙타족발 또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고 두보도 손님에게 낙타족발 곰국을 권한다고 노래했을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도 신강성 등의 중국 서부와 아랍, 중앙아시아에서는 최고의 손님 접대 음식으로 꼽는다니 낙타족발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슴족발(鹿蹄)도 즐겨 먹었다고 하고 청나라 말의 서태후는 오리발(鴨掌)의 맛에 빠졌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고금의 중국인들, 왜 그토록 족발 요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자면 종류만 다를 뿐 족발 사랑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의 공통적 현상이다. 문화권마다 나름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옛날 사람들은 동물의 정기는 모두 발바닥, 즉 족발에 모인다고 생각했다. 네발 달린 동물이나 두 발로 걷는 짐승 모두 육중한 몸무게를 가느다란 다리로 지탱하니 모든 기와 혈이 족발에 집중되고 그렇기에 족발을 먹으면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그 동물의 정기를 통째로 흡수하는 것이니 양생(養生)에 도움이 되고 보신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닭발은 더더욱 보통 음식이 아니다. 가녀린 발목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몸통을 지탱해야 하니 어떤 족발보다도 더 많은 정기가 모여 있을 것 같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왕이 닭발 1000개를 먹었다는 고사도 이와 관련 있다. 막말로 닭발에 환장한 임금이어서가 아니라 맹자의 곰발바닥처럼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제왕은 사실 미식에 빠져 맛있고 진귀한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던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단점은 보완해서 천하의 패권을 장악했던 군주다. 다른 사람의 경륜을 철저하게 흡수해 자신과 나라를 살찌웠다는 것을 에센스의 집결체로 여겼던 닭발에 비유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닭발은 이래저래 평범한 음식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지금도 닭발 요리를 임금을 상징하는 전설의 새인 봉황의 발(鳳凰爪)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고대에는 닭이 특별한 조류였기 때문인데 일각에서는 봉황의 원형을 닭, 그것도 꼬리 긴 닭인 장미계(長尾鷄)에서 찾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옛날 동양에서는 닭발을 한음지척(翰音之跖)이라고 했다. 한음은 『주역』에서 닭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 내는 소리라고 했다. 어딘가 봉황의 날갯짓 같은 상서롭고 신비한 이미지다.

척은 발바닥이라는 뜻이니 한음지척은 곧 닭발이다. 닭발 하나 놓고 주역까지 동원해 가며 어마어마한 작명을 했다. 왠지 닭발 맛까지 심오해지는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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