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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역사 속 중국의 힐링푸드 전복찜

중앙일보

입력

중국인에게 전복은 자양강장식품, 즉 양생의 음식이고 힐링푸드다. 셔터스톡

중국인에게 전복은 자양강장식품, 즉 양생의 음식이고 힐링푸드다. 셔터스톡

최고급 중국 요리 중에는 해산물 요리가 많다. 이른바 썬옌빠오츠(蔘燕鮑翅)가 그것인데 썬(蔘)은 해삼이고 옌(燕)은 제비집, 빠오(鮑)는 말린 전복, 츠(翅)는 상어지느러미 요리다. 이중 상어지느러미 샥스핀과 바다제비집 연와탕이 산해진미의 반열에 오른 것은 청나라 이후로 역사가 짧지만 전복은 다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품 요리 명단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심지어 바다의 맛 중에서는 전복이 으뜸(海味之冠)이라는 소리를 들어왔고 명성에 걸맞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에도 북경 고급음식점에서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의 전복 스테이크 한 개 가격이 평범한 근로자 한달 월급의 2배쯤이니 중국 부자들, 전복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복이야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좋아하는 해산물이지만 중국은 특히 유별났던 것 같다. 중국인한테 전복은 자양강장식품, 즉 양생의 음식이고 힐링푸드였는데 역사 문헌 곳곳에서 전복에 품었던 환상을 찾아볼 수 있다.

전복으로 힐링을 했던 첫번째 인물은 1세기 초반,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을 세운 왕망이다. 나라를 건국해 황제를 자칭했지만 주변에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해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조만간 쫓겨날 처지였기에 근심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서』「왕망열전」에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지냈는지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음식은 아예 삼킬 수도 없었다고 나온다. 이때 왕망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전복이었다니 이후 전복은 근심걱정으로 식욕을 잃은 사람조차도 입맛을 돌게 만드는 양생의 보약으로 여기게 됐다.

전복의 가치는 3세기, 삼국시대 조조 관련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조조가 죽자 당대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셋째 아들 조식이 아버지를 추모하며 『구제선주표』라는 글을 지었다. 여기서 조식은 조조가 전복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서주 자사로 있을 때 전복 200개를 구해 보내니 조조가 무척 기뻐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조식은 막강한 권력자의 아들이다. 게다가 자신이 다스렸던 서주는 당시 강소성의 중심 도시로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전복 200개를 구해 바친 사실을 부친을 추도하는 글에서까지 호들갑스럽게 언급한 것을 보면 당시 전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귀했음이 분명하다.

삼국시대 이후 약 200년이 흐른 5세기 무렵의 역사책에도 전복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남조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남사(南史)』 「청백리 열전」에 실린 송나라 장군 저언회의 이야기다. 저언회는 관직이 표기장군이면서 황제의 사위였지만 청렴결백해 가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지인에게서 전복 30개를 선물받았다. 이를 본 부하가 장군의 가난한 살림이 안타까워 한 마디 거들었다. 전복 30개를 팔면 삼만 냥의 거금을 마련할 수 있으니 먹지 말고 팔아서 살림에 보태라고 권했다.

그러자 저언회가 전복을 음식으로 여겨 받았을 뿐이지 팔아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선물로 받지도 않았거니와 비록 가난하더라도 어찌 받은 선물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냐며 한 마디로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는 친지와 부하를 불러 전복 30개 모두를 나누어 먹었다.

전복 수십 개만 있어도 팔자를 고칠 정도였다니까 1세기 왕망이 먹었다는 전복과 3세기 조식이 아버지 조조에게 바친 전복 200개의 가치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조 송나라의 저언회 장군 이후 또 1500년이 흐른 17세기 명나라 무렵이면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으니 전복 구하기가 옛날처럼 어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에도 전복은 여전히 쉽게 먹지 못하는 식재료였다.

지금도 중국 연회 상에는 전복요리가 자주 차려진다. 셔터스톡

지금도 중국 연회 상에는 전복요리가 자주 차려진다. 셔터스톡

『오잡조』라는 명나라 때 문헌에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산해진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실제로 요즘 세상에서 부자들이 주로 먹는 음식은 남방의 굴, 북방의 곰발바닥과 서역의 말 젖, 동방의 전복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전복은 이렇게 옛날부터 부자나 귀인들만 먹을 수 있었던 산해진미였기에 지금도 중국 연회 상에는 전복요리가 자주 차려진다.

중국인들은 특별한 날에 전복을 먹으며 부귀영화 누리기를 소원하는데 전복이 옛날 중국 은화인 원보(元寶)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전복의 중국말 발음인 바오위(鮑魚)가 풍요로워진다는 뜻의 바오위(包餘)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비슷한 발음을 놓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음(諧音)일뿐이고 말장난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 배경에는 20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전복에 대한 환상이 중국인 의식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고금을 통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온 전복이니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을까 싶은데 중국인들은 말린 전복을 그대로 쪄서 먹는 전복 찜, 칭쩡바오위(淸蒸鮑魚)를 으뜸으로 친다. 귀한 음식일수록 본연의 맛을 살려 먹는 것이 최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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