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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용고기 먹어 본 적 있나요? 뜨는 보양식 비룡탕(飛龍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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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이두백과

사진 바이두백과

“용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나요?”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겠고 대답 또한 용의 눈물은 본 적 있어도 용고기 먹어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세상에 용이 어디 있다고 용의 고기를 찾냐고 하겠지만 중국에는 있다. 그것도 요즘 뜨고 있다는 보양식, 이른바 비룡탕(飛龍湯)이다. 이름으로 봐서는 승천하려고 날아오르는 용을 붙잡아 몸보신 하겠다며 탕으로 끓여 낸 요리처럼 보인다.

비룡탕이 북경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 대략 20년쯤 전인 것 같다. 북경 교외에 새롭고 특별한 보양식 전문점이 생겼다기에 찾아갔는데 승용차를 타고 온 손님들로 음식점이 붐볐다. 중국, 그것도 수도인 북경에 아직 자가용이 제대로 보급되기 전이다. 돈 좀 번 사람들이 몸보신 하겠다며 몰려왔을 것이다.

이랬던 비룡탕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중국의 10대 명물 요리로 꼽힌다. 북경 오리구이, 사천 마파두부, 항주 서호초어(西湖 醋魚), 동파육 등과 함께다. 예로 든 다른 요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비룡탕도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사람이 즐겨 찾는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된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용으로 끓였다는 비룡탕, 설마 진짜 용고기로 요리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체 어떤 요리이기에 이름이 그렇게 거창할까 궁금하지만 실은 새고기로 끓인 전골의 일종이다.

개암나무 진(榛)자를 쓰는 진조(榛鳥)라는 새의 고기로 요즘은 우리한테 헤이즐넛으로 더 많이 알려진 개암을 먹고 사는 새라고 한다. 혹은 개암나무 숲에서 살기에 진조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한국에는 없는 조류로 작은 비둘기를 닮았다고도 하고 혹은 큰 참새 같기도 한데 우리말로는 흔히 들꿩이라고 번역한다. 헤이즐넛이 주 먹이이기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이 새를 보양식이라며 좋아한다. 맛은 주관적이어서 함부로 평가할 것이 아니지만 꿩고기, 또는 비둘기고기 비슷한 느낌이다.

진조라는 이 새의 별명이 비룡(飛龍)이다. 때문에 그저 들꿩 전골일 뿐이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비룡탕이 된 것인데 역시 중국식 호들갑이 너무 심하다 싶기도 하지만 사실 진조라는 새, 알고 보면 보통 새가 아니다.

일단 서식지가 특별하다. 흥안령(興安嶺) 원시림에서만 사는 새라고 한다. 흑룡강성 하얼빈 훨씬 북쪽의 산림지대로 몽골, 러시아와 맞닿은 오지 중의 오지다. 게다가 야생 진조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중국의 일급 국가보호동물로 지정돼 있다.

중국 사람들, 비룡탕 먹을 때면 진조가 이토록 엄청난 새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먹던데 사실 음식점 비룡탕의 진조는 인공 부화한 새라고 한다.

어쨌거나 오지인 흥안령 원시림에만 산다는 진조로 끓인 비룡탕이 사전적 의미에서 산해진미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산해진미를 흔히 산과 바다에서 나는 맛있고 특별한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빼먹기 쉬운 중요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쓴 산진해착(山珍海錯)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산해진미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 그래서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진귀한 음식이어야만 한다. 바꿔 말해 맛있고 비싸도 누구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면 산해진미가 될 수 없으니 진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전부터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天上龍肉 地上驢肉)를 최고의 진품 요리로 꼽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용고기는 물론 진조의 고기를 가리킨다.

그런데 아무리 원시림에서 사는 희귀조류라고는 하지만 작은 새인 진조를 보고 왜 거창하게 하늘을 나는 용이라고 불렀을까?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진조는 원래 중국에서 신선들이 모여 산다는 전설의 땅, 곤륜산에 사는 머리 여섯 달린 용이었다.

하늘의 옥황상제 격인 곤륜산의 서왕모를 지키는 호위 무사였지만 어느 날 서왕모가 무슨 식욕이 동했는지 저 용을 잡아먹으면 몸보신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순간 서왕모의 마음을 읽은 용이 두려워 흥안령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곧 뒤쫓아온 추격 군사에 잡혔는데 직전에 머리 하나를 떼어 눈 속에 파묻고는 끌려가 죽었다. 동시에 눈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니 현지인들이 용이 부활한 새라고 해서 비룡이라고 불렀다.

터무니없지만 재미 삼아 소개한 전설인데 실은 흥안령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 오로촌(顎論春)부족이 현지어로 이 새를 부르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 비룡, 중국어로 페이롱이 됐다는 어원설이 있다.

진조는 용이 부활한 새인 데다 희소성 있는 산해진미 식재료였기에 청나라 건륭황제 때부터 황실에 공물로 보냈고 이후 만주족 출신의 황실에서만 먹는 특별 보양식이 됐다고 한다.

이런 입소문에 더해 현대에는 흥안령 원시림에서만 산다는 희귀 조류, 그래서 인공사육이라도 어쨌든 국가 보호 동물로 금단의 고기라는 수식어가 덧씌워지면서 주머니 사정 핀 중국 식도락가의 입맛을 자극했던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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