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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집 까마귀도 예뻐 보인다(愛屋及烏)

“내 것만이 무조건 좋다(맞다)”는 이성적이지 않다. 그리고 위험하다.

미국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종종 올라오는 기사가 있다. 바로 미국인들이 한인 상점이나 한국인을 상대로 약탈하고 폭력을 가한다는 내용이다. 그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 없는 한국인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미국에서 폭력이라는 야만적인 행위로 희생을 당했다. 만약 비슷한 일이 중국에서 벌어졌다면, 우리나라의 댓글은 어땠을까?

미국에는 말 못하고, 중국을 상대로는 늘 강경하다면 균형감이 부족하다. 강한 자는 두려워하고 약한 자는 업신여긴다(怕硬欺軟)는 건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처세다. 의로운 일에 나서고(見義勇爲) 정의를 실현하는(伸張正義) 훌륭한 모습은 못 보여주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한결같이’ 다른 평가와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리고 그런 ‘파잉치롼(怕硬欺軟)’이 현실적으로 현명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면 곤란하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비겁하기까지 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도, 밖에서 보면 어두운 면이 있을 수 있다.

무조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무모할 수 있다. 무조건 중국을 이해하자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늘 염려되는 것이 있다. 지금은 좋다고 하며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투자가 열풍인데, 그 나라 문화를 잘 모르면서 (과거 중국 열풍처럼) 또다시 열심을 보인다. 무모해 보인다면 기우일까?

인도의 소위 ‘국뽕’은 중국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한다. 베트남 역시 투자지로 좋은 선택이지만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치고 베트남전 전사자 묘역 방문해 참배객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치고 베트남전 전사자 묘역 방문해 참배객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미국은 (베트남 및 주변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베트남 참전을 감행했다. 전 세계가 반대했다. 베트남 전쟁에 한국은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유럽의 젊은이들과 지성들이 68혁명을 외칠 때, 전 세계가 자유와 인권을 외칠 그때, 우리나라는 32만명이나 되는 정규군을 베트남에 파병했다고 한다. 한국군의 용맹은,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 자랑스러웠지만, 당시 베트남 국민의 희생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우리 국군의 희생을 깎아내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분들의 헌신은 고귀할 뿐 아니라, 절대로 정치적이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정의롭고 자랑스러운 면만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어느 나라나 양면이 있다. 공정은 당연히 미덕이다. 다른 나라 · 민족을 대하는 태도 · 공정에 대해서, 우리는 스스로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이(異)문화간의 교류에 있어서 특히 해외투자에 있어서 우리 기업들이 ‘문화 이해’라는 준비 없이 무작정 진출하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라면, 파괴력이 그만큼 더 커진다. ‘Culture Shock(문화충격)’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상대자들은 항상) 무슨 말이라도 떠든다. (링에 올라) 나한테 얻어맞기 전까지는…” 복서 타이슨의 말이라고 한다. 해외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들은 “우리도 최대한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예상 못 한 방향에서 그리고 큰 타격이 들어올 때도, 이 말이 유효할까 정말 걱정된다.

들리되 안 듣고 보이되 안 본다(聞耳不聽 視而不見)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아픈 구석이 있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는 화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중국인들은 우리와 비교하면 언로(言路)가 제한적이다. 중국의 공산당원은 지난 4월 현재 약 9600만 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기능도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해외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은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우리나라와 서구의 국민은 토론의 주제에 있어서 매우 자유롭기만 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라는 명저(名著)의 일부를 소개한다.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토론이 있었다. 서독 학생들은 주로 동독인들의 낮은 정치의식을 비판했다. “동독의 독재 정권 아래서 왜 그렇게 굴종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서독 학생의 질타에 동독 학생이 맞받았다. “우리가 독재 정권에 맞서지 못한 건 사실이다. 당신들은 총리를 비판하고,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조롱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사장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정권은 비판하지 못했지만, 사장은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아픈 손가락’은 체제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는 매우 까다롭다.

우리나라에 관한 내용도 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사장은 비판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박근혜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가면이 ‘(대한항공) 조양호 시위’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은 내놓고 비판할 수 있어도, 사장은 그럴 수 없다. 광장의 거시권력보다 일상의 미시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중국에서 노사 문제 혹은 사회적 강자에 대한 불만이 집단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 (그리고 부패한 관리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하듯) 바로 공권력이 투입되어 사회적 강자를 보호하기 위해 진압하는 일은 많지 않다.

얼마 전, 중국에서 최고 권력자의 발언을 패러디한 코미디언이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5월 17일 자). 이런 기사를 접하면 우리는 “그렇게 했다고, 뭐 그렇게까지?”라며 의아해하고, 씁쓸해하고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그런데도 중국인은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상하다고 느끼듯 그들도 심각하게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시각에서는’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중국뽕’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특성을 약간은 알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시각을 불쾌해하고, 우려하실 수도 있지만, 문화라는 요소를 생각하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일 수 있습니다. 편향된 시각이 아님을 이렇게라도 말씀드립니다)

문화라는 거울에 비추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와 회사 사장에 대해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중국인들이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문화권에 있는 이들의 생각은 같지 않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 대놓고 비판한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 말 못하는 동독인들과 중국인들을 비난하고 비하한다. 그런데 그들이 때로 거리낌 없이 비난하는 고용주에 대해서는 우리는 좀 다르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만, 월급을 책임지는 회사 사장은 비난하지 못한다. 상사를 술안주로 삼기도 하지만, 감히 사장이나 오너는 대놓고 욕하지 못한다. 설령 한다고 해도, 내가 그들을 욕하는 것을 그들이 절대로 모를 것이라는 가정이 그 전제다.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믿기에 한다. (그게 아니라면, 회사를 떠날 결심을 한 후라야 그렇게 할 것이다) 가면집회에 대한 보도를 보고, 참여한 분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그분들 역시 ‘고려’하는 게 있었다. 밥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는 대놓고 비판할 수 없었다. 집마다 읽기 어려운 책이 있고,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있다(家家有本難唸的經 家家有本難唱的曲). 모두에게 공통적이지 않은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있는 것이다.

관우(關羽)는 술주정뱅이요, 재물을 밝히는 호색한이다?

완전한 ‘객관’은 없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장헌수이(張恨水)라는 천재적인 소설가가 있었다. 생전(1895~1967)에 부패한 정치 사회에 대해 질타했다. 품격 있는 풍자를 통해 신랄한 비판을 한다. 그의 소설『여든한 가지 꿈(八十一夢)』은 유머에 웃고, 내용에 분노케 한다. 인명 지명 등에서조차 아주 디테일하게 비틀어 버린다. 짓궂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정직함이, 정결함이 있다.

난화이진(南懷瑾)은 중국의 유가, 도가, 불교 등 모든 철학사상을 관통한 저명한 국학대사(國學大師)이며, 베이징대학 광화학원 설립의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는 장헌수이의 타협하지 않는 사회참여 의식과 품격 있는 유머를 종종 언급하며 높이 추켜세웠다고 한다. 장헌수이의 글 중에서, 관우와 장개석을 빗대어 얘기하는 내용을 예로 든다: (참고로, 관우는 중국 민간에서 존중받는 영웅이자 신으로까지 추앙받는다. 당연히 세속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인물로 이해한다. 장개석은 당시에 최고 권력자임에도,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관우와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장개석과 관우에 대한 장헌수이의 인물평

하늘의 수문장(守門將)은 이렇게 판단했다.

관우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회의에 참석하러 갔는데, 4대 천왕이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주(酒) · 색(女色) · 재(財) · 기(氣. 성질)의 네 가지를 어긴 이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출입을 금하라”는 옥황상제의 명령 때문이라고 한다. 규정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관우는 억울했다. 내가 왜?

4대 천왕이 일일이 설명한다. “당신의 얼굴이 붉은 것을 보니, 술 때문이다.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五關突破. 중국에서는 ‘五關斬六將’ 즉, ‘다섯 개 관문에서 여섯 명의 장수를 베다’라고 한다) 할 때, 유비의 두 형수와 함께했는데,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바로 색이다. 조조 진영에 있을 때, 그가 많은 재물을 보내준 걸 안다. 재물이다. 성질에 대해 말하자면, 전쟁터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서는, 본인이 죽은 후에는 분을 못 이긴 영혼이 세상을 떠돌며 “내 머리를 돌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말도 안 되는 규정의 해석과 집행에 열이 올랐는데, 멀리서 장개석(蔣介石)이 오는 게 보였다. 4대 천왕은 장개석에게 경례하며 극진히 모셨다. 관우가 분이 나 묻는다. “주(酒)·색(女色)·재(財)·기(氣. 성질)는 안된다며, 장개석은 왜?”

4대 천왕이 (우리는 원칙을 준수한다며) 또 설명한다.

장개석은 술과 담배를 (자기가 갖지 않고) 전국에 팔도록 했다. 바로 술을 좋아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색으로 말하면, 본부인하고 이혼했다…. 재물에 대해서는, 화폐를 발행하여 사람들에게 (사용하도록) 나누어 줬다. 재물을 탐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기(성질)는 이게 정말 대단한데, 중국 강산을 거의 다 빼앗기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반면(反面)교사 삼으면 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왜 하필 3명일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3이란 숫자는 ‘나’와 나보다 ‘잘난 이’와 나보다 ‘못한 이’를 대표한다. 한 편 어느 사람에게도, 나와 비슷한 점도 있고 나보다 나은 점도 있겠고 못 한 점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부분적으로는 내가 보고 배울 점은 늘 있다. 좋은 점은 본받고, 나쁜 점은 경계하면 된다. 내가 하기에 달려 있다.

이미 종영된〈걷잡을 수 없는 폭풍(狂飆)〉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최근에 보기 시작했다. 중국인 지인이 꼭 보고, 소감을 얘기해 달라고 한다. 권력자의 부패와 선한 시민이 악당이 되는 과정이 줄거리라고 한다. 초반의 몇 편을 봤는데 놀랄 만큼 현실적인 묘사가 많았다.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지?”라며 놀랐다. 주위 중국인들과 이 드라마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들이 다른 것도 있다면서 이것저것 추천해준다. ‘인민의 이름으로(人民的名義)’ ‘어두운 동굴(黑洞)’ ‘큰 강은 동으로 흐른다(大江東去)’ ‘절대권력(絕對權力)’ ‘용띠 해의 사건(龍年檔案)’ 등 유명한 것만도 10여편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대표적인 영화인 ‘황당한 사건(荒唐事件)’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여러분들도 보고 나면,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검열을 통과했단 말이야?”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보인다(距離產生美)

아는 게 많으니, 단점도 더 잘 보인다.

어쨌든 ‘더 많이 안다는 것’은 경쟁력이다. 중국과도 그렇다!

우리는 중국과 정치 경제, 안보, 군사, 외교 등 수없이 얽혀 있다. 중국인들은 일의대수(一衣帶水, 둘의 사이에는 한 줄기 띠 같은 냇물이 있을 뿐이다. 매우 가깝다)라고 한다. 필자는 기업에서 근무할 때, 장사하고, 투자하고, 정부 및 기업의 최고위층들과 협상을 해왔다. 진저리나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야말로 거물(巨物)을 넘어서는 거인(巨人)들과도 교류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인품이 나쁜 이들이라고 해서 비즈니스에 늘 해롭지는 않았다. 훌륭하다고 해서,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품이 좋은 분들은, 회사와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잘 대해 줬다. 비교우위가 없었다는 면에서는, 우리 회사에 경쟁력을 보태 주지 않았다.

상대가 어떻든,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좋다는 관점에서만 보고, 무조건 신뢰를 보내도 안 된다. 늘 검증하고 매 상황에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싫다는 시각으로 비난과 무조건적인 부정도 곤란하다. 이웃이 싫으면 이사하면 그만이지만, 그럴 수 없다. 공자는 “삼십이립(三十而立, 서른 살이 되어 스스로 선다)”이라고 했다. 지식이나 판단에 있어서,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이 생긴다는 의미이겠다. 중국과의 수교가 30살이 넘었다. 좀 더 균형 있는 관점을 가지고, 뒤돌아보고, 우리가 잘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겠다. 양국 간의 교류에 있어서, 더 이상의 오해를 줄이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좋은 이웃이 되면 좋겠다.

모든 교류에 있어서 ‘무조건 신뢰’ 또는 ‘무조건 불신’의 양극단은 안된다. 지나친 확신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늘 ‘의심’과 ‘신뢰’를 두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들어봤다고 내가 겪어봤다고, 그래서 “내가 다 안다”는 착각은 안 된다. 의심해야 한다. 한편, 중국인들과 많이 어울려본 한국인들이라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중국사람들은 정말로 사귀고 나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의리가 있지요!”. 믿을 만한 친구에게는 반드시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의심나면 같이 하지 말고 같이 하려면 의심하지 마라(用人毋疑 疑人毋用)’. 중국이라면, 신중한 ‘검증’은 필수다. 드러난 통계와 (우리의) 상식에 비춘 검증이 아닌, 친구를 통한 ‘중국식 검증’은 오히려 매우 유효하다. 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검증’은, 중국인들과의 교류에 있어서 균형 있는 객관성을 담보해줄 것이다.

속담 하나 소개한다. “강물의 깊이를 잴 때는 두 발을 함께 담그지 마라”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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