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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양분화는 이미 시작됐다” 『반도체 전쟁(CHIP WAR)』 저자 크리스 밀러 인터뷰 [이성현의 미국서 보는 중국]

중앙일보

입력

미·중 갈등이 소위 ‘반도체 전쟁’으로 수렴되기도 하는 이유는 현대 군사력도 결국은 반도체에서 승패가 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현대 군사 전에서 중요시되는 ‘정밀 조준 폭격(precision strike)’에 쓰인다. 특히 AI 반도체는 SF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자율살상 무기(LAWS, 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 생산에도 사용된다. 현대전은 말 그대로 반도체 전쟁인 셈이다.

이러한 반도체의 중요성을 재조명하여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학자가 바로 터프츠대학의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다. 한국에도 번역된『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이기도 한 그를 인터뷰했다.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 사진 필자제공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 사진 필자제공

당신의 책을 요약해 달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물질 문명시대를 논할 때, 반도체를 중심에 놓지 않으면 현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교역, 국제 정치의 힘의 균형,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테크 기업의 괄목상대할 부상, 그리고 챗 GPT 같은 인공지능, 이 모든 것이 결국 반도체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를 누비며 강연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대만 위기와 관련된 TSMC 문제다.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인 반도체 프로세서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둘째는 미·중 간의 경쟁에서 첨단 기술이 차지하는 문제다. 셋째는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과 미국의 파트너인 일본, 한국, 대만, 유럽에 있는 글로벌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반도체 생태계 재편과 관련한 협의 문제다.
강연하면서 듣게 되는 반도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람들은 ‘반도체’라고 하면 핸드폰, 노트북 컴퓨터 또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연상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강대국이 된 국가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군사 분야와 정보 분야에서 반도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는 결국 군사력과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경제 영역이자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미·중 반도체 ‘양분화’ 이미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 

미·중 갈등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위상은?
미·중 양국 모두 반도체를 주요 경쟁 영역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미국에 비해 적어도 5년 정도의 격차를 보이며, 이는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 문제와도 연계되어 있다.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 역시 ‘해외 의존’이 아닌 ‘자체 보유’를 목표하고 있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중국의 반도체 부상을 억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조치와, 이에 맞서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가하는 중국 정부의 압력이 결국 반도체 산업을 ‘중국과 나머지 세계’ 두 갈래로 양분화시킬 것이란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세계의 반도체 산업이 미·중 사이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면, 미·중 양쪽 모두가 큰 시장인 반도체 회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지난 5년 동안 반도체 회사들이 정치와 관련된 규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현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 회사들도 지정학적 상황이 주는 영향을 고려해 어디에 공장을 세울지 결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전격적인 미·중 ‘데탕트’설도 나오고 있다. 미·중 갈등은 언제 끝나나?
나는 우리가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의 갈등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본다. 혹자는 이러한 갈등이 과장되었고, 대만해협 충돌 같은 갈등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나, 나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위험에 대해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설마’하다가 우크라이나처럼 ‘현실’ 될 수 있어 

그렇게 심각한가?
심각하다. 중국의 대만 침공과 관련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양안(兩岸) 위기가 지난 10년간 보지 못한 최고조라는 것이다. 전쟁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국가들도 경제적 영향의 여파를 받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시에 그 충격을 직접 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다들 ‘설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설마’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알게 됐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된다면, 세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30배 정도가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의 종국은 무엇인가? 무엇이 ‘엔드 게임’인가?
내가 첨단 기술 영역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을지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the most decisive factor)’는 군사력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20년 전만 해도 아태지역에서 누가 군사적 맹주인가는 확실했다. 그 어느 국가도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고, 그 결과는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중국의 전략가들에게 ‘혹시 이 시기가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기에 승산이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 억제에 추가 조치 취할 것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억제하기 위해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갈 것인가?
미국은 더 많은 반도체 장비, 기계, 재료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추가적인 조치를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취할 것이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등에서 여전히 중국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중국을 중심으로 하던 공급망을 아세안 등 타 지역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공급망 재편 과정은 복잡하고, 비용 발생도 있을 것이다. 과정이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증거는 미국, 일본, 한국 기업의 투자 결정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이 논의에서 흥미로운 사례는 삼성전자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먼저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 조립 공장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도대체 미국은 한국이 어느 선까지 함께 대중 전선을 펼치기를 기대하는가? 공급망의 경우 미·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 아닌가?
부분적으로 옳다. 전망은 조금 더 복잡하다. 최첨단 기술 제품 또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상당히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의류, 가구, 완구 등과 같이 민감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이러한 양자 간 선택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디커플링이 필요하지 않은 제품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이러한 사항을 분류하고 결정하는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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