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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여름 가정식 으깬 오이무침(拍黃瓜) 속 사랑과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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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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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면 중국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오이로 만든 요리들이다. 간단하기로는 으깬 오이를 마늘 양념 등으로 버무린 오이무침 파이황과(拍黄瓜)와 사천식 오이 마라황과(麻辢黃瓜) 등의 각종 오이무침 냉채(拌黄瓜冷菜)를 비롯해 차갑고 따뜻한 오이 요리가 많다.

중국 여름 음식에는 알게 모르게 오이가 많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음력 7월 7일 칠석이면 중국인들은 춘절과 마찬가지로 만두를 빚어 먹었다. 송나라 문헌 『동경몽화록』이나 청나라 때의 『청가록』 등에 보이니 뿌리가 꽤 깊었던 풍속이다. 지금도 여름에는 오이피망 만두(黄瓜青椒馅包子)를 먹는다.

칠석 만두는 소로 오이(黃瓜), 동과(冬瓜), 우리 여주와 비슷한 고과(苦瓜) 등의 박과 채소를 넣는데 이유가 있다.

한방에서는 오이를 비롯한 박과 채소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열을 내려 더위를 식혀주고 갈증을 풀어준다고 설명한다.

하기야 중국만이 아니다. 오이는 세계 공통의 여름 채소여서 우리나라만 해도 오이냉국에 오이지는 물론 콩국수에 얹는 채친 오이 고명까지 여름 음식에 오이는 빠지지 않는다. 서양에서도 요구르트에 채친 오이를 넣은 차지키는 지중해 여러 나라의 여름철 소스이고 영국도 여름철이면 티타임에 오이 샌드위치를 먹는다.

오이는 이렇게 여름이면 어디서나 즐겨 먹는 채소이지만 그럼에도 중국 오이와 그 역사, 그리고 오이를 대하는 중국인의 의식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먼저 오이라는 중국어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오이는 중국어로 황과(黃瓜)지만 원래 이름은 호과(胡瓜)였다. 턱수염이 텁수룩한 서역 오랑캐를 뜻하는 호(胡)라는 한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호과는 서역에서 전해진 박과 식물이라는 뜻이다. 명나라 문헌 『본초강목』에는 한무제 때 한나라를 겁박하는 흉노를 협공으로 물리치기 위해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장건이 돌아올 때 가져왔기에 호과라 부른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기원전 2세기 무렵 중원에 전해졌다.

오이 이름이 호과에서 황과로 바뀐 것은 500~600년이 지나서다. 당나라 문헌 『본초습유』에 이유가 나오는데 4세기 말, 5호16국 시대의 후조(後趙) 황제 석륵은 흉노의 일족인 갈족 출신이었다.

자신의 뿌리 때문인지 서북방 민족을 얕잡아 부르는 호(胡)자를 싫어해 아예 쓰지를 못하게 했다. 어느날 연회에 오이가 쟁반에 담겨 나왔다. 석륵이 주변 재상에게 이름을 묻자 감히 호과라고 대답할 수 없었던 재상이 "금잔에는 감로주가 가득찼고 옥쟁반에는 황금채소가 놓여 있네(金樽甘露 玉盤黃瓜)"라고 시를 읊어 금기어를 입에 올려야 하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또 다른 기록에는 7세기 초 수양제 때문에 황과가 됐다고 한다. 수양제의 어머니 독고씨는 선비족이다. 그러니 수양제도 혈통의 반은 서북방 민족이다. 하지만 오랑캐 출신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호라는 한자를 못쓰게 했다. 『정관정요』에 관련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로 인해 오이 이름인 호과가 황과로 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도 황당하고 서북방 민족에 지배당했던 한족이 정신승리를 주장하며 꾸며낸 것 같아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짚어볼 부분이 있다. 한나라 이래로 명나라를 제외하면 줄곧 북방 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족이 호(胡)라는 한자로 대표되는 서북방 민족을 얼마나 배척하고 두려워했는지를 석륵과 수양제의 고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만리장성과 함께 오이의 옛 이름 호과가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오이 이름을 왜 하필 누렇다는 황(黃)자를 써서 황과로 바꿨을까? 일단 오이는 초록색이지만 완전히 익으면 늙은 오이 노각이 되어 누런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황과라고 했다는 것인데 또 다른 풀이도 있다.

서북방 민족이 두렵고 싫지만 그곳에서 전해진 오이는 또 달랐다. 옛날 중국에서 오이를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특별했으니 그중 하나가 왕과(王瓜)다. 임금 왕(王)자를 쓰는 만큼 가장 좋다는 뜻이다. 누런 황색에도 으뜸의 의미가 있다. 동서남북 중앙의 우주를 뜻하는 오방을 표현하는 다섯 색깔 중에서 중심인 가운데는 황색이다. 그렇기에 황색을 황제의 색으로 삼았고 황과 또한 박과 작물 중 으뜸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오이 예찬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오이가 꽤 귀했던 모양이다. 송나라 시인 육유는 시장에 드물게 보이는 오이, 쟁반에서 광채가 난다고 노래했을 정도인데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나 로마, 고려에도 오이 찬양 스토리가 빠지지 않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제철이 지난 후에도 오이를 얻기 위한 노력이 각별했다. 오이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실재배를 시도했는데 명나라 때 『학포잡소(學圃雜蔬)』에는 2월중 온실(火室)에서 온탕수로 오이를 키워 궁중에 공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런 오이였기에 얼마나 비쌌는지 손가락 굵기 만한 것이 쌀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중국의 여름 가정식(家常菜)인 으깬 오이 무침 파이황과, 여름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보내려는 지혜와 함께 서역에서 전해진 귀한 채소 오이에 품었던 의식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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