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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돼지족발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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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면 중국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숨도 못 쉴 만큼 긴장한다. 7, 8일 이틀간 가오카오(高考)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입 수능 비슷한 시험이다.

중국 입시도 한국, 일본 못지않게 치열하다. 그런 만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음식 하나에도 합격의 소망을 담는다. 우리의 합격 엿, 일본의 찹쌀떡(大福餠)처럼 중국은 장원병(壯元餠)을 먹는다.

특정 음식에 합격의 소망을 담는 것은 한·중·일 공통의 민속이다.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동양만의 전통인데 언제부터, 왜 이런 풍속이 생겼을까, 그리고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엉뚱하지만 사람들이 처음 합격의 꿈을 담아 먹었던 음식은 돼지 족발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7세기 당나라 때 과거시험 보는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먹었다는데 이를 최초의 합격기원 음식으로 본다.

합격 엿이나 찹쌀떡은 끈적끈적 접착력이 좋아 시험에 잘 붙게 해준다는 속설이라도 있지만 돼지 족발은 뜬금없이 왜 먹었을까 싶지만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나라에서는 과거의 장원급제가 결정되면 비단에 붉은 먹물로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 제목을 적어 수도인 장안, 지금의 서안에 있는 대안탑(大雁塔)에 내걸었다. 붉은 먹물로 썼기에 이 방을 주제(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주티(zhuti)다. 그런데 중국 말로는 돼지 족발(猪蹄)도 발음이 같다. 그래서 돼지 족발 주티를 먹으며 자신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이 적힌 주티가 대안탑에 붙기를 소망했다. 돼지 족발이 합격기원 음식이 된 유래라고 한다.

유래야 그렇다고 해도 왜 하찮은 돼지 족발에까지 염원을 담았을 정도로 간절하게 장원급제에 매달렸는지, 왜 하필 당나라 때 이런 풍속이 생겼는지 궁금해지는데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제도는 수나라에서 도입해 당나라 때 정착됐는데 겉으로 내건 명분은 초야에 묻힌 인재의 발굴과 발탁이지만 정치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황제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지방 호족세력을 약화해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중앙의 권력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무리 세력이 큰 호족 집안의 자제라도 원칙적으로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출세가 힘들었으니 자연히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당나라 때 과거제도는 평민에게도 시험 볼 자격이 주어졌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본인이 똑똑해 장원급제하면 고위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헌 기록에 남아 있는 역사상 최초의 장원급제 주인공이 된 손복가(孫伏伽)가 그런 경우였다. 당나라 건국 4년째 되는 해인 서기 622년에 시행된 진사과 과거에서 일등을 한 손복가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는지 수나라에서는 지방 관청의 말단 관리로 관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나라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이후 당 태종 이세민의 관심을 받으며 출세의 길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산시 성 책임자인 자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모습을 직접 본 돈 없고 빽 없는 당나라 선비들,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과거시험 전후에는 돼지 족발이라도 먹으며 대안탑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주티(朱題)가 내걸리기를 빌었다. 합격기원 음식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됐다.

1400년의 길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바뀌었어도 자식이 용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꿈(望子成龍)은 남아 합격기원 음식은 현대 중국에서도 여전히 그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요즘 대입 가오카오에서 주로 무엇을 먹으며 합격을 소원할까?

여전히 돼지 족발을 먹는 곳도 있고 광둥과 광시 지역에서는 합격기원 쌀국수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장원병이다.

그중에서도 흔한 것은 중추절에 먹는 월병 같은 것인데 여느 월병과 다른 것은 가운데에 장원(壯元)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옛날 장원급제를 하듯 높은 점수를 받아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일 것이다.

장원쭝(壯元粽)이라는 이름으로 갈댓잎 등에 찰밥을 싼 쭝즈(粽子)도 불티나게 팔린다. 쭝즈가 합격기원 음식이 된 데도 유래가 있으니 쭝즈는 원래 단오절에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 충신이며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을 기리며 먹는 음식이었다.

중국은 삼국지의 관우가 재물신이 되는 것처럼 역사 속 유명 인물을 신으로 받드는 풍습이 있는데 굴원 또한 신처럼 받든다. 그리고 중국의 가오카오는 많은 경우 단오절과 날짜가 겹치기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것인지 굴원에게 아들딸 대학입시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쭝즈, 장원쭝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명중이라는 단어처럼 활을 쏴 과녁을 통과하거나 시험에 합격했다고 할 때 한자로 가운데 중(中) 자를 쓴다. 중국어 발음은 쭝으로 찹쌀밥 쭝 발음이 같다. 이런 이유로 쭝즈가 합격기원 음식, 장원쭝이 됐다고 한다. 어쨌거나 쭝즈나 돼지 족발이나 그 속에 담긴 소망이 간절하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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