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중국 위치로 끌어내리려 할 뿐이다” [이종혁의 싱가포르서 보는 중국]

중앙일보

입력

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얼마 전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과 그에 따른 미·중 관계의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이 관심을 끈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시진핑의 발언에 다시 한번 놀람을 금치 못했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대체할 생각이 없다.” 이는 한편으로는 솔직함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진핑과 그의 중국이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진핑의 생각으로는 현재 미·중 갈등의 원인이 중국이 미국의 국제 질서에 도전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적인 면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겠지만, 현재 중국이 주변 지역에 가하는 위협을 단순히 미·중 간의 안보 딜레마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며 운이 좋게도 중국 관료들과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은 정치적·민족적·역사적으로 여러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싱가포르를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며, 각종 분야의 고위 관료들과 학자들을 싱가포르로 파견해 국제 사회와 교류하고 있다. 중국 대표단을 호스트 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는 점은 중국은 현재의 국제 상황을 백이면 백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응”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저 스스로 발전하고 있을 뿐인데 이를 두려워하는 미국이 주변국을 종용하여 중국을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 등 주변국들이 미국에 강요당해서 중국에 대항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미국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이 정말로 주변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이웃 국가들이 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겠는가? 정말로 현재 상황에서 중국이 잘못한 점은 없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중국 대표단은 “필리핀이 미국을 불러 자신의 해협에서 군사 활동을 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왜 필리핀이 부른 미국이 남중국해를 침범하고 대만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가? 이것은 확실한 주권 침해이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답변은 언뜻 말이 되는 듯하면서도, 남중국해를 자신의 주권 영토라 가정한 다음 미국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타 동남아 국가들의 의견은 중요치 않다. 확실히 시진핑의 중국에서는 더는 미국의 주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중국이 미국 영공에 스파이 풍선을 보낸 것도 이러한 행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태평양 함대가 중국 주변 해역에서 군사 활동하는 것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라는 취지의 소심한 복수인 것이다.

이러한 미·중 경쟁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동남아 지역일 것이다. 동남아는 중국과 가까우면서도 미국의 동맹국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중국의 무역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다. 따라서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남중국해를 둘러싼 아세안 국가들과의 안보 분쟁은 중국에 딜레마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미국 대표단 대담 자리에도 초청받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미국 대표는 흥미로운 질문을 했다. 그는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을 무서워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했다.

미국이 중국처럼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한다면, 그 범위는 중국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할 것이다. 그런데 왜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보다 중국을 더 두려워하는가? 이에 필자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중국이 원하는 바입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중국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교류하는 방식에서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취한다. 무역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상대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상대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외교에 접근하는 것이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전한 경험이 있는 나라로, 기본적인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을 최선의 선택이자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즉 중국의 이득을 상대국의 이득으로, 중국의 손해를 상대국의 손해로 연결함으로써 외교관계를 경제적으로 종속시켜 가는 식이다.

반면에 미국은 중국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미국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동남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자국의 동기보다는 아세안 국가들이 자신들의 필요로 미국을 소환한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 즉 민주주의, 국제정의, 인권 보호 등은 미국의 현실적인 행위에 많은 제약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미국이 많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는 하지만, 가치를 전파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외교 정책의 기조는 오히려 미국이 가진 힘에 비해 다른 나라를 현실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 부족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세안에서의 미국의 이미지는 트럼프 이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이전에는 “미국이 수호했던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인 침투” 사이에서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다각적인 고려가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두 슈퍼 파워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차원적인 담론이 주가 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힘의 논리가 더욱 중요시 여겨지고 있으며, 이러한 힘과 힘의 충돌 사이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물론 미·중 사이의 선택에 대한 압박은 많은 나라가 겪는 상황이지만, 서구 유럽과 한국, 일본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이미 미국과 정치·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과의 가치 공유를 아직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타협’과 ‘자주성의 확보’라는 두 측면에서, 미국은 그들에게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섣부르게 미국과 중국 중 선택을 강요한다면,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을 중국과 같은 선상에 놓고 고려할 것이다. 특히 이는 바로 중국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중국의 국제 전략은 중국이 미국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 역시 자신에게 미국을 대체할 만한 사상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대신 중국의 목적은 미국을 자신과 동일한 위치로 끌어내리는 데 있다. 미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국가일 뿐이다. 그런데도 꼭 미국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기본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중국과의 경제적인 협력은 필수불가결하지만,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는 아세안 국가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일수록 중국의 현실적인 침투가 더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싱가포르 전 외무장관인 조지 여(George Yeo)가 제시한 것처럼 미국이 아세안 국가들에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중국에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줄 뿐이다. 왜냐하면 이는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이득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이득보다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때를 기다린다면, 아세안 국가들이 자연스레 미국에 더 의존하고 싶어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는 중국의 국제관계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의 지나친 현실주의 접근법은 동맹을 얻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나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무역과 투자를 기반으로 이뤄진 중국과 상대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경제가 순항 중일 때는 많은 국가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중국의 경제가 위태로워질 때는 그를 기반으로 하는 외교 관계도 빠르게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아세안에서의 중국의 투자는 대부분이 중국 국유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경제적인 목표보다 중국의 전략적 가치에 더 나은 노력을 투자한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의 이러한 관계는 필연적으로 중국과 상대국의 상하관계를 강화하며 상대국의 불만을 대화나 타협이 아닌 위협과 복수로 상쇄시키는 것이다. 아세안의 대부분 나라는 중국의 이러한 일방적인 소통을 불편해하며, 이 때문에 아세안에서의 중국의 투자는 대부분 아세안 국가들의 변덕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수십 개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 아무런 문제 없이 완료된 프로젝트는 라오스-중국 철도 건설 계획 하나에 불과하다. 수년 전부터 거창한 목적으로 시작된 쿤밍-싱가포르 횡단 철도는 각국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국의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보여줬던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후퇴는 많은 동남아 지도자들과 엘리트들에게 미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공백을 중국으로 채우려고 했던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이 믿지 못할 파트너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이종혁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