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돼지를 돼지라 부르지 못하고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돼지를 돼지라 부르지 못하고

    사진 셔터스톡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한지 17년째 되던 해인 1384년 6월의 어느 날, 황제가 된 태조 주원장의 아침 밥상에 뜻밖의 음식이 차려졌다.   이날 수랏상의 요리는 모두 12가지로 양고기 볶음, 부추 거위 볶음, 돼지고기 채소 볶음(猪肉炒黃菜), 돼지 족발 찜(蒸猪蹄肚), 생선 지짐, 고기 화덕구이, 국수, 닭고기 탕, 콩국, 차 그리고 이름만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요리(素熇揷淸汁) 등이다.   황제 밥상을 비롯해 궁중에서 먹는 음식을 관리하는 관청인 광록시에서 남긴 『남경광록시지(南京光祿寺志)』에 나오는 기록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아침부터 고기 요리를 잔뜩 차려졌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요리도 없다. 그런데 왜 황제 식탁에 뜻밖의 음식이 올랐다는 것인가 싶지만 이유는 돼지고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야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 치운다고 할 정도로 원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고, 명 황제 주원장 역시 중국인이니 아침 밥상에 돼지고기 볶음과 돼지 족발찜이 올라온 게 이상할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기록상 황제의 식탁에 돼지고기 요리가 오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설마 이전까지는 황제가 돼지고기를 과연 먹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최초라고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명 이전의 원나라 때까지 돼지고기는 주로 농민이 먹는 고기, 평민의 음식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관리를 비롯한 지배계층에서는 별로 환영 받지 못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민족별 음식문화도 배경으로 꼽는다.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 때까지 중국은 주로 북방 유목민족이 지배했다. 북방 민족은 대부분 양고기를 선호했고 돼지고기는 혐오했으니 상류층의 식탁도 북방 음식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수당 시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5호16국 시대나 북방 거란의 요(遼), 여진의 금(金)과 달리 한족 중심의 나라였다고 하지만 수양제의 어머니 독고황후나 당 태종의 모친 태목황후는 모두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를 창업한 문제나 당을 건국한 고조 모두 선비족 밑에서 장군을 지냈던 인물들이다. 게다가 수당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유목 지역인 서역의 문화가 유행할 때였다. 북방민족에 쫓겨 남으로 밀려 난 송나라 역시 음식문화에서만큼은 북방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상류층은 양고기나 오리고기, 닭고기 중심이었고 돼지고기는 한족 피지배계층과 농민, 서민의 몫이었다. 출처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송나라 소동파가 지었다고 알려진 돼지고기 예찬시 『저육송(猪肉頌)』에서 "황주의 맛 좋은 돼지고기/값이 진흙만큼 싸다네/부자는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줄 모른다네"라고 읊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런 돼지고기가 명나라가 시작되면서 황제의 밥상에 올랐으니 의외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면 주원장은 왜 귀한 요리 다 제쳐두고 아침부터 돼지고기로 식사를 했을까?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주원장의 출신 성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 설이 있지만 주원장은 안휘성 출신이고 소작농의 아들이며 거지를 거쳐 홍건적으로 활동하다 황제가 됐다.     어려서부터 상류층 음식이 아닌 하층민의 음식, 돼지고기에 익숙했기에 황제가 된 후에도 돼지고기를 찾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태조 주원장에 이어 3대 황제 영락제도 돼지고기를 좋아했다. 이렇듯 황제가 좋아하니 돼지고기 위상이 예전과는 완전 달라졌다. 게다가 명나라에서는 돼지를 함부로 돼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황제와 같은 이름은 쓸 수도 부를 수도 없는 피휘제도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자로 돼지 돈(豚)자를 주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돼지 저(猪)자를 더 많이 쓴다. 그런데 이 글자의 중국어 발음은 주(zhu)로 명나라 황제의 성인 주(朱)와 발음이 같다.   그러니 조선시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명나라에서는 돼지를 돼지(猪)라 부르지 못했고 대신 시(豕) 나 체(彘)처럼 다른 한자 이름으로 불러야 했다.   돼지가 졸지에 귀하신 몸이 됐는데 1519년인 명 무종(武宗)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무종 황제 주후조가 지금의 강소성 의진(儀眞)이라는 곳을 시찰하다 돼지 잡는 소리를 듣고 일반 백성은 돼지를 키우지도 잡아 먹지도 말라는 명령을 내려졌다.     황제의 성과 돼지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무종이 돼지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침 춘절을 앞두고 있었기에 제사도 돼지 대신 양고기로 지내라고 하면서 소동이 일어났다. 백성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자 대신들이 상소를 올려 돼지 도축금지령은 결국 폐지됐다. 『명 무종실록(明武宗實錄)』에 나오는 기록이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돼지의 위상이 높아졌고 명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가난한 고기라는 천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인지 명나라 후반의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천하가 모두 돼지를 기른다고 적혀있다. 간단하게 알아 본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5.12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상장 등록제로 거대 기업 유인하는 중국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상장 등록제로 거대 기업 유인하는 중국

    지난 4월 10일,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장옌그룹. 사진 신화통신 중국 정부가 그동안 엄격하게 통제해 오던 ‘기업공개(IPO)’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시작했다. 지난 4월 10일 상하이 및 선전 증권거래소에 장옌그룹(江鹽集團), 하이썬제약(海森藥業), 산시에너지(陕西能源) 등 10개 기업이 등록제로 상장되었다.   중국에서 새로 시행되는 ‘주식발행등록제(股票發行登錄制)’란 상장 희망 기업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서류상 적격 판정만 받으면, 등록 절차에 따라 곧바로 상장할 수 있는 제도다.   종전 중국의 증시 상장은 엄격한 통제와 심사로 대기 기업의 숫자가 많아 심사 기간만 2~3년 걸리고, 3년간 영업이익 실적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번 조치로 서류 심사 기간을 3개월 이내로 단축하고, 영업이익 실적도 1년으로 낮추었다. 주가 변동 폭도 첫 거래일로부터 5일간은 무제한으로 풀었다.   중국의 상장 등록제는 승인제와 비교하면 심사 주체와 심사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기업의 상장융자가 더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증시 상장의 문턱을 크게 낮춘 ‘등록제’ 시행은 미∙중 경제전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과학기술 기업들의 상장 문턱을 낮추어,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결하게 함으로써,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나 홍콩에서 상장을 추진하던 거대 정보통신 기업들을 대륙 상장으로 선회하게 하는 유인책으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증권감독위원회(中國證券監督委員會)의 이후이만(易會滿) 주석은 “상장 등록제 개혁이 가져올 변화는 정보공개를 핵심으로 한 전방위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서비스 기능이 대폭 향상되어, 시장 구조와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와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사기 상장, 재무 조작 및 기타 법률 및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천화핑(陳華平) 선전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상장업무의 등록제가 수행됨에 따라 선전 메인보드는 대형 블루칩의 특성을 더욱 부각해, 사업모델 성숙, 안정적인 경영실적, 비교적 큰 규모, 우량업종 대표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제조업이 스마트 팩토리, 디지털 경제, 녹색 저탄소 등 과학기술 부문의 자립 자강을 외치는 가운데 과학기술 기업을 위주로 하는 상장등록제는 신흥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는 인플레와 저성장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대중국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포지티브 방식의 기업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연구·개발 및 신사업 투자 등에 힘쓰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 세제 지원,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울리는 법 제도의 제정과 정비가 시급하다.   한국은 최고 60%(OECD 38개국 평균 14.5%)에 달하는 상속세율 때문에, 기업가치를 낮게 유지해야만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창업자들은 기업을 자녀에게 상속하려면 회사를 팔아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기업의 실적과 무관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1400만 개미투자자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가 돌아간다.   중국은 통제경제 속에서도 기업활동에 대한 다양한 지원정책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나, 우리는 법과 제도에서 개혁적인 조치가 보이지 않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여전하다. 중국기업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같은 공산 사회주의 국가도 자본시장을 부양하고, 과학기술 기업의 자본 조달을 돕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우리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자본시장은 국가권력의 통제가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정부의 정책이 산업을 흥하게 하거나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나 정부의 관료들은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의 증권시장 자본시장을 개혁하지 않고는 선진국 금융시장으로 평가받기 힘들다.     우리 자본시장에는 IPO 제도의 개선은 물론 불공정과 불투명성과 함께 증권거래세, 투자자 보호, 공매도,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대주주와 기관우대 정책, 내부자 거래, 증권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 개혁이 필요한 분야가 산적해 있으나, 유관기관은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할 의지도 없고, 언론은 보도조차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다.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더차이나칼럼

    2023.05.11 06:00

  • "미·중 디커플링은 재앙" 美장관 옐런이 中에 추파 던진 이유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미·중 디커플링은 재앙" 美장관 옐런이 中에 추파 던진 이유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차이나랩 한우덕 선임기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4월 20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했다. 미·중 관계에 대한 주목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간단히 보면 이렇다.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생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고, 찾을 수 있다.   최근 미·중 갈등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톤이다. 옐런은 "미국은 결코 무역보복을 통해 중국의 성장을 억제할 생각이 없다"며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국 장관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옐런은 왜 중국에 '추파'를 던지는 걸까?  지난달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필자제공  ━  중국의 '국채 덤핑(dumping)'?    국채다. 지금 중국의 미국 국채(US Treasury bonds) 보유량은 뚜렷하게 감소 중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보유액은 8488억 달러. 13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최고치였던 2013년 1월의 1조 3167억 달러 대비 35.6%가 줄었다. 지난해에만 1700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세계 제1위 미국 채권 보유국 자리는 일본에 내준지 오래다.    당연히 미국 정부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보유 국채를 지속해서 내다 판다면,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수익률)는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채 덤핑으로 미국 금융시장을 교란하려 한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돈다.   중국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우선 경제적 이유를 꼽는다. 돈은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미국 국채(10년물) 수익률은 2021년 말 1.5%에서 2022년 말 4%에 육박했다. 그만큼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갖고 있으면 손해다. '중국은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외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둘째는 정치적 이유다.   중국이 미 국채를 본격적으로 줄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무역 전쟁을 시작한 때와 겹친다. 중국이 미 국채를 무기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중국의 보유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에서 퇴출하면서 중국에서는 '달러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움직임과 맞물려 미 국채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쉽지 않은 디커플링   중국은 과연 미 국채를 무기화할 수 있을 것인가?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우선 중국이 미 국채를 보유하게 된 과정을 보자.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가입이 계기였다. 중국은 WTO 가입과 함께 '세계 공장'으로 떠올랐고, 수출이 급증하면서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다. 수출로 들어온 달러는 어쨌든 위안화로 바뀌어야 한다. 당연히 위안화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위안화 환율 하락). 이는 수출에 부담이다. 중앙은행(중국인민은행)이 위안화를 풀어 달러를 사들인 이유다.   중국인민은행에 쌓인 달러를 받아줄 만한 안전한 투자처는 미국 채권뿐이었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 국채를 샀고, 미국은 중국에서 빌려온 달러로 다시 중국 제품을 샀다. 중국은 수출로 경제를 일으켜 좋았고, 미국인들은 인플레 걱정 없이 소비를 즐길 수 있었다. 옐런 재무장관이 말한 미·중 커플링의 실체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대거 내다 판다면? 그건 공멸이다. 국채 덤핑은 가격 폭락을 야기하고, 수익률(금리)은 폭등시킨다. 미국 금리가 높으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이 오고, 글로벌 자금은 다시 미국으로 몰리는 성향을 보인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이 벌이고 있는 금리 인상 '댄스'에 세계 경제가 신음하는 이유다. 중국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고, 수출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달러를 찍어 중국 매도 분량을 사들이면 그만이다. 중국은 갖고 있던 자산만 잃게 된다.   보유 국채를 서서히 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미국 압박의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 국채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지금도 중국이 푼 국채를 일본이나 유럽이 거둬가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을 흔들어보겠다는 중국의 의도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 감소가 다소 과장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보유 축소는 약 1738억 달러. 평가 손실이 포함된 액수다. 이를 제외하면 중국이 실제 내다 판 액수는 대략 595억 달러에 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로이터 보도, 2023. 2. 23). 팔았다기보다는 만기 채권을 재연장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해석이다.    ━  '신냉전,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는 채무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지금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정부 디폴트 공방 역시 부채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국채 매각은 미국 정부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재무장관 옐런으로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국가들은 보유를 다시 늘리고 있는데 중국은 여전히 줄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와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연구기관인 이스트-웨스트센터의 데리 로이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부채 한도 증액 실패는 중국의 미 국채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국으로서는 보유물량 축소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3월 3일 보도).   미국은 안정적인 정부 채무 관리를 위해 차이나머니를 국채에 잡아둬야 한다.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에 손짓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중국도 미국 국채를 마냥 던질 수는 없다. 중국의 현재 외환보유액은 약 3조1800억 달러. 이 중 60%가 달러 표시 자산이다. 높다고는 할 수 없다. 달러 표시 자산을 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채 매각 대금이 미국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다른 형태의 채권 509억 달러를 사들였다. 국책 주택담보 금융인 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프레디 맥)는 그중 하나다. 중국이 국채를 처분한 것이 아니라 달러 자산을 보다 수익성이 높은 상품으로 재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중국으로서도 옐런 장관과 만나 상의해야 할 게 많아 보인다. 옐런의 중국 방문이 멀지 않았다.   옐런은 존스 홉킨스 대학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패권 경쟁 속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신냉전의 속성이 그렇다. 먹고 사는 문제를 두고 어느 한 진영에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5.10 06:00

  • 중국인 거기 그렇게 많았나? 수단 탈출로 알게 된 뜻밖 '중국몽'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국인 거기 그렇게 많았나? 수단 탈출로 알게 된 뜻밖 '중국몽'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성남=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군벌 간 무력 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 정부의 ‘프라미스(Promise)’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2023.04.25. photo@newsis.com 아프리카 동북부 수단에서 지난 4월 15일 정부군과 민병대인 신속지원군(RSF)이 권력을 둘러싸고 유혈 내전을 시작하면서 세계 각국이 자국민 수송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공군기를 동원해 교민 28명을 철수시킨 ‘프라미스’ 작전을 벌여 4월 25일 이를 종료했다. 교민들이 이날 KC-330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급유기를 타고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하면서다. 수단에서 철수한 일본인도 포함됐다.     수단 교민들은 4월 23일 오전(현지시각)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출발해 약 1170㎞를 지상 이동해 이튿날 오후 홍해 항구인 포트수단에 도착했다. 홍해 해상에는 우리 해군의 청해부대 소속 5500t급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이 대기했다. 교민들은 이곳에서 공군의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홍해를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귀국길에 올랐다.  ━  중국 거주민 4월 27일 철수     4월 27일엔 중국도 수단에서 자국민 668명과 외국인 10명 등 678명을 대피시켰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동아시아 삼국이 자국의 수단 교민들을 대부분 무사히 탈출시킨 셈이다.     공군 항공편을 이용한 한국과 달리 중국은 두 척의 자국 군함을 동원했다. 인민해방군 소속 7500t급 052D형 미사일 구축함인 난닝(南寜) 함과 2만3000t급 903형 종합보급함인 웨이산후(微山湖) 함이 4월 26일 수단에서 자국민 등을 태우고 홍해를 건너 2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도착했다.     중국은 수단과 접경한 아프리카 동북부 지부티의 도랄레 항을 조차해 2017년 8월부터 해외 군사기지로 사용하고 있어 해당 군함들이 이곳에 기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부티에는 1000~2000명의 인민해방군이 주둔하며 해외보급기지를 운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해군의 이번 자국민 철수 작전은 2011년 리비아와 2015년 예멘에 이어 세 번째다. 따라서 이번 철수 작전은 인민해방군 해군이 처음으로 지부티 기지를 활용한 자국민 대피 사례로 볼 수 있다.  ━  수단 송유관, 1대 주주가 중국업체…일대일로 일환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수단에 있었던 것일까. 이는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관련이 있다. 특히 중국이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中國石油天然氣集團公司)를 통해 수단의 송유관 운영사인 ‘그레이터 나일 석유 운영사(GNPOC)’ 지분의 40%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GNPOC는 수단 서남부와 남부, 그리고 남수단의 유전 지대에서 수도인 하르툼을 지나 동부의 홍해 항구인 포트수단을 잇는 총연장 1600㎞의 송유관을 건설해 운영한다. GNPOC은 최대 주주인 중국 외에 말레이시아 기업이 30%, 인도 업체가 25%, 수단 국영 석유사인 수다페트가 5%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송유관에서 알다시피 수단은 산유국이다. 수단은 석유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로부터 2006년 가입을 요청받았으며 2015년 신청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군사쿠데타 등 불안한 정정 때문에 OPEC은 수단의 가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OPEC 회원국이 되려면 기존 회원국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데, 아직 안건도 상정되지 못한 상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UAEIA)에 따르면 수단은 2021년 하루 6만 6912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세계 46위의 산유국에 해당한다. 2011년 수단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한 남수단은 하루 15만 7122배럴을 생산해 세계 38위다. 수단 국민을 풍족하게 살게 할 정도로 많지는 않아도 글로벌 수급상으론 중요한 물량이다. 눈여겨볼 점은 수단과 남수단에서 생산된 원유는 모두 GNPOC의 송유관을 거쳐야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목줄을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  중국, 외국인 탈출 포트수단 개발에 눈독 들여와   중국은 이번에 한국과 중국의 교민이 탈출한 홍해 항구인 포트수단의 개발 사업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중국항만공정(CHEC)은 포트수단 확장에 5억43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수단 군부의 권력기관인 과도주권위원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트수단은 지정학적으로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수단과 남수단에서 생산해 GNPOC의 송유관을 거쳐 도착한 원유를 선적하는 석유 수출항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홍해를 아우를 수 있는 군사‧물류 요충지라는 사실이다. 홍해는 동남쪽으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서북쪽으로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길이 2250㎞의 남북으로 길쭉한 바다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글로벌 물류의 급소다. 수에즈 운하에 사고가 생기든지 인근에서 안보 문제가 발생하면 글로벌 물류가 막히게 마련인데, 홍해가 불안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홍해가 서쪽으로 아프리카, 동쪽으로 중동과 접해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바닷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서쪽으론 지부티‧에리트레아‧수단‧이집트에 면한다. 동쪽으로는 예멘‧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하며 티란 해협과 아카바 만을 지나면 요르단의 아카바 항과 이스라엘의 에일라트 항으로 이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무역항인 제다도 홍해 연안에 있다. 제다의 건설에는 수많은 한국인 건설노동자가 참여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의욕적으로 건설을 추진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은 바로 티란 해협과 홍해에 접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에 안보와 경제 모두가 걸려있는 급소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셋째는 포트수단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자원이 해외로 수출되는 주요 출구라는 사실이다. 1905년 영국이 개발한 포트수단은 내륙에 있는 수도 하르툼과 도로로 연결된다. 하르툼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청나일과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백나일에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물류 요충지다. 수단은 이집트와 리비아,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동북 아프리카의 중심이다.  ━  홍해 항구 개발 놓고 중국과 중동 경쟁 치열   이에 따라 포트수단 개발에 중동국가들도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아랍에미리트(UAE)다. UAE 두바이에 있는 다국적 항만관리 겸 터미널 운영사다. DP 월드는 지난해 6월 60억 달러를 들어 포트수단 지역에 새 항만을 건설하고 자유무역 지대 창설하겠다는 사업을 제안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이 포트수단 확장 프로젝트를 제시하자 DP 월드는 아예 포트수단을 중동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대규모 자유무역항으로 새롭게 키우겠다는 프로젝트를 들고나온 셈이다.     노르웨이의 해운‧해양 싱크탱크인 ‘크리스티안 미겔센 연구소(CMI)’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홍해를 통제하려는 국제적 각축전의 한복판에 수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중동 전문 뉴스사이트인 알모니터는 4월 24일 “홍해 지역에 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는 중국은 수단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불안정을 경계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수단 사태의 조기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목말라 하는 석유가 생산되는 데다, 글로벌 무역로의 중심에 있는 포트수단은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으로선 놓칠 수 없는 투자 대상이다.  ━  고대 당나라-아프리카 교류사까지 활용하는 중국       중국은 앞서 지난해 6월 수단과 중국 사이의 첫 해운 직항로인 ‘수단-차이나 익스프레스’를 개설하고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성대한 개설 행사를 열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3만2000t 규모의 화물선이 수단 포트수단에서 중국 상하이 사이를 20일에 걸쳐 운항한다. 이 개설행사에서 마신민(馬新民) 수단 주재 중국 대사는 “중국과 수단은 고대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축사에서 강조했다.   중국이 ‘중국이 고대부터 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와 인연의 끈을 유지해왔다’는 이야기는 최근 들어 중국 외교가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다. 그 근거는 8세기 당나라 때인 751년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에서 탈라스 전투에 참전했다가 이슬람 세력의 포로가 됐던 두환(杜環)이라는 인물이 쓴 『경행기(經行記)』의 여행기다.     두환은 섬유기술자로서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던 아바스 왕조(한자로 黑衣大食)에 잡혀갔다가 13개국을 여행한 뒤 해로로 762년 지금의 광저우(廣州)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한다. 『경행기』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내용의 일부가 두환의 숙부인 두우(杜佑‧735~812)가 편찬한 백과서전 류인 『통전(通典)』에 초록으로 남아있다.     이 기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환이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에 있는 마린국(摩鄰國)에 갔다”며 “시나이 반도의 대사막을 지나 2000리(약 1000㎞)를 여행해 도착한 나라”라고 기술한 내용이다. 두환은 “사람들이 흑인이었으며, 토지에는 쌀도 잡곡도 없었으며 초목도 자라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야자나무가 있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모습도 묘사했다.     지리나 자연 환경상 오늘날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수단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두환이 묘사한 내용은 오늘날의 이 지역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선 두환을 아프리카를 여행한 첫 중국인으로 치고 있다.     주목되는 내용은 이슬람법(大食法)과 기독교법(大秦法), 유대법(尋尋法)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이슬람 신자들은 돼지‧개‧당나귀‧말의 고기를 먹지 않으며 국왕과 부모를 숭배하지 않고 귀신도 믿지 않으며 오로지 하늘에만 기도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7일에 하루를 쉬며 이날은 무역 결제도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관찰과 기록이다.     중국은 이처럼 고대 당나라 때의 기록까지 되살려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오랜 유대를 강조하며 접근하고 있다. 놀라운 외교술이 아닐 수 없다. 고대사를 현재의 외교에 활용하는 소프트파워 전술이다. 일대일로에, 특히 아프리카에 중국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이번에는 군벌 간의 전투가 치열해 안전을 위해 자국민을 철수시켰지만 사태가 안정되면 수단으로 가장 먼저 돌아갈 나라가 중국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수단의 군벌 간 내전 사태가 이 지역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중국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셈이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2023.05.09 06:00

  • [중국읽기] 산림 갈아엎어 농지 만드는 중국

    [중국읽기] 산림 갈아엎어 농지 만드는 중국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1998년 여름 중국에 100년 만의 대홍수가 닥쳤다. 수해 현장으로 달려간 총리 주룽지는 물마루가 넘실대는 제방에 올라 “캉훙(抗洪, 홍수를 이기자)”을 외쳤다. 비를 맞아 후줄근한 반소매 차림의 총리가 캉훙을 소리치며 장강(長江)에 흩뿌린 눈물은 중국 인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너지는 제방을 인간사슬로 만들어 지켰다. 그러나 피해는 컸다. 3000여 사망자에 1500만 수재민이 발생했다.   뭐가 문제였나. 억수로 쏟아진 비는 분명 천재(天災)였지만 엄청난 사상자 배후엔 인재(人災)가 있었다. 원래 하천 양옆으론 너른 유수지(遊水池)가 있는데 사람들이 마구 들어가 밭을 일구는 등 어느 사이에 생활의 터전이 됐다. 홍수가 나자 많은 인명 피해가 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그래서 나온 게 ‘퇴경환림(退耕還林)’ 정책이다. 농지를 물려 다시 숲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한데 20년 넘게 잘 진행되던 퇴경환림 정책이 최근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식량안보 문제가 대두하면서 숲을 갈아 농지로 만드는 ‘퇴림환경(退林還耕)’ 조치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각 지방 정부에 농지를 철저하게 보호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동안의 퇴경환림 정책에도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경작지는 꾸준히 줄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중국의 농지는 1억1300만무(畝, 1무는 약 200평)가 사라져 현재 19억1800만무 정도다. 중국의 목표는 농지 18억무 사수로 한해 6억 5000만톤 이상의 식량을 생산한다는 것인데 이대로는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경작지 확보를 ‘정치 임무’라 규정하고 100억 위안(약 1조9300억원)을 농가에 뿌려 농지 개간을 독려 중이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고 있다. 큰돈을 들여 애써 일군 산림과 녹지가 훼손되고 있다. 쓰촨성 청두(成都)는 400억 위안을 들여 도심 외곽 순환도로 주변에 조성하던 녹지를 갈아엎어 농지로 만든 뒤 밀 등 농작물을 심었다. 또 완공을 앞둔 공원을 철거하고 농지로 바꿔 주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중국 당국은 위성을 이용해 농지가 제대로 활용되는지도 감시하고 있다.   식량안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국의 모습은 여러 상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지난 8년 동안 연속으로 목표치 이상의 식량을 생산했는데도 비상조치를 취한다는 건 행여 대만해협에서의 무력충돌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에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5.08 00:45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어향육사(魚香肉絲), 돼지고기에서 왜 생선 맛이 날까?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어향육사(魚香肉絲), 돼지고기에서 왜 생선 맛이 날까?

    어향육사. 사진 셔터스톡 대장정 시절, 덩샤오핑이 이끄는 공산당 부대는 국민당군에 쫓기면서도 회식을 자주 했다. 물론 보급이 없어 실제 음식은 없었으니 먹는 이야기로 배고픔과 고단함을 달래는 귀로 듣는 먹방이었다.   어쨌거나 덩샤오핑 포함 부대원 상당수가 사천성 출신이었기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고향에서 먹었던 어향육사(魚香肉絲)였다고 한다.   사천식 돼지고기 볶음의 일종인 어향육사나 가지튀김 내지는 볶음인 어향가지(魚香茄子)는 중국의 대중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도 친숙하지는 않지만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어향육사나 어향가지 알고 보면 이름과 생긴 유래가 독특하다.   일단 어향육사에서 육사(肉絲)는 실처럼 가늘게 썬 돼지고기라는 뜻이고 어향가지의 가지(茄子) 역시 채소인 가지를 주재료로 요리했다는 소리다.    그러면 어향은 무슨 뜻일까?  한자로는 물고기 어(魚), 향기 향(香)자를 쓰니 어향은 곧 생선 냄새, 생선 맛이라는 의미다. 설마 돼지고기나 가지요리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말은 아닐 것이고 그러니 생선 맛이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지 않고 엉뚱하게 채소와 고기에서 생선 맛이 난다는 다소 황당한(?) 음식을 만들었을까?   어향 요리의 본 고장인 사천 지역은 삼협댐이 있는 곳으로 본류와 지류를 포함해 강이 많은 고장이다. 그런 만큼 민물생선이 많이 잡히고 민물고기의 비린내와 잡내를 잡기 위한 생선 요리법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사천에 풍부한 고추와 산초, 얼얼한 맛을 내는 화초(花椒) 등을 이용한 양념이다. 어향 소스도 이런 양념 중 하나다.   갖은 야채를 넣어 만든 어향소스. 대부분의 맛있고 유명한 중국 요리는 궁중에서 발달했거나 관가에서 만들어 민가에 퍼졌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어향 요리는 사천성의 한 민가에서 만들어져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별미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민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관련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천성 어느 마을에 온 가족이 모두 생선을 좋아하는 집이 있었다. 식구들이 모처럼 다 모인 김에 생선요리를 해 먹기로 한 주부가 남편에게 장에 가서 물고기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 사이에 생선요리에 쓸 양념을 만들었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생선과 함께 담가 발효시킨 숙성 고추절임(泡魚辣椒)과 생강, 마늘, 사천 된장(川醬) 등이다. 양념을 맛있게 버무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장 보러 갔던 남편이 생선이 다 떨어졌다며 빈손으로 돌아왔다.   난감해진 주부, 정성껏 준비한 생선요리 양념을 버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부엌에 있던 돼지고기를 썬 후 다른 채소와 함께 생선 양념으로 버무려 볶았다.    임시방편에 궁여지책으로 만든 음식이었지만 군침을 흘리며 맛있는 생선요리를 기대했던 식구들이 오히려 맛있다며 하오츠(好吃)를 외쳤다. 생선은 보이지 않는데 양념은 생선 양념이고 맛도 생선 맛이니 신기하고 오묘하다며 감탄했다는 것이다. 생선 맛이 나는 돼지고기 볶음 어향육사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누구누구네 집 어향육사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어향 소스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널리 알려진 어향육사 이외에도 마파 양념으로 요리한 마파두부처럼 두부를 어향소스로 요리한 어향두부(魚香豆腐), 모닝글로리로 알려진 공심채 볶음처럼 유채를 어향 소스로 볶은 어향유채볶음(魚香油菜苔) 등등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어향 음식이 생겨났다.    그중 어향육사 만큼이나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고 또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음식이 어향가지다. 중국에서는 어향가지를 많이 먹는데 여기에도 나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지가 특별한 채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해서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가지에 대해 특별한 환상을 품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자라를 최고 보양식 재료로 여겼는데 양기를 북돋아 장수에 도움이 되며 정력에도 좋다고 믿었다. 그런데 가지의 별명이 초별갑(草鼈甲)으로 풀(草)로 된 별갑(鼈甲), 즉 자라라는 뜻이니 그만큼 몸에 좋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곤륜과(昆侖瓜)라고도 불렀다. 곤륜산에서 나오는 오이라는 말인데 곤륜산은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산이니 가지는 신선의 채소였던 것이다   이런 가지를 별미로 먹는 생선요리 양념으로 조리한 것이 어향가지이기에 중국에서 사랑받는 대중음식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향 요리를 놓고 중국인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내지 옛 문헌까지 동원해 그럴듯하게 미화시켰지만 그러나 생선 맛 나는 돼지고기, 가지 볶음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돼지고기나 가지, 두부나 유채 줄기처럼 어향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대부분 저렴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다. 이런 식재료를 어향 소스처럼 맛있는 양념으로 조리해 별미로 탈바꿈시킨 어머니의 손맛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어향육사를 비롯해 어향 요리가 만들어지고 널리 퍼진 것은 중국이 국공전쟁과 항일전쟁 등으로 궁핍에 시달릴 때였다.   이런 시기 없는 재료를 이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어머니의 손맛은 역시 위대하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5.05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 최강은 없다, 더 강한 게 있을 뿐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 최강은 없다, 더 강한 게 있을 뿐

    사진 셔터스톡  ━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黑貓白貓)   :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다.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말한 이후 유명해진, 소위 ‘흑묘백묘론’의 본질은 고양이 색이 뭐 중요한가? 쥐를 잘 잡냐 못 잡냐가 중요한 거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실질적으로 일을 하자는 이야기다. 철저한 실용주의 사고다. 왜 하필 미국 방문 이후일까? 아마도 미국인들과 ‘답답한’ 협상을 하고 돌아온 이후의 느낌을 이 한 마디로 요약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슨 주의, 무슨 이념, 무슨 이론…. 그런 것을 굳이 일일이 규명하고 정의하지 않고도,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있는데 왜 그런데 허비를 할까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추측이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 잘 잡는 게 좋은 고양이”라는 큰 틀에 맞으면, 굳이 그 과정을 ‘표준화’ 혹은 ‘보편적’이라는 또 다른 틀 안에 가둘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  토마토는 과일인가? 채소인가?   오래 전 “토마토가 채소라는 거 몰랐지?”라며, 지식을 알려준 친구가 있었다. 채소는 익혀먹고, 과일은 그냥 먹으므로 토마토는 과일이다라는, 당시의 나의 상식과는 달랐다. 후에 중국에 와서, 중국인들이 토마토를 익혀 먹거나, 국에 넣어 먹는 것을 보고 “아! 중국사람들은 이게 채소라는 것을 알았나 보다”한 적도 있다.     19세기 미국에선 채소에 세금을 매겼다. 수입업자는 토마토는 과일이라며 맞섰다. 미국의 연방최고법원은 토마토는 과일처럼 디저트로 먹지 않기 때문에 채소다라고 판결했다(〈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미나가키 히데히로). 식물학적으로는 열매를 먹는 식물을 과일, 열매 이외의 부위를 먹는 식물을 채소라고 한다. 토마토는 열매이므로 과일에 속한다. 미국의 판례를 따르면,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지만 법적으로는 채소인 셈이다. 한편 지금까지도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때로는 결과만 좋으면 될 때도 있다. 토마토는 맛있고, 몸에 좋다. 그러면 된 거다.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토마토는 식물이다. 아니다 채소다”라는 식으로 정의에 대해, 지나치게 논쟁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다. 〈알고 있다는 착각(질리언 테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는 지식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라고 인용하면서 작자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그게 5%라는 것은 어떻게 알지?”. 굳이 정확하게 몇%라고 따지는 것은, 최소한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스님의 저서가, 제목 그 자체로 울림을 주는 이유다.    ━  후쓰(鬍適)의 소설, 〈差不多先生(Mr. “그게 그거다”)傳(차부둬 선생 이야기)〉   : 差不多(차부둬)를 번역하면, “차이가 별로 없다. 대충 그게 그거다”의 의미다.   후쓰(鬍適)는 미국 유학 시절 죤 듀이로부터 실용주의 철학을 수학했다. 그의 단편 소설이다. 대략 40년 전 대학교를 다닐 때 읽었는데, 대충 소개하면 이렇다. 差不多 선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매사를 “그게 그거다”라며 일을 항상 대충한다. 역에 늦게 도착해서, 기차를 놓쳐도 자기 반성은 안하고 “정각에 출발하나, 10분뒤에 출발하나 差不多인데, 왜 꼭 정각에 출발해야 했지?” 라고 갸우뚱한다. 그러면서 돌아가면서, “오늘 떠나나 내일 떠나나 差不多지 뭐”하며 위로한다. 어느 날 差不多 선생이 병에 걸렸는데, 마침 의사는 없고, 수의사만 있었다. 差不多선생은 “사람 고치는 의사나, 동물 고치는 의사나 그게 그거지. 差不多!” 하며, 수의사에게 수술을 받는다. 그러다가, 差不多 선생은 숨을 거둔다. 생을 마치면서 差不多 선생은 뭐라 말했을까? “이제 죽으나, 후에 죽으나 差不多! 그게 그거지!”   중국인들의 대충대충(差不多)하는 의식상태를 의인화한 소설이다. 아편전쟁 이후 몰락해가는 답답한 현실은, 중국인들의 이런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즉 대충하는 국민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보통의 중국인들도 대충대충하는 일처리 방식은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  불확실성 회피 문화와 수용문화 (Strong Avoidance of Uncertainty & Weak Avoidance of Uncertainty)   : 불확실한 것을 최대한 회피하는가? 아니면 적당한 만큼만 회피(수용)하는가?   저명한 사회인류학자 호프스테드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을 소개했다.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 중 하나의 기준이다. 그의 글을 인용해 보면, “극단적인 불확실성은 참기 힘든 불안을 유발시킨다. 어느 사회에서나 이러한 불안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왔다. 이것은 과학기술, 법, 그리고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불확실성의 핵심은 이것이 주관적인 경험, 즉 느낌이라는 사실이다. 사자 조련사가 자기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지극히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아마 이런 상황에서 까무러칠 정도로 심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세계의 문화와 조직〉)     그리고 이렇게 맺는다. “이런 것들은 다른 사회의 구성원에게는 이상하게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한 사회의 집합적인 행동양식이 된다”. 문화가 다르면, 상대방이 무질서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 문화 속의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주며, 지극히 정상적이다.   일견 모순처럼 보이지만, 불확실성 회피가 강한 문화일수록, 고속도로에서 차를 오히려 빨리 몬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잘 지키듯, 상대방도 잘 지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회피가 약한 문화는 남들이 안 지킬 것을, 대충 할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되레 고속도로에서의 차량 속도가 덜 빠르다. 천천히 몰지만, 그래도 차량 사고는 많이 난다.    ━  사례 : “대충대충”은 덜 까다로워 보이지만, 늘 위험이 도사린다.     그 함정에는 국적(國籍)의 구분이 없다. 중국인도 빠진다.   2008년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있던 해로 기억한다. 고위 부패 사건이 매체에서 연일 보도되었다. 외국과의 계약서가 중국법에 부합하는 지를 검토하고 승인을 해주는 부서의 전·현직 고위층이 연루되었다. 국장급이었던 이들이 특정 회사와 개인들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필자도 잘 아는 사람이기에, 무슨 잘못을 했는가라며 주위에 물어봤더니, “현직에서 규정을 만들 때, 고의로 애매한 조항을 만들어 놓고, 후에 이로 인한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며 컨설팅비로 큰 돈을 챙겼다”고 한다.     필자로서는 범죄사실에 대해 논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다른 개연성에 대해서 말해 본다. 이런 부서에서 규정을 정할 때, 중국 관원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해외의 모든 규정들을 참고해서, 가장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규정들은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급여를 책정할 때는 업무 성격을 고려한다. 영업직의 경우 기본급은 낮고 성과급이 높다. 반대로 사무직은 기본급이 높고 성과급이 낮다. 그런데, 근로자의 입장에서만 고려하다 보면, 기본급은 사무직을, 성과급은 영업직을 기준으로 하게 되는 불합리가 생긴다. 인건비만 높아진다. 그렇게 하면, 중국에 투자하는 기업은 경쟁력이 없어진다고 불만과 지적을 토로하면, “규정이라는 것도 발전해야지!” 한 마디로 끝이다. 그리고 나서, 후에 현장의 건의를 들어가며 수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즉, 이것 저것 섞다 보면, 균형을 잃은 비현실적인 조항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모순되는 조항도 있다. 한동안 이런 조항들과 각 부서간의 내부 지침이 서로 충돌되는 규정들을 보았다. 이런 일을 하는 부서에서는 전문적으로 이런 규정을 만들면서, 본인들은 그 모순과 문제점을 알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규정에 모순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발표했고, 그리고 집행해가면서 보완도 하고 수정도 해왔을 것이다. 발표 전에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를 한 것은, 과거에도 그래 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의 관습이다. 그리고 굳이 표현하자면, 불확실성 회피가 약한, 수용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에는 “고의로 규정에 구멍을 만들고, 후에 그것을 이용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 우리 기업들만, 이랬다 저랬다(出爾反爾)때문에 골탕 먹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범죄자가 되어 수감되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를 때도 있다.    ━  이원적(二元的) 사고와 다원적(多元的) 사고   : 중국에는 회색수입(灰色收入)이라는 애매한 수입이 있다.   불확실성 수용문화에서는 융통성이 개입될 여지가 훨씬 많다. 애매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좋다(好)를 좋다(好)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나쁘지 않다(不錯)고 말하는 경향이 많다. 나쁘다(壞)는 것은 나쁘다(壞)라고 안 하고, 좋지 않다(不好)고 한다. 흑백의 이원(二元)이 아니라, 중간 지대가 많다. 융통성이 발휘되는 지역이다. 넓다. 애매한 영역이다. 흑과 백이라는 양극단을 제외한 대부분은 회색이다. 중국식 사고는 이원이 아닌 다원(多元)이다. 정상적인 수입은 백색(白色) 수입이다. 범죄수입은 흑색수입(黑色收入)이라고 한다. 검은 돈이고 불법이다.     중국에는 회색수입(灰色收入)이라고 불리는 수입이 있다. 월급 등 정상적인 수입이 아닌 그밖의 수입인데, 검은 돈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고 받는 금품이나 선물도, 학생들이 은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아마도 거래선으로부터 받는 고액의 선물이나 수고비(?)등도 “범죄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여기에 속할 것이다. 완충지대다. 그런데, 이 완충지대와 흑색 또는 백색과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 이 지점은, 우리는 당연히 분별해내기 어렵지만, 중국인도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하지만,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도 늘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이다.    ━  ‘가장 강한 것’은 없다. 다만 ‘더 강한 것’은 있다(沒有最強 只有更強)   : 경쟁력은 ‘절대우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바로 ‘비교우위’에서 나온다.   짧은 촌도 길 때가 있고, 긴 척도 짧을 때가 있다(吋有所長 呎有所短). 기준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매 상황에 따라서, 그 상황마다 중국인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어렵다. 그런데, 항상 제일 많이 알고, 제품력이 가장 첨단일 필요는 없다. 경쟁력은 절대우위가 없다. 비교우위다. ‘가장 강한 것’은 없고, 다만 ‘더 강한 것’이 있을 뿐이다(沒有最強 只有更強). 우리는 서구인들보다는 중국을 이해하기 쉽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경쟁상대는 서구 및 일본의 글로벌 선진국 기업이 많다. 최소한, 그들보다는 우리가 중국을 상대적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정나라 사람이 신발을 사다(鄭人買履)   : 내 발 크기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길이를 재는 “자”보다도….   정(鄭)나라 사람이 신발을 사러 가기 전에, 집에서 자를 가지고 발의 크기를 쟀다. 신발가게에 가보니 마침 좋은 물건이 있다. 마음에도 들고, 발에 맞아서 사려다 보니, 아차 발 크기를 잰 자를 안 가지고 온 걸 알았다. 자를 가지러 집에 갔다 오니, 그 신발은 이미 팔렸다. 자기 발 크기를 자기가 알면서, 도리어 발의 치수를 쟀던 자만 믿는다. 寧信度,不自信 (측량하는 “자”는 믿을 지 언정, 자기 발은 못 믿는다)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글로벌 표준’으로는 중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다. 중국은 우리와 공유하고 있고 공감하는 문화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가 중국을 ‘비교적’ 잘 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뭉뚱그려서 (남들이 틀렸다고 하니, 우리도 그들을 따라서)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구미나 어느 국가 보다 중국인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최소한 중국 내에서는 구미를 따라서 하기 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 우선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 –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지식을 녹여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百呎竿頭 更進一步 (백척간두 진일보. 백척 높이까지 이미 잘 왔지만, 한 발 더 나아가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도 많다. 더 분발하자. 공휴일궤(功虧一簣, 높은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가 모자라 실패하다). 우리에게는 (구미와 비교할 때) 성공적으로 윈윈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어리석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2023.05.04 06:00

  •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세계 항공기 시장 둘러싼 미∙유럽∙중국 삼국지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세계 항공기 시장 둘러싼 미∙유럽∙중국 삼국지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지금 글로벌 경제를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미∙중 산업 경쟁이다. 반도체, 배터리, AI …. 미국은 첨단 산업 분야 글로벌 공급망에서 기어코 중국을 밀어내려고 한다. 그럴수록 중국은 더 치열한 기술 자립 전략으로 맞선다.   항공기 제작 분야도 다르지 않다. 그 현장으로 가보자. 비행기 외교 세계 항공기 시장은 미국의 보잉과 유럽(본사 프랑스)의 에어버스가 양분하고 있다. 전형적인 듀오폴리(duopoly) 시장이다.   두 회사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시장이 중국이다. 에어버스는 앞으로 20년 동안 중국의 새 항공기 수요가 8420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략 한 해 420대를 들여와야 하는 셈이다. ‘너 아니면 나’의 게임. 보잉과 에어버스는 ‘꿀 시장’을 두고 침을 질질 흘린다.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나온 게 ‘비행기 외교’다. 미국이 예쁘다 싶으면 보잉기 하나 사주고, 유럽이 예쁘다 싶으면 에어버스 한 대 더 사주는 식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에 갔다. ‘비행기 외교’는 역시 빛을 발한다. 마크롱은 이번 방중으로 에어버스 160대를 챙겼다. 대략 26조 원 규모란다.    먹었으니 갚아야 한다. ‘대만 문제와 관련, 최악의 상황은 유럽이 미국의 장단에 맞춰 추종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마크롱 발언이 그래서 나왔다. ‘중국과의 공급망 단절이나 디커플링(decoupling)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내놨다.   비행기가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선에 균열음을 남긴다. 사진 셔터스톡 C919 중국이 글로벌 항공기 제작 업계의 ‘듀오폴리’ 체제에 도전장을 내민 건 2006년이다. 국무원(정부) 산하에 ‘대형 비행기 제작 소조’를 만들고, 시행 회사로 ‘中國商用飛機(중국상용비행기)'’를 발족했다. 줄여서 ‘中國商飛(중궈샹페이)’, 영어 이름은 ‘COMAC(Commercial Aircraft Coporation of China)’이다.   말이 항공기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중국의 전략은 뻔하다.   ‘시장으로 기술을 바꾼다(以市场换技术).’ ‘시장 줄 게 기술 다오’ 식이다. ‘시장을 미끼로 기술을 끌어들인다’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겠다.   먼저 미끼를 문 건 역시 유럽 에어버스였다. ‘보잉보다 더 사줄게….’, 에어버스는 그 말에 2008년 톈진(天津)에 에어버스 공장을 지어 가동한다. 꿀 시장 중국에서 경쟁사 보잉을 밀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여겼다.   COMAC은 설립과 함께 중형 항공기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델명 ‘C919’. 좌석 158~192석의 중형으로 A320과 보잉737과 동급이다.   에어버스 톈진 공장은 좋은 ‘커닝’ 대상이었다. COMAC은 톈진에서 디테일을 배웠다. 중국이 톈진에 조성한 항공 단지에 하나둘 기술이 축적됐고, 기술은 COMAC으로 흘러들었다.   서방의 업계 전문가들은 ‘설마….’ 했다. 비행기를 개발한다는 게 무슨 성능 좋은 자전거를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해냈다. COMAC는 2017년 시험 제작기가 처음으로 C919 비행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줄게 기술 다오’ 전략 10여 년 만이다. 2017년 모습을 드러낸 중국 제조 대형 여객기 C919. 신화통신 승객을 실어 나를 날이 머지않았다. COMAC은 지난해 말 상하이 동방항공(東方航空)에 C919 한 대를 인도했다. 물론 상용 비행을 위한 최종 절차인 감항 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ion, 항공기의 안전 비행 성능 인정)을 통과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동방항공의 C919는 시험 비행 중이다. 올해 상용에 투입될 것으로 중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반신반의했던 업계 전문가들도 이제 C919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ABC 구도!’ 중국은 이렇게 외친다. 글로벌 항공시장이 이제는 A(Airbus), B(Boeing), 그리고 C(Comac)로 재편될 것이라는 얘기다. 듀오폴리에서 트리폴리(tripoly)로 바뀌는 모양새다. 중국은 그렇게 제조업 대국에서 강국으로의 비상을 꿈꾼다. 최종 승자는 누구? 에어버스 565대, 보잉 116대, C919 305대…. 지난해 말 현재 3개 항공제작 회사가 손에 쥐고 있는 중국 주문 물량이다. 에어버스가 월등히 많고, COMAC이 그다음, 보잉이 꼴찌다. 이러다가는 ‘꿀 시장’ 중국을 에어버스에 다 빼앗길 판이다.   여기가 끝일까.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비행기 싸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중국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핵심 기술을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래 사진은 이를 보여준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그래픽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가장 중요한 부품은 역시 엔진이다. COMAC은 CFM이라는 회사의 엔진을 들여와 쓴다. CFM은 미국 GE와 프랑스의 엔진 제작 업체인 사프란(Safran)이 함께 만든 엔진 전문 업체다. 결국 C919는 핵심 부품을 미국과 프랑스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중국 항공기 제작에 ‘태클’을 걸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COMAC을 군부와 관련성이 깊다며 블랙리스트에 올려놨다. COMAC에 대한 엔진 및 전자항공유도장치 수출을 신고제로 바꿨다. 항공기 엔진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AECC(중국항공엔진그룹)도 같은 이유로 관찰 대상에 올려놨다. 중국 항공기 제작에 목을 쥐고 있겠다는 계산이다.   미국의 벽은 높다. 중국 항공업계 전설로 통하는 장엔종 중국과학원 원사는 “엔진 독자 개발에 적어도 15년, 길게는 2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마음먹고 항공기 엔진의 대중국 수출 조치를 내린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DSL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봉쇄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25년 자국 신규 항공수요의 10%를 따내겠다는 COMAC의 기대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중국은 결코 보잉을 무시할 수 없다. 핵심 기술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준다.   중국의 항공기 산업 발전을 억제하려는 미국, 그 틈을 비집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유럽, 그리고 비행기 자립을 꿈꾸는 중국…. 이들이 벌이는 게임은 진행 중이다.   어디 항공기뿐이랴. 반도체 분야도, 배터리 산업에서도, AI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그 게임에 우리도 휩쓸려 들어가는 판국이다. 항공기 제작에 얽힌 글로벌 게임을 연구해야 할 이유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5.02 06:00

  • [중국읽기] 낙양지귀와 ‘시진핑 저작 선독’

    [중국읽기] 낙양지귀와 ‘시진핑 저작 선독’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좌사(左思)는 중국 서진(西晉) 시기 사람이다. 어려서 서예와 거문고를 배웠지만 신통치 않았다. 외모도 볼품없고 말주변도 없었다. “내 어릴 적보다 많이 못 하다”는 아버지 말씀에 마음도 아팠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자신의 출신지인 제(齊)나라 수도의 사물에 관한 이야기 『제도부(齊都賦)』를 썼다. 그리고 또다시 10년의 노력 끝에 위(魏)와 촉(蜀), 오(吳) 등 세 나라 서울에 관한 글 『삼도부(三都賦)』를 펴냈다.   처음엔 알아보는 이가 없었으나 당대의 문장가 장화(張華)의 극찬에 이어 황보밀(皇甫謐)이 감탄하며 서문을 썼다. 그러자 사람들이 앞다퉈 삼도부를 베껴서 읽기 시작했다. 낙양(洛陽)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낙양지귀(洛陽紙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지금도 낙양의 종잇값을 올렸다는 말은 베스트셀러가 나왔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초 펴낸 『시진핑 저작 선독』을 당과 대학이 사상 교재로 삼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바이두 캡처] 좌사의 이야기는 17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계속된다. 1967년 1월 저우언라이는 중국인 모두 마오쩌둥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며 그 해 마오 선집 8000만 세트 발행의 임무를 발표한다. 이 임무 달성을 위해 종이와 공문서 절약을 외친다. 그렇게 만든 마오 선집이 무려 9151만 세트에 달했다. 마오의 말씀을 담은 마오 어록과 문선, 선집 등이 문혁 기간에만 18억7244만권이 발행됐다고 한다.   2014년 주룽지 전 총리가 갑자기 ‘100대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과 2014년 무려 4000만 위안(약 77억3500만원)을 기부했다.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나왔나. 『주룽지 연설 실록』 등 그가 펴낸 세 권의 책이 800만권 이상 팔리며 받은 인세를 기부한 것이다. 중국 영도인 책은 지도자 이름에 선집이나 문선, 문집 등의 명칭을 붙인 게 가장 권위가 있다. 『마오쩌둥 선집』 등이 그런 예다.   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편찬하고 인민출판사가 펴내면 최고다. 지난달 10일 중국 신화사는 당 중앙이 『시진핑 저작 선독』을 출판하기로 하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2012년 1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시진핑 집권 1, 2기의 주요 저작을 모은 것으로 모든 당원과 대학이 학습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9671만 당원과 4000만 대학생을 위해 적어도 1억3000만권을 발행해야 한다.   현재 1권과 2권이 나왔으니 2억6000만권을 찍어야 한다. 앞으로 몇 권이 더 나올지 모른다. 베이징의 종잇값이 껑충 뛸 이유가 생겼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5.01 00:44

  • 생일날 한국 미역국, 中은?…오래 살길 바라며 먹는 이 음식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생일날 한국 미역국, 中은?…오래 살길 바라며 먹는 이 음식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사진 셔터스톡 한국인은 생일에 미역국을 먹지만 중국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수를 먹는다. 이런 생일 국수를 흔히 장수면(長壽麵) 또는 장명면(長命麵)이라고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국수 먹는다고 오래 살 수 있을까? 속설에 따르면 가능하다. 흔히 국수는 면발이 길기 때문에 국수를 먹으면 긴 국수 가락만큼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얼핏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이 속설, 꽤 널리 퍼져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베트남과 심지어 스파게티 많이 먹는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소리가 있다고 한다. 터무니없게 들리지만 오랜 세월, 광범위한 지역에 퍼진 것을 보면 무엇인가 나름의 배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인들이 생일 국수, 장수면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국수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의 진원지는 중국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인들은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속설을 지어냈을까? 언제부터 이런 속설이 퍼졌으며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속설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면 먼저 언제부터 중국에서 생일에 국수를 먹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생일에 국수를 먹었다는 기록은 6세기 중후반에 보인다.   남북조 시대 북제(北齊)의 문선황제 고양(高洋)이 아들을 낳았다. 당시 역사를 기록한 『북사(北史)』에는 고양이 아들이 태어난 지 사흘 때 되는 날, 신하와 친지를 초대해 잔치를 열었다고 나온다. 북사에서는 이 잔치 이름을 탕병연(湯餠宴)이라고 했는데 떡국 먹는 잔치가 아니라 밀가루 음식을 끓인 국, 즉 국수 잔치로 해석한다.   양귀비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7세기 후반의 당 현종도 생일에 국수를 먹었다고 나온다. 『신당서』와 『자치통감』 등에 보이는 기록이다. 현종이 황제가 된 후 본부인 왕씨를 황후 자리에서 쫓아내자 왕 황후가 옛날 현종의 생일상에 자기 아버지가 옷을 팔아 국수를 차려 준 정을 어찌 잊었냐며 읍소하는 내용이 나온다. 생일잔치에 국수를 먹었다는 또 하나의 오래된 기록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두 이야기를 통해 중국에서 생일 음식으로 국수를 먹은 시기가 6~7세기 무렵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당시 생일 국수는 황제 내지는 황족, 나아가 최고 상류 계층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최고급 음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년쯤 전인 당 현종 무렵에는 밀가루 음식이 워낙 귀했으니까 상류층의 생일 음식으로 먹었다고 치더라도 국수는 면발이 길어서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국수 먹으면 장수한다는 믿음 또한 당나라 무렵부터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늦어도 송나라 때는 이미 널리 퍼졌다.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남송의 학자 주익이 쓴 『의각료잡기』라는 책이다. 여기에 당나라 사람들은 생일에 다양한 종류의 탕병(湯餠)을 먹는데 세간에서는 이를 장수를 소원하는 국수라는 뜻에서 장명면(長命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남송보다 앞선 북송 때의 문헌 『라진자』에도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시를 인용해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젓가락 들어 탕병(湯餠), 즉 국수를 먹으며 하늘에 사는 기린만큼 오래 살기를 축원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여기서 기린은 용, 봉황 등과 함께 1000년을 산다는 전설 속의 동물로 소동파가 이에 대해 국수를 먹은 것은 장수를 소원하기 때문이라며 주석을 달아놓았다.   생일에 국수 먹으며 장수를 소원했다는 사람들은 모두 당나라 사람들이고 이런 내용의 글은 대부분 송나라 문헌에 실려 있다. 국수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생겨나고 퍼진 시기를 빠르면 당나라 늦어도 송나라로 보는 까닭이다.   당송시대는 중국에서 밀이 널리 퍼지고 국수와 같은 분식이 급속도로 발달했던 시기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원산지이고 서역에서 주로 자라던 밀이 중원에 본격적으로 전해진 시기는 기원전 2세기 한무제 때 이후다. 제갈공명이 만두를 발명했다고 하는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밀가루 음식인 만두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쓸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200년이 넘게 흘렀지만 북조 시대와 당 현종 무렵만 해도 밀은 아직 누구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탕병, 즉 국수와 같은 분식은 상류층 귀족과 부자들이나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상류층 이하 계층은 여전히 기장과 고량, 평민층 아래는 수수와 조 등을 곡식으로 먹었다. 이런 음식을 먹었던 당나라 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40세 전후였다고 한다. 그러니 상류층이 먹는 곱게 빻은 밀가루로 뽑은 국수를 보고 “나도 저런 음식 먹으면 환갑 넘게 살 수 있겠다”며 장수의 소원을 품었을 것이다. 내지는 생일만큼이라도 국수를 먹으며 장수의 꿈을 꾸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국수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 그냥 생겨난 말만은 아닌 듯싶다. 중국 생일 음식, 장수면에 담긴 음식 문화사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4.28 06:00

  •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반면교사 코닥필름, “반중 감정은 사치다!”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반면교사 코닥필름, “반중 감정은 사치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반중(反中) 정서는 넓게 퍼지고, 깊게 스민다.   한때 서로 가겠다고 손들던 중국이다. 주재원도, 외교관도, 특파원도 베이징과 상하이를 선호했다. 경력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지금은 중국이라면 말 그대로 ‘쌩깐다’. 대학에서도 중국 관련 학과는 폐과(閉果) 중이다.   이래도 되나?   관계가 악화할수록, 비즈니스가 더 안 될수록, 오히려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나라가 중국 아니든가. 중국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생존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  구단선   중국은 지금 남중국해를 내해(內海)화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비행장을 깐다. 속이 뻔히 드러난다. 주변국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구단선’이라는 게 있다. 영어로는 ‘nine-dash-line’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자기 영토다. 아래 사진에 구단선이 선명하다. 구단선. 사진 GIS 캡처 마치 황소 혀처럼 생겼다. 필자는 저걸 볼 때마다 ‘먹성 좋은 소가 여물을 먹어 치우려 혀를 날름 내민 형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넓은 땅을 갖고 있음에도 중국은 엄청난 영토 먹성을 자랑하고 있다.   뚜렷한 근거는 없다. 중국은 ‘아주 옛날 한(漢)나라 때, 조정에서 그쪽에 사람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다’라는 식이다. 2000년쯤의 일, 명확하게 뭘 했는지도 모를 기록을 현재로 끌어와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로 삼는다.   주변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필리핀은 급기야 국제 분쟁 중재 기구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결과는 중국 완패. PCA는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바다 영유권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래도 중국은 꿈쩍 않는다. 섬을 군 기지로 만들고, 미사일을 배치한다. 힘으로 밀어붙인다.   남의 동네 일이라고? 아니다. 바로 우리 일이 될 수 있다.  ━  서해 불법 조업   전쟁을 방불케 한다. 서해 불법 어선 단속 현장이 그렇다. 한국 해경의 물대포에 중국 어민들은 쇠꼬챙이로 대든다. ‘저런 죽일 놈들. 남의 땅에 와서 뭐하는 짓이야~’ 사투에 우리 해양 경찰이 다친다. 거의 전쟁 수준이다. 그러고는 ‘한국 해경이 과잉 단속을 했다’며 적반하장이다. 분노는 끓어오른다.   탓할 일은 아니다. 분노할 대상에는 마땅히 분노하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어서는 안 된다. 분노로는 문제를 정확하게 읽을 수 없다. 오로지 냉정하게 중국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분노는 가치를 갖는다.   해양 안보 전문가인 문근식 예비역 해군 대령(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남중국해 다음은 서해’라고 말한다. 2022년 10월 13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그의 시론이다.   “국방정보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1년) 한국 관할 해역에 들어온 중국 군함은 260여 척이고,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횟수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남중국해 내해화가 완성되면 중국은 한국 서해와 이어도가 포함된 동중국해의 내해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일부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서해 중간수역에 중국은 고정부표 9개를 설치했고, 항공모함 함대를 동원한 동경 124도 근해에서 시위 기동했다. 빈번하게 KADIZ를 침범하고, 이어도를 탐사해 중국 지도에 표기하고 이어도 해상·항공 순찰을 확대하고 있다.”   문 대령은 남중국해 ‘구단선’ 문제가 우리 서해로 확장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꾸준히 떡밥을 까는 중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  ‘몰빵’투자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경제, 비즈니스에서도 중국의 ‘먹성’은 외국 기업을 삼키고 있다. 자칫 한눈팔다가 기존 중국 투자 사업을 접어야 하거나, 그들의 사탕발림에 현혹돼 ‘몰빵’ 투자를 했다가 폭망하기에 십상이다. 코닥 필름. 사진 셔터스톡 코닥은 한때 필름업계 최고의 브랜드였다.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것도 그다. 그러나 지금은 맥도 못 춘다. 중국 때문이다. 코닥은 1990년대 말 대규모 자금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투자했고, 거기에 돈이 묶여 디지털화 흐름을 타지 못했다. 영상 필름 업계를 주도했던 코닥은 지금 변두리 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한국 제4위 조선업체였던 STX조선해양은 지금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중국이 결정타였다. 다롄(大連)조선소 설립에 무려 3조 원을 투자했다가 자금에 쫓겨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당시 STX는 3차례 걸쳐 매각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중국인들에게 당했다. 그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결국 야드에 있던 설비를 하나하나 헐값에 넘겨야 했다. ‘그냥 던지고 나왔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중국의 성장은 그 자체가 한국의 산업을 추격하는 과정이었다. 백색가전, 화공, 조선, 자동차,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한국 산업을 따돌렸거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산업이 중국에 먹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국은 심지어 우리의 ‘밥그릇’ 반도체 영역에도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중국은 그런 존재다. 기업에 부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자칫 어긋나면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당장 돈 된다고 쏠리고, 싫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욕하기는 쉽다. 그렇다고 돌부처 돌아앉듯 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더 정면으로 바라보고, 눈 더 크게 뜨고 주시해야 한다. 우리가 ‘나쁜 놈들~’이라며 외면하고 있는 순간에도 중국의 힘을 키우고, ‘먹성’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한눈팔다가는 기업도, 나라도 또 다른 ‘종속의 시대’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기에 반중 감정은 사치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2023.04.27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방 외교도 한국 외교의 한 축이다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방 외교도 한국 외교의 한 축이다

    장성택. 사진 중앙일보 북‧중 접경 도시 가운데 중국 지린성 훈춘-북한 나선 특별시가 있다. 현재 훈춘시와 나선 특별시는 신두만강대교(549m)로 연결돼 있다. 신두만강대교는 훈춘의 취안허 세관에서 나선 특별시 원정리 여행자 검사장까지로 2016년 개통했다. 이에 앞서 원정리에서 나진항까지 도로 확장 공사(2차선→4차선, 53.5km)는 2012년 마무리했다.     신두만강대교와 도로 확장 공사 모두 중국이 돈을 대고 북한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건설했다. 이는 북‧중이 2010년 나선경제무역지대와 위화도‧황금평 경제지대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결과다.     북‧중 간에 이 합의를 끌어낸 장본인은 장성택이다. 그래서 나선 특별시 하면 그를 빼놓을 수 없다. 나선시가 2010년 나선 특별시로 승격한 것도 그의 숨은 역할 때문이다. 장성택이 2013년 처형당할 때 죄목 가운데 하나는 나선경제무역지대와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중국)에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지도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장성택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장성택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성택은 여러 차례 나선 특별시를 찾았다. 나선 특별시를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삼아 중국처럼 경제 성장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2011년 6월 9일 나선 특별시에서 ‘나선경제무역지대 조‧중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 착공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그 자리에 중국은 천더밍 국무원 상무부장이 참석했다. 국무원 상무부장이 참석한 것은 중국이 장성택의 체면을 세워 준 셈이다.   착공식 이후 중국 기업들이 나선 특별시에 투자 상담을 했다. 북한이 중국 기업들에 제시한 첫째 사업은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개보수다. 승리화학연합기업소는 북한 최대의 정유공장으로 1979년 러시아의 지원으로 건설했다. 러시아는 승리화학연합기업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6.16화력발전소(중유발전소)까지 지원했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원유는 원유수송선에 실려 선봉항 앞바다에서 해저 파이프를 통해 승리화학연합기업소로 보내진다.     승리화학연합기업소는 노후화로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북한이 중국 기업에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개보수를 우선시한 것은 에너지가 얼마나 부족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둘째는 승리화학연합기업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를 지어달라고 중국 기업에 요구했다. 기존 6.16화력발전소는 북한 최초 중유 전용 발전소로 중유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가동이 어렵다. 그래서 석탄 전용 화력발전소가 필요했다. 석탄은 북한에 풍부하다.   중국 기업들도 북한에 요구사항이 있었다. 첫째, 무산 광산 개발이다. 무산 광산은 중국 기업에 로망의 대상이다. 아시아 최대의 노천 광산으로 채굴하기가 쉽다. 무산 광산은 북한 최대의 철광산으로 매장량이 수십억t에 달한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고품질(Fe 34~35%) 27억t, 저품질(Fe 27%) 35억t이 매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기업은 연간 1000만t 생산을 목표로 1억 8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북한에 제시했다. 연간 1000만t을 생산하면 북한이 70%를 가져가고 나머지 30%는 중국 기업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둘째, 나선 특별시의 선봉항 운영권이다. 나진항은 1~4호 부두 가운데 러시아가 3호 부두 운영권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이 운영한다. 여기에 선봉항 마저 중국 기업이 운영하려고 했다. 그러면 중국은 차항출해(借港出海, 타국의 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 전략의 일정 부분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기업과 북한의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첫째, 북한이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개보수나 화력발전소의 건설과 함께 중국 정부에 차관을 요구하면서 무산됐다. 북한은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연계돼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 기업을 통해 중국 정부에 차관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황당해하면서 중국 정부에 전달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째, 북한이 사업권 확보를 위한 무리한 선지불을 중국 기업에 요구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계약금 형식의 선지불을 하는 것은 관례다. 중국 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무리한 선지불이거나 그에 따른 해결책에서 서로 이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북‧중 밀착은 시기적으로 보면 제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가 채택된 이후다. 그런데 중국은 왜 이 시점에 북한과 나선경제무역지대를 공동개발하려고 했을까?   그 이유는 김정일의 중병 발생이다. 김정일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북한 체제 붕괴론이 급격히 확산했다. 1인 절대 권력체제인 북한에서 후계자가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일이 사망한다면 그 혼란을 매우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지도부는 북한 체제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해 북‧중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중국 외교부의 대응도 매우 순화됐다. 중국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를 무시하고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과 사뭇 달랐다. 그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悍然)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제멋대로(悍然)는 중국인들이 극도로 분개를 느낄 때 사용한다.   원자바오 총리는 2009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한 지 5개월 뒤다. 원자바오는 김정일을 만나 2000만 달러 상당의 무상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6자회담 복귀를 요청했다. 중국은 심화하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에 대응해 우군이 필요했다. 원자바오의 방북은 나선경제무역지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때 중국 기업들도 중국 정부와 보조를 맞춰 나선경제무역지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시행착오만 반복했다.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데 그쳤다. 선지불에 대한 위험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나선경제무역지대를 밀어붙인 장성택도 그를 지원했던 김정일도 없다. 원자바오의 방북 이후 나선경제무역지대가 잠시 활력을 찾다가 장성택 처형 이후 다시 멈춰 섰다. 나선경제무역지대는 북‧중‧러가 만나는 곳이다. 지난달 21일 중‧러 정상회담, 왕야쥔 주북한 중국 대사의 평양 부임 등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 외교가 여기를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 아쉽다. 북방 외교도 한국 외교의 한 축인데.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2023.04.25 06:00

  • [중국읽기] 한·중 관계와 중국인 단체여행

    [중국읽기] 한·중 관계와 중국인 단체여행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얼마 전 광둥성 광저우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공장을 깜짝 방문해 눈길을 끈다. 시 주석의 남방 시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달 초 중국을 찾은 에마뉘엘 마르롱 프랑스 대통령 접대다. 중국 영남원림(嶺南園林)의 특색이 물씬한 광저우 쑹위안(松園) 빈관으로 마크롱을 초대해 사적인 유대 관계를 다졌다. 마크롱은 감격했는지 이후 친중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선전(深圳)엔 또 올해 100세의 어머니 치신(齊心) 여사가 살고 있어 시 주석이 짬을 내 어머니를 찾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홍콩 언론은 전한다. 시 주석의 LG공장 방문은 이런 일정 속에 이뤄졌다. 시 주석이 집권한 이후 한국 기업의 현지 공장을 방문한 건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시간여 시찰 중 한·중 우의를 강조하는 덕담도 했다. 조심스럽지만 한국에 관계 개선의 손짓을 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 12일 광둥성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공장을 깜짝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인민망 캡처] 때맞춰 지난 22일 개막, 29일까지 열리는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5편이 상영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이뤄지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양국 관계엔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 하지 않는가.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C-Trip(携程)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아직도 싸늘한 한·중 관계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해외여행 상품 소개에서 한국을 찾을 수 없다.   특히 단체여행 상품 소개를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아시아 20개국 상품 명단 어디에도 한국은 실종 상태다. 해외여행 국가로 일본이 가장 먼저 선전되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중국의 또 다른 온라인 여행사인 페이주(飛猪)는 어떤가. 동남아,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중동과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의 여행지를 적시했지만 한국은 역시 없다. 중국은 이달 29일부터 닷새간 5.1 노동절 황금연휴에 들어간다.   이 기간 중국인의 해외여행 예약은 지난해 대비 18배나 폭증했다고 중국 언론은 전한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지역은 방콕, 푸껫, 몰디브, 발리, 치앙마이 등이란 안내가 따른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중국 조사에선 서울이 홍콩과 방콕, 싱가포르에 이어 중국인 여행객 목적지 4위에 올랐다는 보도도 있다. 단체여행이 허용되지도 않고 여행 사이트에서 전혀 홍보가 되지 않는 걸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결과다.   중국 정부의 의지와 달리 중국 국민의 한국 사랑은 남달라 보인다. 한·중 관계 개선은 중국인의 자유로운 한국 단체여행 허용에서 시작돼야 마땅하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4.24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북경오리, 서태후가 사랑한 미식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북경오리, 서태후가 사랑한 미식

    북경 오리구이. 사진 셔터스톡 청나라 말 서태후는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고 간 최고 권력자였다. 사치를 일삼았던 것으로 유명한데 미식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런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물 쓰듯 썼다. 이런 서태후가 즐겨 먹었던 요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태후의 미식을 알아보기에 앞서 그녀가 최고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비교하자면 서태후는 서양 역사에서 최고의 음식 사치와 식탐 때문에 패가망신한 로마 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서기 69년 4월에 즉위해 12월까지 단 8개월 동안 권좌에 앉았던 비텔리우스의 음식 사치가 얼마나 심했는지 로마 시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저서인 『역사(Histories)』에서 재위 기간에 끝없는 식욕을 채우기 위해 로마 화폐로 약 9억 세스테르스를 낭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미화 약 4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이런 비텔리우스 황제에 뒤지지 않았던 인물이 서태후였다. 19세기 말 동양 최대 해군 함대였던 북양함대 유지에 필요한 군비를 빼돌려 청 황실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건설에 쏟아부으면서 흥청망청 놀고먹는 데 낭비했던 사실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막대한 군비를 빼돌려 이화원을 재건한 서태후는 자금성을 떠나 이화원에 머물며 온갖 사치를 누렸는데 그중에서도 먹는 음식에 막대한 비용을 썼다. 보통 한 끼 식사에 백은 100냥을 썼다는데 이 정도 금액은 당시 평민들의 일 년 치 수입을 넘는 돈이었다고 한다. 하기야 북양함대 건설의 투자비용이 연간 300만 냥이었으니 한 끼 식사에 함대 건설비의 1만분의 1을 쓴 셈이었다.           서태후는 이런 엄청난 돈을 쓰면서 도대체 무엇을 먹었을까? 서태후의 한 끼 식사를 위해서는 보통 100가지의 요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서태후가 아무리 미식가이면서 대식가라고 하지만 한 번에 100가지 요리를 다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요리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는 3~4가지의 요리만 먹었다고 한다. 서태후가 젓가락도 대지 않은 음식들은 모두 내관과 궁녀들의 몫이었으니 엉뚱한 사람들이 음식 호사를 누린 셈이다   그렇다면 서태후는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특별히 좋아한 음식은 오리고기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오리고기 요리는 서기 400년 무렵 남북조시대 무렵부터 궁중요리로 발달했다. 원과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다양한 오리 요리가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북경 오리구이는 청나라 황실에서 특별히 발전시킨 요리다.     미식가인 만큼 먹는 방법도 독특해서 많은 경우 북경 오리구이는 살코기는 먹지 않고 바삭하게 구운 껍질만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북경 오리 고기 중에서도 서태후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오리 혀였다. 오리 혀(鴨舌)라고 하니까 우리한테는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중국 궁중요리에서는 상어지느러미, 말린 해삼과 함께 고급 미식 재료로 꼽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태후를 모셨던 여관(女官)인 유덕령(裕德齡)이 남긴 『어향표묘록(御香缥缈錄)』에는 오리 혀는 고기와 함께 구워서 만드는 데 서태후가 좋아했기에 커다란 접시에 담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았다고 나온다.   참고로 오리 혀 맛이 궁금하면 혹시 베이징 여행할 때 왕푸징의 유명한 북경 오리구이 전문점 전취덕(全聚德)에서 북경 오리구이를 풀코스로 주문하면 맛볼 수 있다.     어쨌든 얼핏 들으면 겨우 오리고기, 그것도 오리 혀 같은 엽기적이지만 특별할 것 없는 것으로 입맛을 만족하게 하려고 그 많은 돈을 썼을까 싶지만 내막을 알면 조금 다르다. 서태후 식탁에 차려지는 요리는 그렇게 만만한 음식들이 아니었다.   서태후 생일상에서 그 실상을 엿볼 수 있다. 1861년 음력 10월 10일은 서태후의 서른한 살 생일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날 아침상에는 어중이떠중이 음식은 빼고 모두 24가지 요리가 차려졌다. 이 중에서 과일 사탕 떡 등의 후식 네 가지를 뺀 스무 가지 요리 중 무려 여덟 가지가 오리구이와 오리탕, 오리 콩팥 등 각종 오리고기였다. 주요리로는 만 년 동안 복과 수명을 누리라는 뜻에서 복·수·만·년(福壽萬年)이라는 글자가 한 자씩 새겨진 4개의 대형 접시에 오리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가 각각 차려졌다.     오리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다는 사실 외에는 특별히 화려하다거나 소문만큼 사치스럽다고 할 만한 요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서태후를 보고 음식에 흥청망청 돈을 쏟아부었던 미식가라고 비난할까 싶지만 내용을 알면 이유를 알 수 있다.   평소 100종류의 음식을 준비하고 그중에서 서너 가지만 골라서 먹었다는 기록과 비교하면 생일상의 24가지 요리는 상대적으로 간소하기 그지없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요리를 만드는 재료가 유별났다. 후식과 국수를 제외한 대부분 요리를 귀하디귀하다는 바다제비 집을 소스로 조리했다고 한다. 서태후의 생일상, 서태후의 미식이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4.21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인의 충성은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 향한다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인의 충성은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 향한다

    사진 셔터스톡  ━  정보(情報)의 비대칭(非對稱): 정보의 독점은 그렇다 쳐도, 왜곡된 정보의 확산은 막아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거래 관계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되는 상황이다. 비즈니스 거래뿐 아니라 전 영역에서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는 “지식이 권력이 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는데 어쩌면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다.   중국인들은 정보의 가치를 (우리보다는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여간해서는 정보 공유를 안 한다. 물론 우리도 이렇게 정보를 “꼬불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중국인들의 정보 소유욕은 해당 기업에 피해를 준다. 일부 나쁜 중국인들은 정보를 개인 자산화하고, 가공 수준을 넘어 날조하기도 한다. 회사의 자원을 이용해서 파악된 정보와 인맥인데도 회사에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한다. 정보가 개인의 자산으로 될 뿐, 여간해서는 소중한 “회사의 자산”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도 중국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는 이런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해답은 있다. 우선 현지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이걸로는 절대로 부족하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젊은 중국 전문가들을 양성해서 (어찌 보면 민감한) 이런 영역도 담당하게 해야 한다.   ━  사후정보 비대칭: 쌍방 모두가 “의문의 일패”를 당했다.   “내가 그랬다고?” vs “당신이 속였잖아!”   정보 비대칭은 시간의 관점에서 “사전(事前) 정보 비대칭”과 “사후(事後) 정보 비대칭”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것은 대부분 사전 정보 비대칭이다. 이에 비해 사후 정보 비대칭은 말 그대로 “발생한 이후의 정보 비대칭”이다. 본래의 사실이 “왜곡되어 진실”로 변절한다. 사후 정보 비대칭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오용되면 훨씬 위험하다. 왜곡된 사실이 마치 사전(事典)처럼 기억되고 기록되어서, 향후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모두가 그것에 기초해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X 그룹이 Y 지역을 투자지로 선정했다. 업계를 잘 아는 중국인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만약 100군데의 투자 후보지가 있다면, Y는 99번째 내지는 100번째 일 거야!”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X그룹은 자신만만했다. 고위층이 이곳을 지정해 줬다고 한다. 그의 지인을 통해서 (구두로) 지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투자가 집행되자 기대했던 특혜를 받지 못했다. X 그룹 본사는 속았다고 생각했겠고 그 고위층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인데? 왜 나를 언급하지?”라며 역시 불쾌했을 것이다. 둘 다 심각하게 “의문의 일패”를 당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Y 지역의 담당자들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X그룹의 중국 법인을 찾았다. 만찬 자리에 고위층의 지인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제 중국 법인은 “내가 중국 고위층의 지인을 만났는데 이 분이 여기를 추천하며 지지를 약속했다”고 본사에 보고한다. 내가 이만큼 인맥이 넓다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본사는 그런 고위층의 지지 의사에 대해 흥분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고향이나 친구를 위해서 식사 자리에 얼굴을 비춰주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고위층의 그 지인”을 식사 자리에서 자주 만났다는 이가 한마디 한다. “그럴 분이 아닌데…본인의 신분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큰소리쳤을 리는 없는데…. 그런데, 너희는 그걸 믿냐?”. 중국인을 아는 이들은, 애초부터 누가 지지한다고 말했다 해도, 바로 믿지 않는다. 중요한 상황이라면 정황을 살피고, 검증한다. 그 지인이 설령 “나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해도 그건 예의상 그렇게 한다. 같이 짜고 속이려는 게 아니다. 마치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에게 “음식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예의상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과장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우리 몫이다. “아무리 한국인이지만 나중에라도 그걸 몰랐겠어? 어쨌든 우리 회사의 누구누구는 Y지역으로부터 산(山)을 선물로 받았다더라”. X 그룹의 현지인들이 뒤에서 하는 얘기다. 개인적 비리가 정말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느 지역만 특정해서 “나는 이 지역을 지지하니 오라”고 했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건 정말 어이가 없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을 아는 외국인이라도 절대로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검증을 했어야 했다!   ‘더 재미있는 극은 뒤에 있다(好戏在后头).’ 절대 재미있지 않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한다. 후에라도 당시의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고 하면 한 번의 질책은 있을지언정 소중한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추후의 진행 경과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고위층의 지지는 “사실로 확정”이 되고, 이제 X그룹이 이 고위층의 지지를 받아 Y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은근히 홍보되었다. 설사 고위층이 정말로 지지한다고 했다 하더라도 필자라면 “이런 배경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말이 퍼지더라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위층은 도와주려고 해도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조언을 했을 것이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클수록 그 피해는 엄중해진다. 그러면서 이런 왜곡은 점점 (어쩌면 지금도 계속) 자라나서 자칫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중국에 대한 감정까지도 영향을 주게 된다. 아주 고약한 사례다.  ━  ‘두아의 원망(窦娥冤)’: “사후 정보 비대칭”은 중국에서는 더 자주 생긴다. 조작이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인만의 작품은 아니다.   두아(窦娥)는 원나라 때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억울하게 죽어간 가련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을 당할 때 “두아보다도 더 억울하다! (比窦娥还冤!)”라고 한다. 두아 이야기(竇娥冤). 바이두 갈무리   ■  「 모 회사에서 고위 간부가 성추행했다. 피해자는 중국인 여직원이다. 오랜만에 사무실로 돌아온 Q는 이 사실을 피해자에게 직접 ‘처음으로’ 듣게 된다. 회사가 한 달 동안이나 사과는 안 하고 무마시키려고만 해왔다며 그녀는 “내일 중국 매체에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녀는 그 회사의 홍보담당이었다. 상황이 심각했다. 아마도 그룹 전체는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 보고한 Q는 다음날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게 말이 되나요? 상무님 책상 뺐어요!”.   20년을 몸담은 직장에서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퇴출당하였다. 한 달 동안 이 추악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은, (직접 가담자 외에는) 누구도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는데, Q가 소문을 내고 다녀서 일을 크게 벌였다. 심지어 부인도 주위에 소문을 퍼뜨렸다더라….”라고 매듭을 지었다고 한다. 퇴사한 이후로 조직은 Q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방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Q가 이 추문의 주요 역할을 한 듯한 여러 소문이 계속 번졌다. Q 개인은 회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회사는 나름 유능한 인재를 잃었다.   그에 대한 억울한 누명은 아직도 사실로서 건재(?)하다. 그룹은 Q에게 단 한 번도 사과를 안 했다. 본국의 본사 입장에서는 “나는 모르는 일인데? 나는 다르게 알고 있는데?”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은폐하고 눈을 감은 이들은 오히려 두 명의 임원이 비는 자리를 메꿀 기회를 맞게 되는 횡재를 얻었겠다.   오후 5시 반에 처음으로 사고를 인지하고, 바로 보고 절차를 밟았는데, 그다음 날 퇴출당한 Q가 한마디 한다. 나는 “두아보다도 더 억울하다! (比窦娥还冤!)”.     」  사후 정보 비대칭의 유혹은 항상 있다.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희생시킬 수도 있지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어쨌든 정보의 왜곡이므로 정당하지는 않다.   대단한 정보력을 가진 중국인 P지만, 그를 인정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동료였던 A는 P에 관한 정보에 손을 댔다. 그의 이력을 과대 포장하고 어렵게 확보한 일종의 인명사전에 P의 이름을 넣었다. 이제 P는 누가 봐도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포장되었다. P를 두고 딴소리하는 이들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사후 정보 비대칭이 (윤리적으로는 나빴지만) 좋은 쪽(?)으로 활용된 사례다. A의 말로는 당시에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P조차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딱 3명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  일시(一時)적으로는 속일 수 있으나 평생(一世)은 속일 수 없다(骗得了一时 骗不了一世)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제로 투 원〉 피터 틸)”. 마찬가지로 시간이 간다고 진실이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지식을 축적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어차피 상황은 종료되었으니까….”라며 복기 없이, 분석 없이 덮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 중국과 “30년이라는 경험의 축적”은 없고 “1년을 30번 반복한 얕은 지식”만 남게 된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亡羊补牢)도 늦지 않다. 사냥꾼이 토끼를 보고 나서야 개를 찾아도(见兔顾犬) 오히려 늦지 않는다.   축적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나마 남아 있는 지식과 정보마저 왜곡되고 날조된 것이라면 끔찍하다.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란 없다(人无完人), 아직 중국 실력이 안 되어서 잘 못 판단할 수 있다. 그 실패를 사실대로 기록으로 남기고 교훈 삼고, 분석하여 축적하면 지식이 쌓이고 모여서 집단지성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런데 업무의 편의를 위해서 혹은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면 안 된다.  ━  중국에서는 유난히 정보 왜곡이 많다. 중국 문화가 한몫한다.: 나와 관계없으면 높이 걸어 놓고 신경 안 쓴다(事不关己 高高挂上)   악의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도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많다.   “조직 충성(몰입)이 매우 강한 우리 직원들도 중국에 가면 그 충성(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는 모 경제 연구소의 내부 보고서다. 사후 정보 비대칭은 중국에서 유난히 만연한다. 시스템도 갖추고 강력한 감사 인력도 보강했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무슨 결과든 반드시 원인이 있다(有果有因). 그 이유에 대해서 (지면의 한계로) 피상적으로 몇 가지만 설명한다.   우선 “남의 일에 대한 무관심(事不关己 高高挂上)”때문이다. 분명한 의사 표현을 꺼리고 나서기를 매우 주저한다. 또 하나는 윗사람의 비리에 대해 (자기들끼리는 얘기해도) 그 윗선이나 상급부서에 보고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이런 행위를 “조직의 화합”을 해치는 것이라고 본다. 의식 저변에서 이를 ‘참월’(僭越, 분수에 넘는 행동을 한다)이라고 간주하고 매우 꺼린다.  ━  참월죄(僭越罪)의 형벌은, 사형이었다: 면담은 고사하고, 감사팀이 추궁해도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   예전에 자신의 윗사람 잘못을 군주에게 “당사자인 윗사람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고했다. (당연하다. 당사자에게 당사자의 과오를 고발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공을 세웠지만 참월죄에 해당이 되어 처형되었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인들을 직접 불러서 면담하거나 심지어 윽박질러도 대부분은 입을 열지 않는다. (투서는 매우 많다. 단, 자신의 이익과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모든 중국 직원은 다 알고, 모든 한국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 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이 과정에는 나쁜 한국인이 있다. 중국인의 경우 나쁜 중국인도 있고 문화적 특성 때문에 나서지 않는 평범한 중국인들도 있다.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대로 되는데 중국에서는 잘 안 통한다. 그런데도 실천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한국 본사의 중국에 대한 이해와 역할이 더 중요하다. 사후 정보 비대칭을 악용하는 일부 한국 직원들도 잘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의 충성은 늘 개인을 향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매우 약하다. 정보와 인맥을 담당하는 업무를 ‘현지화’ 한다며 무조건 중국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정말 어리석다. 이런 영역에 충성도가 높은 한국인 전문가를 배치하고 장기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4.20 06:00

  •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공안(公安)이 이윤을 낳는다

    [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공안(公安)이 이윤을 낳는다

    사진 셔터스톡 미국의 대중 봉쇄, 기술기업 제재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은 봉쇄망의 약화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첨단기술 기업 제재가 인권 보호를 중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비판적 국제 여론을 잠재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중국은 2017년 이래 100만명 이상의 위구르인을 재교육 캠프에 수감해왔지만 최근 재교육 캠프의 상당수가 폐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근 회교 국가의 종교 지도자들이 신장을 방문하고 중국의 반(反)테러 및 극단주의 완화정책 성과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중국은 지금 신장 지역의 정상화를 외부세계에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신장지역 문제를 둘러싼 상호제재 사태 이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던 EU-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CAI)을 중국은 상호보복 철회 제안을 통해 다시 본 궤도에 올리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기술패권 경쟁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득실의 차원을 넘어선 이데올로기 경쟁의 맥락 속에서 진행 중이며, 그 근저에는 중국 공산당과 기술기업간의 불가분의 관계, 공생 구조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  당의 기술기업 영도(領導)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중국의 기술기업들이 당의 영도에 따르는 통치 및 글로벌 기술 리더십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중국에는 당-(사영)기술기업 간 공생관계, 더 나아가 일종의 정실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당은 기술기업과의 공생으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혁신’과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정치적 측면에서는 첨단기술을 이용한 ‘선전과 감시’로 체제를 강화하고자 한다.     중국에는 70% 이상의 사영기업 내부에 당 기층조직이 존재해 기업의 정치적 영도 역할을 수행하며 사영 기업가 셋 중 하나는 당원이다. 그리고 중국 민간‧국영기업에는 130만개 이상의 당 위원회가 존재해 국가 안보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2019년을 기준으로 대표적 기술기업들인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에 각각 200개, 89개, 300개 이상의 당 세포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기술 기업은 당이 추구하는 목표를 지원함으로써 이윤을 추구하는데 그 가장 극명한 예가 바로 신장 지역 통제를 위한 감시기술 제공이다. 사실 신장에서 구현된 디지털 인클로저는 중국 기술기업들의 성장에 큰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런 바일러의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2022.11)에 따르면 재교육 캠프는 ‘주변 격리, 내부 격리, 보호 방어, 안전한 복도 및 기타 시설과 장비를 완벽하게 하고, 보안기구와 보안 장비, 영상 감시, 원 버튼 경보장치 등과 같은 장비가 적재적소에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곳곳에 설치된 안면인식과 감정 인식 기술이 수감자들의 감정 상태를 모니터링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의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신장 위구르인 감시‧처벌 시스템으로 알려진 메그비(Megvii)의 통합작업플랫폼(Integrated Joint Operation Platform)은 소위 극단주의 또는 범죄 의사를 가진 개인의 예측‧식별에 동원되어 불과 일주일 만에 신장지구 약 2만 4412명의 용의자를 지목해 총 1만 5683명이 캠프로 이송되고 706명을 수감하는 기록 달성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한다.     메그비의 안면인식 기능은 신장 무슬림의 고해상도 안면 스캔 정보 등 14억 중국인들의 신분증으로 구축된 공안부 DB 훈련을 통해 0.8초 만에 안면 일치 여부를 판별하고, 최대 30만명 대상자와 관련된 알림 정보의 등록과 기록을 가능하게 해 준다. 메이야 피코(Meiya Pico)는 스마트폰을 추적 장치로 바꿔 주는 기술로 유명하다. 메이야 피코의 MFSocket 앱이 설치된 폰이 포렌식 기능을 갖춘 디바이스에 연결되면 모든 개인 정보 추출이 가능해 경찰에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아이플라이텍(IFYTEK), 센스타임(Sensetime), 다후아(Dahua), 국유기업인 하이크비전(HikVision) 등 카메라 및 안면인식 기업들도 실시간 추적 카메라 시스템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 기업들을 필두로 당의 신장정책(援疆政策)에는 약 1000여 개의 보안 기업들의 제품 및 서비스가 신장 지역 공장에서 활용되었고 다후아, 아이플라이텍, 메그비, 센스타임, 메이야 피코, 하이크비전 등은 모두 음성‧안면인식이나 빅데이터 분석, 행위 매핑(Mapping)의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공안과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공안기관-기업간 데이터 공유로 당국은 예비 범죄자 식별과 감시, 협력 기업은 이용자 파악 기술 축적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공안 수요 충족을 위한 공공부문의 인공지능 분야 투자와 공공구매는 중국의 인공지능 혁신에 큰 기여를 해 왔다. 마틴 베라자(Martin Beraja) 등의 실증 연구는 당-정부 사업 참여기업들이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 비해 매출, 시장 점유율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내기도 하였다.   즉, 기술 기업은 협조의 대가로 기술 경쟁력과 이윤을, 당-정부는 기업의 도움으로 통제‧감시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 전역에 디지털 인클로저 구축이 심화될수록 중국 기술 산업도 발전하고 글로벌 진출도 용이해짐은 물론이다. 이미 중국은 안면인식 기술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며 세계 수준의 기술 보유기업도 대부분 중국 기술기업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면적이고 은밀한 방식의 국가 권력 확장이 진행 중인 것이다.     신장지구 인권탄압을 이유로 중국의 대표적인 인공지능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명단에 포함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중국 기술기업들은 당-기업 간의 독특한 공생관계로 인하여 이데올로기적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의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중국의 장기적 공안 수요와 기술 권위주의   향후에도 기술기업들과 당-정부간 공생, 특히 공안에의 수요가 중국 기술기업들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에 결정적일 전망이다. 특히 스마트 시티 사업은 중국 국내의 공안 수요는 물론이고 중국 기업들의 기술 권위주의 수출의 전개과정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현재 중국 첨단기술 기업들은 정부 및 공공기관(경찰 등)에 Skynet project(天网工程), Sharp Eyes project(雪亮工程)와 같은 CCTV 시스템과 안면인식, 빅데이터 분석 수단을 결합한 감시 시스템의 현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CCTV 시스템은 스마트 시티의 구성 요소의 일부에 불과하며 일단 특정 개인이 카메라로 식별되면 해당 개인의 통신, 이주, 금융, 숙박, 소비, 운전, 행정위반 등 행위 정보에 소셜 데이터까지 통합되면 각 개인에 대한 완벽한 프로파일링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센스타임의 카메라로 식별된 일반 국민이 경찰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면 범죄자 여부를 알 수 있다. 공공기관의 CCTV 시스템 운영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자유 및 공공부문의 투명성이 제약되고 정보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기술 남용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신장과 같은 특수 지역을 제외하면 아직 중국의 첨단 감시 시스템은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이 의료, 치안 등의 공공 서비스 제공에도 기여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첨단 기술과 상호 연동된 스마트 시티 플랫폼이 완성될 경우 강력한 사회 통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첨단 기술은 해방의 도구이자 억압과 통제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스마트 시티는 중국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차원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이미 100개국 이상 국가에 화웨이, 하이크비전. 다후아, ZTE 등 중국기업들이 스마트 시티 관련 제품‧솔루션을 수출하고 있어 감시 시스템 확산에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정보에의 접근 권한, 검문소 등 물리적인 감시 시스템, 권한 남용에 대한 법적 보호, 전체 데이터 세트의 깊이(생체 정보 등) 등에서 중국식 시스템이 서구에 비해 훨씬 높은 강도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짐바브웨는 중국식 시스템 수출의 대표적인 부정적 사례이다. 짐바브웨 국민의 생체 데이터가 짐바브웨 국민의 동의 없이 중국 기업 클라우드워크(CloudWalk)에 넘겨져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데이터 제공의 대가로 클라우드워크 시스템이 짐바브웨 각지에 이식되고, 화웨이와 ZTE의 통신장비가 수출된 것이다.    ━  기술권위주의와 가치의 문제   2018년에 시진핑 주석이 방문해 거대 도시의 스마트한 관리의 중요성을 설파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632 미터 상하이 타워는 사무실, 공장, 거주단지 어디에서나 작동하는 카메라와 경찰, 그리고 빅데이터가 결합된 중국 첨단 미래도시의 이상향을 대변한다.     이미 60여개의 도시 관리 애플리케이션이 작동 중인 상하이의 ‘도시 두뇌’(City Brain)는 도시의 각종 위험과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해결해주는 중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실현의 중심이 될 것이라 선전되고 있다(상하이일보, 2022. 6. 1).     중국이 첨단 관리 시스템을 얼마나 감시와 통제에 이용할 것인지는 당이 체감하는 체제 안정에의 위협에 좌우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침체하고 중국몽 실현 가능성이 낮아져 정통성이 훼손될수록 당은 통제의 고삐를 조이고 기술 권위주의의 수출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시나리오의 현실화가 세계에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공안이 이윤을 낳지만 바로 그러한 공생관계가 동시에 세계의 분열을 촉진하고 가치를 둘러싼 대립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공동주최국으로 참여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이데올로기, 권위주의에 대한 방어라는 가치의 문제가 점차 중요해지는 세계를 반영한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 이익뿐만 가치 수호도 국익이 될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자문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04.19 06:00

  • [중국읽기] 중국 정치의 태감화(太監化)

    [중국읽기] 중국 정치의 태감화(太監化)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비서는 크게 두 부류다. 주인의 의식주를 챙기는 생활비서와 정사를 돕는 정치비서다. 춘추시대 천하를 주유한 공자의 곁에도 자로(子路)와 안회(顔回)가 있어 공자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언행을 기록했다. 황제의 생활비서는 환관(宦官)이고, 그 우두머리는 태감(太監)이다. 정사를 보좌하는 정치비서는 군기대신(軍機大臣)인데 봉록(俸祿)이 없다. 재상과 달리 군기대신의 봉록은 국가재정에서 주는 게 아니라 황제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관료가 아니라 가노(家奴)의 신분이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흔히 비서에 따르곤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환관 또는 태감의 정사 간여와 관계가 있다. 황제 옆 사람(身邊人)이다 보니 황제의 신임을 얻기 쉽고 이를 발판으로 주제넘게 나서다 말썽을 일으킨다. 그래서 예로부터 망국의 징조 중 하나로 환관의 발호가 꼽힌다.   지난해 10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입장하는 시진핑 3기 지도부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AFP=연합뉴스] 최근 중국 인터넷 공간엔 ‘국가의 태감화(太監化)’를 우려하는 글이 떠돈다. 태감화가 갖는 문제는 인격은 없이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시비를 따지지 않는 채 이익만 좇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적으론 상사의 일을 돕는 게 아니라 상사의 체면을 지키는 데 그친다. 과거 태감이 육체적 거세자였다면 현재의 태감은 정신적 거세자로 일컬어진다.   중국에서 태감화 운운의 말이 나오는 건 지난해 20차 당 대회와 지난달 양회(兩會)를 거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 출신이 대거 요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권력 서열 2위 리창 총리는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로 있을 때 비서장 역할을 했다. 서열 5위 차이치는 정치국 상무위원 신분으론 드물게 이번에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겸하게 됐다. 시 주석의 생활과 경호 등을 책임지는 것으로 생활비서에 가깝다.   서열 6위 딩쉐샹 상무 부총리는 바로 차이치에 앞서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당 최고 지도부인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3명이 시진핑의 비서나 비서 출신인 셈이다. 시 주석은 얼마 전 러시아 방문 때 차이치를 마치 비서처럼 데리고 갔다. 그런가 하면 리창의 총리 취임 후 일성은 앞으로 국무원의 모든 일은 시진핑 핵심(核心)을 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태감화의 문제는 태감이 황제에게 절대복종하듯이 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1인자에게 절대 충성하느라 시비를 말하지 않고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과 같은 ‘괴물 황제’가 다시 출현하는 걸 막기 위해 고심 끝에 출범시킨 견제와 균형의 집단지도체제는 그렇게 중국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모양새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4.17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도원결의, 왜 하필 복숭아밭이었을까?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도원결의, 왜 하필 복숭아밭이었을까?

    복사꽃. 사진 셔터스톡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다.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복숭아밭에서 하늘에 맹세하며 의형제를 맺었다.  그런데 왜 하필 복숭아밭이었을까? 도원결의 장소는 장비가 살았던 탁군이다. 현재 지명은 하북성 탁주(涿州)로 북경에서 자동차로 서남쪽을 향해 한 시간 남짓 거리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복숭아밭 천지였다고 한다. 그러니 때는 봄날이고 주변은 온통 복숭아밭이었기에 도원결의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인문학적으로는 다르게도 해석한다. 도원결의는 성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결의(結義)가 핵심 내용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복숭아밭이라는 장소, 도원(桃園)도 중요하다.   그렇게 보면 결의 장소가 도원인 것은 단순히 탁군에 복숭아밭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인의 의식구조에서 형제의 의를 맺는 장소로 사과밭이나 배 밭, 대추밭이나 감 밭은 어울리지 않는다.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에 맹세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로는 오직 복숭아밭이 적합하다.   중국에서 복숭아는 평범한 과일이 아니다. 이유는 중국고전 문학작품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뿐만 아니라 삼국시대가 끝난 후인 4세기 진나라 때의 시인 도원명이 쓴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전설도 그런 예다.     “무릉의 어떤 사람이 고기를 잡아 생활했는데 내를 따라 가다 길을 잃고 복숭아 꽃나무 숲을 만났다. 냇물의 좌우 수백 보에 걸쳐 복숭아나무 외에는 잡나무가 없고 향기로운 풀들만이 산뜻하고 아름다우며 꽃잎들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여기면서 앞으로 나아가 복사꽃 숲이 끝나는 곳까지 가 보자고 했다. 숲이 다하는 곳에 물이 흐르고 문득 산 하나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좋은 밭과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가 있으며 길은 사방으로 뚫려있고 달이 일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왕래하며 씨 뿌리고 농사를 지었는데 남녀가 입은 옷은 바깥세상과 같았고 모두가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무릉도원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이상향, 유토피아다. 중국 사람들은 신선들이 사는 곳, 이상적인 마을에는 반드시 복숭아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전소설 『서유기』속의 복숭아도 예외는 아니다. 손오공이 훔쳐 먹고 벌을 받는 복숭아는 여신인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서 나오는 복숭아로 먹으면 3천년을 산다는 과일이다. 복숭아는 그러니까 신선이 먹는 천상의 과일이다. 삼국지의 도원결의, 도원명의 무릉도원 그리고 서유기의 복숭아는 모두 하늘과 연결돼 있다.   유비 관우 장비가 굳이 복숭아밭에서 형제의 의를 맺은 까닭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굳은 맹세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  대한 서약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복숭아에 담긴 특별한 의미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풍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시골에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라진 풍속이지만 옛날 중국인은 섣달 그믐이면 도부(桃符)라는 부적을 대문에 내다 걸었다. 복숭아 부적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자에 울루와 신도라는 신의 얼굴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놓은 것인데 새해를 맞아 나쁜 기운을 쫓는 액땜의 의미가 있다.        ━  이런 풍속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일단 복숭아나무에 귀신을 쫓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춘절과 마찬가지로 새해의 의미가 있는 입춘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쓴 입춘첩을 붙이는 민속 역시 복숭아나무 판자를 붙이는 도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민속학자도 있다.      역시 복숭아나무가 갖는 신비한 힘이 배경인데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놓지 않는다. 귀신을 쫓아내는 만큼 혼령이 된 조상님이 복숭아가 무서워 찾아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국에서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축귀이며 액땜의 상징물이다.   지금도 중국에 남아 있는 풍속이지만 중국인은 새해가 되면 연화(年畵)라는 그림으로 벽을 장식한다. 화교가 운영하는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림 소재는 주로 축복과 길상의 상징물이다.   재물 신이 된 관우나 복을 몰고 온다는 어린 남녀 동자(金童玉女), 혹은 재물의 상징인 잉어 그림도 있다. 여기에 복숭아 그림도 빠지지 않는다. 장수와 축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아이 생일이면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 만두나 과자를 선물하고 예전 환갑잔치에는 복숭아 모양의 떡을 쌓아 놓거나 전통 결혼식에서 복숭아 모양으로 종이를 오린 전통 문양의 전지(剪紙)를 붙여 놓는다.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인데다 결혼식장에서는 생명의 상징인 만큼 다산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 병문안 갈 때 주로 복숭아 통조림을 들고 갔던 것도 혹시 복숭아에 담긴 장수와 액땜, 그리고 생명력의 회복이라는 민속적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복사꽃 피는 계절에 알아 본, 복숭아와 중국 민속이다. 우리 풍속과 연결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4.14 06:00

  •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한국 기업인의 중국관(觀) 변화가 시급하다

    [조평규의 중국 컨설팅] 한국 기업인의 중국관(觀) 변화가 시급하다

    한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1992년 8월 한중 수교를 하자마자 우리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과 노조의 횡포를 피하며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할 목적으로 중국 현지 투자를 서둘렀다. 중국 지방정부의 다양한 우대 정책과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유치전략은 우리 기업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45년간 중국의 개방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중국산업 발전에 우리 투자기업의 기여도 적지 않았다. 이후 중국은 투자를 애걸하던 과거 자세를 완전히 바꾸어 한국에 대해 차별적 대우를 하며 경제적 보복을 진행 중이다. 우리 기업인의 대(對) 중국관(觀)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하지만, 평등과 상호존중의 선린우호 분위기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우호적인 자세를 유지하면 할수록, 중국은 한국 정부와 우리 기업을 상대로 계속해서 갈등을 유발하고 안하무인 격의 태도로 괴롭히거나 차별대우해오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중국의 횡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시급하다.   우리는 미국과 한∙미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다. 우리의 사드(THAAD) 배치, 미사일방어(MD) 참여, 칩(Chip)4 동맹 가입,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 등은 중국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중국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은 우리의 주권에 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데는 중국의 내정 간섭적 행동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전(前) 정권의 대중(對中) 대응 잘못도 적지 않다. 중국에 대한 ‘3불 약속’이나 전(前) 대통령의 중국에서 혼밥, 그리고 수행 기자가 폭행당해도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며 사대주의적인 처신으로 국가의 자존심조차 버린 결과다.   중국은 개혁개방과 함께 상당 수준의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듯했으나 시진핑 정부는 ‘중국몽’이나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위대한 부흥(復興)’을 외치며 중국 중심의 영토확장과 우호 세력을 확대하려는 제국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제국주의는 해체되고 통합된 세계시장으로 향하는 신(新)자유주의 경제가 한때 유행했으나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불사 태세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이란의 핵 개발 등으로 세계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북한 등 전체주의 국가들이 연대하여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자유 국가에 커다란 위험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이나 일본 등 기술 수준이 높은 자유주의국가가 미국에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자세를 취하며, 약한 고리에 속하는 대만이나 한국을 겁박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중국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국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중국에서 단기적으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우리는 대중국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대비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자존심 훼손은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이 우리 기업인들의 대(對)중국관이 변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GDP의 70% 이상은 무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다.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어 중국을 전략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중국의 영향권으로 빨려 들어가 정치·경제적으로 속국의 지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 선진국 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우리 경제의 생존 기반이다. 우리가 단기적으로 수출감소나 시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를 받으면 열 개의 보복을 한다는 심정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정신이 있어야, 중국의 안하무인(眼下無人) 행동을 저지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나 홍콩의 민주화 운동, 중국 내부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국은 덩치는 크지만, 강하고 날카롭게 대응하면 겁을 먹는 나라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중국에 멸시당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도 무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하수의 전략이다.   최근 정부는 일본과 관계 회복을 위해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중국을 상대하는데 일본은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카드다. 현 정부의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우리 경제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일본은 과거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준 나라이지만, 과거만 들먹이다가는 미래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한국은 선진국클럽인 OECD 회원국이며 세계 경제 10위권, 군사력 6위의 현대화된 선진국이다. 우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성공적 유치와 개최는 물론 K-POP이나 K-드라마로 대표되는 문화는 세계 최고다. 우리는 덩치만 크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외면하는 중국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진 나라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지 않는 한, 자유와 민주 그리고 문화적으로 한국을 따라오기 어렵다.   우리가 경제에 너무 치중해서 중국에 대해 겁먹는 자세는 금물이다. 중국이 중화사상의 복원을 시도하는 한 우리의 선택지는 명백하다. 중국과 정면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정공법이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주권을 포기하면, 굴종당하게 되어 있다. 한국 기업인의 대(對)중국관 변화가 시급하다.   글 조평규 동원개발 고문 더차이나칼럼

    2023.04.12 06:00

  •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국에서 북한주재 대사는 왜 인기 없나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국에서 북한주재 대사는 왜 인기 없나

    지난 3일, 북한 외무성에 신임장 사본 제출하는 왕야쥔(오른쪽) 신임 주북 중국대사. 사진 주북중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또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급) 출신이다. 왕야쥔 신임 주북한 대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평양에 부임했다. 니즈량 초대 주북한 대사 이후 18번째다. 왕야쥔은 2021년 2월에 지명됐지만, 코로나 19 영향으로 입국이 미뤄지면서 이제야 평양 땅을 밟았다. 지명된 지 2년 1개월 만이다.     전임자인 리진쥔은 2021년 12월에 이미 귀국했다. 그는 무려 6년 9개월 재임해 역대 최장수다. 리진쥔에 앞서 최장수 기록은 리윈촨 대사(1970년 3월~1976년 6월)가 갖고 있었다. 6년 3개월이다. 리진쥔이 귀국한 이후 1년 4개월 동안 주북한 중국대사관에 대사가 없었다. 그 자리는 쑨훈량 주북한 대사 대리가 대신했다. 왕야쥔은 지난 3일 김금철 북한 외무성 의례국장으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업무를 시작했다. 첫 일정으로 평양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했다.   왕야쥔은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출신이다. 리진쥔도 마찬가지였다. 리진쥔에 앞서 주북한 대사를 맡았던 류홍차이 대사(2010년 3월~2015년 2월)도 대외연락부 부부장 출신이다. 대외연락부 부부장 출신들이 연이어 3번째 주북한 중국대사에 부임했다.     대외연락부가 북한 조선노동당 국제부의 창구 기능을 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 ‘당대 당’ 외교를 중시하는 북‧중 관계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외교부가 독차지했다. 11대 차오중화이-12대 완융상-13대 왕궈장-14대 우둥허까지는 모두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감찰부서) 서기를 거쳐 주북한 대사에 임명됐다. 특이한 점은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다음 임지가 주북한 대사였다는 것이다.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부부장(차관)급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들은 한반도 문제와는 무관한 인물들이다.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한반도 문제에 무관한 이들이 왜 주북한 대사에 임명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추측해보면 차오중화이가 주북한 대사로 임명된 해는 1993년이다. 한‧중 수교(1992년 8월) 이후로 북‧중 관계의 냉각기로 중국 외교관들 사이에 북한은 기피 지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지못해 주북한 대사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정년 전에 ‘명예’를 주는 인사를 선발했을 수 있다. 그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대 차오중하이는 1970년대 외교부장을 지낸 차오관화의 아들이다. 그는 주로 홍콩과 유럽에서 지냈다. 주북한 대사가 끝난 이후는 스웨덴 대사로 갔다. 12대 완융상도 마찬가지다. 주체코 대사를 하다가 주북한 대사를 거쳐 주브라질 대사로 이동했다.     13대 왕궈장은 허베이 성 농업기술학교 교원을 하다가 외교부에 들어와 당 위원회를 거쳐 주북한 대사를 맡았다. 그는 63세에 주북한 대사로 임명돼 1년 남짓 근무했다. 14대 우둥허는 주말리 대사를 역임하는 등 주로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다가 주북한 대사로 발령 났다. 그 역시 왕궈장과 마찬가지로 주북한 대사를 끝으로 외교부를 떠났다.   15대 류사오밍도 역시 외교부 출신이다. 이전 주북한 대사와 차이점은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미대사관 공사와 주이집트 대사를 거쳐 평양에 왔다. 그는 현재 북핵 문제를 다루는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서 주북한 대사가 인기 없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주북한 대사는 북한 내 일반 외국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엄격하게 행동 제약을 받고 자유로운 외교활동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한가롭고 일이 없는 반면 제약과 주의사항이 많아 재미없다는 인식이 중국 외교부에 널리 퍼져 있다.     둘째, 북한의 대중 외교는 철저하게 ‘당과 당’, ‘군과 군’이 우선시되는 전통이 있어서 주북한 대사의 역할은 극히 한정된다.     셋째, 북한과 주북한 대사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면 곧바로 국가 간 반목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개성이 강한 외교관이나 수완이 뛰어나고 유능한 외교관일수록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원만하고 성실한 사람이 적임자로 평가받는 나라다.     이런 이유로 주북한 대사를 보면 중국의 대북 외교의 분기점을 알 수 있다.    1기(1950년 8월~1961년 7월)는 초대 니즈량-2대 펀즈리-3대 차오샤오광까지로 모두 군인 출신들이다. 6‧25전쟁과 전후 처리를 위한 조치였다.     2기(1961년 8월~2010년 2월)는 대부분 외교부 출신이다. 북‧중이 1961년 7월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이후 중국은 외교관을 주북한 대사로 보냈다. 4대 하오더칭-5대 자오뤄위-6대 리윈촨-7대 뤼즈셴-8대 중커원-9대 원예잔-10대 정이-11대 차오중화이-12대 완융상-13대 왕궈장-14대 우둥허-15대 류사오밍 등이다. 5대 자오뤄위와 10대 정이는 각각 선양시장‧구이린시장 출신이다.   3기(2010년 3월~현재)는 대외연락부 출신이다. 16대 류홍차이-17대 리진쥔-18대 왕야쥔 등이다. 북‧중 외교는 ‘정당 간 외교’와 ‘정부 간 외교’를 병행하지만, ‘정당 간 외교’가 우선이다. 과거 외교부가 주북한 대사를 대부분 보냈지만, 실제 업무는 ‘정당 간 외교’를 주도하는 대외연락부가 맡았다.     따라서 2010년 3월 류홍차이가 북한대사로 부임하면서 대외연락부가 ‘정당 간 외교’ 뿐 아니라 ‘정부 간 외교’도 움켜쥐게 됐다. 중국 외교부는 철저히 보조하는 기관에 불과해졌다.   왕야쥔의 부임으로 중국의 대북 외교에서 대외연락부의 강화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핵실험 등 중요한 사항을 원활하게 사전 통보할지 두고 봐야 한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최근 중‧러 정상회담 이후 두 나라의 밀착에 따른 북한의 대응이다. 평양에서 북‧중‧러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아 왕야쥔의 부임이 신경 쓰인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2023.04.11 06:00

  • [중국읽기] 시진핑 방한의 한가지 해법

    [중국읽기] 시진핑 방한의 한가지 해법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나라의 사귐은 국민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중국의 경우 지도자 눈치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친함’에 앞서 ‘지도자 간 친함(領導相親)’이 선행돼야 한다. 지도자 우의는 어떻게 다지나. 교류부터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상호 방문의 정상외교다. 이를 한·중 관계에 대입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방중하거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누가 먼저 가야 하나.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방중에 이어 2014년엔 시 주석이 한국을 찾았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이젠 시 주석이 올 차례다. 한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한국부터 찾겠다는 시 주석의 방한 계획은 감감한 상태다. 코로나는 핑계일 뿐 사드(THAAD) 사태 이후 양국 관계가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추락하며 분위기가 뜨지 않는 게 진짜 이유일 거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찾는 것도 국내 정서상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정부가 연내 개최를 목표로 추진 중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 2008년 시작된 3국 정상회담은 2018년 일본, 2019년 중국에서 열린 뒤 한·일 관계 악화와 코로나 사태 등으로 중단됐다. 올해 연다면 의장국은 한국으로 중·일 정상이 와야 한다. 이제까지 중국에선 총리가 참석해 리창 총리의 방한이 유력하다.   그러나 리창 대신 시진핑 주석이 참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 주석은 관례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과거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리커창 총리의 초청으로 중국에 왔을 때 리 총리를 대신해 주로 캐머런을 상대한 건 시 주석이었다. 시 주석 입장에선 3국 정상회의 참석을 이유로 한국을 찾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고 한국은 어쨌거나 중국 정상의 방한이 이뤄졌으니 다음 윤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잡기 편하다. 그렇게 정상 간 왕래가 잦아져야 더 나빠질 것도 없는 한·중 관계가 풀릴 것이다.   일본은 리창의 방일을 먼저 성사한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중국을 찾아 시 주석을 만나는 일정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우리로선 한덕수 총리가 먼저 방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경제 살리기에 나선 리창 총리와 한·중 경제협력을 다지는 한편 시 주석의 방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3국 정상회의 개최가 속도를 낼 필요가 있겠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2023.04.10 00:44

  •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공차가 무슨 뜻?... 공차(貢茶) 속 중국 차 이야기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공차가 무슨 뜻?... 공차(貢茶) 속 중국 차 이야기

    공차 매장. 출처 셔터스톡 밀크티 카페 브랜드인 공차는 대만에서 시작해 홍콩을 거쳐 우리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다. 그런데 공차가 무슨 뜻일까?   한자로는 바칠 공(貢), 차 차(茶)를 쓴다. 그래서 황실에 바치는 맛있는 차라는 의미라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그럴 듯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 공차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맛있는 차 이상의 역사와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차와 중국, 심지어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다양한 문화다. 특정 브랜드로 쓰이는 단어를 식탁 위 중국의 화두로 삼은 배경이다.   공차 관련 역사를 알려면 일단 공차의 개념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공차는 정확하게는 나라에 공물(貢物)로 바치는 차라는 뜻이다. 나라에 보내는 공물이나 황실에 바치는 맛있는 차나, 도낀 개낀이고 엎어 치나 메치나 같은 소리 아니냐 싶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다.   맛있지 않아도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토산품이면 공물의 대상이 된다. 황실에 바치는 차는 또 다르다. 공차 중에서도 특별히 좋은 차여야 한다. 이런 차를 어차(御茶)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공차, 즉 차를 나라에 공물로 공급했을까? 역사는 상당히 깊다. 공물제도에 대한 기록이 처음 보이는 문헌, 『우공(禹貢)』에 보이니 3000년 쯤 전인 주나라 때로 추정된다.   먼 고대였으니 중국은 역시 차의 나라이고 중국인은 멀고 먼 옛날부터 차를 즐겨 마셨구나 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고대에는 차가 흔치 않았으니 공물로 바쳤다는 소리일 뿐 중국인이 보편적으로 차를 마신 역사는 상식과 달리 생각보다 길지 않다. 송나라 때 문헌 『청이록』에 차는 당나라에 이르러 성행했다고 나온다.   물론 이전에도 차는 마셨지만 여러 배경 때문에 차 문화는 극히 일부 계층에만 한정됐다. 사대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차를 마시게 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8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평민들까지 차를 마신 것은 훨씬 나중이다. 차의 종주국 중국에서 차가 퍼진 시기가 생각보다는 길지 않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공차, 그 중에서도 황실에 바치는 맛있는 차인 어차는 차가 널리 퍼지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당나라 무렵부터 중국에서는 차의 소비와 생산이 급속히 늘었고,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생산품이 됐다. 물동량이 많아졌으니 당연히 중요한 재정수입, 세금징수의 대상이 됐다. 차에 부과하는 세금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10세기 이후 송나라부터는 소금과 함께 차도 전매 대상이 된다. 재정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라에서 차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한다. 이전처럼 지방 관청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거나 차 재배 농가로부터 현물로 차를 받아 나라에 공물로 바치는 공차는 대폭 축소됐다. 단지 황실에서 쓸 고급 차만 어차원(御茶園)이라는 차밭에서 직접 재배해 공차로 바치게 된다.   황실 공급용 차인 만큼 정성을 다해 차를 재배하고 생산했는데 이 과정에서 차 잘 만들어 출세한 사람까지 생겼다. 그 중 한 명이 10세기 말 송 태종 때 정위라는 사람이다. 정위는 가루를 낸 찻잎을 정교하게 떡(茶餠)처럼 만들어 황제의 환심을 샀다. 덕분에 참정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고 훗날 제후로 봉해져 진국공이 됐다.   송 인종 때는 채양이 차를 잘 만들어 고관이 됐다. 복건성의 차밭 관리였던 채양은 좋은 찻잎을 골라 딴 후 찻잎을 뭉쳐 떡처럼 만들고 여기에 황제를 상징하는 용(龍)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황제가 감탄했고 이후 채양은 출세가도를 달렸다.   정위가 만든 차를 대룡단(大龍團), 채양이 제조한 차를 소룡단(小龍團)이라고 했는데 명나라 때까지 최고의 차로 꼽았다고 한다. 공차라는 브랜드는 바로 이런 황실 납품용 어차에서 따온 것이다.   참고로 대룡단은 찻잎가루를 뭉쳤다고 했는데 여기서 차의 변천과정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찻잎을 뜨거운 물로 우려내 마시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말린 찻잎을 가루로 만든 후 솔로 저어 거품을 내어 마셨다. 지금 일본의 가루 녹차인 말차(抹茶 まっちゃ) 비슷한 형태다. 차 마시는 방법이 송나라를 전후해 바뀐 것으로 추정한다.   찻잎 뭉친 떡인 대룡단과 소룡단은 고려에도 전해졌다. 조선시대 『성호사설』에서는 이를 다식(茶食)이라고 불렀다는데 지금의 한과 다식은 이때의 찻잎떡이 이름만 남고 내용물은 바뀐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차례상(茶禮床)에 차 대신 한과를 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송나라 이후 공차는 폐지되고 대신 전매제도인 각차(榷茶)만 남는다. 각(榷)은 외나무다리, 혹은 전매라는 뜻으로 재정수입 및 군수물자 조달과 관련해 발달했다.   물론 차 전매제도라고 해서 나라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고 찻잎을 유통시키는 것은 아니다. 상인이 군대에 군수물자를 납품하면 대금으로 차를 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수량, 지역이 표시된 차 인수권을 받는다. 그리고 재배지에서 차를 수령한 후 다시 군대에 납품할 말이나 식량, 소금 등과 교환해 구입한다. 이런 각차 제도를 이용해 강족(羌族)과 차와 말을 거래할 때 생긴 길이 차마고도(茶馬古道)다. 공차 카페 옆을 지나며 간단하게 알아 본 공차 관련 역사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2023.04.07 06:00

  •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인은 ‘차이’는 인정해도 ‘차별’은 혐오한다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인은 ‘차이’는 인정해도 ‘차별’은 혐오한다

    사진 셔터스톡 차별엔 ‘친소(親疏)’의 차이가 있지 ‘국적(國籍)’의 차이는 없다 어느 나라는 싫고, 어느 나라엔 호감을 가진다. 그런데 국적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저변의 의식에 지금 나와의 관계가 “친하냐 아니냐”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인들과 친하다면 그들도 당연히 우리를 좋아한다. 친해지면 국적을 불문하고 차별 대우가 없거나 최소한 상당히 줄일 수가 있다. 단지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경우는 없다.   예외적으로 유일하게 일본은 소일본(小日本)이라 부르며 싫어한다. ‘단일민족(?)’인 우리보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국적에 대해 상대적으로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가 아니라 나와 친하냐가 중요하다. 서로의 감정이 통하고 신뢰를 할 만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 이런 미덕(美德)을 중국에서는 한마디로 의리라고 말한다. “의리를 지키면 함께 한다(講義氣在一起)”. 그리고 긴장하게 하는 한 마디가 또 있다. “의리가 없으면 버린다(不講義氣 不在一起).”  ━  눈에 안 보이는 규칙(潛規則)   중국에서는 기업 활동이 어렵다.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여기게 된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것은 실제보다는 약간 과장이 되었거나, 혹은 원인(또는 이유)이 다른 곳에 있기도 하다.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잘 모르는 중국에서의 ‘게임의 규칙’이 있다. 규칙을 모르고 경기에 임하면 무모하다. 왜 휘슬이 울렸는지도 모른다. 차별받는다고 억울해할 수 있다. 홈경기장에서의 차별은 분명 있겠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게임의 규칙을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는 잠규칙과 더불어 경규칙(硬規則, 딱딱한 규칙), 연규칙(軟規則, 부드러운 규칙), 현규칙(顯規則, 드러난 규칙)이 있다. 당연히 법률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는 규칙을 일컫는 다른 표현이다. 외국기업은 중국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다. 어느 나라에 가도 그렇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더 통렬하게 체감한다. 중국인들은 이 잠규칙의 존재를 알고 대응하는데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차별 대우’를 혐오한다. 내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한 차이는 분명 있다. 이 차이가 심각한 ‘차별 대우’로 집행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몰라서 스스로 ‘차별 대우’를 받게 되는 뼈아픈 사례들이 많다. 중국식 표현으로의 ‘잠규칙(숨어있는 규칙)’을 몰라서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발품”을 팔아야만 그 존재를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다.   차별 대우는 문화적인 요인도 있지만, 결국 비즈니스 현장에서 나타난다. 모르면 손해를 보지만 알고 나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가로축은 경규칙과 연규칙 그리고 세로축은 현규칙과 잠규칙으로 그려 놓고, 지금 내가 직면한 승인 ·협의의 어려움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파악해 보는 것은 -10분도 안 걸린다- 경험상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에 맞게 타결할 전략을 세울 것을 추천해 드린다. 중국과의 실전 협상에서는 틀림없이 매우 유용하다.  ━  경규칙과 연규칙   경규칙·연규칙은 여러 경우가 있겠다. 그중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보면, 경규칙은 중앙정부 등의 규정처럼 이미 확정되어 바꾸기 어려운 규정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연규칙은 상급 부서의 규정이나 지침에 대해서 하급 부서가 집행할 때 기준하는 규칙이다. 융통성이 있다. 상위 부서의 규정과 상이할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 아래로 갈수록 규정 요구가 더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서는, 원칙적으로 상위부서의 규정”을 가지고 대응할 수도 있겠다.   다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중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산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山高皇帝遠)”. 속된 말로 하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뜻이다. 또 “높은 지위의 현감은 ‘현장에서 마주친’ 담당자보다 못하다(縣官不如現官)”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도 있다. 이렇게 보면, 경규칙도 경우에 따라서는 연규칙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현규칙과 잠규칙: (잠규칙이 분명) 존재하는데, 나만 모르면 위험하다.   현규칙(공개된 규칙)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규칙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아마도 글로벌이 동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면 된다. 다만 “우리가 지켜야 할 규정은 모두 현규칙이다” 혹은 “현규칙만 있다”는 착각은 절대 금물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이런 착각을 수도 없이 했고, 그래서 어디서 날라온지도 모르는 돌을 맞았다. 돌은 아래에서 위로 날라오는 경우가 없다. 만유인력은 불변의 법칙이다. 설령 아래에서 날아온 것처럼 보여도 그것을 그렇게 날라오게 한 배경이 있다. 돌은 절대 그냥 날라 오지 않는다. 돌에 맞은 어리석은 개는 쫓아가서 돌을 물고, 영리한 개는 돌 던진 사람을 찾아간다고 한다. 던진 이가 분명히 있다.   현규칙에 대비해 잠규칙(안보이는 규칙)이 있다. 어디를 찾아봐도 그런 조항이나 문구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뭔가가 분명 장애가 되어 작동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바로 잠규칙이다. 형태는 여러 가지이지만 오히려 정식 규칙보다 강하게 작동할 때도 많다. 비유하자면 현규칙이 신호등이라면 잠규칙은 현장에서 지휘하는 교통경찰이다. 그의 움직임은 신호등보다 예측이 어려우나 교통 통제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신호등보다 먼저 따라야 하는 규칙이다. 잠규칙의 형태는 여러 가지라고 했다. 물밑의 잠수함 같아서 물 위에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현장에서는 이 잠규칙은 공개된 협상을 통해서는 파악되지도 않고 해결할 수도 없다.   ■ 사례)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규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다 「 아직은 잠규칙일 때 대응했어야 한다. 이미 늦었다면 잠규칙은 잠규칙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본 사례는 잠규칙이 실제로 있었고 그게 작동했다는 소개만 한다. 그 잠규칙이 무엇이었는가는 일단 생략함을 양해 바란다.   중국은 전기 자동차 산업을 위해 다양한 보조금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중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회사들은 그런 우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정책은 중앙정부의 주무부서 국장이 처음으로 발표했다. T사 등은 이 정책의 진의를 알기 위해 발표한 국장과의 만남을 최우선으로 진행했다. 당연한 대응방법인 것 같아 보여도, 틀렸다. 국장이 공개적으로 발표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사전에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 못한 게 우선 큰 실책이다.   또 하나의 실책은 (어차피 사전에 몰랐고) 이미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면, 배경 또는 이를 조종한 배후의 인물이 누구인가를 최우선으로 찾았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모든 역량을 담당 국장을 만나서 사실 확인하는데 집중했다고 한다. 이 점이 바로 사고다.   심각한 차량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일단 응급처치는 하고 후송을 해야 하는데, 상황 파악해서 본사에 보고하느라 골든 타임을 놓치는 모양새다. 일은 점점 커져갔고 정확한 지점을 도려내지 못한 채 여기저기 쑤시다 보니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확정된 정책’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대책은 못 내놓고 사후에 상황만 정리한다. 보고서에는 아마도 그래서 안되었다는 내용만 있을 것이다.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는) 안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한다. 이런 보고서 맨 끝단에는 항상 희미하게 보일락 말락 하는 결론이 있다.   “중국이 또 속였습니다. 이래서 중국은 안됩니다”     」   ━  사후제갈량(事后诸葛亮, 일 벌어진 후의 제갈공명. 진짜 제갈량이라면 사전에 조치한다):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내가 다 알고 있었다”고 큰소리친다.   A는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런 사고를 예견했다고 한다. ‘진짜 제갈량’이라고 할 수 있다. (A가 이런 예견을 말하는 자리에 여럿이 있었다. 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지적한 사고는, 중국 정부의 차별적 정책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잘못 대응하면 일을 키울 텐데…” 이게 바로 그가 말하는 사고다. 중국이 차별 정책을 실행한 근거는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들여온다(市場換技術)’이다. 이 정책은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난 정책이 아니라 이미 80년대 초부터 있었다. 주무 부서의 국장이 A를 만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A 대표, 너희랑 하면서 이 정책이 늘 효과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될 것 같아!”.     A가 예견한 기업의 대응 과정의 예견된 사고는 바로, “날라온 돌을 찾아 헤매고, 돌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즉, 아마도 주무부서만 찾아갈 것이다. 그 발표를 한 국장을 만나려고, 그 위의 차관과 장관을 만나는데 모든 총력을 쏟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공개가 확대되고 확정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이 정책으로부터 비껴가거나 집행의 예외·유예 등의 특별한 배려를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잠규칙을 찾아내고, 해결해야 하는데) 보고서 작성에 온 역량을 쏟을 것이다. 대사관이나 주위의 모든 인맥을 통해 진위 파악을 하고 ‘공개적인 열심’에만 매달릴 것이다. 그러고는 “내가 이 일의 전말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다. 알고 보니, 원래 이런 게 있어서…. 누가 뒤에서…. 이래서 안 되는 거였더라”라는, 현장에서의 ‘해결’ 논리가 아닌, 회사 내부적인 ‘방어’ 논리에만 집중할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그래서 안 된 거다” “모두 몰랐지만, 원래 그런 규정이 있었더라고. 그래서….“ 등등의 말을 하는 똑똑한 제갈량들이 많다. 사전 제갈량이 되어야 하는 데, 모두 사후의 제갈량들이다.   잠규칙은 어디서나 또 언제나 있어 왔다. 잠규칙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위협적인데, 이제 이게 현규칙(드러난 규칙)이 되고, 동시에 경규칙(딱딱한 규칙, 협의의 여지가 없는 규칙)으로 되어 버리면 이제는 더는 답이 없어진다. 아직은 잠규칙일 때 우리도 잠규칙으로 대응했어야 했었다. 어려움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 방법은 항상 더 많은 법이다(方法总比困难多). 방법은 늘 있다. 다만 일을 하기보다는 (사후 분석만 하려 하고)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와 지혜가 부족했을 뿐이다.  ━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坐井觀天)   중국에서 많은 협상을 해 본 경험자인데 만약 ‘잠규칙’을 (들어는 봤어도) 따져 본 적이 없다면 아직 공부가 부족한 거다. 우물 안 개구리다. 책만 보고 전쟁을 논하는(紙上談兵) 책상물림이다. 마치 고급 호텔에서 마련한 ‘바닷물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서 나는 ‘바다’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잠규칙은 항구 앞바다에 있는 거대한 암초다. 눈에 안 보인다고 직진하다가는 파산한다. 암초를 피해 돌아가든 폭파하든, 어쨌거나 이 암초를 해결해야 항구에 정박할 수 있다.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 순간에 늘 2%가 부족했다”는 아쉬운 후회가 있다면 아직도 암초의 존재를 몰랐던 거다.   모셨던 부회장님이 해주셨던 말이 있다. “그 2%가 정말 2%인지, 아니면 98%인지 그들이 알겠느냐! 이런 일은 100%까지 안 가본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잠규칙을 (그 용어는 아셨는지는 모르지만) 그야말로 비즈니스 감각으로 알았던 분이다. 사후 제갈량이 아닌 진짜 제갈량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2023.04.05 06:00

  • 양자경? 양쯔충? 여추껑?…오스카 품은 이 배우, 뭐라 불러야 할까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양자경? 양쯔충? 여추껑?…오스카 품은 이 배우, 뭐라 불러야 할까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사진 셔터스톡 말레이시아 출신 중화권 배우 ‘양자경(楊紫瓊)’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다. 본인과 가족이 부르는 발음이 ‘여추껑(Yeoh Choo-Kheng)’이라는 사실이 새삼 알려지면서 중화권 인물의 한국 표기법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양(楊’)을 ‘여’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중국어 방언의 세계도 주목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화교들의 세계도 새롭게 관심을 모은다.    양자경은 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여러 화제를 불렀다. 우선 아시아계 배우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처음으로 받았다는 점에서 ‘인종적 유리 천장을 깨뜨린 사례’로 꼽힌다. 이 상을 유색인종이 받은 것은 2002년 74회 아카데미에서 ‘몬스터 볼(Monster's Ball)’로 미국 여배우 할리 베리가 수상한 이래 역대 두 번째다. 이울러 말레이시아인으로는 아카데미상 전 부문을 통틀어 첫 수상이다.    ━  양자경인가, 양쯔충인가   양자경의 수상은 이처럼 여러 화제를 부르는 상황에서 한국에선 이름 표기가 논란을 불렀다. 한국 영화팬 사이에선 한자음을 한국식으로 읽은 ‘양자경(楊紫瓊)’으로 알려진 그가 국내 언론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보도에선 ‘언론 외래어 기준’에 맞춰 중국 표준어 발음인 ‘양쯔충’으로 표기되면서 반대 의견이 분출된 것이다. 양자경은 화교니까 중화권 배우이긴 하다. 그렇다고 본인이나 가족도, 한국의 팬도, 심지어 그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할리우드를 포함한 국제 영화계에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중국어 표준어 발음을 개인의 이름에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첫째 생각할 부분은 한국에선 오랫동안 홍콩에서 활동하는 배우나 감독을 한국식 한자로 읽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홍콩은 광둥어권으로 베이징에서 사용하는 표준어와 한자 읽는 법이 사뭇 다르다. 예로 배우 유덕화(劉德華)는 광둥어로는 라우닥와, 표준어론 류더화로 각각 발음하며, 앤디 라우라는 영어 이름도 있다. 주윤발(周潤發)은 광둥어론 짜우연팟, 표준어론 저우룬파다. 한때 도널드 초우나 아만 초우라는 영어 이름을 쓴 적도 있다. 그를 다룬 영문 기사를 검색하려면 광둥어 발음인 ‘Chow Yun-Fat’을 쳐야 한다.     양조위(梁朝偉)는 광둥어로 렁치우와이, 베이징어로 량차오웨이인데 본인은 영어와 광둥식 발음을 합친 토니 렁 치우와이(Tony Leung Chiu-wai)를 쓰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장국영(張國榮)은 표준어로 장궈롱이지만 광둥어로는 정궉윙으로 불린다. 국제영화계에선 레슬리 청이란 영어 이름으로 알려졌다.     ‘영웅본색1, 2’와 ‘첩혈쌍웅’에 이어 할리우드에서 ‘미션 임파서블2’를 연출한 오우삼(吳宇森) 감독은 중국 표준어로 우위선, 광둥어로 응위삼으로 불리며, 할리우드에선 ‘존 우’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광둥어와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홍콩 영화인의 이름을 정작 본인도, 한국의 팬들도 쓰지 않는 중국어 표준어로 표기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름은 개인과 지역의 정체성과 팬들과의 소통에서 가장 상징적인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  ‘양(楊)’을 ‘여’로 발음하는 중국어 사투리가 있다니   양자경은 부모가 지어준 본명으로, 말레이시아 화교인 본인과 가족은 ‘여추컹’으로 발음한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어권은 물론 국제 영화계에선 이름인 미셸을 붙여 ‘미셸 여(Michelle Yeoh)’로 부른다. 공식적으로는 영어이름인 미셸에 자신과 가족이 부르는 발음을 붙여 ‘미셸 여 추컹(Michelle Yeoh Choo-Kheng)’으로 부른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양쯔충’이라는 베이징식 발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양자경의 이름 발음에선 여기에 더해 또 다른 문제가 더 있다. 한국어에서 ‘양’, 표준어와 광둥어에서 ‘량’으로 발음하는 그의 성인 양(楊)을 그와 가족이 ‘여’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이는 양자경의 가족이 표준어도 광둥어도 아닌 중국어의 또다른 사투리인 민남어를 모국어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물론 싱가포르에도 사람이나 기업 이름에서 ‘양(楊)을 ‘Yeo’로 부르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이 지역 화교 중에 민남어 사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양자경 본인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조상 중에는 민남계와 광둥계가 모두 있으며, 어려서 집에서 말레이어와 영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스스로 광둥어를 잘 하지 못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지금은 영어는 물론 표준어와 광둥어 모두를 잘 사용하고 있다.     홍콩의 여러 액션 영화에선 광둥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양자경은 대만 출신 리안(李安) 감독이 홍콩 출신의 주윤발, 중국 대륙 출신 장쯔이(章子怡) 등 중화권 배우를 기용해 미국‧홍콩‧중국의 자본으로 중국어로 제작한 2000년 작품 ‘와호장룡(臥虎藏龍)’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 양자경은 영어‧광둥어‧중국어로 모두 연기가 가능한 드문 배우다.    ━  중국 7대 방언   양자경의 성 ‘양(楊)’을 ‘여’로 읽는 민남어는 어떤 언어일까. 중국의 한어(漢語)에는 수없이 많은 지역어 또는 사투리(漢語變體 또는 漢語方言으로 부름)가 있지만, 크게 칠대방언(七大方言)으로 불리는 일곱 개의 큰 갈래로 나뉜다. 이를 일급방언으로 부른다. 민남어는 여기에 들어간다. 각 방언은 내부에서도 지역적‧언어학적으로 다양하게 세부 분류된다.     칠대방언의 첫째가 사용자가 가장 많은 관어(官語) 또는 북방어(北方語)다. 약 9억 명이 제1언어로, 약 2억 명이 제2언어로 각각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최대 지역어이자 가장 중요한 통용어다. 장강(長江) 이북과 쓰촨(四川)성·윈난(雲南)성·구이저우(貴州)성과 광시(廣西) 북부 지역을 포함한 중국 북부와 동북부‧서북부‧중원‧서남부 대부분에서 사용된다. 이에 따라 중국 대륙에선 보통화(普通話), 대만에선 국어(國語),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선 화어(華語)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대 표준한어의 지위를 누린다.     관어의 방언으로 분류되는 진어(晉語)는 6300만 명 정도가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시(山西), 허베이(河北) 서부와 서북부, 허난(河南)의 황허(黃河) 이북 지역 서부, 산시(陝西) 북부, 내몽골 중서부에서 사용된다. 관어와 가장 상호 이해도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가 월어(粤越)로 불리는 광둥(廣東)어다. 중국 내외에서 약 8500만 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선 광둥(廣東)‧광시(廣西)‧하이난(海南)‧홍콩(香港)‧마카오(澳門)에서 주로 쓴다. 1억 광둥 인구 중 6700만이 사용해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다. 광둥과 광시 주민의 해외 이주가 늘면서 캐나다와 호주의 화교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말하는 한어방언으로 자리 잡았다. 동남아의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 그리고 유럽과 호주‧뉴질랜드 등에서도 사용인구가 상당히 있다.     셋째가 2015년 기준 사용자가 8000만 명으로 넘는 것으로 짐작되는 오어(吳語)다. 오월어(吳越語)나 강절화(江浙話), 강동화(江東話)로도 불린다.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포함한 장쑤(江蘇)의 남부와 저장(浙江) 대부분, 그리고 인근 안후이(安徽)‧장시(江西)‧쓰촨(四川)‧충칭(重慶)‧귀저우(貴州) 일부와 홍콩에도 사용자가 거주한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의 화교 공동체에도 사용자가 있다.    넷째가 양자경이 사용하는 사투리다. 민어(閩語) 또는 민남어(閩南語), 푸젠화(福建話) 등으로 불리는 방언으로 전 세계 7500만 명이 사용한다. 중국 남부 푸젠(福建)과 광둥(廣東) 동부와 서남부 지역, 하이난(海南), 저장(浙江) 동남부에서 주로 쓴다. 청나라 시대 이 지역에서 옮겨간 한족의 후손인 대만의 본성인(本省人)의 대다수도 포함된다. 이 지역 이주자의 후손이 많은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브루나이‧일본 등 아시아 지역 화교들이 가장 많이 쓰는 한어방언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공안부의 ‘전국 성명 보고’를 바탕으로 한 인민망의 보도에 따르면 호적 인구수를 기준으로 양(楊)씨는 왕(王)‧리(李)‧장‧(張)‧류(劉)‧천(陳)에 이어 6위에 오를 정도로 흔한 성이다.    다섯째가 객가어(客家語‧하카화)로 5000만 명 정도가 쓰는 걸로 추정된다. 중국 대륙에선 광둥(廣東) 동남부, 장시(江西) 남부와 푸젠(福建) 서남부 등이 객가어 사용지역이며, 대만 일부 지역에도 사용자가 있다. 동남아에선 말레이시아에 사용자가 있다.     여섯째가 감어(贛語‧간위)로 동북‧남부를 제외한 장시(江西)와 후난(湖南) 동남 일대에서 사용한다. 약 5500만 명이 사용한다.    일곱째인 상어(湘語)는 후난(湖南)을 흐르는 샹장(湘江)과 쯔장(資江) 유역을 중심으로 광시(廣西)북부 일부와 귀저우(貴州)와 쓰촨(四川)의 일부 지역에서 3800만 명 정도가 쓰는 방언이다.    ━  말레이시아 인구의 4분의 1은 화교     양자경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말레이시아와 말레이시아 화교가 새롭게 관심을 모은다. 말레이시아는 사실 민족과 종교가 다양한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한반도의 1.3배가 넘는 33만㎢ 면적의 국토에 2020년 센서스 결과 3245만의 인구가 산다. 전체 인구의 57.3%가 말레이족이고 12.4%가 보르네오 섬의 사사라와크 주와 사바 주 등에 거주하는 토착 비말레이 종족이다. 말레이시아 땅의 토착민에 해당하는 이 둘을 합쳐 ‘대지의 아들이라는 뜻’의 ‘부미푸테라’로 부른다. 이들은 현재 전체 인구의 69.7%를 차지하면서 정치 분야의 핵심 세력으로 군림한다. 말레이족은 이웃 인도네시아와는 같은 말레인도네시아어를 쓰는 데다 종교도 같은 이슬람이라 교류가 활발하다. 한때 통합을 거론한 적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론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나머지 30% 정도를 이주자의 후손이 차지한다. 22.9%가 화교이고 6.6%는 타밀족 등 인도계다. 역산하면 말레이시아의 화교 인구는 743만 명에 이른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연구기관인 ‘문화외교 아카데미(Academy for Cultural Diplomacy)’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말레이시아의 화교 인구는 696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태국(722만) 다음으로 많다. 싱가포르는 중국계의 인구 비중이 약 77%로 중국 밖에서 가장 비중이 높지만 숫자로는 280만 정도다. 인도네시아에도 비슷한 숫자의 화교가 거주한다. 그밖에 미얀마에 163만, 필리핀이 114만, 베트남에 약 100만의 화교가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말레이계는 중국계를 꾸준히 견제해왔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이 구성된 지 불과 2년이 지난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할 때 말레이계가 리콴유(李光耀) 총리를 말리지 않은 것도 경제력을 쥔 화교들이 정치 분야에서 발언권을 높일 가능성을 우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1969년 5월 13일 최대 도시이자 현재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계와 중국계 사이의 인종 충돌인 ‘5·13 폭동’이 벌어져 196명이 숨지고 439명이 부상했다.  ━  이름 앞에 말레이시아 ‘영웅 칭호’ 붙이는 양자경   양자경은 국제 영화계에서의 활약으로 이런 말레이시아에서 국가영웅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공식적으로 ‘탄 스리, 다토 세리 미셸 여추껑’으로 불린다. ‘탄 스리’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최고 수준의 훈장을 받은 사람이 붙일 수 있는 경칭이다. ‘다토 세리’는 말레이시아에서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높은 국가 명예칭호다. 일종의 ‘영웅’ 칭호인 셈이다. 양자경은 2000년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와호장룡’이 아카데미상 4개 부분에서 수상한 직후 PSM를 받고 ‘다토 세리’를 이름 앞에 붙일 수 있게 됐다.     양자경은 말레이시아 국적을 유지하면서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파리에서 남자 친구인 장 토트와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엔 노모와 친척들이 거주한다. 그런 양자경에게 말레이시아 정부는 ‘탄 스리, 다토 세리’를 뛰어넘는 어떤 상을 줄 것인가. 중국이 화교인 그에게 어떤 축하 선물을 할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린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2023.04.0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