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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기 그렇게 많았나? 수단 탈출로 알게 된 뜻밖 '중국몽'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입력

[성남=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군벌 간 무력 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 정부의 ‘프라미스(Promise)’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2023.04.25. photo@newsis.com

[성남=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군벌 간 무력 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 정부의 ‘프라미스(Promise)’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2023.04.25. photo@newsis.com

아프리카 동북부 수단에서 지난 4월 15일 정부군과 민병대인 신속지원군(RSF)이 권력을 둘러싸고 유혈 내전을 시작하면서 세계 각국이 자국민 수송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공군기를 동원해 교민 28명을 철수시킨 ‘프라미스’ 작전을 벌여 4월 25일 이를 종료했다. 교민들이 이날 KC-330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급유기를 타고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하면서다. 수단에서 철수한 일본인도 포함됐다.

수단 교민들은 4월 23일 오전(현지시각)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출발해 약 1170㎞를 지상 이동해 이튿날 오후 홍해 항구인 포트수단에 도착했다. 홍해 해상에는 우리 해군의 청해부대 소속 5500t급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이 대기했다. 교민들은 이곳에서 공군의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홍해를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귀국길에 올랐다.

중국 거주민 4월 27일 철수  

4월 27일엔 중국도 수단에서 자국민 668명과 외국인 10명 등 678명을 대피시켰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동아시아 삼국이 자국의 수단 교민들을 대부분 무사히 탈출시킨 셈이다.

공군 항공편을 이용한 한국과 달리 중국은 두 척의 자국 군함을 동원했다. 인민해방군 소속 7500t급 052D형 미사일 구축함인 난닝(南寜) 함과 2만3000t급 903형 종합보급함인 웨이산후(微山湖) 함이 4월 26일 수단에서 자국민 등을 태우고 홍해를 건너 2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도착했다.

중국은 수단과 접경한 아프리카 동북부 지부티의 도랄레 항을 조차해 2017년 8월부터 해외 군사기지로 사용하고 있어 해당 군함들이 이곳에 기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부티에는 1000~2000명의 인민해방군이 주둔하며 해외보급기지를 운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해군의 이번 자국민 철수 작전은 2011년 리비아와 2015년 예멘에 이어 세 번째다. 따라서 이번 철수 작전은 인민해방군 해군이 처음으로 지부티 기지를 활용한 자국민 대피 사례로 볼 수 있다.

수단 송유관, 1대 주주가 중국업체…일대일로 일환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수단에 있었던 것일까. 이는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관련이 있다. 특히 중국이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中國石油天然氣集團公司)를 통해 수단의 송유관 운영사인 ‘그레이터 나일 석유 운영사(GNPOC)’ 지분의 40%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GNPOC는 수단 서남부와 남부, 그리고 남수단의 유전 지대에서 수도인 하르툼을 지나 동부의 홍해 항구인 포트수단을 잇는 총연장 1600㎞의 송유관을 건설해 운영한다. GNPOC은 최대 주주인 중국 외에 말레이시아 기업이 30%, 인도 업체가 25%, 수단 국영 석유사인 수다페트가 5%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송유관에서 알다시피 수단은 산유국이다. 수단은 석유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로부터 2006년 가입을 요청받았으며 2015년 신청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군사쿠데타 등 불안한 정정 때문에 OPEC은 수단의 가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OPEC 회원국이 되려면 기존 회원국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데, 아직 안건도 상정되지 못한 상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UAEIA)에 따르면 수단은 2021년 하루 6만 6912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세계 46위의 산유국에 해당한다. 2011년 수단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한 남수단은 하루 15만 7122배럴을 생산해 세계 38위다. 수단 국민을 풍족하게 살게 할 정도로 많지는 않아도 글로벌 수급상으론 중요한 물량이다. 눈여겨볼 점은 수단과 남수단에서 생산된 원유는 모두 GNPOC의 송유관을 거쳐야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목줄을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중국, 외국인 탈출 포트수단 개발에 눈독 들여와

중국은 이번에 한국과 중국의 교민이 탈출한 홍해 항구인 포트수단의 개발 사업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중국항만공정(CHEC)은 포트수단 확장에 5억43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수단 군부의 권력기관인 과도주권위원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트수단은 지정학적으로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수단과 남수단에서 생산해 GNPOC의 송유관을 거쳐 도착한 원유를 선적하는 석유 수출항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홍해를 아우를 수 있는 군사‧물류 요충지라는 사실이다. 홍해는 동남쪽으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서북쪽으로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길이 2250㎞의 남북으로 길쭉한 바다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글로벌 물류의 급소다. 수에즈 운하에 사고가 생기든지 인근에서 안보 문제가 발생하면 글로벌 물류가 막히게 마련인데, 홍해가 불안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홍해가 서쪽으로 아프리카, 동쪽으로 중동과 접해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바닷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서쪽으론 지부티‧에리트레아‧수단‧이집트에 면한다. 동쪽으로는 예멘‧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하며 티란 해협과 아카바 만을 지나면 요르단의 아카바 항과 이스라엘의 에일라트 항으로 이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무역항인 제다도 홍해 연안에 있다. 제다의 건설에는 수많은 한국인 건설노동자가 참여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의욕적으로 건설을 추진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은 바로 티란 해협과 홍해에 접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에 안보와 경제 모두가 걸려있는 급소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셋째는 포트수단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자원이 해외로 수출되는 주요 출구라는 사실이다. 1905년 영국이 개발한 포트수단은 내륙에 있는 수도 하르툼과 도로로 연결된다. 하르툼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청나일과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백나일에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물류 요충지다. 수단은 이집트와 리비아,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동북 아프리카의 중심이다.

홍해 항구 개발 놓고 중국과 중동 경쟁 치열

이에 따라 포트수단 개발에 중동국가들도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아랍에미리트(UAE)다. UAE 두바이에 있는 다국적 항만관리 겸 터미널 운영사다. DP 월드는 지난해 6월 60억 달러를 들어 포트수단 지역에 새 항만을 건설하고 자유무역 지대 창설하겠다는 사업을 제안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이 포트수단 확장 프로젝트를 제시하자 DP 월드는 아예 포트수단을 중동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대규모 자유무역항으로 새롭게 키우겠다는 프로젝트를 들고나온 셈이다.

노르웨이의 해운‧해양 싱크탱크인 ‘크리스티안 미겔센 연구소(CMI)’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홍해를 통제하려는 국제적 각축전의 한복판에 수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중동 전문 뉴스사이트인 알모니터는 4월 24일 “홍해 지역에 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는 중국은 수단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불안정을 경계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수단 사태의 조기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목말라 하는 석유가 생산되는 데다, 글로벌 무역로의 중심에 있는 포트수단은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으로선 놓칠 수 없는 투자 대상이다.

고대 당나라-아프리카 교류사까지 활용하는 중국    

중국은 앞서 지난해 6월 수단과 중국 사이의 첫 해운 직항로인 ‘수단-차이나 익스프레스’를 개설하고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성대한 개설 행사를 열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3만2000t 규모의 화물선이 수단 포트수단에서 중국 상하이 사이를 20일에 걸쳐 운항한다. 이 개설행사에서 마신민(馬新民) 수단 주재 중국 대사는 “중국과 수단은 고대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축사에서 강조했다.

중국이 ‘중국이 고대부터 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와 인연의 끈을 유지해왔다’는 이야기는 최근 들어 중국 외교가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다. 그 근거는 8세기 당나라 때인 751년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에서 탈라스 전투에 참전했다가 이슬람 세력의 포로가 됐던 두환(杜環)이라는 인물이 쓴 『경행기(經行記)』의 여행기다.

두환은 섬유기술자로서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던 아바스 왕조(한자로 黑衣大食)에 잡혀갔다가 13개국을 여행한 뒤 해로로 762년 지금의 광저우(廣州)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한다. 『경행기』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내용의 일부가 두환의 숙부인 두우(杜佑‧735~812)가 편찬한 백과서전 류인 『통전(通典)』에 초록으로 남아있다.

이 기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환이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에 있는 마린국(摩鄰國)에 갔다”며 “시나이 반도의 대사막을 지나 2000리(약 1000㎞)를 여행해 도착한 나라”라고 기술한 내용이다. 두환은 “사람들이 흑인이었으며, 토지에는 쌀도 잡곡도 없었으며 초목도 자라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야자나무가 있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모습도 묘사했다.

지리나 자연 환경상 오늘날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수단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두환이 묘사한 내용은 오늘날의 이 지역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선 두환을 아프리카를 여행한 첫 중국인으로 치고 있다.

주목되는 내용은 이슬람법(大食法)과 기독교법(大秦法), 유대법(尋尋法)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이슬람 신자들은 돼지‧개‧당나귀‧말의 고기를 먹지 않으며 국왕과 부모를 숭배하지 않고 귀신도 믿지 않으며 오로지 하늘에만 기도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7일에 하루를 쉬며 이날은 무역 결제도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관찰과 기록이다.

중국은 이처럼 고대 당나라 때의 기록까지 되살려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오랜 유대를 강조하며 접근하고 있다. 놀라운 외교술이 아닐 수 없다. 고대사를 현재의 외교에 활용하는 소프트파워 전술이다. 일대일로에, 특히 아프리카에 중국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이번에는 군벌 간의 전투가 치열해 안전을 위해 자국민을 철수시켰지만 사태가 안정되면 수단으로 가장 먼저 돌아갈 나라가 중국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수단의 군벌 간 내전 사태가 이 지역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중국의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셈이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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