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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인의 충성은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 향한다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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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情報)의 비대칭(非對稱)
: 정보의 독점은 그렇다 쳐도, 왜곡된 정보의 확산은 막아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거래 관계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되는 상황이다. 비즈니스 거래뿐 아니라 전 영역에서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는 “지식이 권력이 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는데 어쩌면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다.

중국인들은 정보의 가치를 (우리보다는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여간해서는 정보 공유를 안 한다. 물론 우리도 이렇게 정보를 “꼬불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중국인들의 정보 소유욕은 해당 기업에 피해를 준다. 일부 나쁜 중국인들은 정보를 개인 자산화하고, 가공 수준을 넘어 날조하기도 한다. 회사의 자원을 이용해서 파악된 정보와 인맥인데도 회사에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한다. 정보가 개인의 자산으로 될 뿐, 여간해서는 소중한 “회사의 자산”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도 중국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는 이런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해답은 있다. 우선 현지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이걸로는 절대로 부족하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젊은 중국 전문가들을 양성해서 (어찌 보면 민감한) 이런 영역도 담당하게 해야 한다.

사후정보 비대칭
: 쌍방 모두가 “의문의 일패”를 당했다.

“내가 그랬다고?” vs “당신이 속였잖아!”

정보 비대칭은 시간의 관점에서 “사전(事前) 정보 비대칭”과 “사후(事後) 정보 비대칭”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것은 대부분 사전 정보 비대칭이다. 이에 비해 사후 정보 비대칭은 말 그대로 “발생한 이후의 정보 비대칭”이다. 본래의 사실이 “왜곡되어 진실”로 변절한다. 사후 정보 비대칭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오용되면 훨씬 위험하다. 왜곡된 사실이 마치 사전(事典)처럼 기억되고 기록되어서, 향후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모두가 그것에 기초해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X 그룹이 Y 지역을 투자지로 선정했다. 업계를 잘 아는 중국인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만약 100군데의 투자 후보지가 있다면, Y는 99번째 내지는 100번째 일 거야!”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X그룹은 자신만만했다. 고위층이 이곳을 지정해 줬다고 한다. 그의 지인을 통해서 (구두로) 지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투자가 집행되자 기대했던 특혜를 받지 못했다. X 그룹 본사는 속았다고 생각했겠고 그 고위층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인데? 왜 나를 언급하지?”라며 역시 불쾌했을 것이다. 둘 다 심각하게 “의문의 일패”를 당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Y 지역의 담당자들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X그룹의 중국 법인을 찾았다. 만찬 자리에 고위층의 지인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제 중국 법인은 “내가 중국 고위층의 지인을 만났는데 이 분이 여기를 추천하며 지지를 약속했다”고 본사에 보고한다. 내가 이만큼 인맥이 넓다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본사는 그런 고위층의 지지 의사에 대해 흥분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고향이나 친구를 위해서 식사 자리에 얼굴을 비춰주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고위층의 그 지인”을 식사 자리에서 자주 만났다는 이가 한마디 한다. “그럴 분이 아닌데…본인의 신분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큰소리쳤을 리는 없는데…. 그런데, 너희는 그걸 믿냐?”. 중국인을 아는 이들은, 애초부터 누가 지지한다고 말했다 해도, 바로 믿지 않는다. 중요한 상황이라면 정황을 살피고, 검증한다. 그 지인이 설령 “나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해도 그건 예의상 그렇게 한다. 같이 짜고 속이려는 게 아니다. 마치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에게 “음식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예의상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과장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우리 몫이다. “아무리 한국인이지만 나중에라도 그걸 몰랐겠어? 어쨌든 우리 회사의 누구누구는 Y지역으로부터 산(山)을 선물로 받았다더라”. X 그룹의 현지인들이 뒤에서 하는 얘기다. 개인적 비리가 정말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느 지역만 특정해서 “나는 이 지역을 지지하니 오라”고 했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건 정말 어이가 없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을 아는 외국인이라도 절대로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검증을 했어야 했다!

‘더 재미있는 극은 뒤에 있다(好戏在后头).’ 절대 재미있지 않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한다. 후에라도 당시의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고 하면 한 번의 질책은 있을지언정 소중한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추후의 진행 경과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고위층의 지지는 “사실로 확정”이 되고, 이제 X그룹이 이 고위층의 지지를 받아 Y지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은근히 홍보되었다. 설사 고위층이 정말로 지지한다고 했다 하더라도 필자라면 “이런 배경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말이 퍼지더라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위층은 도와주려고 해도 부담을 가질 것”이라고 조언을 했을 것이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클수록 그 피해는 엄중해진다. 그러면서 이런 왜곡은 점점 (어쩌면 지금도 계속) 자라나서 자칫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중국에 대한 감정까지도 영향을 주게 된다. 아주 고약한 사례다.

‘두아의 원망(窦娥冤)’: “사후 정보 비대칭”은 중국에서는 더 자주 생긴다. 조작이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인만의 작품은 아니다.

두아(窦娥)는 원나라 때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억울하게 죽어간 가련한 주인공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을 당할 때 “두아보다도 더 억울하다! (比窦娥还冤!)”라고 한다.

두아 이야기(竇娥冤). 바이두 갈무리

두아 이야기(竇娥冤). 바이두 갈무리

모 회사에서 고위 간부가 성추행했다. 피해자는 중국인 여직원이다. 오랜만에 사무실로 돌아온 Q는 이 사실을 피해자에게 직접 ‘처음으로’ 듣게 된다. 회사가 한 달 동안이나 사과는 안 하고 무마시키려고만 해왔다며 그녀는 “내일 중국 매체에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녀는 그 회사의 홍보담당이었다. 상황이 심각했다. 아마도 그룹 전체는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 보고한 Q는 다음날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게 말이 되나요? 상무님 책상 뺐어요!”.

20년을 몸담은 직장에서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퇴출당하였다. 한 달 동안 이 추악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은, (직접 가담자 외에는) 누구도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는데, Q가 소문을 내고 다녀서 일을 크게 벌였다. 심지어 부인도 주위에 소문을 퍼뜨렸다더라….”라고 매듭을 지었다고 한다. 퇴사한 이후로 조직은 Q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방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Q가 이 추문의 주요 역할을 한 듯한 여러 소문이 계속 번졌다. Q 개인은 회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회사는 나름 유능한 인재를 잃었다.

그에 대한 억울한 누명은 아직도 사실로서 건재(?)하다. 그룹은 Q에게 단 한 번도 사과를 안 했다. 본국의 본사 입장에서는 “나는 모르는 일인데? 나는 다르게 알고 있는데?”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은폐하고 눈을 감은 이들은 오히려 두 명의 임원이 비는 자리를 메꿀 기회를 맞게 되는 횡재를 얻었겠다.

오후 5시 반에 처음으로 사고를 인지하고, 바로 보고 절차를 밟았는데, 그다음 날 퇴출당한 Q가 한마디 한다. 나는 “두아보다도 더 억울하다! (比窦娥还冤!)”.

사후 정보 비대칭의 유혹은 항상 있다.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희생시킬 수도 있지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어쨌든 정보의 왜곡이므로 정당하지는 않다.

대단한 정보력을 가진 중국인 P지만, 그를 인정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동료였던 A는 P에 관한 정보에 손을 댔다. 그의 이력을 과대 포장하고 어렵게 확보한 일종의 인명사전에 P의 이름을 넣었다. 이제 P는 누가 봐도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포장되었다. P를 두고 딴소리하는 이들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사후 정보 비대칭이 (윤리적으로는 나빴지만) 좋은 쪽(?)으로 활용된 사례다. A의 말로는 당시에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P조차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딱 3명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일시(一時)적으로는 속일 수 있으나 평생(一世)은 속일 수 없다(骗得了一时 骗不了一世)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제로 투 원〉 피터 틸)”. 마찬가지로 시간이 간다고 진실이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지식을 축적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어차피 상황은 종료되었으니까….”라며 복기 없이, 분석 없이 덮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 중국과 “30년이라는 경험의 축적”은 없고 “1년을 30번 반복한 얕은 지식”만 남게 된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亡羊补牢)도 늦지 않다. 사냥꾼이 토끼를 보고 나서야 개를 찾아도(见兔顾犬) 오히려 늦지 않는다.

축적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나마 남아 있는 지식과 정보마저 왜곡되고 날조된 것이라면 끔찍하다.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란 없다(人无完人), 아직 중국 실력이 안 되어서 잘 못 판단할 수 있다. 그 실패를 사실대로 기록으로 남기고 교훈 삼고, 분석하여 축적하면 지식이 쌓이고 모여서 집단지성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런데 업무의 편의를 위해서 혹은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면 안 된다.

중국에서는 유난히 정보 왜곡이 많다. 중국 문화가 한몫한다.
: 나와 관계없으면 높이 걸어 놓고 신경 안 쓴다(事不关己 高高挂上)

악의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도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많다.

“조직 충성(몰입)이 매우 강한 우리 직원들도 중국에 가면 그 충성(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는 모 경제 연구소의 내부 보고서다. 사후 정보 비대칭은 중국에서 유난히 만연한다. 시스템도 갖추고 강력한 감사 인력도 보강했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무슨 결과든 반드시 원인이 있다(有果有因). 그 이유에 대해서 (지면의 한계로) 피상적으로 몇 가지만 설명한다.

우선 “남의 일에 대한 무관심(事不关己 高高挂上)”때문이다. 분명한 의사 표현을 꺼리고 나서기를 매우 주저한다. 또 하나는 윗사람의 비리에 대해 (자기들끼리는 얘기해도) 그 윗선이나 상급부서에 보고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이런 행위를 “조직의 화합”을 해치는 것이라고 본다. 의식 저변에서 이를 ‘참월’(僭越, 분수에 넘는 행동을 한다)이라고 간주하고 매우 꺼린다.

참월죄(僭越罪)의 형벌은, 사형이었다
: 면담은 고사하고, 감사팀이 추궁해도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

예전에 자신의 윗사람 잘못을 군주에게 “당사자인 윗사람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고했다. (당연하다. 당사자에게 당사자의 과오를 고발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공을 세웠지만 참월죄에 해당이 되어 처형되었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인들을 직접 불러서 면담하거나 심지어 윽박질러도 대부분은 입을 열지 않는다. (투서는 매우 많다. 단, 자신의 이익과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모든 중국 직원은 다 알고, 모든 한국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 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이 과정에는 나쁜 한국인이 있다. 중국인의 경우 나쁜 중국인도 있고 문화적 특성 때문에 나서지 않는 평범한 중국인들도 있다.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대로 되는데 중국에서는 잘 안 통한다. 그런데도 실천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한국 본사의 중국에 대한 이해와 역할이 더 중요하다. 사후 정보 비대칭을 악용하는 일부 한국 직원들도 잘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의 충성은 늘 개인을 향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매우 약하다. 정보와 인맥을 담당하는 업무를 ‘현지화’ 한다며 무조건 중국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정말 어리석다. 이런 영역에 충성도가 높은 한국인 전문가를 배치하고 장기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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