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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도원결의, 왜 하필 복숭아밭이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복사꽃. 사진 셔터스톡

복사꽃. 사진 셔터스톡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다.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복숭아밭에서 하늘에 맹세하며 의형제를 맺었다.

그런데 왜 하필 복숭아밭이었을까?

도원결의 장소는 장비가 살았던 탁군이다. 현재 지명은 하북성 탁주(涿州)로 북경에서 자동차로 서남쪽을 향해 한 시간 남짓 거리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복숭아밭 천지였다고 한다. 그러니 때는 봄날이고 주변은 온통 복숭아밭이었기에 도원결의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인문학적으로는 다르게도 해석한다. 도원결의는 성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결의(結義)가 핵심 내용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복숭아밭이라는 장소, 도원(桃園)도 중요하다.

그렇게 보면 결의 장소가 도원인 것은 단순히 탁군에 복숭아밭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인의 의식구조에서 형제의 의를 맺는 장소로 사과밭이나 배 밭, 대추밭이나 감 밭은 어울리지 않는다.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에 맹세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로는 오직 복숭아밭이 적합하다.

중국에서 복숭아는 평범한 과일이 아니다. 이유는 중국고전 문학작품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뿐만 아니라 삼국시대가 끝난 후인 4세기 진나라 때의 시인 도원명이 쓴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전설도 그런 예다.

“무릉의 어떤 사람이 고기를 잡아 생활했는데 내를 따라 가다 길을 잃고 복숭아 꽃나무 숲을 만났다. 냇물의 좌우 수백 보에 걸쳐 복숭아나무 외에는 잡나무가 없고 향기로운 풀들만이 산뜻하고 아름다우며 꽃잎들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여기면서 앞으로 나아가 복사꽃 숲이 끝나는 곳까지 가 보자고 했다. 숲이 다하는 곳에 물이 흐르고 문득 산 하나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좋은 밭과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가 있으며 길은 사방으로 뚫려있고 달이 일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왕래하며 씨 뿌리고 농사를 지었는데 남녀가 입은 옷은 바깥세상과 같았고 모두가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무릉도원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이상향, 유토피아다. 중국 사람들은 신선들이 사는 곳, 이상적인 마을에는 반드시 복숭아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전소설 『서유기』속의 복숭아도 예외는 아니다. 손오공이 훔쳐 먹고 벌을 받는 복숭아는 여신인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에서 나오는 복숭아로 먹으면 3천년을 산다는 과일이다. 복숭아는 그러니까 신선이 먹는 천상의 과일이다. 삼국지의 도원결의, 도원명의 무릉도원 그리고 서유기의 복숭아는 모두 하늘과 연결돼 있다.

유비 관우 장비가 굳이 복숭아밭에서 형제의 의를 맺은 까닭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굳은 맹세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  대한 서약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복숭아에 담긴 특별한 의미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풍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시골에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라진 풍속이지만 옛날 중국인은 섣달 그믐이면 도부(桃符)라는 부적을 대문에 내다 걸었다. 복숭아 부적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자에 울루와 신도라는 신의 얼굴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놓은 것인데 새해를 맞아 나쁜 기운을 쫓는 액땜의 의미가 있다.

이런 풍속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일단 복숭아나무에 귀신을 쫓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춘절과 마찬가지로 새해의 의미가 있는 입춘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쓴 입춘첩을 붙이는 민속 역시 복숭아나무 판자를 붙이는 도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민속학자도 있다.

역시 복숭아나무가 갖는 신비한 힘이 배경인데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놓지 않는다. 귀신을 쫓아내는 만큼 혼령이 된 조상님이 복숭아가 무서워 찾아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국에서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축귀이며 액땜의 상징물이다.

지금도 중국에 남아 있는 풍속이지만 중국인은 새해가 되면 연화(年畵)라는 그림으로 벽을 장식한다. 화교가 운영하는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림 소재는 주로 축복과 길상의 상징물이다.

재물 신이 된 관우나 복을 몰고 온다는 어린 남녀 동자(金童玉女), 혹은 재물의 상징인 잉어 그림도 있다. 여기에 복숭아 그림도 빠지지 않는다. 장수와 축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아이 생일이면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 만두나 과자를 선물하고 예전 환갑잔치에는 복숭아 모양의 떡을 쌓아 놓거나 전통 결혼식에서 복숭아 모양으로 종이를 오린 전통 문양의 전지(剪紙)를 붙여 놓는다.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인데다 결혼식장에서는 생명의 상징인 만큼 다산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 병문안 갈 때 주로 복숭아 통조림을 들고 갔던 것도 혹시 복숭아에 담긴 장수와 액땜, 그리고 생명력의 회복이라는 민속적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복사꽃 피는 계절에 알아 본, 복숭아와 중국 민속이다. 우리 풍속과 연결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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