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북경오리, 서태후가 사랑한 미식

중앙일보

입력

북경 오리구이. 사진 셔터스톡

북경 오리구이. 사진 셔터스톡

청나라 말 서태후는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고 간 최고 권력자였다. 사치를 일삼았던 것으로 유명한데 미식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런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물 쓰듯 썼다. 이런 서태후가 즐겨 먹었던 요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태후의 미식을 알아보기에 앞서 그녀가 최고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비교하자면 서태후는 서양 역사에서 최고의 음식 사치와 식탐 때문에 패가망신한 로마 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서기 69년 4월에 즉위해 12월까지 단 8개월 동안 권좌에 앉았던 비텔리우스의 음식 사치가 얼마나 심했는지 로마 시대 역사가 타키투스는 저서인 『역사(Histories)』에서 재위 기간에 끝없는 식욕을 채우기 위해 로마 화폐로 약 9억 세스테르스를 낭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미화 약 4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이런 비텔리우스 황제에 뒤지지 않았던 인물이 서태후였다. 19세기 말 동양 최대 해군 함대였던 북양함대 유지에 필요한 군비를 빼돌려 청 황실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건설에 쏟아부으면서 흥청망청 놀고먹는 데 낭비했던 사실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막대한 군비를 빼돌려 이화원을 재건한 서태후는 자금성을 떠나 이화원에 머물며 온갖 사치를 누렸는데 그중에서도 먹는 음식에 막대한 비용을 썼다. 보통 한 끼 식사에 백은 100냥을 썼다는데 이 정도 금액은 당시 평민들의 일 년 치 수입을 넘는 돈이었다고 한다. 하기야 북양함대 건설의 투자비용이 연간 300만 냥이었으니 한 끼 식사에 함대 건설비의 1만분의 1을 쓴 셈이었다.

서태후는 이런 엄청난 돈을 쓰면서 도대체 무엇을 먹었을까? 서태후의 한 끼 식사를 위해서는 보통 100가지의 요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서태후가 아무리 미식가이면서 대식가라고 하지만 한 번에 100가지 요리를 다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요리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는 3~4가지의 요리만 먹었다고 한다. 서태후가 젓가락도 대지 않은 음식들은 모두 내관과 궁녀들의 몫이었으니 엉뚱한 사람들이 음식 호사를 누린 셈이다

그렇다면 서태후는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특별히 좋아한 음식은 오리고기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오리고기 요리는 서기 400년 무렵 남북조시대 무렵부터 궁중요리로 발달했다. 원과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다양한 오리 요리가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북경 오리구이는 청나라 황실에서 특별히 발전시킨 요리다.

미식가인 만큼 먹는 방법도 독특해서 많은 경우 북경 오리구이는 살코기는 먹지 않고 바삭하게 구운 껍질만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북경 오리 고기 중에서도 서태후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오리 혀였다. 오리 혀(鴨舌)라고 하니까 우리한테는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중국 궁중요리에서는 상어지느러미, 말린 해삼과 함께 고급 미식 재료로 꼽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태후를 모셨던 여관(女官)인 유덕령(裕德齡)이 남긴 『어향표묘록(御香缥缈錄)』에는 오리 혀는 고기와 함께 구워서 만드는 데 서태후가 좋아했기에 커다란 접시에 담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았다고 나온다.

참고로 오리 혀 맛이 궁금하면 혹시 베이징 여행할 때 왕푸징의 유명한 북경 오리구이 전문점 전취덕(全聚德)에서 북경 오리구이를 풀코스로 주문하면 맛볼 수 있다.

어쨌든 얼핏 들으면 겨우 오리고기, 그것도 오리 혀 같은 엽기적이지만 특별할 것 없는 것으로 입맛을 만족하게 하려고 그 많은 돈을 썼을까 싶지만 내막을 알면 조금 다르다. 서태후 식탁에 차려지는 요리는 그렇게 만만한 음식들이 아니었다.

서태후 생일상에서 그 실상을 엿볼 수 있다. 1861년 음력 10월 10일은 서태후의 서른한 살 생일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날 아침상에는 어중이떠중이 음식은 빼고 모두 24가지 요리가 차려졌다. 이 중에서 과일 사탕 떡 등의 후식 네 가지를 뺀 스무 가지 요리 중 무려 여덟 가지가 오리구이와 오리탕, 오리 콩팥 등 각종 오리고기였다. 주요리로는 만 년 동안 복과 수명을 누리라는 뜻에서 복·수·만·년(福壽萬年)이라는 글자가 한 자씩 새겨진 4개의 대형 접시에 오리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가 각각 차려졌다.

오리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다는 사실 외에는 특별히 화려하다거나 소문만큼 사치스럽다고 할 만한 요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서태후를 보고 음식에 흥청망청 돈을 쏟아부었던 미식가라고 비난할까 싶지만 내용을 알면 이유를 알 수 있다.

평소 100종류의 음식을 준비하고 그중에서 서너 가지만 골라서 먹었다는 기록과 비교하면 생일상의 24가지 요리는 상대적으로 간소하기 그지없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요리를 만드는 재료가 유별났다. 후식과 국수를 제외한 대부분 요리를 귀하디귀하다는 바다제비 집을 소스로 조리했다고 한다. 서태후의 생일상, 서태후의 미식이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