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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디커플링은 재앙" 美장관 옐런이 中에 추파 던진 이유 [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한우덕 선임기자

차이나랩 한우덕 선임기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 4월 20일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했다. 미·중 관계에 대한 주목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간단히 보면 이렇다.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생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고, 찾을 수 있다.

최근 미·중 갈등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톤이다. 옐런은 "미국은 결코 무역보복을 통해 중국의 성장을 억제할 생각이 없다"며 "적절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국 장관 맞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옐런은 왜 중국에 '추파'를 던지는 걸까?

지난달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필자제공

지난달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필자제공

중국의 '국채 덤핑(dumping)'? 

국채다. 지금 중국의 미국 국채(US Treasury bonds) 보유량은 뚜렷하게 감소 중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보유액은 8488억 달러. 13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최고치였던 2013년 1월의 1조 3167억 달러 대비 35.6%가 줄었다. 지난해에만 1700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세계 제1위 미국 채권 보유국 자리는 일본에 내준지 오래다.

당연히 미국 정부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보유 국채를 지속해서 내다 판다면,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수익률)는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채 덤핑으로 미국 금융시장을 교란하려 한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돈다.

중국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우선 경제적 이유를 꼽는다. 돈은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미국 국채(10년물) 수익률은 2021년 말 1.5%에서 2022년 말 4%에 육박했다. 그만큼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갖고 있으면 손해다. '중국은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외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둘째는 정치적 이유다.

중국이 미 국채를 본격적으로 줄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무역 전쟁을 시작한 때와 겹친다. 중국이 미 국채를 무기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중국의 보유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에서 퇴출하면서 중국에서는 '달러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움직임과 맞물려 미 국채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쉽지 않은 디커플링

중국은 과연 미 국채를 무기화할 수 있을 것인가?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우선 중국이 미 국채를 보유하게 된 과정을 보자.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가입이 계기였다. 중국은 WTO 가입과 함께 '세계 공장'으로 떠올랐고, 수출이 급증하면서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다. 수출로 들어온 달러는 어쨌든 위안화로 바뀌어야 한다. 당연히 위안화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위안화 환율 하락). 이는 수출에 부담이다. 중앙은행(중국인민은행)이 위안화를 풀어 달러를 사들인 이유다.

중국인민은행에 쌓인 달러를 받아줄 만한 안전한 투자처는 미국 채권뿐이었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 국채를 샀고, 미국은 중국에서 빌려온 달러로 다시 중국 제품을 샀다. 중국은 수출로 경제를 일으켜 좋았고, 미국인들은 인플레 걱정 없이 소비를 즐길 수 있었다. 옐런 재무장관이 말한 미·중 커플링의 실체다.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대거 내다 판다면? 그건 공멸이다. 국채 덤핑은 가격 폭락을 야기하고, 수익률(금리)은 폭등시킨다. 미국 금리가 높으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이 오고, 글로벌 자금은 다시 미국으로 몰리는 성향을 보인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이 벌이고 있는 금리 인상 '댄스'에 세계 경제가 신음하는 이유다. 중국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고, 수출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달러를 찍어 중국 매도 분량을 사들이면 그만이다. 중국은 갖고 있던 자산만 잃게 된다.

보유 국채를 서서히 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미국 압박의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 국채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지금도 중국이 푼 국채를 일본이나 유럽이 거둬가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을 흔들어보겠다는 중국의 의도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 감소가 다소 과장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보유 축소는 약 1738억 달러. 평가 손실이 포함된 액수다. 이를 제외하면 중국이 실제 내다 판 액수는 대략 595억 달러에 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로이터 보도, 2023. 2. 23). 팔았다기보다는 만기 채권을 재연장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해석이다.

'신냉전,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는 채무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지금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정부 디폴트 공방 역시 부채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국채 매각은 미국 정부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재무장관 옐런으로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국가들은 보유를 다시 늘리고 있는데 중국은 여전히 줄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와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연구기관인 이스트-웨스트센터의 데리 로이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부채 한도 증액 실패는 중국의 미 국채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중국으로서는 보유물량 축소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3월 3일 보도).

미국은 안정적인 정부 채무 관리를 위해 차이나머니를 국채에 잡아둬야 한다.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에 손짓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중국도 미국 국채를 마냥 던질 수는 없다. 중국의 현재 외환보유액은 약 3조1800억 달러. 이 중 60%가 달러 표시 자산이다. 높다고는 할 수 없다. 달러 표시 자산을 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채 매각 대금이 미국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다른 형태의 채권 509억 달러를 사들였다. 국책 주택담보 금융인 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프레디 맥)는 그중 하나다. 중국이 국채를 처분한 것이 아니라 달러 자산을 보다 수익성이 높은 상품으로 재조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중국으로서도 옐런 장관과 만나 상의해야 할 게 많아 보인다. 옐런의 중국 방문이 멀지 않았다.

옐런은 존스 홉킨스 대학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패권 경쟁 속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신냉전의 속성이 그렇다. 먹고 사는 문제를 두고 어느 한 진영에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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