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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방 외교도 한국 외교의 한 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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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사진 중앙일보

장성택. 사진 중앙일보

북‧중 접경 도시 가운데 중국 지린성 훈춘-북한 나선 특별시가 있다. 현재 훈춘시와 나선 특별시는 신두만강대교(549m)로 연결돼 있다. 신두만강대교는 훈춘의 취안허 세관에서 나선 특별시 원정리 여행자 검사장까지로 2016년 개통했다. 이에 앞서 원정리에서 나진항까지 도로 확장 공사(2차선→4차선, 53.5km)는 2012년 마무리했다.

신두만강대교와 도로 확장 공사 모두 중국이 돈을 대고 북한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건설했다. 이는 북‧중이 2010년 나선경제무역지대와 위화도‧황금평 경제지대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결과다.

북‧중 간에 이 합의를 끌어낸 장본인은 장성택이다. 그래서 나선 특별시 하면 그를 빼놓을 수 없다. 나선시가 2010년 나선 특별시로 승격한 것도 그의 숨은 역할 때문이다. 장성택이 2013년 처형당할 때 죄목 가운데 하나는 나선경제무역지대와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중국)에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지도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장성택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장성택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성택은 여러 차례 나선 특별시를 찾았다. 나선 특별시를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삼아 중국처럼 경제 성장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2011년 6월 9일 나선 특별시에서 ‘나선경제무역지대 조‧중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 착공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그 자리에 중국은 천더밍 국무원 상무부장이 참석했다. 국무원 상무부장이 참석한 것은 중국이 장성택의 체면을 세워 준 셈이다.

착공식 이후 중국 기업들이 나선 특별시에 투자 상담을 했다. 북한이 중국 기업들에 제시한 첫째 사업은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개보수다. 승리화학연합기업소는 북한 최대의 정유공장으로 1979년 러시아의 지원으로 건설했다. 러시아는 승리화학연합기업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6.16화력발전소(중유발전소)까지 지원했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원유는 원유수송선에 실려 선봉항 앞바다에서 해저 파이프를 통해 승리화학연합기업소로 보내진다.

승리화학연합기업소는 노후화로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북한이 중국 기업에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개보수를 우선시한 것은 에너지가 얼마나 부족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둘째는 승리화학연합기업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를 지어달라고 중국 기업에 요구했다. 기존 6.16화력발전소는 북한 최초 중유 전용 발전소로 중유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가동이 어렵다. 그래서 석탄 전용 화력발전소가 필요했다. 석탄은 북한에 풍부하다.

중국 기업들도 북한에 요구사항이 있었다. 첫째, 무산 광산 개발이다. 무산 광산은 중국 기업에 로망의 대상이다. 아시아 최대의 노천 광산으로 채굴하기가 쉽다. 무산 광산은 북한 최대의 철광산으로 매장량이 수십억t에 달한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고품질(Fe 34~35%) 27억t, 저품질(Fe 27%) 35억t이 매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기업은 연간 1000만t 생산을 목표로 1억 8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북한에 제시했다. 연간 1000만t을 생산하면 북한이 70%를 가져가고 나머지 30%는 중국 기업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둘째, 나선 특별시의 선봉항 운영권이다. 나진항은 1~4호 부두 가운데 러시아가 3호 부두 운영권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이 운영한다. 여기에 선봉항 마저 중국 기업이 운영하려고 했다. 그러면 중국은 차항출해(借港出海, 타국의 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 전략의 일정 부분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기업과 북한의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첫째, 북한이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개보수나 화력발전소의 건설과 함께 중국 정부에 차관을 요구하면서 무산됐다. 북한은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연계돼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 기업을 통해 중국 정부에 차관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황당해하면서 중국 정부에 전달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째, 북한이 사업권 확보를 위한 무리한 선지불을 중국 기업에 요구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계약금 형식의 선지불을 하는 것은 관례다. 중국 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무리한 선지불이거나 그에 따른 해결책에서 서로 이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북‧중 밀착은 시기적으로 보면 제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가 채택된 이후다. 그런데 중국은 왜 이 시점에 북한과 나선경제무역지대를 공동개발하려고 했을까?

그 이유는 김정일의 중병 발생이다. 김정일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북한 체제 붕괴론이 급격히 확산했다. 1인 절대 권력체제인 북한에서 후계자가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일이 사망한다면 그 혼란을 매우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지도부는 북한 체제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해 북‧중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중국 외교부의 대응도 매우 순화됐다. 중국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를 무시하고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과 사뭇 달랐다. 그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悍然)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제멋대로(悍然)는 중국인들이 극도로 분개를 느낄 때 사용한다.

원자바오 총리는 2009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한 지 5개월 뒤다. 원자바오는 김정일을 만나 2000만 달러 상당의 무상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6자회담 복귀를 요청했다. 중국은 심화하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에 대응해 우군이 필요했다. 원자바오의 방북은 나선경제무역지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때 중국 기업들도 중국 정부와 보조를 맞춰 나선경제무역지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시행착오만 반복했다.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데 그쳤다. 선지불에 대한 위험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나선경제무역지대를 밀어붙인 장성택도 그를 지원했던 김정일도 없다. 원자바오의 방북 이후 나선경제무역지대가 잠시 활력을 찾다가 장성택 처형 이후 다시 멈춰 섰다. 나선경제무역지대는 북‧중‧러가 만나는 곳이다. 지난달 21일 중‧러 정상회담, 왕야쥔 주북한 중국 대사의 평양 부임 등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 외교가 여기를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 아쉽다. 북방 외교도 한국 외교의 한 축인데.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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