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국에서 북한주재 대사는 왜 인기 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북한 외무성에 신임장 사본 제출하는 왕야쥔(오른쪽) 신임 주북 중국대사. 사진 주북중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지난 3일, 북한 외무성에 신임장 사본 제출하는 왕야쥔(오른쪽) 신임 주북 중국대사. 사진 주북중국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또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급) 출신이다. 왕야쥔 신임 주북한 대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평양에 부임했다. 니즈량 초대 주북한 대사 이후 18번째다. 왕야쥔은 2021년 2월에 지명됐지만, 코로나 19 영향으로 입국이 미뤄지면서 이제야 평양 땅을 밟았다. 지명된 지 2년 1개월 만이다.

전임자인 리진쥔은 2021년 12월에 이미 귀국했다. 그는 무려 6년 9개월 재임해 역대 최장수다. 리진쥔에 앞서 최장수 기록은 리윈촨 대사(1970년 3월~1976년 6월)가 갖고 있었다. 6년 3개월이다. 리진쥔이 귀국한 이후 1년 4개월 동안 주북한 중국대사관에 대사가 없었다. 그 자리는 쑨훈량 주북한 대사 대리가 대신했다. 왕야쥔은 지난 3일 김금철 북한 외무성 의례국장으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업무를 시작했다. 첫 일정으로 평양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했다.

왕야쥔은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출신이다. 리진쥔도 마찬가지였다. 리진쥔에 앞서 주북한 대사를 맡았던 류홍차이 대사(2010년 3월~2015년 2월)도 대외연락부 부부장 출신이다. 대외연락부 부부장 출신들이 연이어 3번째 주북한 중국대사에 부임했다.

대외연락부가 북한 조선노동당 국제부의 창구 기능을 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 ‘당대 당’ 외교를 중시하는 북‧중 관계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외교부가 독차지했다. 11대 차오중화이-12대 완융상-13대 왕궈장-14대 우둥허까지는 모두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감찰부서) 서기를 거쳐 주북한 대사에 임명됐다. 특이한 점은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다음 임지가 주북한 대사였다는 것이다.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부부장(차관)급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들은 한반도 문제와는 무관한 인물들이다.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한반도 문제에 무관한 이들이 왜 주북한 대사에 임명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추측해보면 차오중화이가 주북한 대사로 임명된 해는 1993년이다. 한‧중 수교(1992년 8월) 이후로 북‧중 관계의 냉각기로 중국 외교관들 사이에 북한은 기피 지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지못해 주북한 대사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정년 전에 ‘명예’를 주는 인사를 선발했을 수 있다. 그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대 차오중하이는 1970년대 외교부장을 지낸 차오관화의 아들이다. 그는 주로 홍콩과 유럽에서 지냈다. 주북한 대사가 끝난 이후는 스웨덴 대사로 갔다. 12대 완융상도 마찬가지다. 주체코 대사를 하다가 주북한 대사를 거쳐 주브라질 대사로 이동했다.

13대 왕궈장은 허베이 성 농업기술학교 교원을 하다가 외교부에 들어와 당 위원회를 거쳐 주북한 대사를 맡았다. 그는 63세에 주북한 대사로 임명돼 1년 남짓 근무했다. 14대 우둥허는 주말리 대사를 역임하는 등 주로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다가 주북한 대사로 발령 났다. 그 역시 왕궈장과 마찬가지로 주북한 대사를 끝으로 외교부를 떠났다.

15대 류사오밍도 역시 외교부 출신이다. 이전 주북한 대사와 차이점은 외교부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미대사관 공사와 주이집트 대사를 거쳐 평양에 왔다. 그는 현재 북핵 문제를 다루는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서 주북한 대사가 인기 없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주북한 대사는 북한 내 일반 외국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엄격하게 행동 제약을 받고 자유로운 외교활동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한가롭고 일이 없는 반면 제약과 주의사항이 많아 재미없다는 인식이 중국 외교부에 널리 퍼져 있다.

둘째, 북한의 대중 외교는 철저하게 ‘당과 당’, ‘군과 군’이 우선시되는 전통이 있어서 주북한 대사의 역할은 극히 한정된다.

셋째, 북한과 주북한 대사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면 곧바로 국가 간 반목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개성이 강한 외교관이나 수완이 뛰어나고 유능한 외교관일수록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원만하고 성실한 사람이 적임자로 평가받는 나라다.

이런 이유로 주북한 대사를 보면 중국의 대북 외교의 분기점을 알 수 있다.

1기(1950년 8월~1961년 7월)는 초대 니즈량-2대 펀즈리-3대 차오샤오광까지로 모두 군인 출신들이다. 6‧25전쟁과 전후 처리를 위한 조치였다.

2기(1961년 8월~2010년 2월)는 대부분 외교부 출신이다. 북‧중이 1961년 7월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이후 중국은 외교관을 주북한 대사로 보냈다. 4대 하오더칭-5대 자오뤄위-6대 리윈촨-7대 뤼즈셴-8대 중커원-9대 원예잔-10대 정이-11대 차오중화이-12대 완융상-13대 왕궈장-14대 우둥허-15대 류사오밍 등이다. 5대 자오뤄위와 10대 정이는 각각 선양시장‧구이린시장 출신이다.

3기(2010년 3월~현재)는 대외연락부 출신이다. 16대 류홍차이-17대 리진쥔-18대 왕야쥔 등이다. 북‧중 외교는 ‘정당 간 외교’와 ‘정부 간 외교’를 병행하지만, ‘정당 간 외교’가 우선이다. 과거 외교부가 주북한 대사를 대부분 보냈지만, 실제 업무는 ‘정당 간 외교’를 주도하는 대외연락부가 맡았다.

따라서 2010년 3월 류홍차이가 북한대사로 부임하면서 대외연락부가 ‘정당 간 외교’ 뿐 아니라 ‘정부 간 외교’도 움켜쥐게 됐다. 중국 외교부는 철저히 보조하는 기관에 불과해졌다.

왕야쥔의 부임으로 중국의 대북 외교에서 대외연락부의 강화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핵실험 등 중요한 사항을 원활하게 사전 통보할지 두고 봐야 한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최근 중‧러 정상회담 이후 두 나라의 밀착에 따른 북한의 대응이다. 평양에서 북‧중‧러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아 왕야쥔의 부임이 신경 쓰인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