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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 양쯔충? 여추껑?…오스카 품은 이 배우, 뭐라 불러야 할까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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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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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출신 중화권 배우 ‘양자경(楊紫瓊)’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다. 본인과 가족이 부르는 발음이 ‘여추껑(Yeoh Choo-Kheng)’이라는 사실이 새삼 알려지면서 중화권 인물의 한국 표기법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양(楊’)을 ‘여’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중국어 방언의 세계도 주목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화교들의 세계도 새롭게 관심을 모은다.

양자경은 지난 3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여러 화제를 불렀다. 우선 아시아계 배우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처음으로 받았다는 점에서 ‘인종적 유리 천장을 깨뜨린 사례’로 꼽힌다. 이 상을 유색인종이 받은 것은 2002년 74회 아카데미에서 ‘몬스터 볼(Monster's Ball)’로 미국 여배우 할리 베리가 수상한 이래 역대 두 번째다. 이울러 말레이시아인으로는 아카데미상 전 부문을 통틀어 첫 수상이다.

양자경인가, 양쯔충인가

양자경의 수상은 이처럼 여러 화제를 부르는 상황에서 한국에선 이름 표기가 논란을 불렀다. 한국 영화팬 사이에선 한자음을 한국식으로 읽은 ‘양자경(楊紫瓊)’으로 알려진 그가 국내 언론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보도에선 ‘언론 외래어 기준’에 맞춰 중국 표준어 발음인 ‘양쯔충’으로 표기되면서 반대 의견이 분출된 것이다. 양자경은 화교니까 중화권 배우이긴 하다. 그렇다고 본인이나 가족도, 한국의 팬도, 심지어 그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할리우드를 포함한 국제 영화계에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중국어 표준어 발음을 개인의 이름에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첫째 생각할 부분은 한국에선 오랫동안 홍콩에서 활동하는 배우나 감독을 한국식 한자로 읽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홍콩은 광둥어권으로 베이징에서 사용하는 표준어와 한자 읽는 법이 사뭇 다르다. 예로 배우 유덕화(劉德華)는 광둥어로는 라우닥와, 표준어론 류더화로 각각 발음하며, 앤디 라우라는 영어 이름도 있다. 주윤발(周潤發)은 광둥어론 짜우연팟, 표준어론 저우룬파다. 한때 도널드 초우나 아만 초우라는 영어 이름을 쓴 적도 있다. 그를 다룬 영문 기사를 검색하려면 광둥어 발음인 ‘Chow Yun-Fat’을 쳐야 한다.

양조위(梁朝偉)는 광둥어로 렁치우와이, 베이징어로 량차오웨이인데 본인은 영어와 광둥식 발음을 합친 토니 렁 치우와이(Tony Leung Chiu-wai)를 쓰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장국영(張國榮)은 표준어로 장궈롱이지만 광둥어로는 정궉윙으로 불린다. 국제영화계에선 레슬리 청이란 영어 이름으로 알려졌다.

‘영웅본색1, 2’와 ‘첩혈쌍웅’에 이어 할리우드에서 ‘미션 임파서블2’를 연출한 오우삼(吳宇森) 감독은 중국 표준어로 우위선, 광둥어로 응위삼으로 불리며, 할리우드에선 ‘존 우’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광둥어와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홍콩 영화인의 이름을 정작 본인도, 한국의 팬들도 쓰지 않는 중국어 표준어로 표기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름은 개인과 지역의 정체성과 팬들과의 소통에서 가장 상징적인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양(楊)’을 ‘여’로 발음하는 중국어 사투리가 있다니

양자경은 부모가 지어준 본명으로, 말레이시아 화교인 본인과 가족은 ‘여추컹’으로 발음한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어권은 물론 국제 영화계에선 이름인 미셸을 붙여 ‘미셸 여(Michelle Yeoh)’로 부른다. 공식적으로는 영어이름인 미셸에 자신과 가족이 부르는 발음을 붙여 ‘미셸 여 추컹(Michelle Yeoh Choo-Kheng)’으로 부른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양쯔충’이라는 베이징식 발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양자경의 이름 발음에선 여기에 더해 또 다른 문제가 더 있다. 한국어에서 ‘양’, 표준어와 광둥어에서 ‘량’으로 발음하는 그의 성인 양(楊)을 그와 가족이 ‘여’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이는 양자경의 가족이 표준어도 광둥어도 아닌 중국어의 또다른 사투리인 민남어를 모국어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물론 싱가포르에도 사람이나 기업 이름에서 ‘양(楊)을 ‘Yeo’로 부르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이 지역 화교 중에 민남어 사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양자경 본인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조상 중에는 민남계와 광둥계가 모두 있으며, 어려서 집에서 말레이어와 영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스스로 광둥어를 잘 하지 못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지금은 영어는 물론 표준어와 광둥어 모두를 잘 사용하고 있다.

홍콩의 여러 액션 영화에선 광둥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양자경은 대만 출신 리안(李安) 감독이 홍콩 출신의 주윤발, 중국 대륙 출신 장쯔이(章子怡) 등 중화권 배우를 기용해 미국‧홍콩‧중국의 자본으로 중국어로 제작한 2000년 작품 ‘와호장룡(臥虎藏龍)’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 양자경은 영어‧광둥어‧중국어로 모두 연기가 가능한 드문 배우다.

중국 7대 방언

양자경의 성 ‘양(楊)’을 ‘여’로 읽는 민남어는 어떤 언어일까. 중국의 한어(漢語)에는 수없이 많은 지역어 또는 사투리(漢語變體 또는 漢語方言으로 부름)가 있지만, 크게 칠대방언(七大方言)으로 불리는 일곱 개의 큰 갈래로 나뉜다. 이를 일급방언으로 부른다. 민남어는 여기에 들어간다. 각 방언은 내부에서도 지역적‧언어학적으로 다양하게 세부 분류된다.

칠대방언의 첫째가 사용자가 가장 많은 관어(官語) 또는 북방어(北方語)다. 약 9억 명이 제1언어로, 약 2억 명이 제2언어로 각각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최대 지역어이자 가장 중요한 통용어다. 장강(長江) 이북과 쓰촨(四川)성·윈난(雲南)성·구이저우(貴州)성과 광시(廣西) 북부 지역을 포함한 중국 북부와 동북부‧서북부‧중원‧서남부 대부분에서 사용된다. 이에 따라 중국 대륙에선 보통화(普通話), 대만에선 국어(國語),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선 화어(華語)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대 표준한어의 지위를 누린다.

관어의 방언으로 분류되는 진어(晉語)는 6300만 명 정도가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시(山西), 허베이(河北) 서부와 서북부, 허난(河南)의 황허(黃河) 이북 지역 서부, 산시(陝西) 북부, 내몽골 중서부에서 사용된다. 관어와 가장 상호 이해도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가 월어(粤越)로 불리는 광둥(廣東)어다. 중국 내외에서 약 8500만 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선 광둥(廣東)‧광시(廣西)‧하이난(海南)‧홍콩(香港)‧마카오(澳門)에서 주로 쓴다. 1억 광둥 인구 중 6700만이 사용해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다. 광둥과 광시 주민의 해외 이주가 늘면서 캐나다와 호주의 화교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말하는 한어방언으로 자리 잡았다. 동남아의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 그리고 유럽과 호주‧뉴질랜드 등에서도 사용인구가 상당히 있다.

셋째가 2015년 기준 사용자가 8000만 명으로 넘는 것으로 짐작되는 오어(吳語)다. 오월어(吳越語)나 강절화(江浙話), 강동화(江東話)로도 불린다.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포함한 장쑤(江蘇)의 남부와 저장(浙江) 대부분, 그리고 인근 안후이(安徽)‧장시(江西)‧쓰촨(四川)‧충칭(重慶)‧귀저우(貴州) 일부와 홍콩에도 사용자가 거주한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의 화교 공동체에도 사용자가 있다.

넷째가 양자경이 사용하는 사투리다. 민어(閩語) 또는 민남어(閩南語), 푸젠화(福建話) 등으로 불리는 방언으로 전 세계 7500만 명이 사용한다. 중국 남부 푸젠(福建)과 광둥(廣東) 동부와 서남부 지역, 하이난(海南), 저장(浙江) 동남부에서 주로 쓴다. 청나라 시대 이 지역에서 옮겨간 한족의 후손인 대만의 본성인(本省人)의 대다수도 포함된다. 이 지역 이주자의 후손이 많은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브루나이‧일본 등 아시아 지역 화교들이 가장 많이 쓰는 한어방언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공안부의 ‘전국 성명 보고’를 바탕으로 한 인민망의 보도에 따르면 호적 인구수를 기준으로 양(楊)씨는 왕(王)‧리(李)‧장‧(張)‧류(劉)‧천(陳)에 이어 6위에 오를 정도로 흔한 성이다.

다섯째가 객가어(客家語‧하카화)로 5000만 명 정도가 쓰는 걸로 추정된다. 중국 대륙에선 광둥(廣東) 동남부, 장시(江西) 남부와 푸젠(福建) 서남부 등이 객가어 사용지역이며, 대만 일부 지역에도 사용자가 있다. 동남아에선 말레이시아에 사용자가 있다.

여섯째가 감어(贛語‧간위)로 동북‧남부를 제외한 장시(江西)와 후난(湖南) 동남 일대에서 사용한다. 약 5500만 명이 사용한다.

일곱째인 상어(湘語)는 후난(湖南)을 흐르는 샹장(湘江)과 쯔장(資江) 유역을 중심으로 광시(廣西)북부 일부와 귀저우(貴州)와 쓰촨(四川)의 일부 지역에서 3800만 명 정도가 쓰는 방언이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4분의 1은 화교  

양자경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말레이시아와 말레이시아 화교가 새롭게 관심을 모은다. 말레이시아는 사실 민족과 종교가 다양한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한반도의 1.3배가 넘는 33만㎢ 면적의 국토에 2020년 센서스 결과 3245만의 인구가 산다. 전체 인구의 57.3%가 말레이족이고 12.4%가 보르네오 섬의 사사라와크 주와 사바 주 등에 거주하는 토착 비말레이 종족이다. 말레이시아 땅의 토착민에 해당하는 이 둘을 합쳐 ‘대지의 아들이라는 뜻’의 ‘부미푸테라’로 부른다. 이들은 현재 전체 인구의 69.7%를 차지하면서 정치 분야의 핵심 세력으로 군림한다. 말레이족은 이웃 인도네시아와는 같은 말레인도네시아어를 쓰는 데다 종교도 같은 이슬람이라 교류가 활발하다. 한때 통합을 거론한 적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론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나머지 30% 정도를 이주자의 후손이 차지한다. 22.9%가 화교이고 6.6%는 타밀족 등 인도계다. 역산하면 말레이시아의 화교 인구는 743만 명에 이른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연구기관인 ‘문화외교 아카데미(Academy for Cultural Diplomacy)’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말레이시아의 화교 인구는 696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태국(722만) 다음으로 많다. 싱가포르는 중국계의 인구 비중이 약 77%로 중국 밖에서 가장 비중이 높지만 숫자로는 280만 정도다. 인도네시아에도 비슷한 숫자의 화교가 거주한다. 그밖에 미얀마에 163만, 필리핀이 114만, 베트남에 약 100만의 화교가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말레이계는 중국계를 꾸준히 견제해왔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이 구성된 지 불과 2년이 지난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할 때 말레이계가 리콴유(李光耀) 총리를 말리지 않은 것도 경제력을 쥔 화교들이 정치 분야에서 발언권을 높일 가능성을 우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1969년 5월 13일 최대 도시이자 현재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계와 중국계 사이의 인종 충돌인 ‘5·13 폭동’이 벌어져 196명이 숨지고 439명이 부상했다.

이름 앞에 말레이시아 ‘영웅 칭호’ 붙이는 양자경

양자경은 국제 영화계에서의 활약으로 이런 말레이시아에서 국가영웅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공식적으로 ‘탄 스리, 다토 세리 미셸 여추껑’으로 불린다. ‘탄 스리’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최고 수준의 훈장을 받은 사람이 붙일 수 있는 경칭이다. ‘다토 세리’는 말레이시아에서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높은 국가 명예칭호다. 일종의 ‘영웅’ 칭호인 셈이다. 양자경은 2000년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와호장룡’이 아카데미상 4개 부분에서 수상한 직후 PSM를 받고 ‘다토 세리’를 이름 앞에 붙일 수 있게 됐다.

양자경은 말레이시아 국적을 유지하면서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파리에서 남자 친구인 장 토트와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엔 노모와 친척들이 거주한다. 그런 양자경에게 말레이시아 정부는 ‘탄 스리, 다토 세리’를 뛰어넘는 어떤 상을 줄 것인가. 중국이 화교인 그에게 어떤 축하 선물을 할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린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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