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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어향육사(魚香肉絲), 돼지고기에서 왜 생선 맛이 날까?

중앙일보

입력

어향육사. 사진 셔터스톡

어향육사. 사진 셔터스톡

대장정 시절, 덩샤오핑이 이끄는 공산당 부대는 국민당군에 쫓기면서도 회식을 자주 했다. 물론 보급이 없어 실제 음식은 없었으니 먹는 이야기로 배고픔과 고단함을 달래는 귀로 듣는 먹방이었다.

어쨌거나 덩샤오핑 포함 부대원 상당수가 사천성 출신이었기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고향에서 먹었던 어향육사(魚香肉絲)였다고 한다.

사천식 돼지고기 볶음의 일종인 어향육사나 가지튀김 내지는 볶음인 어향가지(魚香茄子)는 중국의 대중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도 친숙하지는 않지만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어향육사나 어향가지 알고 보면 이름과 생긴 유래가 독특하다.

일단 어향육사에서 육사(肉絲)는 실처럼 가늘게 썬 돼지고기라는 뜻이고 어향가지의 가지(茄子) 역시 채소인 가지를 주재료로 요리했다는 소리다.

그러면 어향은 무슨 뜻일까? 

한자로는 물고기 어(魚), 향기 향(香)자를 쓰니 어향은 곧 생선 냄새, 생선 맛이라는 의미다. 설마 돼지고기나 가지요리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말은 아닐 것이고 그러니 생선 맛이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지 않고 엉뚱하게 채소와 고기에서 생선 맛이 난다는 다소 황당한(?) 음식을 만들었을까?

어향 요리의 본 고장인 사천 지역은 삼협댐이 있는 곳으로 본류와 지류를 포함해 강이 많은 고장이다. 그런 만큼 민물생선이 많이 잡히고 민물고기의 비린내와 잡내를 잡기 위한 생선 요리법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사천에 풍부한 고추와 산초, 얼얼한 맛을 내는 화초(花椒) 등을 이용한 양념이다. 어향 소스도 이런 양념 중 하나다.

갖은 야채를 넣어 만든 어향소스.

갖은 야채를 넣어 만든 어향소스.

대부분의 맛있고 유명한 중국 요리는 궁중에서 발달했거나 관가에서 만들어 민가에 퍼졌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어향 요리는 사천성의 한 민가에서 만들어져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별미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민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관련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천성 어느 마을에 온 가족이 모두 생선을 좋아하는 집이 있었다. 식구들이 모처럼 다 모인 김에 생선요리를 해 먹기로 한 주부가 남편에게 장에 가서 물고기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 사이에 생선요리에 쓸 양념을 만들었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생선과 함께 담가 발효시킨 숙성 고추절임(泡魚辣椒)과 생강, 마늘, 사천 된장(川醬) 등이다. 양념을 맛있게 버무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장 보러 갔던 남편이 생선이 다 떨어졌다며 빈손으로 돌아왔다.

난감해진 주부, 정성껏 준비한 생선요리 양념을 버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부엌에 있던 돼지고기를 썬 후 다른 채소와 함께 생선 양념으로 버무려 볶았다.

임시방편에 궁여지책으로 만든 음식이었지만 군침을 흘리며 맛있는 생선요리를 기대했던 식구들이 오히려 맛있다며 하오츠(好吃)를 외쳤다. 생선은 보이지 않는데 양념은 생선 양념이고 맛도 생선 맛이니 신기하고 오묘하다며 감탄했다는 것이다. 생선 맛이 나는 돼지고기 볶음 어향육사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누구누구네 집 어향육사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어향 소스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널리 알려진 어향육사 이외에도 마파 양념으로 요리한 마파두부처럼 두부를 어향소스로 요리한 어향두부(魚香豆腐), 모닝글로리로 알려진 공심채 볶음처럼 유채를 어향 소스로 볶은 어향유채볶음(魚香油菜苔) 등등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어향 음식이 생겨났다.

그중 어향육사 만큼이나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고 또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음식이 어향가지다. 중국에서는 어향가지를 많이 먹는데 여기에도 나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지가 특별한 채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해서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가지에 대해 특별한 환상을 품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자라를 최고 보양식 재료로 여겼는데 양기를 북돋아 장수에 도움이 되며 정력에도 좋다고 믿었다. 그런데 가지의 별명이 초별갑(草鼈甲)으로 풀(草)로 된 별갑(鼈甲), 즉 자라라는 뜻이니 그만큼 몸에 좋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곤륜과(昆侖瓜)라고도 불렀다. 곤륜산에서 나오는 오이라는 말인데 곤륜산은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산이니 가지는 신선의 채소였던 것이다

이런 가지를 별미로 먹는 생선요리 양념으로 조리한 것이 어향가지이기에 중국에서 사랑받는 대중음식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향 요리를 놓고 중국인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내지 옛 문헌까지 동원해 그럴듯하게 미화시켰지만 그러나 생선 맛 나는 돼지고기, 가지 볶음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돼지고기나 가지, 두부나 유채 줄기처럼 어향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대부분 저렴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다. 이런 식재료를 어향 소스처럼 맛있는 양념으로 조리해 별미로 탈바꿈시킨 어머니의 손맛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어향육사를 비롯해 어향 요리가 만들어지고 널리 퍼진 것은 중국이 국공전쟁과 항일전쟁 등으로 궁핍에 시달릴 때였다.

이런 시기 없는 재료를 이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어머니의 손맛은 역시 위대하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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