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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돼지를 돼지라 부르지 못하고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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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한지 17년째 되던 해인 1384년 6월의 어느 날, 황제가 된 태조 주원장의 아침 밥상에 뜻밖의 음식이 차려졌다.

이날 수랏상의 요리는 모두 12가지로 양고기 볶음, 부추 거위 볶음, 돼지고기 채소 볶음(猪肉炒黃菜), 돼지 족발 찜(蒸猪蹄肚), 생선 지짐, 고기 화덕구이, 국수, 닭고기 탕, 콩국, 차 그리고 이름만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요리(素熇揷淸汁) 등이다.

황제 밥상을 비롯해 궁중에서 먹는 음식을 관리하는 관청인 광록시에서 남긴 『남경광록시지(南京光祿寺志)』에 나오는 기록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아침부터 고기 요리를 잔뜩 차려졌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요리도 없다. 그런데 왜 황제 식탁에 뜻밖의 음식이 올랐다는 것인가 싶지만 이유는 돼지고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야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먹어 치운다고 할 정도로 원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고, 명 황제 주원장 역시 중국인이니 아침 밥상에 돼지고기 볶음과 돼지 족발찜이 올라온 게 이상할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기록상 황제의 식탁에 돼지고기 요리가 오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설마 이전까지는 황제가 돼지고기를 과연 먹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최초라고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명 이전의 원나라 때까지 돼지고기는 주로 농민이 먹는 고기, 평민의 음식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관리를 비롯한 지배계층에서는 별로 환영 받지 못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민족별 음식문화도 배경으로 꼽는다.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 때까지 중국은 주로 북방 유목민족이 지배했다. 북방 민족은 대부분 양고기를 선호했고 돼지고기는 혐오했으니 상류층의 식탁도 북방 음식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수당 시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5호16국 시대나 북방 거란의 요(遼), 여진의 금(金)과 달리 한족 중심의 나라였다고 하지만 수양제의 어머니 독고황후나 당 태종의 모친 태목황후는 모두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를 창업한 문제나 당을 건국한 고조 모두 선비족 밑에서 장군을 지냈던 인물들이다. 게다가 수당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유목 지역인 서역의 문화가 유행할 때였다. 북방민족에 쫓겨 남으로 밀려 난 송나라 역시 음식문화에서만큼은 북방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상류층은 양고기나 오리고기, 닭고기 중심이었고 돼지고기는 한족 피지배계층과 농민, 서민의 몫이었다. 출처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송나라 소동파가 지었다고 알려진 돼지고기 예찬시 『저육송(猪肉頌)』에서 "황주의 맛 좋은 돼지고기/값이 진흙만큼 싸다네/부자는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줄 모른다네"라고 읊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런 돼지고기가 명나라가 시작되면서 황제의 밥상에 올랐으니 의외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면 주원장은 왜 귀한 요리 다 제쳐두고 아침부터 돼지고기로 식사를 했을까?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주원장의 출신 성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 설이 있지만 주원장은 안휘성 출신이고 소작농의 아들이며 거지를 거쳐 홍건적으로 활동하다 황제가 됐다.

어려서부터 상류층 음식이 아닌 하층민의 음식, 돼지고기에 익숙했기에 황제가 된 후에도 돼지고기를 찾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태조 주원장에 이어 3대 황제 영락제도 돼지고기를 좋아했다. 이렇듯 황제가 좋아하니 돼지고기 위상이 예전과는 완전 달라졌다. 게다가 명나라에서는 돼지를 함부로 돼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황제와 같은 이름은 쓸 수도 부를 수도 없는 피휘제도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자로 돼지 돈(豚)자를 주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돼지 저(猪)자를 더 많이 쓴다. 그런데 이 글자의 중국어 발음은 주(zhu)로 명나라 황제의 성인 주(朱)와 발음이 같다.

그러니 조선시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명나라에서는 돼지를 돼지(猪)라 부르지 못했고 대신 시(豕) 나 체(彘)처럼 다른 한자 이름으로 불러야 했다.

돼지가 졸지에 귀하신 몸이 됐는데 1519년인 명 무종(武宗)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무종 황제 주후조가 지금의 강소성 의진(儀眞)이라는 곳을 시찰하다 돼지 잡는 소리를 듣고 일반 백성은 돼지를 키우지도 잡아 먹지도 말라는 명령을 내려졌다.

황제의 성과 돼지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무종이 돼지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침 춘절을 앞두고 있었기에 제사도 돼지 대신 양고기로 지내라고 하면서 소동이 일어났다. 백성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자 대신들이 상소를 올려 돼지 도축금지령은 결국 폐지됐다. 『명 무종실록(明武宗實錄)』에 나오는 기록이다.

어이없는 해프닝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돼지의 위상이 높아졌고 명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가난한 고기라는 천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인지 명나라 후반의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천하가 모두 돼지를 기른다고 적혀있다. 간단하게 알아 본 중국 돼지고기 소사(笑史)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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